벌써 두어시간이 지난 일이다. 내가 갓 접속해서 악기연주를 하며 던바튼 광장 근방 가로등 아래에서 불빛을 맞으며 이리저리 사람 구경을 하고 있을 때다. 참을 수 없는 심심함에 마유카를 둘러보던 중 낚시 의자를 파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낚시 의자 하나를 사 가지고 티르코네일에 내려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내구가 깎였으니 좀 싸게 해드리리다."
대단히 무뚝뚝한 이였다. 허나 인심만은 에린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흔쾌히 나의 요청을 들어주는 그 말투는 시원시원하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아침나절부터 기분이 좋아진 난 은행에 가 수표를 뽑으려 하였다. 그러나 파는 이가 나를 제지하며 말하길,
"아직은 수표를 뽑으면 곤란하오."
"어째서 그러십니까?"
"낚시 의자의 포인트 하나가 수리가 덜 되었소."
그리 무뚝뚝하게 말하며 그 자리에 앉아 낚시 의자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그것을 제지하지 못하고 잠자코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빠르게 살펴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의자를 손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 손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대로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이보시오. 외고집이시구먼."
그 이는 퉁명스럽게,
"알겠소. 내 꼼꼼하게 살펴보고 발터한테 맡기려 했는데, 그냥 맡겨야겠어."
하고 내뱉는다. 나는 그 제안에 반색하면서도 발터의 노안과 수전증을 익히 경험해 알고있었기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졌다. 저번에도 내 튜바를 자그마치 6포인트나 실패했던 이가 바로 그 노인장 아니던가.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살펴봐야 수리가 잘되는 법이야. 서두르다 실패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쪼그려 앉아 살펴보던 것을 아예 털퍼덕 땅에 주저앉아 곁눈질로 대충 쳐다보며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것이다.
"이제 발터한테 맡겨야겠소."
그리 말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콧수염을 멋드러지게 기른 노인장에게 낚시 의자를 가져가자,
"낚시 의자를 수리하러 오셨소? 돈은 들고 왔겠지?"
"걱정 마오. 내 돈은 준비해 왔으니 걱정 말고 잘 수리나 해주오."
나는 이제야 낚시 의자를 살 수 있단 기대감을 안고 그들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구경했기에 결과가 궁금해진 까닭이다.
"흐음. 이거 수리하기 편하게 되었구만."
잡화점에 낚시 의자를 내려놓자 발터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평소 다른 이들이 가져오는 것들보다 상태가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발터의 설명을 들어 보니, 요렇게 수리하기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이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의자도 그런 심정에서 그리 오래 손을 댄 것이다. 나는 그 이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이 삭막해진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발터가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의자를 만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동안 잡화점 장사를 하면서 이골이 난 숙련된 손짓이지만 내 눈엔 아까 그 이가 만지던 그 손짓만 못해보임은 내 착각일까.
"흐음."
거기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고뇌 가득찬 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실패했군."
아니나다를까 일은 터졌다. 그 이가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건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는 자신의 노력이 의미없는 것으로 변했음에도 약간의 실망만을 한 채,
"뭐,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내구가 또 깎였으니 돈은 덜 받겠소."
그렇게 기나긴 시간 이어진 거래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티르코네일 다리 한복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브리흐네 잉어를 낚으며 그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얀 미니 유카타를 입고 있던 귀여운 모습의 그 이의 모습을 말이다.
내가 낚시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노라가 아델리아 천에서 방망이질을 하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 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나는 그 방망이질 소리가 바람에 낚시 의자 삐꺽이는 그 소리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에 그 이를 만나면 옥수수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