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마 탄 백수
작가 : 이대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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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 재방송 으아, 이 뇬은 취하지도 않나!
빨리 보내고 지갑 털어야 하는데!
앗! 이번엔 짝수구나.
『여기 한 병 더 요!』
잠시 후, 그녀가 지른다.
『한 병 더 줘요!』
다시 내가 질렀다.
『한 병 더 요!』
그렇게 소주잔이 농구공 튀기듯 마구 날아다니고 난 뒤, 헤롱헤롱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한 대수! 10억 원이 왔다갔다한다. 절대 취하지 말자!
『한 병 더 요! 딸꾹~!』 뱃속에서 꿀렁꿀렁하던 넘들이 가슴팍을 타고 올라와 목구멍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더니 급기야 부친개로 완성되려한다.
0.123초만에 화장실로 날아가 변기통을 부둥켜안고 부친개를 쏟아냈다.
우엑~ 우엑~ 뽀글뽀글~
독한 뇬! 소주를 냉수 마시듯 마시다니!
내 백수생활 2년 동안 논스톱으로 14병을 마셔본 적은 오늘이 첨이다.
한참동안 분만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시끄러운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쓰댕아~ 빨랑 나와! 나도 급해!』
『여자 화당실 이딴아!』
혓바닥이 제 구실을 상실했는지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남녀 공용이야! 딸꾹!』
『기둘려!』
변기통 안에는 그림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나의 때깔스러운 점액들이 여기저기 달라붙어 변기를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었다.
나의 비위는 금방이라도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를 듯한 질퍽질퍽 뜨끈뜨끈한 설사 똥 같은 쌩된장 덩어리를 가차없이 섭취하는 국내최강 비위지만, 이걸 보니 몸 안에 있는 불완전 떵들이 지랄발광을 한다.
물을 내리려고 하는데, 물 내리는 밸브는 안 보이고 첨 보는 버튼들이 보인다.
변기통과 면상을 마주하고 바짝 쪼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재생이라고 적힌 버튼을 눌러봤다.
순간, 위이잉~ 하는 굉음이 들려오더니 칫솔 비슷하게 생긴 게 변기 안에서 뽈록 튀어나온다.
이건 모냐? 신기하네.
그 괴상한 물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목구멍 출구에 모여 농성중인 대규모의 점액들이 문을 박차고 입구 쪽으로 처 올라온다.
『웁, 우웩~~』
뜨끈뜨끈한 부친개를 두 장 째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시원한 물줄기가 내 입 속으로 솟아오른다.
취이이이~~
『으아아, 어부부부~~ 우웩~ 우웩~』
『쓰댕아~ 빨리 나오라고!』
『퉤퉤.. 으엑. 어부부.』
신발! 이건 어느 나라 변기냐!!
얼굴과 옷이 홀라당 젖은 상태로 문을 열고 나왔다.
『딸꾹~ 변기통 잡고 세수했냐?』
『퉤, 퉤, 변기 안에서 티어나오는 건 머냐!』
『딸꾹~ 똥구녕 닦아주는 비데변기도 모르냐!』
『뭐! 나와! 우웩~ 우웩~』
손가락을 목구멍에 처넣고 배속에 남아있는 모든 찌꺼기들을 한순간에 내뿜어냈다.
헥헥! 똥 닦는 물로 양치질을 하다니!
『웁! 우에에웩~~~!』
둘이서 변기통을 사이좋게 부여잡고서 한참동안 우웩 하다가 헤롱헤롱한 정신으로 술집에서 먼저 빠져 나왔다.
지갑을 털기는커녕 내 속만 훌훌 털어 내고 나온 것이다.
윽, 위장에서 알코올과 이물질의 역류로 인한 공기회오리가 발생해 경악을 금치 못할 건데기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헥헥, 우억~ 헥헥, 우억~』
윽, 분만의 고통이 이리도 잔혹하다니. 찡그린 얼굴 때문에 이마에 주름살이 생길까 걱정된다.
계산을 마치고 뒤늦게 나온 그녀가 얼굴에 알코올 도수를 높이며 섬뜩한 눈빛으로 말을 내뱉는다.
『씨퐁~ 돈도 없으면서 내기를 해? 죽을래! 딸꾹~!』
『헉헉, 나중에 멋지게 10차 쏠게.』
『그지같은 놈~ 10만원 추가됐으니 100만원 갚아라! 딸꾹~!』
『헉헉! 알았다.』
세상은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입에선 악취가 나고 배속에선 에이리언같은 괴물이 꿈틀꿈틀 대는 것 같고 기운은 빠져버려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술집 앞에 기대앉아 솔솔 불어오는 밤바람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셨다를 반복해댔다.
그러자 조금씩 숨이 차분해지고 경직된 몸이 릴렉스한 상태가 되었다.
후~~ 지갑 털기 정말 힘들구나.
결국 1단계 작전은 실패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다음 작전이 기다리고 있다. 미리 2단계까지 생각해두길 정말 잘했구나.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오니 하늘이 까맣게 타버렸고 거리에 쇼윈도는 하나씩 불을 밝히고 있었다.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와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놀이터 풍경이 온통 흔들리는 것 같다.
『쓰댕아~』
『왜? 딸꾹~』
『율무차 뽑아왔냐?』
『그냥 마셔.』
『넌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왜 백수라는 직업을 못 벗어 나냐?』
이게 지금 남의 속을 긁으려고 하나. 갑자기 직업얘기가 왜 나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의 없는 대답 1위라는,
『그냥.』
이라는 대답으로 대충 때워버렸다.
그리고는 잽싸게 친절모드로 돌아와 게슴츠레한 눈을 바짝 뜨고 말했다.
『보라야~ 딸꾹~』
『징그럽다. 다정스러운 척 하지 마라.』
『너희 집으로 하루만 납치해주라~』
『씨퐁~ 왜! 딸꾹~』
『이 상태로 집에 못 들어간다.』
『우리 집이 여관이냐!』
『베란다에서 잘게.』
『110만원! 딸꾹~』
『허걱! 알았다!』
지금 겨우 110만원이 문제냐. 10억이란 천문학적인 액수가 왔다갔다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억이 우스운 단어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1억을 벌기 위해서는 붕어빵 30만 마리를 논스톱으로 굽고, 잽싸게 찌라시 300만장을 돌리고 나서, 인형눈깔 사백만개를 부쳐야만 벌 수 있는 돈이다.
이론이 간단해서 예전에 한번 시도해보려다가 찌라시 100장 돌리고 집어친 적이 있다.
아무튼 무시무시한 돈이다.
무수한 별들이 우릴 향해 한꺼번에 쏟아질 듯 내려다보고 있고, 함께 비틀비틀 거리며 그녀의 집 쪽으로 걸었다.
이제 곧 있으면 이산의 아픔을 달래고 복권과 상봉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상황의 발단이냐.
만약 이번에도 소설의 구성요소인 위기가 생긴다면 정말 돌아버릴 지도 모른다.
근데 이 뇬은 혼자 사는 건가? 만약 누가 있으면 골치 아픈데.
은근슬쩍 한 스푼 떠봐야겠다.
『너 혼자 사냐?』
『남에 사생활 캐내려 하지 마라. 딸꾹~』
『혼자 사는 거 맞지?』
『그래! 혼자 산다! 합숙훈련이라도 하려고 그러냐?』
아싸~! 혼자 사는구나.
요즘 집에 있기도 눈치 보이는데 그냥 집 나와서 잠시 동거할까?
미칠넘! 또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구나.
10억 찾으면 1등급 호텔 평생 숙박권 끊어야지.
잠시 후에 있게 될 행복한 상상에 발을 담그고 캄캄한 골목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뒤에서 느닷없이 달려든 대머리 괴한 한 명이 그녀의 핸드백을 가로채고서 우리들 사이를 날치기 통과한다.
『꺄악! 소매치기야!』
허걱~! 날치기~? 내 10억!!
갑자기 술이 확 깨버렸다.
『쓰댕아~ 안 따라가고 뭐해!』
『신발! 거기 안 서~!』
그 날치기범은 핸드백을 옆구리에 바짝 끼고서 럭비공을 옆에 끼고 달리는 미식축구선수처럼
용감무쌍하게 골목길을 파헤쳐 나갔고 나도 잽싸게 알코올을 기름 삼아 시동을 걸고 급 출발을 해서 그 넘의 뒤를 쫓았다.
후다다닥~33
신발넘! 남의 대박 인생을 넘봐? 누군지 몰라도 돈 냄새는 무지 잘 맡는구나.
그 날치기범은 숙련된 도움닫기로 공기사이를 초고속으로 질주해댔고 나는 평소 축적한 '벨 누르고 튀기'운동 효과로 그 넘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보통 뒤에서 쫓아가는 사람은 평소보다 두 배나 빠른 스피드로 질주하고 도망가는 사람은 평소보다 다섯 배나 빠른 스피드로 달려 놓치기 일수지만, 난 그 이론을 초월해서 평소보다 열 배나 가까운 초고속 광 통신망의 속도로 질주했다.
10억이 눈앞에서 달아나는데 이 정도 스피드도 못 내면 그게 병신이지!
헥헥! 잡힐 듯 말 듯 거리가 좁혀졌다.
앗! 그 날치기범이 쇼트트랙자세로 잽싸게 코너윅을 하더니 오르막길 코스를 선택한다.
신발! 오르막길엔 약한데!
『헥헥! 너 잡히면 죽는다~! 빨리 서라~!』
동방예의지국이라 가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날치기범은 말할 힘까지 아껴가며 전력질주에 충실했다.
신발! 괜히 한마디했다가 1m 더 벌어지고 말았다. 말을 아끼자!
어느덧 마라톤코스로 이어지게 되었고 가로등 하나 없는 달동네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저 넘이 앞에서 헤드라이트로 길을 훤히 비춰주고 있어 뒤에서 따라가는 나에게 유리하긴 했지만 저 넘은 머리가 유선형이고 머리털도 없어 공기의 저항을 쉽게 이겨낼 수 있고 키도 나보다 훨씬 커서 발 한번 디딜 때마다 10cm는 앞서가기 때문에 내가 왕창 불리했다.
그리고 '벨 누르고 튀기'의 단거리 질주만 하다가 이렇게 마라톤코스로 뛰려니 점점 숨이 가빠져서 뒤로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헥헥, 한대수! 절대 10억의 행운을 놓쳐선 안 된다!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자!
신발! 골목길을 세 번이나 지나쳐 오면서 골목길에 나와 담배피고 있는 아저씨들이 몇 있었는데 앞에서 발 걸어주는 시민 한 명 없다. 달밤에 영화촬영 하는 줄 아나!
이제 나의 오기도 그 넘의 끈기 앞에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돼~! 한대수~! 대박 인생을 놓칠 순 없뜨아아아~!
26년 동안 한번도 안 쓰고 비축해뒀던 젖 먹던 힘을 동원해 다시금 악착같이 질주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는데 그 넘이 나와의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쓰윽 돌린다.
그런데 순간 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넘이 자진 납세하여 전봇대 옆에 꽤꼬닥 쓰러지고 말았다.
으잉! 이게 웬 떡이냐!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잽싸게 그곳으로 달려 가보니 전봇대 옆에 툭 튀어나온 커다란 말뚝이 보였다.
허걱~! 무지 아프겠다.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구나!
『헥헥~! 신발넘! 남의 핸드백을 들고튀어? 콩밥 좀 먹어봐라!』
핸드백을 챙기고서 땅바닥에 쓰러져 빌빌대는 날치기범의 머리끄댕이를 끄집어올리는데 머리가 미끄러져서 땅바닥에 쿵하고는 떨어지더니 금세 기절을 해버렸다.
허걱~! 콩 볶아 먹으려다가 가마솥 터뜨린 격이다!
그 넘의 태평양처럼 넓은 마빡을 사정없이 줘팼다.
깨어날 생각을 안 한다.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따귀도 때려보고 코 구멍도 막아보고 간지럼도 태워보고 별의 별 짓을 다해봐도 깨어나질 않는다.
으아앗! 죽은 거 아냐?? 미치겠다! 미치겠어!!
콩닥콩닥 뛰던 심장에 가속도가 붙어 진동모드로 돌입하는 순간이다.
신이시여! 왜 저에게 행복과 불행을 종합선물세트로 주시는 겁니까!!
그 넘의 몸을 흔들며 고함을 질러댔다.
『빨리 일어나! 빨리 안 일어나요!!』
『.....』
『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일어나세요! 제발 일어나 주세요! 아저씨~ 흑흑!!』
컷~!
나누어 줄수록 더욱 풍요로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용기를 주고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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