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저는 일본인 아내를 둔 30대 중반의 남자로
한국에서 살고 있고 아직 한국말이 서툰 와이프에게 퇴근 후 혼이 담긴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문득 장인 어른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적어보려 합니다
저와 장인어른의 만남은 다들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승낙을 위해 일본으로 찾아 갔을때였습니다. 그때까지 장인어른은 와이프가 결혼할 사람이 있는지.. 아니 남자친구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계셨었지요. 와이프는 필리핀에, 저는 한국에 있다가 일본 부모님을 찾아갈 결심을 하고 오사카 공항에서 만나.. 그 자리에서 와이프가 전화 했습니다.
"엄마 나 내일 집에 가요"
"?? 지금 님하 필리핀에서 일 하는거 아님?"
그때 와이프는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올거라고 결정 하였던 상태였는데..아직 부모님께 알리지는 않았었던 겁니다
"필리핀 일은 그만 둘거고 내일 결혼 하고 싶은 사람하고 같이 갈거예요"
"하...?!@?!@??#!?"
그... 일본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하....? 가 육성으로 크게 터져나오는 걸 들으며(스피커폰) 안녕하시냐고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던 자신감이 쏙들어 가벼렸습니다.
저는 당연히 일본 부모님 만나러 가자는 일정을 잡았을때 와이프가 어련히 부모님께 말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가 크게 당황했지요
다음날 아침.. 오사카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3시간, 로컬 버스 1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타카마츠 내의 시골이였지만
그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손에 들린 정ㄱ장 인삼 세트는 무거웠고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죠. 집이 가까워 질수록 와이프에게 자신있게 했던 말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도 열심히 살았고, 일 하고 있고, 우리 서로 신뢰 하니까 자신있게 말씀드리지 뭐"
"오오! 사스가 나의 옵빠!(나이는..와이프가 많지만 애칭이 옵빠 입니다..지금도)
"훗 나는 말을 잘하니까 잘 풀릴거야! ㅎㅎ"
'......도망가고 싶다.. 내일 하고 모레 오사카 관광 안해도 되니까 지금 돌아가고 싶다..'
스피커에서 우리가 내일 정류장이 다음임을 알려주는 순간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그순간
"아? 엄마가 정류장에 마중나왔데"
저에게는 한시간의 여유마저도 없어졌습니다..와이프에게 "아 그래?" 대신에
"어째서?!@!??!@#!?@?!?@!#?(どうして?!)"
라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처구니가 없게 만드는 말을 밷었고..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들어와 마음이 편안해져 있는 와이프는..
"버스타고 가면 머니까 내가 부탁했음. 안됨?"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달란 말이다! 마음의 준비가..'
"하하..아니야 ㅎㅎ 고마워.."
장모님의 첫인상은 부드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진으로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우라가 있으셨죠. 서로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고 바로 차에 탑승하였습니다
"xx(와이프 이름)야 집에 아버지 기다리고 계신다"
'두근'
버스를 타면 1시간 거리라더니.. 자가용으로는 30분만에 도착합니다. 시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씀드리면 저는 솔직히 항상 자신감이 충만하고 어디서나 쫄지 않는 성격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슨상황이든 "뭐 별거 있겠어?" 라고 넘겼고, 과도한 긴장은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제 인생에 이렇게 긴장해본적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몸이 무겁고, 머리는 제대로된 사고가 안되더라구요--;
머리속으로 얼토당토 않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데 차량이 감속하기 시작하더니 마당이 넓지 막한 한 집에 주차를 합니다. 짐을 내리고 흡사 죄인이 된 마냥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푸근한 얼굴을 가진 한 중년의 남성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xx의 남자친구인 yy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처음 뵈는 장인어른에게 예의있게 말을 하는건지 아닌건지 판단할 사고는 없었고, 비지니스 상대에게 기계적으로 뱉듣이 말 했습니다. 이에 장모님은
"배고프죠? 저녁 준비 할게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셨고, 거실에는 와이프, 저, 장인어른 이렇게 3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일본 드라마를 통한 학습으로 웬지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았고 장인어른이 질문 하시는 내용에 말을 떨지 말아야 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시는 30분동안...장인어른은 한마디도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시더군요--;
와이프가 얘기하는 몇몇 근황에 "아" 라는 짧은 단말마만 하시고 저는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은 근처 회전초밥집에서 사온 초밥, 어머님게서 만드신 닭튀김(카라아게) 직접재배하신 나물들이 정성스레 차려져 있었지만 아무리 제가 왕성한 식욕을 보유했다고 해도 와이프가 먹는량의 반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장인 어른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한국에서 무슨일 하세요?", "부모님은 잘 계시고?", "일본에 와본적 있어요?", "xx와는 어떻게 만났어요? 등의 질문이 이어졌고.. 긴장으로 일본어가 버벅대고 있던 저를 대신해서 와이프가 답변 하는 형태로 저녁식사가 진행 되었습니다. 어느타이밍에 "저희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의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그떄
"xx야 결혼은 어디서 하니?"
"한국에서 하고 일본에서는 피로연만 하지 뭐"
"아? 그래 언제?"
"9월쯤이 좋을거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
어..라? 저는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와이프와 어머니는 이미 결혼식 날짜, 참여 인원, 일본 피로연은 어디서 등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습니다..저는 결혼 허락에 대해서 말을 해야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었고.. 장인어른은 식사가 끝날때까지 기어코 한마디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방에는 이미 두터운 이불이 셋팅 완료..탕에 들어가서 목욕하라는 장모님..어느것하나 오기 전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가던 시뮬레이션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탕은.. 뭔가 들어가면 안될것 같아서 샤워만 하고 나왔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사카행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나가야 했던 우리를을 위해 부모님께서 배웅을 나오셨고.. 그떄
"우리 딸을 잘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셨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이하여 당황한 저는
"아..예.."
라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을 날렸고, 2초후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저야 말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ㅠ"
"아..허허(멋적인 웃음)"
모든 짐을 벗어 던진 저는 이틀간 오사카에서 마음껏 놀고 한국으로 들어왔고, 와이프는 필리핀으로 돌아가 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 왔고 그렇게 결혼했습니다ㅎㅎ
언젠가 처가와 동행한 온천 여행기나 장인어른 장모님의 한국 여행기 같은걸 쓸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