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춘천시 후평동 노래방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지인에게 전해 들은 남편의 사고 경위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노래방에서 화장실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10시20분쯤 노래방에서 화장실을 찾던 남편은 통로 끝에 있는 문을 지나 또 다른 문이 나오자 아무 의심 없이 그 문을 열었고, 3m가량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김씨가 떨어진 곳은 화재가 발생하면 대피하는 비상통로였다. 하지만 1층과 연결되는 접이식 사다리만 있을 뿐 문을 열면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심지어 안쪽엔 추락을 방지하는 난간조차 없었다.‘낭떠러지 비상구’ 때문에 한 가정의 가장이 허망하게 숨진 셈이다. 김씨의 유가족에는 아내와 미혼인 두 딸(각각 27세와 23세)이 있다.
이씨는 “2층인데 비상문을 열면 낭떠러지인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어떻게 이런 건물에 공무원들이 영업허가를 내줄 수 있느냐”면서 “난간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남편이 떨어져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해 했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관련법을 찾아봤다. 하지만 낭떠러지 비상구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경악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보면 다중이용업소는 화재 발생에 대비해 비상통로에 발코니(가로 75㎝, 세로 150㎝, 높이 100㎝ 이상)나 부속실(가로 75㎝, 세로 150㎝ 이상)을 설치하고, 피난 사다리나 완강기 등 장소에 적합한 피난 기구를 설치하면 그만이다. 안전을 위한 계단 등을 설치할 법적 강제 의무는 없다. 더욱이 대피통로인 이 문을 잠그면 오히려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안전불감증 때문에 낭떠러지 비상구 추락 사고는 전국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황당한 사고가 잇따르는 것이다.
낭떠러지 비상구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뒤늦게 관련 법을 개정했다.
지난해 10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 비상구 문에 개방 시 경보음이 울리는 경보장치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로프를 설치하고 비상구 추락 방지 스티커 부착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신설 다중이용업소만 의무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이미 허가된 업소는 권고 대상일 뿐이다.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가 사람 목숨을 노리고 있는 셈이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노래방의 경우 2013년에 문을 연 업소라 현재로선 권고 대상일 뿐이다. 안전 로프 등을 설치하지 않아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 수사를 맡은 춘천경찰서 관계자는 “안전조치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노래방 업주 등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과 같은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국민신문고에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