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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책 반대하는 쪽의 ‘쓴소리’ 경청… 내세울 만한 ‘브랜드’ 없다는 지적도수장 한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기관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한 기사에 달린 사람들의 평가는 이렇다. “믿지 않았는데,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이 판단은 옳은 걸까.서울시 신청사 로비에는 이런 전광판이 있다. ‘취임 당시 채무 19조9873억원/갚은 채무 1조5636억원/이 달의 채무 18조4237억원.’ 기자가 10일 전 체크한 숫자보다 약 5000억원이 줄어 있었다. 김현성 미디어 보좌관은 “다른 자치단체 운영실적과 비교해보더라도 (서울시는) 채무는 줄이고 복지는 늘린, 상당히 드문 케이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통 ‘서울시민’이 변화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올해 6월 현재 서울시 인구는 1042만3000명이다. 지난 10월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0월 2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서울시 감사.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의 공격은 “서울시의 등 축제가 진주 남강 유등축제를 모방했다”는 주장과 ‘영등포 글로벌빌리지센터 매입 의혹’에 집중됐다. 글로벌빌리지센터 매입 추진은 전임 오세훈 시장 때 시작돼 박 시장 취임 초기에 담당국·실장의 전결로 처리된 사안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공격은 조현옥 여성가족정책실장에게 집중됐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한 조 실장은 박 시장의 당선 직후인 2011년 11월 ‘경력경쟁임용’으로 서울시에 들어왔다. 직급은 별정 1급 상당이다.경전철 계획, ‘박원순 프로세스’ 충실했나
새누리당이 이번 국감에서 요구한 자료들에는 박 시장과 함께 서울시로 들어온 계약·별정직 공무원 리스트가 있다. 또 서울시 산하기관장이나 이사장들 중 내부 승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역시 박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될 인사들과 관련한 내용도 들어 있다. 실제 일부 산하기관의 경우 외부에서 들어온 ‘낙하산’의 임명을 두고 잡음이 일기도 했다.서울시 핵심 고위 관계자의 말. “일부 산하기관 기관장의 경우 서울시 내부의 반대 로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해당 기관에서도 본청과 연결된 직원들을 통해 필사적으로 반대하더라.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는 게, 원래 그 자리는 퇴임 후 노후설계를 하는 공무원들 몫이었다. 여기에 사람을 내려보낸다는 것은 반대편에서 보면 자리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대여론을 제압한 것도 박 시장의 능력이다.”10월 22일, 서울시는 서울메트로 9호선 측과의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적으로 불리했던 최소운영수익보장(MRG)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향후 30년 동안 3조2000억원을 절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재선을 앞둔 박 시장으로서는 ‘치적’이 될 수 있다.서울시의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강희용 시의원(민주당)은 “서울시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서울시의회, 서울시민의 3박자 공조가 이룬 승리”라면서도 “서울시는 이번 협상의 성과를 기반으로 우면산 터널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강 의원은 “운영 주체였던 맥쿼리 입장에서 보면 지하철 9호선은 여론의 부담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적자를 봤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철수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며 “반면 우면산 터널은 ‘캐시카우’로 몇백억원씩 벌어 왔기 때문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박 시장은 취임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서울시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박원순 프로세스’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대담집 <정치의 즐거움>에서 박 시장은 이 프로세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어떤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그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경청’한 다음, 가능하면 그 사람을 이 문제를 같이 풀어갈 주체로 만든다.” 강 의원이 사실 그런 케이스다.경향신문에 ‘우면산 터널 운영과 관련, 전 정권의 맥쿼리 특혜의혹’을 폭로했던 강 의원이 공통문제를 안고 있는 메트로 9호선 문제에 발벗고 나섰다. 강 의원은 “처음에 문제제기를 한 것을 서울시가 수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프로세스’에는 대외비로,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 하나 더 있다.‘쓴소리 기획단’이다. 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박 시장 집무실을 방문했다가 그런 제목의 파일이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서울시 내부 인사와 전직 서울시 인사, 그리고 언론인·학자 등 9명 정도로 구성된 이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비공개로 열린다. 박 시장은 아무런 반박 없이 지적사항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고 한다.‘반값식당’은 추진 포기
논란이 된 경전철 사업의 경우 이 ‘박원순 프로세스’가 지켜진 것일까.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박 시장이 이 사업 추진계획을 밝혔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비판 입장을 밝혀 왔다. 10월 25일 통화에서 홍 소장은 “오늘도 경전철 사업을 반대하는 7~8개 단체와 서울시 정책특보의 간담회 자리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민자로 이 사업을 추진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우려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라며 “최종적으로 박 시장 면담도 추진하겠다고 서울시 측에서는 밝혔지만, 경전철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단체들 중에는 ‘우리가 박 시장의 들러리를 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측 핵심 관계자는 지난 9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업 추진 발표과정에서 무리가 없진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박 시장이 추진하다가 포기한 정책도 있다. 이른바 ‘반값 식당’의 경우다. 박 시장은 10월 22일 서울시 국감에서 “독일을 방문해 보니 ‘경계 없는 식당’이라는 것이 있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고, 취지가 좋아 영등포지역에서 하나 정도 만들어볼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의 반대여론이 커 최종적으로 사업 추진은 중단했고, 현재는 사업을 금융복지상담센터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인터넷이나 SNS에서 박 시장의 인기는 상한가다. 인터넷 댓글에서는 “이 분을 부산시장으로 빌리고 싶다” “서울시장으로 썩힐 것이 아니라 청와대로 보내야 한다”는 식의 글이 많다. 일간베스트저장소를 비롯해 트위터 등에서 박 시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의 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외면당하는 추세다. 국감에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원세훈 국정원장은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국정원의 위기’라고 판단하고 지난 2011년 11월 18일 전 부서장 회의에서 그런 내용을 ‘지시말씀’으로 하달해 엿새 뒤에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이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자체 조사를 통해 일부 사이트에서 그런 활동이 진행된 것을 확인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트위터 팔로어 수가 74만7000명인데, 그것이 곧바로 소통의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박 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팔로어 하는 사람도 그 중에는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캠프를 중심으로 지난 재·보궐선거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책 <박원순과 시민혁명>을 쓴 유창주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의 말이다. 박 시장 캠프에 결합했었던 한 인사는 “온라인에서 지지란 모래성 같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박 시장은 전략적 사고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은 인터넷이 아니라 보수종편만 보는 시니어층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주위에서 권유했다. 이를테면 탑골공원을 방문해서 언론 노출도 하시라, 이렇게 조언했는데 단칼에 ‘싫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비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참모 역할 하는 사람 없다”
2년. 뭔가를 하기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 기간 중 ‘박원순 서울’이 만들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25개 과를 신설했다. 리스트를 일별해 보면 ‘박원순 서울’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알 수 있다.(표 참조) 중요한 것은 ‘서울시 공무원이 변했는가’라는 것이다.국감에서 서울시가 밝힌 일반현황에 따르면 서울시 공무원 수는 1만6933명이다. 이 중 박 시장과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본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3897명이다. 선거 당시 팬클럽에서 활동하던 김혜애 녹색교육센터 이사는 공무원들의 태도가 이전 시장 때에 비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서울시 녹색위원회 위원으로 서울시 환경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전 시장 때 녹색위원회 활동을 보면 아무래도 형식적인 거수기, 결정된 정책에 대해 명분을 주는 정도의 역할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위원회가 사업 방향을 틀어버리면 공무원들도 진행을 못한다.”하지만 시민운동 시절부터 서울시까지 박 시장과 같이 일해 왔던 인사들 중에는 ‘박원순 리더십’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들은 아무래도 자기 일 중심이다. 캠프 출신들이 여럿 들어갔지만 다 따로따로다. 실무로는 유능한 사람이 많지만 ‘참모’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말도 나온다. 매사에 직접 챙기는 꼼꼼한 것이 지나쳐 작은 일에만 집착하다보니 적기에 필요한 큰 그림을 못그리고, 정작 박 시장이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없다는 지적이다. “잘했든 못했든 이명박 시장에게는 청계천, 오세훈 시장에게는 디자인 또는 한강르네상스와 같이 연상되는 것이 있는데, 박원순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희망’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다.”
유창주 위원은 “박 시장이 시민들의 발언이나 아이디어를 경청하며 기록했던 ‘희망노트’가 1000쪽이 넘는 것으로 안다”면서 “박 시장이 2기를 위한 공약 작성과정에서도 그런 것을 활용한 시민참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