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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부대에 온지 1년이 되었지만 내 숙소 개인 전화가 울린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도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연락은 내 휴대폰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4시......
오랜만에 듣는 낯선 벨소리에 나는 벌떡 깨어났다.
"네?"
"통신보안, 헌병대 병장 이ㅇㅇ입니다."
"헌병대? 헌병대에서 이 새벽에 무슨 일이지?"
"박한수 대위님이십니까?"
"그래.."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급한 일이니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야...병장아...니가 그냥 오라 그러면 내가 가야 하냐?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지금 전화로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어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단 잠에 빠져있던 터라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이 자식이 말 길을 못알아 듣네. 그냥 이유를 말하라고."
"...............살인사건입니다."
"뭐? 살인사건?"
나는 옆으로 누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위님 부대의 최태영 중사가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나는 수화기를 던지 듯 내려놓고 서둘러 복장을 챙겼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 부대에 오자마자 최중사와 친해졌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와 넉살은 매번 규칙과 복종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군인인 나에게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나에겐 최중사와 같은 능력이 없다.
내 성격만큼이나 늘 나의 삶은 메마르고, 딱딱했다.
그런 나에게 최중사의 언행은 마치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어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온화한 성격임에도 늘 책임이 앞서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더 강직하고 우직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그 때문인지 최중사는 상관들 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그가 지금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헌병대에 도착한 나는 바로 최중사를 찾았다.
유치장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최중사가 눈에 들어왔다.
군수사관이 나의 출현을 보자 먼저 말을 걸었다.
"동거하던 여자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뭐라구요?"
"이건 관할 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마치고 저희 쪽으로 보낸 파일입니다."
군 수사관은 두툼한 파일철을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군 검찰로 송환되기 전에 한 번 보시죠. 그리고 검찰로 송환되면 저 친구와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지금 얘기를 나누시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파일을 급히 열어봤다.
수 많은 조서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끔찍한 사건현장 사진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본 군 수사관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살해 도구는 K5 권총입니다.
여자 친구의 멱살을 쥔 채 권총으로 무려 12발을 얼굴에 대고 쏜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권총의 총알은 몸에 박히는데 워낙 근접 사격이라 총알이 모두 머리를 뚫고 나갔습니다."
나는 사체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토악질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 막았다.
사체는 반듯이 누운 상태였고,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뒤통수 부분이 총탄의 파열효과로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고, 여자의 머리는 으깨어 세워놓은 삶은 달걀처럼
사방에 파편을 뿌린 채 누워 있었다.
"최..최중사가 죽인게 맞습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현재로서 그렇다니요?"
"총소리를 들은 최중사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최중사가 권총을 들고, 사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중사가 자기가 죽였다고 하던가요?"
"본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로는 외부 침입흔적이 전혀없고, 그 방안에 있는 족적은 최중사와 여자 친구 뿐이었다고 합니다.
곧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제 3자의 소행으로는 보기 힘듭니다."
"권총은....권총은 어떻게 된 겁니까? 평소 소지하지도 않는데.."
"권총의 일련번호로 보아 대위님 부대 무기고에서 탈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파일을 들여다 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최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까이 철창 너머의 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중사....니가 그랬어?"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최태영!! 니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아?"
여전히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야 임마..말을 해봐!! 죽였든 안 죽였든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감에도 최중사의 대답이 없자 군 수사관이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지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 본인도 입을 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여기까지 하시죠."
나는 철창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최중사를 향한 시선을 계속 유지했다.
이대로 군 검찰로 넘겨져 재판까지 간다면 범행의 잔혹성으로 보아 분명히 사형선고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조금 전에 사단장까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아침이면 국방장관까지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셔서 부대 재정비에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당분간 이리 저리 불려 다니느라 고생 좀 하실 겁니다."
나는 군 수사관의 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친구를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태영...니가 그런거 아니지? 내가 알아보마.."
나는 나즈막한 숨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넨 후 조용히 뒤돌아 섰다.
그런데 그가 반응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자세임에도 최중사는 나의 돌아서는 발걸음을 느꼈는지 뭐라고 혼자 속삭였다.
"애기...울음"
나는 돌아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뭐라고?"
군 수사관도 그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 내 얼굴을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다시 한 번 최중사가 죽어가는 숨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기....애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애기 울음소리?"
나와 군 수사관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확인 한 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신음소리처럼 들리긴 했지만 최중사의 말은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기괴한 최중사의 말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수사관과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우선적으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행정실에서 얼굴을 감싸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당직 근무자들도 나의 표정을 한 두 번 관찰하더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침 6시가 넘어서자 행정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당직근무자가 전화를 받은 후 곧 바로 나를 불렀다.
수화기에 대고 하는 근무자의 경례소리로 보아 대대장이 분명했다.
"중대장님...대대장님 전화입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충성! 통신보안, 대위 박한수입니다."
-지금 곧 사단본부로 와라. 사단장님 호출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복장을 정비하고 부대 차량을 이용해 곧 바로 사단장실로 행했다.
사단본부에 도착하여 사단장실로 향하는 복도가 유난히 길어보였다.
대대장과 나의 뚜벅거리는 걸음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사단장실의 집무실 문을 열고 우리는 들어섰다.
골초로 소문나 있는 사단장은 역시나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대대장과 나는 사단장에게 예를 갖추고 열중쉬어 자세로 사단장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불 붙은 담배를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엄지로 간신히 머리를 받치고 있는 사단장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책상에는 관할 경찰서와 헌병대에서 보낸 1차 조사자료가 놓여 있는 듯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페이지를 넘기며 자료를 훑어보던 사단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조사자료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사병들 사건보다 간부들 사건이 크다는 것 알고 있나?"
"네."
"게다가 이건 총기를 이용한 민간인 살해사건이야. 나 뿐만 아니라 군단장님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
사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고 시선을 우리에게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최중사와 친했나?"
"박한수 대위입니다."
대대장이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그럼 대대장은 지금 돌아가서 부대 정비에 신경쓰고, 부대원들이 절대로 외부사람과 일체 접촉하지 않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예를 갖추고 곧 바로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사단장은 두 손을 깍지끼고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최중사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나?"
"아주 성실하고 근면하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여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그런 거 눈치 못챘나?"
"여러 차례에 걸쳐 번 최중사 집에서 밥을 얻어 먹었었는데, 그런 것은 눈치챌 수가 없었습니다.
곧 결혼할 거라며 자랑하기도 하였고, 제 앞에서 애정표현을 할 정도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 같았습니다.
3일 전에도 그 집에서 저녁을 얻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당최 알 수가 없군. 헌병대 조사에서도 살해동기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사단장님, 최중사 사건 이대로 군 검찰로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본인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분명히 다른 내막이 있을 겁니다."
"그 걸 어떻게 확신하나?"
나는 입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제 직감이 확실합니다. 그 친구는 사람을 죽일 만큼 악인이 아닙니다."
나의 단호하고 분명한 대답 소리에 사단장은 잠시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자네, 공수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더군."
"네, 그렇습니다."
"주특기가 정찰이었지?"
나는 잠시 나의 전력을 사단장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 작은 아버지가 3년 전 퇴역한 군 사령관 아닌가?
예비역 사성 장군의 친인척이 군에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래서 말인데....이 사건 자네가 한 번 조사해 보겠나?"
"네? 제가 말입니까? 헌병대도 있고, 관할 경찰서도 있는데..."
"난 다른 각도로 이 사건을 알고 싶어.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 줄테니까 별도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게."
솔직히 나도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최중사가 이대로 법정에 선다면 그는 분명히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사단에 요청하여 첨단장비인 음파탐지기를 확보하였고, 1명의 장비관리병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나섰다.
마을 외곽의 허름한 단독주택이 띄엄띄엄 있는 곳에 최중사는 살고 있었다.
족히 50년은 넘게 보이는 허름한 기와집이었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잘 단장이 되어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이미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몇 차례 조사가 끝났는지 현장에는 경찰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집 안에 들어서자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사체만 치워졌을 뿐 현장은 그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특히 벽에는 누렇게 변색된 작은 유기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살해된 최중사 여자 친구 머리에서 튀어나온 살점이나 뼛조각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쏟아져 나왔다.
밖으로 급히 뛰쳐 나온 나는 집 앞 화단에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이 3일 전에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파편이라니.......
나는 헛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에 동행한 장비병인 김석우 병장이 나를 보고 괜찮냐는 듯 묻고는 히죽거리는 웃음으로 비아냥거렸다.
"중대장님, 비위도 참 약하십니다."
"닥쳐 임마!!"
내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180 이 넘는 우람한 체구의 김병장은 계속 손으로 입을 가리며 히죽거렸다.
나는 사건 현장에서 나와 최중사의 주변 이웃들을 조사했다.
옆집, 뒷집 모두 조사해 봤지만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 밤, 주변 이웃들은 아무도 싸움소리나 듣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날 만한 어떠한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궁금해 했던 가장 큰 의문점인 아기 목소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주변 이웃들은 모두 연로한 노인들이거나, 자식들이 최소 중학생 이상인 중년의 부부들만이 살고 있었다.
최근까지 아기가 집에 있었거나, 현재 아기를 키우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낮부터 구름이 몰려오는 듯 싶더니 저녁이 되자 이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 조사를 마치고 사건 현장 집의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던 김병장과 나는 빨리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왠지 으스스합니다. 오늘은 그냥 부대로 복귀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가 장난 아니게 내리는데 이거 차 몰고 부대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몰고 가면 됩니다."
"그래 가자"
우리는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힘껏 달렸다.
20여 미터를 달렸을 뿐인데 속옷까지 빗물에 젖은 느낌이었다.
"와...이거 비가 장난 아닙니다. 앞이 하나도 안보입니다."
시동을 켜던 김병장이 얼굴을 앞유리에 들이대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늘을 주시하며 말을 했다.
차량의 와이퍼가 빠른 속도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바가지로 퍼붓는 듯한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차량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시동만 켜 놓은 채 우리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젠장....이거 걸어가는게 더 빠를지 모르겠군."
"중대장님, 그런데 음파탐지기는 왜 요청하신 겁니까?"
"너 말 잘했다. 그 기계 한 번 작동시켜봐."
김병장은 뒷좌석에 놓인 사과박스 크기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나는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예전 공수여단에서 근무할 때 한 두번 본 것 빼고는 전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 이거 어떻게 사용법을 알고 있냐?"
나의 질문에 김병장은 기계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작동시키더니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제가 한미 연합사 훈련에 파견 나가서 배워 온 겁니다. 이 장비는 사단에 없어서 군단에 요청한 걸로 들었습니다.
이게 말입니다. 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사람 소리인지 기계소리인지 구별을 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예를 들어 건물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누가 숨어있어도 찾아낸다는 것 아닙니까?
미군 애들은 장비 하나는 정말 끝내줍니다."
"나도 다 알아 임마."
"그런데 진짜로 왜 이걸 요청하신 겁니까?"
"필요할 일이 있어."
어둠 속에 파묻힌데다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장대비가 사정없이 쏟아지자 슬슬 나는 부대 복귀가 걱정되었다.
게다가 사건 현장 옆에서 차를 세우고 있으니 이젠 나까지 으스스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김병장에게 출발할 것을 명령하려는 순간 갑자기 김병장이 차량의 시동을 꺼 버렸다.
"김석우, 너 왜 시동 꺼?"
그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한 번 빤히 쳐다보더니 헤드폰을 낀 머리를 음파탐지기의
모니터에 가까이 하며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야, 김병장!!"
나의 부름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세우며, 나에게 조용히 할 것을 부탁했다.
"중대장님............"
그는 가는 숨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수신기를 이리저리 돌려 방향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무..무슨 소리?"
내 귀에는 차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애기 울음 소리......."
"뭐야? 애기 울음 소리?"
나는 순간 최중사의 말이 떠오르면서 온 몸에 조여드는 긴장감과 공포에 순간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지 잊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김병장은 가만히 수그린 자세를 유지하며 연신 수신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것이라도 찾느냥 김병장은 천진스런 모습으로 파괴적인 빗소리에서 정체 모를 어떤 소리를 골라내고 있었다.
"OK!! 찾았다!!"
김병장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싱글벙글한 모습을 한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나의 어두운 표정을 살피고는 안테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씨발 놀래라!!!"
김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나의 존재도 무시한 채 욕설을 내뱉았다.
접시형 안테나가 사건현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김병장,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찾아내......"
내 말에 김병장은 부릅 뜬 눈을 한 번 깜박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두 눈을 부릅 뜬 김병장의 표정은 그가 겁을 집어 먹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차량 내의 우의와 우산을 꺼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김병장은 천천히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발을 옮겼다.
진원지가 서서히 가까와올 수록 김병장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정체 모를 그 소리는 김병장은 사건 현장의 낮은 대문으로 유도하였다.
낮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나는 심장박동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만 마당 가운데로 들어서자 김병장이 감자기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의 그 집을 조용히 응시했다.
"왜 그래?"
나의 물음에 김병장은 조용히 그리고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바로... 앞....앞에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손전등을 전방을 향해 비추었다.
작은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이 자식...고양이 울음소리를 착각한 거 아냐?"
그러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답을 했다.
"고양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코 앞입니다."
나는 계속하여 전방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소리가 끊겼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있던 김병장이 멍하니 한마디 내뱉았다.
나는 잠시 동안 손전등이 비추어진 툇마루 주변을 멍하니 응시했다.
빗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중대장님, 못 들으셨습니까? 상당히 크게 들리던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음을 느낀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의를 뒤집어 쓴 채 그는 나를 보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고 손전등을 그의 얼굴에 비추었다.
그런데 손전등 빛으로 확인된 그의 표정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지금 장난친거냐?"
"아닙니다. 제가 왜 장난을 칩니까?"
그러나 여전히 그의 비웃는 듯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너 왜 웃고 있지?"
이 말에 김병장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 경직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윽박지르듯 대답하였다.
"그럼!!!!!!!!!! 이런 표정으로 있습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과 발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있나!!!"
공수부대 출신인 나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내가 생각해도 치명적이고 거칠었다.
그러나 이러지 않으면 그의 기이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김병장은 힘없이 고꾸라져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연발했다.
얼마나 나갈지 모르는 그 비싼 장비의 상태가 염려되었지만 다행히도 김병장은 그것을 꽉 움겨잡고 있었다.
"일어나 새꺄!! 감히 나한테 장난질을 해?"
나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끌고갔다.
나는 조수석에 그를 던지듯이 쳐박아 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연신 몇 번의 기침을 하던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죄..죄송합니다. 중대장님...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이 새끼... 한 번만 그런 장난치면 머리통에 총구멍을 내 주겠다. 알았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왠지 장난같지가 않은 김병장의 행동은 나를 서서히 알 수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속을 내달렸다.
그 날 밤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조사를 시작하면 정리될 것만 같았던 사건이 자꾸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머리가 복잡했다.
게다가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마음에 걸려 더더욱 나는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힘겹게 밤을 보낸 나는 일어나자 마자 급한 연락을 받았다.
최중사가 군 검찰로 이송된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해 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이송되다니...
헌병대는 사건조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사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이송명령이 떨어진 후라 사단장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사단장 끗발도 벌거 아니구만."
나는 절로 탄식이 나왔지만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헌병대로 향하였다.
내가 도착하자 벌써 최중사는 이송준비가 완료되어 검찰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내가 급히 달려오자 온 몸을 포박당한 채 말없이 차안으로 들어서던 최중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중대장님.."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불렀다.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알 수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말하는 미소짓는 저 표정, 저게 내가 아는, 살인을 저질러 죄책감의 시달리던 최중사란 말인가?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머리속이 믹서기로 갈려진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지금 저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제서야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다시 보자. 행운을 빈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금부터 나는 최중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서 들은 얘기라고는 단 세 가지 뿐이었다.
애기울음 소리를 들었다는 것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
어쩌면 지금 나는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무엇을 더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알리바이, 살해도구, 족적, 지문, 그리고 총소리를 들은 주변 이웃들, 현장을 목격한 경찰들........
이미 모든 증거들은 최중사가 확실한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것을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최중사는 내가 아는 선량한 모습으로, 깊은 내면 속에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의 겉모습에 속은 것은 아닐까?
어제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은 정말 장난이었을까?
내 머릿속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답답한 머리를 식히고자 모자를 손으로 벗어 쥐었다.
오른손에 쥐어든 모자가 종이장처럼 구겨지고 있음을 모른 채 나는 천천히 뒤돌아서 걸었다.
멍하니 넋나간 표정으로 뒤돌아 걷는 나의 모습을 본 헌병대원들이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나는 부대에 돌아와서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행정실을 지켰다.
'애기 울음소리.....툇마루 근처에서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박병장이 기이한 행동을 했다.'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하겠는데, 아니 무엇인가를 지금해야 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때 불현듯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툇마루...거기를 파보자.'
나는 서둘러 사단에 굴삭장비와 차량을 요청했다.
그런데 행정실을 나가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CP의 간부용 무기고가 떠올랐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권총을 챙겨야 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기고에서 권총 한자루를 꺼내고, 실탄이 삽입된 탄창을 권총에 끼워 넣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장전은 하지 않고 안전핀의 위치를 안전에 조정하였다.
밸트 뒷쪽에 깊숙히 총을 숨긴 나는 부대 밖으로 나와 사단 본부에서 내려오는 지원차량을 기다렸다.
본부 차량이 눈 앞에 나타났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지원차량을 바라보고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병이 김석우 병장인 것이다.
"너, 뭐야? 난 운전병을 요청했는데...."
김병장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죄송한 것도 있고 해서 자원했습니다."
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사건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도는 다리를 하나 지나야 한다.
낙석이나 산짐승 같은 위험 요소 때문에 지나치게 가파른 산악지형에는 강물을 끼고 도는 다리를 만들어 지나도록 한다.
다리 위를 내 달리는 차량 내에서 몇 분여 동안 아무 말없이 우리 둘은 전방을 주시한 채 앉아 있었다.
"굴삭 차량은 언제 오지?"
"곧 뒤따라 올 겁니다."
다시 침묵 속에 우리는 빠져 들었다.
이 침묵을 다시 깬 것은 김병장이었다.
"최태영 중사는 어떻게 애기울음 소리를 들은 겁니까?"
"몰라 임마. 그 얘기 그만해."
전방을 주시한 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앉아 있었다.
"난 하고 싶은데.....왜 안하지?"
그의 말이 존칭이 아닌 짧은 어구로 끝나는 것을 눈치 챈 나는 고개를 돌려 김병장을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김병장이 앞을 보지 않고 나를 보며 웃는 모습으로 운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이 싸늘해지는 한기가 순간적으로 몰려왔다.
최중사 얘기를 저 놈이 어떻게 아는 것일까?
"너...이 개새끼....최중사가 얘기 어떻게 알았어?"
이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하는 것을 포기한 채, 잇몸이 모두 드러날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니?"
그의 엽기적인 표정을 보는 순간 나에겐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너...이 씨발새끼!!!"
이 말과 동시에 이미 내 오른손은 밸트 뒷쪽에 깊이 숨어있는 권총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품 속 깊이 숨겨진 권총을 제대로 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때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김병장의 눈이 뒤집이더니 광신도들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알루라알라얄라...울러러알라워워워..울러러..알라라.샬러러럴..."
"정신차려!!! 미친 새꺄!!!!!!!!!!"
지금 이곳이 달리는 차량 내부임을 직감한 나는 김병장이 잡고 있는 운전대를 얼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버렸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차량은 천둥같은 파열음을 내면서 강물 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나는 순간 오른쪽 머리를 무엇인가에 세게 강타당하였다.
육중한 무게의 군용차의 바퀴는 일그러진 가드레일을 넘어 강물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른쪽 뺨에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내렸다.
사물이 울렁거렸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쓴 듯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김병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앞유리를 뚫고 몸의 반이 밖으로 나가 있음이 보였다.
뭔가를 잡고 버티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허공에 손을 휘저을 뿐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순간.....
"응애...응애....응애...."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내가 만들어 낸 환청인가? 진정 저 소리가 이 사건의 모든 진실인가?
나는 어떡해서든 이 환각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한 참을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이 기우뚱하더니 강물 쪽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밑으로 보이는 강물이 죽음의 사신처럼 다가왔다.
순간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너무나도 기뻤던 임관식 날, 한 때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교관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쏟아내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았던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나 최소한 군인이라면!!!
안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가진 특전부대 용사라면!!!
그 파노라마를 되돌릴 줄 알아야 한다.
죽음 직전의 너에게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있다면!!!
너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미처 들이마시지 못한 숨으로 인해 활용할 공기의 양이 부족하다.
귀가 아파오고, 폐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예전 해상특수훈련 때 힘이 빠져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꺼내 준 교관이 있었다.
그는 숨가쁜 소리를 내며 헐떡거리는 나를 눕히더니 내 얼굴에 수건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굴에 비닐 봉지를 씌운 것처럼 전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발버둥치며 괴성을 지르던 나를 강제로 제압하며 그 교관이 말을 했다.
"수심이 깊어지면 수압으로 인해 평형감각을 잃게 되지...위 아래가 어디인지 몰라.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만 실상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 수 있는데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정신을 잃고 헛 짓거리 하다가 그렇게 죽는거야.
지금 너는 물에 빠져 죽기 전의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정신을 잃지 마라..."
"쿵....."
묵직한 작은 충격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차량이 강 바닥에 닿은 듯 했다.
수압으로 인해 고막은 터질 듯이 아팠고, 들이 마신 숨이 없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파손된 차량 앞유리를 통해 차량의 여기저기를 더듬 듯이 빠져나왔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이대로 몇 초만 더 있으면 곧 물귀신이 될 것 같았다.
폐 속의 마지막 공기가 다 소비되었는지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는 마지막 구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벨트 뒷쪽에 숨긴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오른쪽 앞 타이어를 손으로 확인한 후 탄알 한 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 사격임에도 물 속이라 그런지 두꺼운 고무재질을 총탄이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이제 죽는걸까?
그 때 내 왼손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공기 주입구의 돌출된 핀이었다.
나는 이제 몇 발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권총을 들고, 마지막으로 그 핀을 향해 미친 듯이 총탄을 쏟아 부었다.
"텅! 텅! 텅! 텅! 텅!"
둔탁한 총소리가 몇 번 울리자 갑자기 생명의 공기방울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입구에 입을 대고 폐 깊숙히 공기를 집어넣었다.
두 세번을 반복한 나는 그제서야 내 머리쪽에서 어렴풋이 비춰지는 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은 죽음의 사신에게 지배당한 내 머리가 상상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빛은 느낄 수 있었지만 수심은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헤엄을 쳤고 이별할 것 같았던 물 밖 세상으로 고개를 내 밀었다.
물 밖의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속 깊이 스며 들어왔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나는 수면 위에서 몇 초 동안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 후 강 밖으로 헤엄을 쳤다.
강 밖으로 빠져 나온 후에야 나는 하루 전 쏟아진 비로 인해 강물이 상당히 불어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 차례의 기침과 구역질이 멈추자 나는 물 속에 두고 온 김병장이 생각났다.
"이런...........젠장"
그를 구하러 가야 된다.
그런데 순간 나는 사고 직전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떠오르면서 구조를 주저했다.
솔직히 김병장이 무서웠다.
김병장이 있는 저 깊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다니....
1초...2초...3초....
나는 딱 3초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의 중앙부가 아닌 비교적 가장자리임에도 수심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량이 강의 가장자리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다시 뛰어들었을 때 그 차량을 찾기가 쉬웠다는 것이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김병장을 꺼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가 깨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 머리는 크게 찢어져 과도하게 피를 쏟아낸 것 같았고, 손과 입술은 이미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숨은 멎어 있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나는 곧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정신 차려 임마....정신 차려!!!"
나는 그를 깨우려 소리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복부 전체가 파랗게 멍든 것으로 보아 운전대에 복부를 부딪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그의 장기는 파열됐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늘어진 시체를 붙들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나처럼 죽음의 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고만 있다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나지 못했다.
뒤늦게 구조된 나와 김병장은 똑같이 의무대로 이송되었다.
나는 부상자로 그는 사망자로........
내 얼굴은 유리 파편으로 인해 산탄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또 오른쪽 머리는 5센티 가량이 찢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그냥 부대로 복귀하려 했지만, 군의관의 권유로 나는 의무대 입원실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잠시 나의 잠자리를 방해했지만, 그 날은 엄청난 피로감으로 인해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끙끙대며 상체를 일으키자 잠시 후 의무병이 식사를 준비해 가져왔다.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아픈 몸을 하고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했다.
"자주 뵙습니다. 대위님...."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건 조사를 위해 헌병대 수사관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나?
일련의 아기 울음 시리즈라도 얘기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것을 선택했다.
졸음운전... 운전미숙...
총기 사용에 대한 수사관의 집요한 심문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는 빈틈없는 대답으로 응했다.
오후 늦게서야 나는 의무대를 빠져 나왔다.
대대장의 면담이 끝나고 부대 행정실로 돌아온 나는 그 동안의 사건을 서류로 정리하였다.
헌병대 수사관에게 말했던 거와는 달리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믿든 안 믿든 내일 이 자료를 사단장에게 제출할 것이다.
나는 밤 늦게서야 서류작업을 끝낸 후 부대원들의 안부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나는 지체없이 복장을 갖추고 사단본부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사단장은 아직 본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번병의 안내로 나는 사단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사단장 장태섭-
집무실 탁자에 반듯이 놓인 그의 명패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맞은 편 소파에 앉아 사단장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준비해 온 서류를 매만지던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수 차례의 경례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사단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예를 갖춘 후 그에게 준비해 온 서류를 내밀었다.
엉망이 된 나의 얼굴을 몇 차례 확인하며 안부를 묻던 사단장은 조용히 그 서류를 받아들었다.
10분 여가 지났을까?
부동자세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에게 사단장은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신 담배를 태우면서 준비해 온 서류를 계속해서 뚫어져라 읽던 사단장이 몇 차례 담배 연기를 내 뿜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이 걸 나에게 믿으라고 하는 건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내용을 보니 헌병대 조사와는 많이 다르구만.
나도 다른 견해를 얻고 싶어서 자네에게 사건 조사를 맡긴 건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애기 울음 소리에 다들 죽어간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누가 알면 비웃음만 듣겠군."
"그 것 때문에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지금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자네 말고 아는 사람이 있나?"
"어제 밤에 작성을 마치고 바로 이 곳으로 들고 온 서류입니다."
사단장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재털이에 누르고는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박대위. 사건조사를 여기서 끝내야 하겠네."
뜬금없는 사단장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한 후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 조금만 더 조사를 해보면..."
'더 조사를 해보면 뭐가 나오나?
이미 최중사는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네.
모든 정황증거나 물증은 최중사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나도 최중사를 살리고 싶어서 나름대로 자네에게 조사를 맡겼지만 이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뭐라고 하겠나?
귀신의 장난이니 최중사 살려주십시요 이래야 하나?"
"저는 그냥 뭔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진실? 이미 밝혀진 모든 것들이 진실 아닌가?
명령이다. 박대위.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여기서 마무리짓는다."
나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아꼈다.
나의 굳은 표정을 잠시 살피던 사단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 군인이 되고 싶어서 장교를 한 것 아닌가?
자네 정도의 집 안 배경에 내 입김까지 작용한다면 자네는 대령까지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지.
물론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 말야.
그런데 최중사나 죽은 김병장 사건에 자네가 연루되어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나?"
사단장은 나를 위로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의 말은 정작 나에게는 분노와 배신감만을 치밀게 만들었다.
온 몸 여기저기서 다시 통증이 밀려오는 듯 했다.
잠시 인상이 찌푸려지자 얼굴 위에 여기저기 붙여진 작은 반창고들이 내 피부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냥 최중사는 부대와 아무 상관없이 개인적인 사고를 친거야. 알겠나?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거야."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은 지금 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장님의 진급을 걱정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하 부대원의 목숨보다 사단장님 본인의 진급이 더 중요한 겁니다."
예기치 못한 나의 말에 사단장은 조용히 나에게 명령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나?"
그러나 나는 격해진 나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목소리는 두 세배나 커져 있었다.
"부대원이 수렁에 빠졌을 때 진정한 지휘관이라면!! "
"입 다물어!!!"
"비록 거두어야 할 예하 부대원이 만명이 넘을지라도!! "
"박대위!! 이 개새끼!!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수렁 속에서 쓸쓸히 나 혼자 죽어간다는 것을.........."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몸이 풀어지듯 숨을 내 쉬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절대로.....절대로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주먹을 쥐듯 움켜쥐고,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잠시 동안 살인적인 적막과 긴장감이 집무실을 감돌았다.
그 소름끼치는 적막을 깬 것은 사단장의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니가 지금 고난을 자초하는구나."
사단장은 무시무시한 눈빛을 풀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건조사는 오늘 부로 접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일체의 어떠한 행동이나 말도 금한다.
그리고 나를 모욕한 댓가로 일주일 내에 넌 다른 사단으로 전출될 것이다."
머리에 총을 맞은 듯 나는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멍한 표정으로 사단장의 얼굴을 지켜 보았다.
사단 본부를 등지고 나와 나는 한 참을 걸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너무나도 나약한 , 최중사에게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미웠다.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낙하산 강하 도중 대퇴부 관절을 다쳐 2개월 넘게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더 이상 강하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군의관의 말과
그로 인해 매일같이 온 몸에 젖어오는 무기력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 때의 고통보다 더 한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힘조차 나에겐 없다라는 사실이다.
군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정의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젠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단장의 말이 정의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내가 흐르는 물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막는다고 해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대로 뜨내기 생활 끝에 진급도 못해 보고 제대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먹여 살릴 처자식이 없어서 이런 막가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서로 상반된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순간 또 하나의 생각이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래....사건현장에 가서 더 늦기 전에 거기를 파보자.'
이 때 내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어이쿠...박대위님. 저 헌병대 수사관입니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이거 어떡하나? 방금 전에 사단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분간 저하고 같이 다니셔야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단장님 명령으로 박대위님을 근접 호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뭐요?"
"지금 이 순간부터 박대위님은 헌병대에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지금 어디 계시죠? 제가 모시러 가지요."
"젠장 미치겠구만."
"사단장님 명령인데 불응하면 곤란해지십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사단장은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넣는 듯 보였다.
헌병대로 호송된 나는 행정실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수사관과 그의 부대원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뒤따랐다.
내가 무슨 커다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다니........
오후에는 내 숙소에서 간단한 옷가지와 생활도구들이 헌병대로 옮겨졌다.
나에겐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자고 먹고, TV보고, 책 읽는 일 뿐이었다.
벌써 이틀을 여기서 보냈다.
나는 좀이 쑤셔서 미칠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행정실에서 한동안 팔짱을 낀 채 넋나간 사람처럼 내가 앉아 있자 수사관이 말을 걸었다.
"힘드시죠? 껄껄껄...대위 정도 되시는 분이 무슨 사고를 치셨길래..."
나를 위로하는건지 놀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상사를 달고 있는 수사관은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며칠만 참으십시오. 자리가 나는 대로 곧 다른 부대로 배치 받으실 겁니다."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대대장이나 수사과장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주로 작전실에 계시고, 행정실에는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
"수사관 일 오래 하셨나요?"
"이제 7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보람 차시겠습니다. 범죄자들 잡아들이고 있으니..."
내 말에 수사관은 손을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에이...보람차다니요.
이거 막말로 할 짓 없어서 이런 일하는거지 기회만 되면 당장이라도 다른 병과로 옮기고 싶다니까요.
처자식만 아니었어도 군복 벗고 사회생활 좀 해보고 싶었는데.."
"왜요? 수사관이면 파워도 세고, 다들 겁내하는 직책 아닙니까?"
"허허..천만의 말씀입니다. 수사과장 정도는 되야 어디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니까요.
그리고 수사과장은 아무나 합니까?
나머지는 생노가다하는 겁니다. 군대 사건 현장 가보세요.
대위님도 사단장 명으로 사건조사하면서 가보셨지 않습니까?
어이쿠..참혹해서 말이 안나옵니다."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내 말에 수사관은 잠시 긁적이던 볼펜질을 멈추고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사관 일을 시작하고 처음 접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전차대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죠.
부대 체육대회였는데 팀별로 전차 끌기 종목이 있었나 봅니다. 기어를 풀어놓은 전차에 줄을 연결해서 일정 거리까지
먼저 끄는 팀이 이기는 경기였는데 모두들 포상휴가 가겠다는 일념하에 무지하게 열심히 끌었나 봅니다.
그런데 한 팀의 줄을 당기던 부대원이 그만 미끄러져 넘어진 겁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물체는 관성이라는게 있잖아요.
모두들 당기던 줄을 놓았는데도 전차가 넘어진 그 친구를 덮쳐버린거죠."
"오...이런.."
"피해자를 확인하러 저는 후송된 의무대로 갔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복부부터 하반신이 모두 으깨져있는 겁니다. 내장이고 근육이고, 뼈까지....
그런데 저를 더 경악하게 만든 건 그 친구가 살아서 눈을 부릅뜨고 헐떡이고 있다는 것이었죠.
저는 자리를 가리지 못하고 거기서 토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간신히 진정한 후 수술을 집도하던 군의관들을 쳐다보았죠.
젠장 그런데 이게 웬 걸? 수술하는 척 하더니 으깨진 내장을 살가죽으로 덮어 그냥 꿰매버리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이건 살아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
"젠장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그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숨이 멎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겁니다.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군대에서는 기본적으로 호흡이나 심박이 멈춘 환자에게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는 수사관의 말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 같아 영 속이 편치 않았다.
"또 한 번은 뭐더라 5년 전인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등병이 부대 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한 겁니다.
그 때 7명이 죽고, 5명이 반신 불수가 되었죠...사건현장에 갔더니 아이고..........이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무반 침상과 바닥에 벌건 피가 소방 호스로 뿜어낸 것처럼 뿌려져 있더라니까요
진짜 농담이 아니라 사건 현장 조사하는데 담요를 밟으니까 젖은 빨래처럼 핏물이 쏟아져 나오더란 말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벽에 오물처럼 붙어있더라니까요."
내 속이 편치 않음을 알기나 하는지 수사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죽은 애들만 불쌍한 거지요.
나라 지키겠다고 군대와서 그게 웬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부모들 심정이 어땠는지 상상도 안갑니다."
나는 간신히 거북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죽은 김병장 말대로 나는 비위가 많이 약한 듯 했다.
"이 생활 하다보면 회의감도 많이 느끼지요.
전에는 군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중대장 한 명이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건을 파헤치는데 이건 도저히 수사할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뭔데 말입니까?"
"그 비리에 군단장까지 연루가 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군검찰은 물론 수사관들까지 혀를 내두룰만한 초대형 비리커넥션이 포착되었던거죠.
그런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육군본부에서 사건을 종료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겁니다.
항간에는 그 중대장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죠.
죽기 전 그 중대장은 의외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자신이 군납비리에 관한 거의 모든 서류를 관리하고 있음을 폭로했죠.
그런데 군검찰로 소환되기 전날 자살한 겁니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구요.
유서가 조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토록 협조적이던 사람이 처자식을 놔두고 갑작스레 자살한단 말입니까?
결국 그 사건은 그 중대장이 비리사건 수사에 대한 압박을 못 이기고 자살한 것으로 수사가 종결되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참 아쉽습니다.
그 중대장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수사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도 들고요."
"씁쓸한 얘기군요."
"X파일처럼 군대에도 여러가지 의문스런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인위적으로 덮어진 것입니다.
정말로 덮어서는 안될 것들이 덮어졌을 때는 뭔지 모를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었었죠.
간부 사건도 그 정도인데 사병들 사건은 오죽하겠습니까?
평균을 내보면 1년에 군인들이 약 500명 넘게 죽습니다.
1개 대대병력이 1년 하나씩 사라지는 꼴이죠.
권력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500명 중의 몇 명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고.
군대 의문사라는 게 다 그런거죠.
그 만큼 군대가 폐쇄적인 곳이라는 상징이기도 하지요."
수사관은 잠시 볼펜을 쥔 손을 턱에 받치며, 감상에 잠기는 듯 했다.
"처음엔 미연방수사관 FBI처럼 정말 멋진 수사관 생활을 상상하며 의욕적으로 덤볐었죠.
멋진 롱코트를 입은 사복경찰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빳빳하게 풀먹은 군복으로 입고 사건현장에 '쨔잔~~'하고 나타났을 때는
나름대로 뽀대도 나고 멋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저는 수없이 많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죠.
수사관이 아닌 그 들의 입 맛에 맞는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작가였다고나 할까요?
입을 다무는 댓가로 저는 승진을 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는 수사관의 얘기를 들을 수록 의외로 그가 생각이 넓고 속이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들은 얘기들은 못 들은 걸로 하십시요.
그냥 제 무용담이려니 생각하시고, 그냥 넘겨 버리세요.
괜히 수사과장이나 대대장님 아시면 잔소리 듣습니다."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꼭 묻고 싶었던 것을 그에게 던졌다.
"최중사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수사관은 멈추었던 볼펜질을 다시 시작하며, 나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 얘기 하지 마십시요. 사단본부에서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종이서류에 볼펜을 긁적이며 시선을 맞추지 않는 수사관에게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수사관님도 그 날 들었지 않습니까? 최중사가 애기 울음소리 들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수사관은 대답을 거부한 채 무슨 서류를 작성하는지 연신 볼펜질을 해댔다.
나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최중사는 죽을 목숨입니다. 이젠 제가 그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럴 힘도 없구요.
단지 알고 싶은 건 최중사 사건 뒤에 숨어있는 내막이 궁금할 뿐입니다.
수사관님도 알고 싶은 것 아닙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게 정의입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요.
제가 전출을 가면 모든 게 끝입니다. 사건을 파헤칠 시간도 3~4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수사관은 시선을 피한 채 대답을 거부했다.
나는 잠시 말을 멈 춘 후 굳은 결심을 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김석우 병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아십니까?
제가 따로 사단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은 제가 수사관님께 진술한 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제서야 수사관의 볼펜질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아무말 없이 응시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졸음운전이나 운전미숙으로 죽은 게 아닙니다. 저를 도와 주신다면 진실을 말해 드리죠."
그러나 나를 잠시 동안 응시하던 수사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볼펜질을 시작하였다.
"대위님이 죽인 게 아니라면 그냥 덮어두십시요. 그러는 게 대위님 신상에 좋습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
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수사관님도 일련의 사건 내막을 알고 싶죠?
알고 싶은데 위에서 내리는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죠?"
나는 볼펜질을 하는 그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숨소리가 불규칙해지고 거칠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때 행정병 몇 명이 행정실로 들어왔다.
무슨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수사관이 그들을 잠시 내보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뜨며 나를 응시했다.
무섭게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무슨 일을 낼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지만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나의 얼굴을 한참 동안 관찰하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대대장과 수사과장이 군단 기무대장의 회식 자리에 참석기 위해 멀리 떠날 것이오.
당신 대타로 한 놈을 숙소에 박아놓을테니 오늘 저녁 8시에 차량고 앞에 서 있는 소나타 차량을 타시오."
저녁 6시쯤 헌병대장과 수사과장이 부대를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빨리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마 동안 자유시간을 즐기는 척 하며 시간을 보낸 후, 서둘러 복장을 챙기고 부대 차량고로 향했다.
저녁 8시에 구름까지 몰려오고 있음에도 주변은 그다지 어두워지지 않았다.
수사관의 말대로 어두운 차량고 앞에 소나타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타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수사관이었다.
"뒷좌석에 타십시오. 앞좌석은 위험합니다."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차는 급히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질문에 수사관은 재빨리 대답했다.
"일단 부대를 빠져 나간 후 얘기합시다."
위병소에 진입을 하자 나는 살짝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위병에서는 퇴소차량은 잡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위병소를 통과한 수사관은 부대를 나와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사건현장으로 가는 겁니까?"
"묻지 말고 일단 이 걸 읽어보시오"
말이 끝나자 수사관은 조수석에 놓인 얇은 서류봉투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앞의 사건기록일지만 보시오."
"뭡니까? 이게"
"이번 사건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오."
나는 실내 조명등을 켰다.
그리고 운전에 열중하는 수사관의 도움말을 참고로 사건일지를 읽어 내려갔다.
[[[[[
-1978년 7월 14일-
육군 [중사 김ㅇㅇ]가 같은 부대원 [중사 고ㅇㅇ], [하사 이 ㅇㅇ]와 자신의 아내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
-1981년 7월 23일-
육군 [중위 정ㅇㅇ]가 술자리를 같이 하던 동료 부대원 [중사 이 ㅇㅇ], [중사 김ㅇㅇ]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하사 최ㅇㅇ]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힘.
부대로 다시 돌아가 부대원에게 총격을 가하던 도중 사살됨.
-1986년 7월 18일-
육군 [중사 강ㅇㅇ]가 만취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소총으로 살해하고, 군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6개월 후 사형집행됨.
-1991년 7월 29일-
육군 [하사 박ㅇㅇ]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십 차례 가슴과 안면 부위를 찔러 살해 한 후, 군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4개월 후 사형집행됨.
]]]]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수사관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내 질문에 답을 거부하고 수사관은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 사건들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두 7월에 발생하였고,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이네요."
"맞습니다. 최중사 사건도 절묘하지 않습니까? 7월 17일......"
"그러고 보니 김병장이 죽은 날도 7월 19일인데...."
수사관은 무슨 엄청난 정보라도 알아낸 냥 감탄사를 연발했다.
"캬~~~~ 7월의 저주라....이거 멋진 걸."
수사관은 잠시 장난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또 다른 엄청난 공통점이 뭔지 아슈?"
"뭡니까?"
수사관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답을 했다.
"사건현장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겁니다."
"예?????"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이 최중사 집에서 죽어나갔다는 겁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대로 최중사 사건 말고 그 집에서만 20년 동안 모두 7명이 죽었고, 그 집과 관련된 사람을 포함하면 총 10명이 죽었소."
나는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건 완전히 저주받은 집이네요. 그런데 왜 20여년 동안 폐쇄되지 않고 집이 남아있는거죠? "
"7월을 넘기지 않은 군인들과 거기에 살던 민간인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소.
단지 거기서 7월을 보낸 군인들과 그 가족들만이 처참하게 죽어나간 것이오."
그냥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석연치 않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보고 느껴왔던 일련의 사건들이 오버랩되면서 싸늘한 기운이 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걸까요?"
나의 넋두리에 수사관이 대답했다.
"귀신이든 아니든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예전에 수사관 교육 받을 때 들은 얘기인데, 강한 자기장이나 방사선에 노출되면 사람이 환청이나 환각을 격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사선 같은 경우는 암 같은 질병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저주로 치부하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원인을 밝히는 겁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올라탄 직후 궁금했던 사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거기에 보면 사건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지 않습니까? 하사 최ㅇㅇ...."
"아니...그 사람 찾았습니까?"
"명색이 군수사관인데 그 쯤이야 껌이죠. 미리 연락도 취해놨소."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직업이 경찰인 사회 친구들 도움을 좀 받았죠. 그 건 그렇고 죽은 김병장 얘기나 해보슈.
사단장한테 뭐라고 보고가 된 겁니까?"
나는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고, 긴 한숨을 내뱉았다.
그리고 그 간 벌어졌었던 일련의 미스테리한 일들을 수사관에게 낱낱히 얘기하였다.
얘기를 듣고 있던 군수사관은 자신도 소름이 끼치는지 몇 번의 탄식을 내뱉았다.
특히 김병장이 광신도들의 방언같은 괴상한 말을 쏟아냈다는 부분에서는 진짜로 그랬냐고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우리는 군이수지역을 한 참 벗어난 곳까지 차를 몰았다.
보통의 군인들은 이수지역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수사관들은 다른 것 같았다.
검문소 헌병들은 수사관의 얼굴만 보고도 그냥 통과시켰다.
1시간 정도 차를 몰아 우리는 외진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대문앞에서 인기척을 보이자 한 쪽 발을 사용하지 못하는 40대의 한 남자가 목발을 짚고 나오는 것이다.
키는 170이 조금 넘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하얀 얼굴에 며칠동안 깍지않은 듯한 검은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절룩거리는 다리 뿐만 아니라, 함몰되어 있는 양쪽볼이 그가 지금 상당히 병약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우리가 찾는 그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신분을 밝히고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했다.
그는 우리를 천천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안내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그는 국가보조금을 받고 허름한 집에서 연명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소."
그는 조용히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담배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 날은 무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소.
부대 합동훈련이 끝나고 얼마 후 나는 소대장 집에서 선임하사 둘과 간단히 술자리를 같이 했다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들은 친하지 않은데 소대장이 워낙 넋살이 좋고, 술을 좋아해서 우리 하사관들이 그를 잘 따랐소.
그런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소대장이 이상한 얘기를 하더이다.
요사이 밤마다 어디서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얘기를 듣고 있던 수사관과 나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애기 울음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그럽디다.
어떤 날은 가위에 눌렸는데 어두운 방안에 어떤 군인이 총을 들고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랍니다.
얼굴과 몸에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군인이었는데 뭔가를 계속 찾고 있더랍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앉아 징그러운 웃음을 한 번 짓더니 긴 소총을 턱밑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더랍니다."
그는 잠시 담배를 몇 번 빨더니 말을 이었다.
"소대장의 귀신얘기에 우리 하사관들은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소대장 표정이 너무 진지한거요.
우리가 소대장에게 무슨 군인이 겁이 그렇게 많냐며 놀리니까
갑자기 소대장의 표정이 경직되더니...이상한 소리를 하더이다.
'들어봐...지금도 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휘둥그레 부릅 뜬 두 눈으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소리의 정체를 찾는 소대장의 표정이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오.
우리도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들리지 않았다오.
정말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소대장은 미친 사람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협박했다오.
'얼럴러..얼러러..들어...들어..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그거 있잖소, 교회 같은데서 괴상한 소리내면서 기도하는거...."
"방언 말입니까?"
"맞아..그 거..."
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죽은 김병장의 그 괴기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소대장이 계속 그런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이 뒤집히더이다."
이럴수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나는 잠시 한쪽 팔뚝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시킬 생각은 못하고 너무 놀라서 순간 뒤로 물러났는데.............."
얘기를 잠시 멈추는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고는 다시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갑자기 소대장이 정신을 차리고 그 괴상한 행동을 멈추더이다.
그리고는 이리 저리 몇 번 목을 꺽더니..........."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왼손으로 자신의 입을 감싸쥐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가 심하게 격해져 있음을 알고 그를 안심시켰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 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왼쪽의 선임하사부터 차례로 권총을 난사하는거요.....흑흑흑.."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우리는 잠시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그는 옆에 있던 무슨 종류인지 모르는 약을 손에 움켜쥐더니 입에 털어넣고 물 한모금을 들이켰다.
몇 번의 깊은 숨을 몰아쉬고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맨 왼쪽에 있던 선임하사는 세 발을 머리에 맞아죽고, 가운데 앉아있던 선임하사는 거의 다섯발을 얼굴과 가슴에 맞았소.
갑작스런 총소리에 귀가 멍해져서 있는데 내 얼굴과 몸에 핏물이 마구 튀는거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죽어라 비명을 질렀소.
이게 꿈이라면 깨길 바랬고, 꿈이 아니라면 누가 좀 소대장을 말려주길 바랬소."
심하게 떨리는 그의 손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흑...두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소대장은 곧바로 나를 죽이지 않고 나에게 미소를 보이더니...총을 겨누고 씨익 웃는게 아니오?
그 때 마지막 순서로 죽음을 기다리는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내가 그 때 본 것은 소대장이 아니라 악마였소...악마...
그 순간 나는 소대장을 제압하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튀어올랐소..
그리고는 두어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겁니까?"
"한 발은 폐쪽, 한발은 어깨쪽에 맞았고, 마지막 한 발은 대퇴부쪽에 맞았는데, 대퇴부쪽으로 들어간 총탄이 신경을 건드린거요.
하늘이 도왔는지 나에게 세 발을 쏘고나서 소대장의 권총이 실탄을 모두 뱉은거요.
난 실신했고, 소대장은 다시 부대로 돌아가 소동을 벌이다 죽은겁니다.
결국 난 의가사 전역했소.
그나마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십수년간 나는 그 뒤로 매일 밤 악몽이 시달렸소.
매일 밤마다 피떡이 묻은 얼굴로 소대장이 나타나 그 악마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거요.
지금은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얘기를 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 때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오."
모든 얘기가 끝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목발의 그 남자가 대문 밖까지 배웅을 하였다.
낮에는 맑아보였던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비구름이 몰려왔는지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안부를 전하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뱉았다.
"그 곳은 저주받은 곳이오."
"예?"
수사관과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유난히 더 핼쑥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댓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오.
부디 몸 조심하시오."
한 동안 말이 없이 우리는 조용히 달리는 차 안에서 전방을 주시했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자, 수사관은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나는 서서히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두려웠다.
사건을 파헤칠 수록 자꾸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머릿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내가 앉아 있는데도 수사관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겁니까?"
나의 질문에 운전을 하던 수사관이 씨익 웃었다.
이젠 누가 미소짓는 것만 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일에 이번 일이 들통나기라도 하면 고생 좀 하실텐데요.
저야 홀몸이라 부담이 없지만 수사관님은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난 대위님이 부럽소이다.
나는 내 안위만을 생각한 채, 수사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저버린 사람이오.
속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런데 대위님은 나와 달리 부대원 하나 때문에 사단장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잖소.
당신을 만난 뒤로 예전에 내 가슴속에서 사라졌던 정의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한거요.
지난 사건은 어쩔 수가 없지만 지금의 사건이라도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소.
그런데 대위님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거요?"
"그냥.....그냥........군인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헐...명답이로세."
수사관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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