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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7686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33
    조회수 : 3646
    IP : 119.195.***.230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3/05/15 23:56:08
    http://todayhumor.com/?panic_47686 모바일
    [단편] 27세 수연 씨, 유기당하다 最下 完 (BGM)

    27세 수연 씨, 유기당하다 -1-
    27세 수연 씨, 유기당하다 -2-
    27세 수연 씨, 유기당하다 -3-



    -----------------------------------------------------------------------------------------------------








    실험을 겸하는 치료는 순조로웠다.

    겁을 주며, 자신이 오롯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고 각인시켰다.
    볼펜을 손에 쥐며 저항하려던 흔적은 효과의 명확한 증거였다.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을 달래는 것만큼 손쉬운 일이 있을까.
    그녀에게 계속해서 달콤한 기억만을 심었다.

    하찮은 음식거리도, 방치된 그녀에겐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었다.
    혼란의 틈에서 의심의 장벽을 무너트리는 템포를 올려 서둘렀다.
    수연 씨에게 나를 완전히 구세주로서의 인상을 심는 것에 치중해야했다.

    다행히도 타이밍은 적절 한 듯싶었다.

    한 번 열리기 시작한 마음은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느꼈을지 모르나, 그녀는 나와의 살갗이 닿는 것에도 자연스럽다.
    일부러 확인 차 그녀의 귀를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 보며 누차 확인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 무방비 상태였다.

    키를 낮춰가는 그녀의 벽을 느낄 때마다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환자에게 거리를 가깝게 두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알고 있다. 수연 씨는 직관적으로 말해 정신병자였다.

    그들은 마음이 심약하다.
    마음에 틈이 있다. 틈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널찍한 공간.

    구멍.

    그들은 쉽게 의사에게 기대려 한다.
    벽이 높은 환자들도 많다.

    항상 그들의 벽을 허물고 그들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공감대를 만들되 환자에게 빠져들지 말라. 이는 나의 정신과 의사생활 철칙과도 같다.

    환자와 의사가 공명하게 되면 그 끝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다. 수연 씨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조사해왔다.
    한 환자에게 빠져들어 치료를 한다는 것.

    이런 것은 의사 생명을 썩뚝 칼질해대는 것만 같은 짓이었다.
    가랑비에 온 몸을 적시듯, 그녀에게 공감대를 가지게 된다. 그녀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함께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그녀가 익숙해진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살가움이 내게 만족감을 준다.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수연 씨의 부모님에게 통보했다.

    “제가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따님과 접촉을 금해주세요. 수연 씨는 지금 제가 만든 세계관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희소식이에요. 치료는 성공적입니다.”

    또 며칠 후 다시 통보했다.

    “치료가 난조입니다. 어느 날은 호전을 보이다가도, 어느새 다시 방으로 돌아가 버리곤 합니다. 죄송합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엔 다시 부모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그리고 다시 절망을, 그리고 약간의 희망을 주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녀가 집 안을 돌아다닐 때부터 치료를 멈췄다.

    그녀는 충분히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녀가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싫었다.
    그녀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완치된다면 나는 그녀를 놓이게 될 것이다.

    내가 정신과 의사였고, 치료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선의를 보였다는 사실을 감춰야했다.
    그녀가 만에 하나 내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수연 씨가 물었다. 꺾인 어깨가 접질린 듯, 어깨를 움켜쥐고 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성공할게요.”

    미안함에 또 그렁그렁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력해온 사람. 가여운 사람. 이젠 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아요. 제가 당신을 지켜 줄게요. 저 밖은 수연 씨에게 너무 차갑기만 해요.

    제 곁에만 있어요…….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우리.”

    수연 씨를 가만히 안았다. 품에 안긴 그녀의 긴긴 머리칼에서 아득한 향기가 퍼진다.
    가슴에 안고 있는 그녀에게서 이 전엔 몰랐던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평생 이 여자를 놓을 수 없다.

    “미안해요. 다음엔… 노력할게요.”
    “괜찮아요.”

    당신은 이 아파트를 벗어 날 수 없겠죠.
    괜찮아요. 저는 그저 당신과 봄 산책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걸요.

    미안해요.

    당신을 놓아 줄 생각 없습니다.

    괜찮아요.
    영원히 내 곁에 있어요.

    영원히….






    -끝-

    숏다리코뿔소의 꼬릿말입니다
    글이 너무 늦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고, 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좀 더 글 같은 글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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