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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합니다. 동물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지성이 높아서도,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물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보다 생존할 확률이 높겠죠.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물이 생존할 확률이 높으니까 자손을 남길 확률도 더 높습니다.
그러면 종 내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유전자가 널리 퍼져 동물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동물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모성애를 보일 때, 혹은 사회성이 강한 동물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죠.
간단히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우성 유전자를 가정해보죠.
어미에게 있는 이 유전자가 자식에게 전해질 확률은 1/2 입니다.
(아버지 쪽에 이 유전자가 없고 어미에게 이 유전자가 이형접합이라고 가정할 때 말이죠)
어미가 자신을 희생해 자식 3마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때 이 유전자에게 어미의 죽음은 -1의 손해가 되겠지만
새끼들에게서는 각각 1/2 씩 총 3/2의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이 유전자가 이 경우처럼 자식들의 생존에서 얻는 이득이 어미의 죽음에서 발생하는 손해보다 클 경우 발동하게 된다고 한다면
이 유전자는 종 내에서 우세해지므로 모성애가 발달하는 진화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죽음을 뛰어넘는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이자면 죽음은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개인이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효과는 어느정도 있겠지만
죽음은 생물학적인 의미이지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소 비관적으로 보이긴 하겠지만 네, 정말 비관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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