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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마침 이 책을 읽는 시점에 우리사회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국론이 분열되고 급기야는 사법부내까지 에서도‘불평등 조약’이다. 아니다. 로 시끌벅적하다. 세계는 선진 개발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기조 하에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을 대상으로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주의 정책과 제도를‘국제기준’이라 하여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이 장점을 선전하며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에 권유하는 자유무역주의는 이들 나라의 경제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일까? 실제로 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신들은 자국의 경제발전 단계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펼쳤던 역사가 없었다는 것일까? 저자는 오늘의 선진국인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국가들의 경제발전 역사를 추적하여 이들이 말하는 '좋은 정책(Good Policy)', '좋은 통치제도(Good Governance)'의 실상을 탐사하여 그 위선을 고발한다.
1. 현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의 역사
현재 선진국들이라 하는 영국, 독일, 프랑스 및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과 미국 및 일본이 오늘의 부국에 이르기까지의 경제발전의 여정을 쫓는다. 그들이 가장 산업화된 선진부국에 이르는 과정에 어떤 정책과 제도들을 통해 자국의 경제를 부흥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 중 특히 영국과 미국은 마치 자신들의 경제발전 단계에서 보호주의 정책은 채택한 적이 없으며, 자유무역주의만을 수호한 것처럼 경제역사를 왜곡하고 있지만, 그들처럼 자국의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개입주의적 산업, 무역 기술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고율의 관세 정책을 펼치는 등 보호주의를 강력하게 고수한 나라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영국은 17세기 자신들의 모직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의 벨기에인 플랑드르지역 모직물에 고율의 수입관세를 적용하는가하면, 식민지인 인도의 섬유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하여 금수물품화하거나 고관세 정책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국가 개입정책을 사용하였다. 18~9세기 미국의 경우에도 영국에 대항하여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운영하였으며, 스웨덴이나 독일 역시 유치산업 보호정책의 방법이나 정도는 달리하였으나 보호주의를 통해 자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한 것에는 차이가 없다.
15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내 가장 산업화가 늦었던 독일이나 기타 군소국가의 산업 발전과정을 보면 이러한 양상을 더욱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산업화와 경쟁력을 먼저 갖춘 18세기의 영국이 자신들보다 늦은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여타 국가들이나 세계 식민지에 보호주의를 철폐하고 자유무역주의를 실행 할 것을 요구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경제를 위해서는 고율의 수입관세를 적용하거나 수출원자재의 수입관세는 수출시 환급하여 주는 등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펼치다가 자신들의 산업우위가 확보되자 보호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며, 자유무역주의의 장점을 호소하는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는 영국과 관세를 철폐하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그만큼 경제발전에 곤혹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먼저 산업화에 도달한 나라들이 후발국들에게 강요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인다. 결국 자유무역주의가 그네들의 경제를 선진국으로 올려놓은 것이 아니며, 다양한 자국의 유치산업 보호정책이란 보호주의를 통해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는 허상이고 거짓이다. 먼저 사다리를 올라간 자가 후발 주자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과 같다. 이익을 독점하고 항구화하겠다는 야만적 이기심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은 완전 무장을 하고 상대에게는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부당함인 것이다.
2.' Good Policy', 'Good Governance'의 기만
이처럼 ‘좋은 정책’이라고 패키지화하여 후발국에게 강요하는 현 선진국들의 자유무역주의와 자유방임주의 정책은 자신들의 경제발전 단계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오직 철저한 보호정책만 있었을 뿐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자신이 고지위에 섰을 때 마음껏 후발자를 유린하기 위한 것이 자유주의 이다. 19세기 중반에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관세자주권이 없는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하여 1911년이 되어서야 관세권을 돌려받았으며, 이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예처럼 정상에 선 자가 사다리를 걷어참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적 경쟁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또 하나 웃지못할 사례로서 18~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선진국들은 후발국들의 기술적 도전이나 기술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도입하는데, 스위스의 경우에는 영국이나 독일 등의 선진 기술을 도용하기 위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100여년이나 늦은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부분적으로 제도화 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자국 제약회사들의 지적재산권을 개발도상국들이 강력하게 보호하지 않는다고 반감을 표하는 것이다. 자신의 산업 경쟁력이 확보되기까지는 어떠한 나라보다 폐쇄적이고 보호주의 정책을 고수하다가 정상에 서면 바로 그 보호주의 정책을 차버리고 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상대를 윽박지르는 해괴한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이 현 선진국들이 그들의 발전단계를 거칠 때 사용했던 보호주의의 수위보다 높은 것일까? 생산성의 차이를 감안하여 현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역사와 비교하면 결코 오늘의 후발국의 보호주의 수위는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근래의 상황이 아닌 역사의 단계에서 동등한 수준으로 비교되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들이 선진국에 이르러 그 결과물로서 드러난 현상을 후발국들에 강요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이고 부당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정책적 기만과 병행하여 최근에는 민주주의, 관료제도, 사법권, 지적 재산권, 유한책임제도, 회계 및 공시제도, 금융제도, 공공재정 제도, 아동 근로제도 등을 패키지화하여‘좋은 통치제도’를 후진국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5~10년 만에 그들이 말하는 이 같은‘국제적 기준’에 맞는 제도를 수립하도록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제도적 기준을 세워 일종의 보호주의를 목적으로 은밀하게 불공정한 형태로 남용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 예로 프랑스의 경우, 남성 보통 선거권으로부터 완전한 보통 선거권으로 전환되는데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유럽 각국들이 근대적 전문 관료사회의 필요성인식으로부터 실제 제도 수립까지 3세기 남짓한 시간이 걸렸으며, 중앙은행 제도는 17세기 초의 필요성 제기에서 화폐발행 등 진정한 중앙은행의 설립까지 15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들 현 선진국들의 역사를 보더라도 어떤 혁신적인 제도가 등장한 이후 과반수의 선진국들이 채택하기까지 제도마다 짧게는 20년에서 150년의 기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볼 수 있다. 게다가 발전된 세무 관료제도도 없이 공공재정 제도를 발전시키기 어려운 것처럼, 제도들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 획일적으로 제도를 이식하여 정착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선진국들의 후발국에 대한 소위‘좋은 제도’의 일괄적 강요에 부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 결 어
이 책은 이와 같이 현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이 처한 발전 단계를 그네들의 유사한 역사적 묘사와 견주어 정책과 제도의 다양한 도입과 정착의 양상을 비교하고 있다.
현 선진국들이 그들의 경제개발 초기에 실제로 이용했던 정책과 제도들은 오늘날 후발국에 강요하는 패키지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대적인 기술의 후진성이나 국제환경, 인적자원의 부존량에 따라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정책 수단을 다양하게 사용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제도마다의 도입 시기, 다채로운 방식의 보호정책 등 자국에 적합하게 바꾸어 나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선진국에 도달함으로써 획득된 제반 결과물을 후발국들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과도 모순되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라는 자유무역의 수용 압력은 구미 선진국들이 그들의 경제발전 초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행하던 관세권의 박탈과 같은 불평등조약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합의에 따라 신자유주의 패키지를 거부하지 못하고 수용한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경기침체와 후퇴를 겪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에는 정상적인 경제 발전을 성취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소위 좋은 통치제도를 지닌 나라가 아니다. 민주주의나 관료제도, 각종 공공재정이나 금융시스템 등에서 국제기준과는 한참이나 이격되어 있다. 그러나 국제 투자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중국에 달려들고 있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잠재적 가치란 실제 중요한 경제적 조건이지만 이것만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역시 19세기 말 일본에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했고 수탈경제 하에 신음하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해방과 동족전쟁을 치르고 나서 1960년에서나 비로소 산업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불과 50년 남짓한 시간에 현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획득한 정책과 제도들을 압축적으로 수용했다. 산업화과정에서 취약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종 보조금과 세제 특혜, 수입관세의 환급 등 유치산업 보호 를 위한 강력한 국가개입 정책을 적절히 구사한 것은 우리만의 차별화 된 보호주의 정책의 사용이었으며, 이것이 우리의 경제를 오늘의 위치에 설 수 있게 하는 반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현 선진국 체제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물살에 휩쓸리는 것이 마치 선진국이라도 되는 것인 양 착각하고 그들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기운이 팽배하다. 자신들이 정상에 오르자 사다리를 걷어차는 현 선진국들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 불평등조약이란 지적은 이러한 관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라 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말하는 좋은 정책, 좋은 통치제도와 같은 아전인수식‘자기정의(自己正義)는 이기심보다 훨씬 완고하다’고 했다. 우리는 보다 현명해져야 할 것 같다. 원조 국가 되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며, 설혹 선진국의 대열에 끼었다고 해도 엄연히 기술적, 경제적, 제도적 우열이 존재한다. 우리가 오르는 사다리는 항상 먼저 도달한 자에게 걷어차일 수 있다. 도둑질 하던 자들이 파수꾼이 되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제 우린 저들과는 다른 우리에게 적합한 고유의 정책 발굴과 제도 수립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또한 후진국, 개발도상국으로서의 경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대승적 민족주의의 차원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유력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선진국들의 자유무역주의를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패키지를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춘 새로운 패키지의 기획자로서 나설 수 있다는 위치이자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선진국에게는 후발국을 포함한 세계경제를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통해 되돌아보게 하고, 후발국들에게는 앞에 놓인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과 제도의 수용에 있어 선택의 적절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진정 공존하는 세계경제체제를 위한 사유의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분명한 분기점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비정상적지만 비준이 된 한미자유무역협정에는 많은 이들이 저적하듯이 불평등한 조항들이 산재하고 있다. 정책자는 이러한 지적들을 책임을 다하여 해소하여야 한다. 경제적 평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