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전 의원이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김정길 전 의원은 지난 6월 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제 저는 정치를 떠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정계 은퇴를 알렸습니다. 김정길 전 의원의 정계 은퇴는 사실 언론이나 많은 사람의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이 보여준 그의 삶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5년간의 정치 인생을 마감한 김정길 전 의원의(이하 존칭 생략) 삶을 통해 그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성공과 출세를 포기한 바보 김정길' 김정길은 어쩌면 노무현보다 더 막강한 정치적인 입지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12대,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통일민주당의 원내수석부총무,통일민주당 원내 총무를 역임했던 인물로 정당 내에서 확고한 기반과 출세가 보장됐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인생은 3당 합당을 시작으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쫓겨납니다.
▲3당 합당 반대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에서의 김정길과 노무현. 출처:대한민국 국회,사람사는 세상
3당 합당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기자회견 사진을 보면 노무현 의원이 맨 우측에 있습니다. 이런 앵글의 사진이 많은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노무현 의원보다 더 비중 있었던 사람이 바로 김정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일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던 김정길은 정치권의 중심인물이자 재선 의원이었고, 노무현은 초선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3당 합당 반대 이후 꼬마민주당이 신민당과 통합할 당시에도 김정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정치적 위상은 더 높았습니다. ' 끝까지 바보처럼 살아온 김정길의 낙선 인생'
김정길의 정치 인생에서 화려한 날은 별로 없었습니다. 3당 합당 전에 12대,13대 국회의원과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그리고 국민의 정부 시절 행정자치부 장관이 전부였습니다.
두 번의 국회의원 당선 이후 그는 한 번도 선거에서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1985년 제12,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정길은 3당 합당 이후에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 지역에 계속 출마했지만, 단 한 번도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김정길에게도 두 번의 정치적인 찬스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와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며 분당과 같은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고 또 다시 부산에서 출마합니다. 물론 결과는 낙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장관을 맡거나 안정적인 지역에서 출마할 수 있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은 사람은 또 다시 부산 영도에 출마했고, 계속 선두를 달리다가 정동영 의원의 노인 폄훼 발언 파문으로 낙선했습니다.
▲부산 영도구가 기반이었던 김정길의 선거 포스터
김정길의 바보 같은 행각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산 영도에서 계속 출마했으면 되는데, 자신이 온 힘을 기울였던 지역구를 야권 단일후보를 위해 양보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 중심이었던 부산 진구에 출마, 또다시 낙선했습니다.
김정길은 선거에 매번 떨어지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일만 찾아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김정길은 '한미FTA 반대'도 다른 정치인처럼 우아하게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최루탄을 맨 앞에서 온몸으로 맞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악의 대선 출마 장소로 손꼽히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며 하기도 했고, 크레인 시위 현장에서는 사흘 동안이나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 배지도 없는 사람이 남의 선거에는 왜 이리 열심인지 최문순 강원지사 선거를 비롯해 각종 보궐 선거에는 단골처럼 등장해 선거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위해 지독히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김정길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정치인 중의 한 명입니다. 자신의 당선보다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일에, 오히려 정치 경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곳만 쫓아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7번이나 (3당 합당 이후)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 왕바보 김정길이 남긴 것'
김정길이 1971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공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개 대학 총학생회장이 '영,호남 지역감정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김정길은 그 어린 나이에 외쳤던 공약을 지키려고 평생 부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김정길은 몇 차례나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사임하고 난 뒤에 분당에 출마하면 이긴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그는 3당 합당 이후 자신을 외면했던 부산 영도구로 다시 내려갑니다.
8년이나 떠나 있어 지역 조직조차 와해한 곳에 출마하려던 김정길을 노무현마저 말릴 정도로 뻔히 낙선이 눈에 보였지만, 그는 부산 출마를 강행했고, 또 떨어졌습니다.
수도 없이 선거에서 떨어진 김정길이지만, 16대 총선부터 그가 가져온 돌풍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2500표 차이로 낙선하기도 했으며, 17대 총선부터는 매번 40%가 넘는 득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야당 후보가 40%가 넘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득표율을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유지했습니다. 이는 그가 부산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보여주는 결과이자, 그가 뿌린 지역감정 철폐라는 씨앗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정길이 왜 이번에 정계 은퇴를 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내년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지난 부산 시장에서 44.6%의 득표를 기록했던 그였기에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론과 정치계에서 자신을 부산 시장 후보로 거론되자 정계 은퇴를 한 것입니다.
◆ 김정길 > 전 사실 대한체육회장, 올림픽위원장하면서 정치를 끝내려고 했는데. 그게 갑작스러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해서 또 그다음 해에 부산시장 선거의 후보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문재인 의원하고 제가 서로 나가라고 하다가 제가 밀려서 나왔습니다. 거기에도 여러 차례 정치를 그만두려고 한 게 그때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정계은퇴를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정계를 은퇴하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내년 지방자치 선거가 한 1년쯤 남으니까 또 언론에서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야권에서 제 이름이 자꾸 거명이 돼서 지금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해 둬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이번에 전격적으로 했습니다.
◇ 정관용 > 지난번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거의 당선되실 뻔 했잖아요. 40 몇 % 얻으셨잖아요?
◆ 김정길 > 45% 정도 얻었습니다.
◇ 정관용 > 그러니까요.
◆ 김정길 > 선거라는 한 표가 모자라도 모자라면 지는 겁니다.
◇ 정관용 > 그러니까요. 그런데 지난번에 45%였으면 이번에 한 번, 내년에 나가시면 그때는 되는 것 아닌가요.
◆ 김정길 > 아이고, 이제 후배들이 해야죠. (웃음)
◇ 정관용 > 그런데 아주 일찍부터 정치를 자꾸 그만두고자 했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 김정길 >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 그 이유는 뭐였습니까?
◆ 김정길 >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건데요. 제가 제 자신을 되돌아볼 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출처:CBS 시사자키)
김정길의 정계 은퇴는 어쩌면 가장 화려한 인생의 마지막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듯한 선거를 그는 과감히 포기한 것입니다.
정치 후배들을 위해서 자리를 넘겨주고,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욕심을 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인들, 특히 정치 경력이 많은 정치인은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습니다.
3당 합당 거부 후 단둘이서만 잔류하며 쓸쓸하게 쓴 소주를 마시던 노무현은 김정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국회의원 떨어져도 변호사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지만, 당신은 뭘 믿고 안 따라갔소?"
성공이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김정길을 보면서 노무현의 눈에도 그는 참 답답한 정치인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과 함께 끝까지 부산에서 패배를 경험하면서 지역주의를 이겨내려고 노력했고, 그런 김정길을 노무현은 존경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김정길은 친노무현쪽이 아니라 김대중쪽에 가까웠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길과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한민국 정치가 나아갈 올바른 길을 위해 함께 격려해주고 경쟁하며 나아 갔던 동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