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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13:43
2013. 12. 23. 월요일
물뚝심송
썬데이, 블러디 썬데이
그 대단한 일요일의 시작은 마치 이 음악에서 묘사된 바로 그날 같았다.
정수장학회 소유의 건물, 경향신문사 사옥에 자리한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본산, 그 막무가내였던 이명박도 둘러싸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쳐들어가지 못했던 민주노총의 본진을 일요일 아침에 털다니...
대형 에어 매트리스까지 설치하고 5천 명이 넘는 경찰이 정동 민주노총을 둘러싸고 있는 사진이 SNS 공간에 전파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영하의 기온보다 더 차게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분노한 만큼 그 보다 더 한층 걱정을 시작했다.
혹시 누구 하나 잘못되면? 심하게 다치면 어쩌나?
사람들은 삼삼오오 정동과 서대문 일대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민족정론지 딴지일보와 관련된 모든 잉여들도 정동에서 번개를 하자며 그 추운 날씨에 우글우글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딴지의 더러움과 부끄러움을 맡고 있는 마사오까지 출동하여 경찰버스 뒤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코딱지를 발라 놓는 쾌거를 이룰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불쌍한 대한민국 공권력이 받은 그 참담한 피해라니...
경찰은 처음에 이중으로 되어 있는 일층 현관부터 부수기 시작했다. 소방관을 출동시켜 유리를 깨고 돌입한 경찰 병력은 급기야 일층에서 농성중이던 조합원들을 하나하나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려 들어가는데 버틸 재간은 당연히 없다.
13,14,15 3개 층에 입주해 있는 민주노총의 사무실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와서 함께해 주기를, 자신들을 지켜 주기를 호소하는 글들이 송신되었으며, 사람들은 거기에 호응해 모여들기 시작했으나, 정동 일대에 쫙 깔린 경찰 병력들은 일반인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며 착착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국말을 구사하며 중국인 관광객 코스프레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접근한 장영승 대표(딴지 이너뷰 해피투게더 편에 출연)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금방 들통나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다.
결국 마치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경찰은 한 층 한 층 돌파해 나갔으며, 워낙 비좁고 허름한 건물의 상태로 인해 시간은 좀 걸리긴 했지만, 14층에 모여있는 관련자들이 연행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태였다. 그나마 해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뭔가 좀 다른 방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정도만이 가능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해가 떨어지고, 경찰은 14층을 지나 17층 넘어 옥상까지 모든 건물을 장악했고, 이제 남은 것은 14층 사무실 뿐. 전원 연행되고, 철도 노조 집행부 모두가 체포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깔리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출처 -<YTN>
그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진짜 아무도 없었다.
이미 체포 대상자는 건물을 빠져나간 뒤이며 그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 중에는 체포 대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민주노총 공식 대변인의 입을 통해 전달이 된 것이다.
이게 뭐야. 이 무슨 반전인가. 한국 노동운동사에 일찍이 이런 쾌거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역사적인 사건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적절한 말로는 역시 ‘12.22 정동대첩’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넋이 빠져버린 경찰은 그저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일회용 커피 한 통과 종이컵 몇 개를 빼앗아 나오는 걸로 만족해야 했고, 14층에 모여있던 관련자들은 마치 즐거운 회식자리에라도 몰려 가듯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함성을 지르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12.22 정동대첩은 마무리가 되었으나...
진실은 여전히 물밑에 숨어 있었다.
표면적인 해석들
날짜부터 틀려 먹었다. 경찰이 실제로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싶었다면 토요일에 했어야 했다. 경향신문이 쉬는 날이며, 대부분의 언론들의 휴일은 토요일이다. 물론 그 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번개를 포함한 각종 집회가 바로 근처의 청계광장에서 있기는 했지만, 토요일 오전부터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했다면 이목의 집중을 덜 받고,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일요일을 택했다. 경향의 기자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특종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행운을 누렸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해 오늘 발표된 경향의 입장은 나이브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잡은 것은 결국 무자비한 경찰력이, 탄생한 이래 단 한 번도 침탈 당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을 짓밟는 모습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케 해 준다.
정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도부를 체포한다 해서 크게 칭찬받을 것도 없다. 저항만 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호되게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권력의 부정한 선거개입 문제로 연일 시달리고 있던 차에 철도 민영화 문제까지 겹쳐 골머리를 앓던 박근혜 정권은 이 참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너희들을 다룰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제대로 한 번 밟아주면 당분간 조용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 그리고 정권의 정통성 문제가 노조 탄압 문제로 치환되는, 이명박 때부터 자주 사용되던 악행 돌려막기로 물을 탈 수도 있다는 판단들이 겹칠 수도 있다.
그렇게 작전이 진행된 것이고, 민주노총 중집의 재치에 속아 실패한 것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건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한 경찰이 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이 상황을 설명해 준다.
“진보도 사기치냐?”
그렇다. 민주노총이 정권과 경찰력을 상대로 영화 <스팅>을 방불케 하는 사기를 친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호희 대변인은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연 ‘케빈 스페이시’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나봐서 아는데, 정호희 대변인은 발을 절지는 않는다.
역대급 반전을 선보인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의 트윗과 본지 논설우원의 치하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탄력을 받은 민주노총은 향후 일정을 발표하고 그 일정을 착착 수행해 나갈 것이다. 바로 닥쳐오는 28일, 전국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이 모든 싸움의 끝에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이 있다고 규정하면서, 이제부터 벌어지는 모든 싸움은 말 그대로 불법정권 퇴진운동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왜 이제서야 정권 퇴진운동을 시작하냐면서 환호하고 28일 총파업에 모두가 동참하기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걸 어째야 하나...
단 한 번의 실수로 경찰력은 위신이 땅에 떨어져 버렸으며,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겨우 체포 영장을 가지고 제3자 소유의 주거를 무단 침입하고 파괴하는 명백한 불법을 저질러 버렸으니 그 피해를 모두 배상할 책임까지 생겨 버렸다.
정권은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다. 공권력은 망신을 당했다. 공권력의 무서움을 제대로 한번 보여주려던 시도는 블랙 코미디, 썩개로 전락해 버렸다. 그 와중에 커피 믹스는 왜 가지고 나온 거냐?
한 박스로 되겠나... 출동 인원만 4천이 넘는 구만. 출처 -<인터넷뉴스 신문고>
숨겨진 진실
하지만 이런 모든 해석은 다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진실도 본지의 날카로운 취재력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남들 모두가 12.22 정동대첩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본지의 날카로운 레이다는 가동되고 있었으며 드디어 그 숨은 진실을 밝혀내고 만 것이다.
다들 보셨다시피, 민주노총이 들어가 있는 그 건물, 무지 낡았다. 계단은 비좁고 위험했으며, 민주노총 사무실의 각종 집기는 수명이 다한 구시대의 유물들이었다. 칸막이는 얇고 부실했으며 문짝들 역시 진작에 버렸어야 하는 종이장 같은 낡은 설비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전면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돈이 없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무슨 일들은 그렇게 많이 벌이는지... 파업기금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고, 리모델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차에 드디어 원대한 계획이 발동된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작전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자기들 돈을 한 푼도 안 들이고 인테리어를 새로 싹 개비하려는 민주노총의 숨은 꼼수.
일단 경찰을 꼬드겨 강제로 침탈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극렬히 저항하며 모든 집기를 파손하도록 유도한다. 민주노총만 인테리어 새로 하면 보기 민망하니까 일층 현관부터 새로 싹 갈아주기로 한다. 경찰은 뭣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며 한 층 한 층 진군한다. 급기야는 모든 시설물을 개판으로 부수어 버린 다음에, 경찰이 찾던 체포 대상자들은 아무도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결국 그 모든 행동들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저질러진 불법행위였음을 명확히 해 두고, 경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 배상액수에는 약 6.5% 가량의 민주노총 전 임직원 회식비도 포함되어 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민주노총은 무식한 경찰의 돈을 뜯어 전체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감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업을 벌인 것 뿐이다.
이 모든 사실은 본지가 비밀리에 민주노총 핵심부에 박아둔 빨대로부터 전달되어 알려졌다. 이에 그 빨대의 전언을 그대로 옮겨보기로 하자.
“우리가 돈이 어딨어~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 없어서 못 죽어. 사람들은 맨날 내막도 모르고 핫 팩이네 라면이네 이런 것만 보내주고 말야. 그런 거 말고 삼겹살하고 상추라도 좀 보내주면 안되나? 우리라고 맨날 라면만 먹냐고... 하여간 경찰에게 이 한마디는 꼭 좀 전해주길 바라.”
꼭 좀 전해달라는, 경찰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경찰, 졸라 땡큐~~~
뱀발 :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는 이 분들, 진짜 춥고 배고프다. 당장에 급한 곳은 사실 민주노총이 아니라, 철도 노조일지도 모르겠다. 철도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철도 노조의 힘이 되어주는 방법은 그들에게 다만 삼겹살 1인분 값이라도 보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원 계좌는 알아서 찾으시라.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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