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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교육비상원탁회의' 전원토론회. |
ⓒ 안홍기 | |
학자·시민단체·교원단체가 머리를 맞댄 '교육비상원탁회의'가 1차 전체 토론회를 열고 이미 '괴물'이 돼 버린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대안 모색에 들어갔다.
25일 오후 서울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23개 교육단체가 참여한 '교육운동연대'와 <오마이뉴스><경향신문> 공동주최로 열린 토론회는 이날과 같은 총론 수준의 토론을 2회, 여기서 정리된 소주제에 대한 토론을 4회 열고 교육위기 극복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모두발제를 맡은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은 요즘 한국의 교육을 "'교육'의 이름으로 교육을 파괴하고 인간을 파괴하고 사회를 위기에 몰아넣는 괴물이 돼 있다"고 비유했다. "난폭하고, 생각이 없고, 잔인하며 맹목적인" 괴물의 특징을 한국 교육이 그대로 갖고 있다는 얘기다.
'교육이 괴물이 됐다'는 건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 슬픔에 빠지게 하는 난폭한 교육", "교육의 기본 책임과 본질 목적을 잊어버리고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 교육", "아이들의 고통에 너무도 무관심한 잔인한 교육",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라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버린 맹목적 교육"이기 때문이란 게 도 학장의 설명이다.
도 학장은 "교육의 위기가 학교와 교육영역의 위기로 국한되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교육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이 위기 극복에 사회 모든 구성원이 나서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할 것인가가 시급한 일"이라고 이 원탁회의의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적 근대성에서 나온 '미친경쟁', 공공성 회복에서 출발해야" '교육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라는 관점은 사회학자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발제에서 구체화됐다. 조 교수는 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실을 "과잉경쟁을 넘어 미친 경쟁"이라고 표현하면서 "한국 사회가 추구해온 근대성이 퇴행적인 모습으로 극단화되면서 나타난 위기"로 규정했다.
"모두가 못 사는 상태에서 ''나와 내 자녀와 내 가족이 잘 되기 위한 경쟁'은 이제 탐욕스러운 '나와 내 자녀와 내 가족만 잘 되기 위한 경쟁'이 돼 타인을 파괴하고 내 자신과 가족도 파괴하게 됐다"고 진단한 조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근대성의 한국적 극단화'를 더 극단까지 추동하는 걸 '선진화'로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교육위기의 양상을 ▲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은 '과잉경쟁' ▲ 다른 학생을 공동체의 또다른 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적대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왜곡현상과 그로 인한 학생자살과 학교폭력 ▲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쟁', 그로 인한 공동체성의 기반이 되는 공정성의 훼손 등으로 정리했다.
조 교수는 "서구에서도 초기 근대화 과정에서의 극단적인 왜곡화에 따른 사회위기로 인해 이를 정정하는 과정에서 공공성의 가치가 부상했다. 이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적대적 무한경쟁을 공적인 관점에서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현재의 교육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공공성이라는 대안적 지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현재의 교육문제는 이미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 소득계층, 지역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국민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해결과정에 정략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국민적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모든 정치적·사회적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파괴적인 삶의 현실에 부응하는 새로운 공공성 실현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육이 왜 필요한지, 사회의 합의가 있는가?" 안승문 21세기 교육연구원장은 "우리 사회엔 교육이 왜 존재해야 하느냐에 대한 공동의 합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교육의 존재 이유, 학교의 역할과 기능, 교육의 목표와 지향할 가치, 교육으로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 모든 학교에서 지켜져야 할 교육 철학과 원칙, 교사의 역할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특정 세력이나 집단이 아니라 범정파적이고 시민적인 토론을 통해 공론을 모으고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교육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은 "진보진영에서도 교육에 대해 이제 새로운 접근을 하겠다는 발상을 가져야 한다"며 "그동안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다루고 정책을 만들고 선거에 임했던 일들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원탁회의는 '진보 원탁회의'라고 본다. 중도우파까지 설득하고 함께하려는 노력부터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공교육이 지향해야할 표준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혁신학교가 제시되기도 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과 전교조에 지배당하는 학교'인 것처럼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이데올로기적 표적이 되고 있다"며 "그러나 혁신학교를 도입한 교육감들을 '진보교육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상 교육감' 또는 '정상화 교육감'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혁신학교 10개 중에 3개는 잘되고 있고 3개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3~4개는 아직 일반학교에서 탈피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한 성 교수는 "혁신학교의 핵심적인 특징은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과 '서로 소통하는 교사공동체'"라고 정리했다.
성 교수는 혁신학교인 경기도 시흥의 장곡중학교의 사례를 들어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학생들 간 협력적인 생활이 습관화 돼 있었고 우정의 공동체가 상당히 활성화 돼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1~4교시 동안 학교를 돌며 관찰했는데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경기도 내 중학교에서 이런 일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천보선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현재 나타나는 '발달정체'를 통해 교육의 위기상황을 진단했다. 천 소장은 "언어발달은 선행학습과 사교육 등 많은 학습량으로 대체로 초등학교까지는 일정한 발달 추이를 보이는 것처럼 나타나다가 교과과정의 난이도 상승폭이 큰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입학을 거치면서 언어발달 감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청소년기는 추상적 어휘와 사고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어휘도 크게 느는 시기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체 형성돼야 할 대학도 '취업학원화'" 발제자들이 초중등교육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대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는 "중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되지 않은 주체의 형성을 담당해야할 곳이 대학인데 이 대학이 위기라는 게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가 취업을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있고 이게 하위 대학 퇴출의 잣대가 되다보니 대학이 '취업 학원'화 되고 있다. 대학의 사고력·판단력·창의력을 길러내는 훈련기반이 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옥성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여기 '비상원탁회의'에서 '비상'을 빼고 장기적으로 교육의 대안을 준비하는 걸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교육을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교육은 모두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학부모도 학부모단체를 졸업해버리는 상황"이라며 "아이가 졸업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풀뿌리로 돌아가서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교육문제에 논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학교 교육에 미래사회의 가치를 담으려면, 학교 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좋은 일자리로 전환되면서 교육도 함께 좋아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교육의 해법을 찾으면서, 교육적 시각에서 사회문제의 해법도 함께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