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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7958
    작성자 : 정디
    추천 : 7
    조회수 : 855
    IP : 112.145.***.72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3/05/19 19:20:53
    http://todayhumor.com/?panic_47958 모바일
    [단편] 자살은 기억을 남긴다 下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거야. 친구.'

    아마도, 그렇겠지.

    '그래. 친구.'

    응.




    3040번 째 생각

    "자네, 여기서 일한 것이 얼마나 됐지?"

    글쎄. 몇년 됐을까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아저씨에게 보여준다.

    "2년? 벌써, 그렇게 됐구만."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담배갑을 꺼내신다.

    "자네, 담배 피나?"

    고개를 젓는다.

    "이 참에 피워보세.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담배는 필수품이라네."

    그런가요.




    3100번 째 생각

    창문 밖에는 비가 내린다. 창문이 뿌옇게 변한다. 창문이 나를 노려본다.

    열 다섯 평 남짓 되는 공간 속에서 나는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

    '맛있네.'

    나는 눈물을 흘렸다.




    3120번 째 생각

    (벚꽃이 만개하는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 공원으로 나왔네요! 깔깔깔!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도 오늘 벚꽃 구경 어떠신가요?)

    TV에 예쁜 리포터가 나와, 분홍색 벚꽃이 가득찬 여의도 공원을 소개한다.

    '보고 싶다. 벚꽃을. 너무나도. 정말로.'

    정말로.


    3122번 째 생각

    "오빠! 여기 봐봐!"
    "어! 잘 좀 찍어봐!"
    "깔깔깔! 이게 뭐야! 바보같이 나왔네!"
    "잘 찍으라니까!"
    "하하하!"
    "깔깔깔!"

    나는 항상 혼자다. 

    이렇게 벚꽃이 만개했는데도.
    이렇게 벚꽃을 좋아하는데도.

    나는 항상 혼자다.

    '당연하잖아. 너는, 너는 벙어리니까! 벙어리는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혼자 안 지낼 수가 있냐?'

    당연한걸까.
    당연하겠지.
    당연한걸까.
    당연하겠지.




    3300번 째 생각

    "안녕. 오랜만이네."

    응.

    "한 10년만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결혼했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놀랐어?"

    고개늘 끄덕인다.

    "하긴 그럴만도 하겠지."

    그녀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벗는다.

    "나, 맞고 살아."

    그녀의 양쪽 눈두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녀는 웃고 있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랑 같이 살자."




    3301번 째 생각

    "넌 항상 그래왔어. 그런 자조적인 성격 좀 버려. 제발."

    안돼. 나 같은 것이 도대체 왜 좋은거야?

    "이렇게 짐까지 다 싸들고 왔는데. 이혼까지 다 했단말이야."

    난 가난해. 벙어리야. 하루 5만원 버는 놈이란 말이야.

    "도대체 무엇이 문젠데? 네가 벙어리라서 그러는거야? 난 그런 건 상관......"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럼 뭔데? 말해봐!"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준다.




    3302번 째 생각

    "가난해서? 겨우 그런 이유로?"

    겨우라니.

    "상관없어. 돈은 서로 벌면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그것보다, 너는 왜 갑자기 나한테 나타난거야?

    기껀,

    다 잊었는데.

    왜,

    나타난거냐고.




    4500번 째 생각

    "오늘 네 카드로, 많이 긁었어! 깔깔깔!"

    한심하군. 40만원? 40만원이 누구집 개 이름이냐.

    나는 영수증을 마누라한테 집어던진다.

    "쫌생이 자식! 네가 그러니까, 항상 가난한거라구! 거지근성!"

    쾅. 마누라는 방문을 닫고 들어간다.


    망할년.




    4600번 째 생각

    (지금이 몇 시 인줄 알아?)

    나는 종이에 글을 휘갈겨, 마누라한테 보여준다.

    "새벽 1시 밖에 안 됐어! 멍충아!"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분노가 치닫는다. 

    나는 마누라의 볼을 있는 힘껏 때린다.

    "머저리 새끼."

    마누라가 현관문을 부셔지듯이 닫고 나간다.


    썩을년.




    5000번 째 생각

    방 안이 난장판이 되어있다. 농에 숨겨 놨던 통장이 없어졌다. 마누라의 옷과, 화장품,

    마누라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으어어!"

    나는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절규한다.


    개같은 년.




    5500번 째 생각

    "흐윽."

    젠장할.

    "형씨. 왜 쳐 맞는지 알지?"

    알지. 끔찍하도록 잘 알지.

    "마누라년 잘못 둬서 2억 갚게 생겼네. 형씨...... 끌끌끌!"

    그러게나 말이다. 빡빡이.




    5598번 째 생각

    고급 빌딩. 주식 회사군. 바람을 느낀다. 
    '오늘 만큼은 괜찮다.'

    왜냐하면 편히 쉬러 가는 것이거든.

    천천히 빌딩의 계단을 오른다.




    5599번 째 생각

    초여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내 볼을 간질인다. 고층 빌딩의 옥상도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닌 것 같다. 

    즉, 인생을 끝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인 것이다. 옥상이란 곳이 말이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해진 담배갑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라이터의 부싯돌을 마찰을 일으켜 불을 냈고, 그것으로 담배를 태웠다. 

    아, 좋다. 담배를 깊게 빨았다. 몸 속의 붉디 붉은 폐까지 연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가기전에 이런 쾌락도 나쁜 것 같지만은 아닌 것 같군.

    '그럼, 뭐하겠나.'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이제 그럼 뭐하겠나. 아무리 멋드러진 명품옷을 입고, 끝내주는 차를 몰고, 쭉쭉빵빵한 여인을 가졌어도,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의 규칙이며, 세상사의 법칙이다.

    나는 지금 그 세 가지가 없어서 남들보다 이른 선택을 하는 것이고, 세상사의 법칙을 조금 빨리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 아무것도 없으며 다른 초월체의 뜻이나 이념체의 뜻은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선택이다. 남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와 본능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꽤, 높군.'

    휘이잉, 부는 바람소리가 내 고막을 다시 간질인다. 밑 쪽은 단단하고도 단단한 리놀륨 바닥의 늪이다. 그 위로, 군중들이 밀집해있다.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였고 벌집속의 벌들처럼 쉴새없이 행동한다.

    "흐으......"

    하얀 연기가 폐 속 깊은 곳부터 콧구멍 끝을 뚫고 번뇌한다. 수 많은 생각이 든다. 수 많은 표정이 지어진다. 마지막 담배를 깊게 빨고는, 타버린 꽁초를 군중 속으로 집어던졌다. 떨어지는 꽁초는 회전하고 회전해, 그 모습을 감추어버린다.


    한숨 두 어번을 쉰뒤, 두 발을 난간 위로 올려, 몸을 움직였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런 빙신. 무섭냐?'

    자문자답이다. 외면이 질문하고 내면이 대답한다. 솔직히 무섭다.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오고 싶다. 내 안의 악마는 뛰어내리라고 한다. 내 안의 천사는 살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면의 '천사'에게 묻는다.

    '살아서 뭐할건데? 무엇이 보이나? 빛이 보이는거야? 희망이 보이는거냐고? 아, 너는 이러겠지. 세상은 아직 살만해.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있어! 너에게는 도와줄 이가 많이 남아있어! 그러니까, 살아보자. 살아보자고, 친구.'

    'X까.'

    결국에는 악마가 이긴다. 천사는 진다. 그것이 내 안의 룰이자, 신념이다. 변하지 않겠지. 아마도. 영원히. 

    세상은 부정적이다. 적어도 내 근처의 세상은 무채색의 기계 속 부품이다. 이가 맞춰, 돌아가는 기어들. 그 미세한 것 중들의 아주, 아주 사소한 하나의 조그맣고 가녀린 부품.

    그 부품이란 세상 속에 사는 나는 희망이라는 빛나고 긍정적인 한 줄기의 신의 구원따위, 잊은지 오래다.

    '낄낄낄. 그럼, 뒤져.'

    내면의 악마가 실실 웃는다. 지독히도, 끔찍히도 부정적인 자식! 너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왜? 너는 '악' 그 자체니까. 부정, 부정. 부정이란 단어는 무서운 것이다. 부정 한 단어로 세상을 멸할수 있다. 부정이라는 한 사념체는 우리의 절규, 비통, 우울, 비명, 한탄, 고뇌, 고통들을 긁어 모아 한꺼번에 먹고 또 먹는다.

    '자, 어서 뛰어내리는거야. 친구. 자, 어서! 뛰어내리면, 이제 편해질 수 있어! 친구, 당신이 원하던 것이라고!'

    악마,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그래,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맞아, 너는 왜 날 항상 부추기는건가.

    '친구우...... 친구가 원하던 것이었다고? 난 그저 친구를 도와줄뿐이야. 그러니까......'

    '닥쳐! 닥치라고! 이 개같은 자식아!'

    너 따위가 뭔데 내 앞길을 이래라, 저래라냐고! 그래, 네 소원대로 이 세상에서 없어주지.

    '잘했어! 좋은 선택이야! 아주 잘했어! 하하하하하! 낄낄낄낄낄!'

    새끼. 쪼개는 것 하고는.

    '그래.'

    두 발을 난간에서 뗀다. 날아가는 벚꽃의 기분이 이런걸까. 자유롭다. 신나디, 신난 바람들은 나의 살과 머리카락을 미친듯이 뒤 흔들고, 구름은 둥실둥실 춤을 추는 것 같다.

    눈 앞에서 지금까지의 인생들이 오버랩된다. 아주, 빠르면서도 천천히. 그 인생들은 나의 뇌를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된다.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찌릿한 느낌이 오감으로 변환된다.




    현실에서의 마지막 생각

    '형씨. 이제 끝이군.'

    그러게. 퍽이나 즐거운 생각이었다.

    '낄낄. 이제 작별인가, 친구. 아쉽군 그래.'

    난 별로.

    '섭섭하구먼, 친구.'

    섭섭해라.

    '낄낄. 친구. 참 엿같은 인생이었지?'

    그래. 참 엿 같았다. 마치, 모든 부정을 삼킨 것처럼 느껴져.

    '끌끌. 암, 그렇고 말고. 다음 생에서는 행복하게나. 친구.'

    그래, 고맙다.

    '그럼......'

    이제, 정말 끝이군.

    '잘가게......'



    콰직-



    '친...... 구.'

    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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