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씨가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얼마전의 일이었다.
'정통 택배'
이름만큼 정통적인지 어쩐지는, 그가 사장에게 직접 면접을 들을 때 봤던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짐작이 되었다 치더라도 의무적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배달을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정통이고 나발이고 정통으로 사장 머리를 쳐버리고싶은 충동이 드는 그런 회사였다.
그는 결국 오백만원짜리 오토바이를 반 강제적으로 구입하고, 추가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네비게이션과
헬멧까지 사야 했다. 수중에 천만원정도 잔고가 있던 통장은 금새 절반넘게 뚝뚝 떨어졌고, 그는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사장은 오토바이와 네비게이션을 산 첫날 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긴 네가 한 만큼 벌어가는 곳이다!" 라고. 배신감은 뒤로 하고서라도 이제는 어떤 사명감까지
들었으니, 인간이란 역시 재미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첫날 그는 '친절한' 박실장의 코스설명과 함께 간단한 투어로 회사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째 될 무렵 오토바이 사고가 한번 있었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트럭에 받히고 왼쪽 정강이의 살점이 떨어져나갔으니 어쩌면 경미한 사고가
아닌가? 아무튼지간에 회사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구급차보다도 먼저 as팀, 그러니까
사고가 났을때 물건을 대신 회수해가는 팀을 보냈다. 그는 쓸쓸히 누워 신음을 뱉다가 누군가
불러준 구급차에 몸을 실어 병원으로 향했다. 교통사고였기 때문에 보험도 안되는 처지라
그는 총 삼만팔천육백이십원의 진료비를 내야 했다. 잠시 후 문자로 사고접수가 되었다는
회사 보험사의 문자가 날아들었지만, 그의 통장에는 단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발을 절룩거리며 사무실로 향했을 때 몇몇 사람이 그에게 괜찮냐는 말을 했고, 사장이 지나가다가
철수에게 말하길,
"괜찮아 이만하길 다행이야" 하며 묘한 입꼬리를 올렸다. 이틀정도 쉰 뒤에 다시 나오라고 했으니
그 어찌 대단한 자비가 아니랴. 철수는 절뚝거리며 숙소 앞 편의점에서 소주 세병과 쥐포를 사서
그날 밤 마셨다. 그리고, 얼음주머니를 발목에 댄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는 어찌되었든 일을 잘 했다. 사무실 콜센터 여직원들이 말하길, 철수씨같이 일을 잘해주는
사람만 있으면 편할거라고 이야기하고, 간혹 그녀들에게 사탕이나 껌같은것을 받기도 했다.
담배피는 여직원이 그에게 담배를 준 적도 있었다. 연고도 없고 돌아갈곳도 없는 그에게는 그것이
어쩌면 그나마의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야밤까지 일을 했다. 새벽에 한강다리를 건너
이태원 냉면집에서 산 냉면을 천호동까지 사다주는 택배업무도 아랑곳않고 했다. 목숨의 위협을
몇번 받았지만 그만큼의 수당을 받았으니 그래도 조금은 살만했다.
쉬는날에는 숙소 근처 피씨방에서 온라인게임을 했다. 돌아와서는, 소주를 마시며 tv를 보거나
책을 봤다. 이 또한 나름 인텔리한 노동자의 삶이라고 하면, 그럴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그에게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런 평화로운나날(?)중이었다.
설 연휴라지만 그는 갈곳도 없었고 할것도 없었다. 일하는것 좋아하는 사장의 권유에 따라
모든 배달수당을 따블로 받기로 하고 일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간 탓에
도로는 매우 한산했고, 그는 오랫만에 정체없는 시내를 마음껏 질주하며 일을 했다.
너무 당겼던 것일까? 그는 설 연휴 이틀째에 차선변경 중 택시에게 추돌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7미터쯤 붕 떠올랐을 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어린 기억이 빠르게
페이드아웃되고, 그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쯤에는 다리와 허리에 수술자국이 훤한 것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몇일간 경찰서와 보험사, 그리고 택시공제조합에서 그를 찾아왔다. 택시공제조합에서는 그에게
차선변경을 제대로 안해서 그런 사고가 벌어졌다며 그를 '점잖게'비난했고, 보험사에서는 일말의
감정도 없이 그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을거라며 병원비정도는 지원해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경찰서에서는 그에게 몸이 다 나으면 면허증을 찾아가라며 짧은 통화와 함께 경위서를 팩스로
보내달라는 사무적인 말투로 모든 사태를 종결했다.
"간병인을 좀 써야겠는데요."
혼자서는 똥오줌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그가, 소심하게 보험사에 말하자 보험사는 또다시
귀찮다는 듯 빠른시일내에 처리를 해주겠다고 하고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환자들로부터 돈을 긁어모으던 의사의 지시가 있기까지 그는
똥과 오줌으로 절여진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했다. 간호사 몇명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의 기저귀를 갈아줬고, 왜 간병인이 오지 않냐는 간호부장의 질책에 그는 마지못해 또다시
보험사에 연락해 겨우 하루 네시간짜리 간병인을 쓸 수 있었다.
일개월이 지나고 이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허리야 그렇다 쳐도 다리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누군가 선심을 써 그의 커튼을 열고 tv를 보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지 그는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게 하루의 전부였다.
왜 나는 혼자인가? 나는 어째서 이러한가? 라는 질문은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 그는 제법
그런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천장의 무늬로 손가락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우사인볼트가 되어
9.5초대에 100미터를 끊는 상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애시당초 감정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 모든것들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마침내, 그가 삼개월 째 되었을 때 거동이 가능하게 되자 그나마도 그의 기저귀와 목욕을 담당하던
간병인은 떠났다. 그는 최장기 환자가 되어 오늘은 무슨 메뉴가 밥으로 나올지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가끔 찾아오는 카드사 직원들에게 받는 질타도 농담으로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권유에 따라 퇴원을 했다. 숙소에서도 이미 쫓겨난 상태라, 그는 간단히
몇가지의 짐만 챙겨 돌아가는 길에 통장을 확인했고, 약 천만원의 잔고와 함께 또다시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운명에 놓여졌다.
그는 보증금이 없는 월 38만원짜리 원룸에 입주했다. 그러나,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이 겨우 한계인
철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의 하루일과는 또다시 단조로워졌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라면을
사고, 가끔 영양보충을 위한 계란을 함께 구입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곧 돈이 아까워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됐다. 장애등급을 꽤 높게 받아 장애인 지원센터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이미 T.O가 꽉 차 있어서 미안하다는 담당자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2년안에는
어떻게든 굶어죽거나 만성영양부족으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었다.
다만, 노력은 노력일 뿐이어서 성과없는 노력은 그에게 '건물주의 부도로 인한 세입자 퇴거명령'
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동안 받아쳐먹었던 월세는 고사하고 이제 어디로 갈 지에 대한 걱정만이
앞서는 가운데, 그는 작은 가방에 든 옷 몇개와 지갑하나를 들고 서울역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한겨울의 서울역은 매우 추웠다. 당장 여관방이라도 구해 들어갈 심산으로 그는 역 앞 작은 여인숙에
하루 묶기를 종용했고, 그가 이제 모든 것을 다 잊고 살 궁리를 해보자 라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자, 그는 봉고차를 탄 채 낮선사람들과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가 깨어나자 낯선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며 카드의 비밀번호를 이야기하라고 했고,
마지못해 비밀번호를 이야기하자 그들은 잠시 은행에 들러 잔고를 모두 인출한 뒤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또다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항구였다. 덜깎은 수염에 막걸리냄새가 풍기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와서
말하길, 일은 잘 못하게 생겼지만 그럭저럭 말귀는 알아먹을테니 청소부터 시키겠다며 다짜고자
잘 걸어지지 않는 그의 다리를 걷어차며 어선으로 향했다. 그가 소끌려가듯이 배에 도착하자,
선장은 예의 뒤틀린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여긴 네가 한 만큼 벌어가는 곳이다!" 라고.
그의 말에 따르면, 일을 많이 할수록 그가 배에 있을 기간은 짧아지고 곧 목돈을 들고 나갈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작업복과 담배 한보루, 장갑을 던져주고는 널 서울에서 목포까지
데려온 돈과 작업복 담배값이 자그마치 천만원이 넘어가니 일단 이것부터 갚고 시작하자고 했다.
그는 뭔가 항변을 하고, 따지고싶었지만 입을 열려고 하면 가차없이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열려고 할때마다 정신이 멍해지도록, 육체가 멍해지도록 조금씩 피폐해져갔다.
어느날은 기분이 좋은 선장이 그와 처지가 비슷한 이들을 모아놓고 육지에 데려가 여자와 재워주기도
하고 고기에 술을 주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빚이 오백만원씩 추가가 되었음은 논외로 하자)
다소 부당한 대우였지만 가끔 섹스도 가능하고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다면 아무런 연고나 세상의
끈이 없는 그에게는 그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배에서 삼년을 넘게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며 청소를 했다. 허리가 점점 굽어 그는 백발의
노인처럼 행동하고 다리를 심하게 절었지만 괜찮았다. 선장은 조금씩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고,
그는 늘어나는 빚 없이 고기와 술, 여자를 취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지간에 그의 그런 행복한(?)일상이 계속되는 것이 지루할 때 쯤, 연안에서 조금 먼 바다로
나간 배가 좌초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해양구조대가 오기 전에 이미 바다로 점점 가라앉았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숨쉴 생각도 안하는 채 위를 쳐다보니 탁한 바닷물 사이로 간혹
들어오는 햇빛과 정체모를 물고기떼가 너무 예뻤다. 조금씩 숨이 막혀오고, 얼른 목돈을 벌어 나가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아무렴 어때' 하고는 흐려져 가는 의식을 애써 붙잡을 때
옆구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그것이 곧 상어의 이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이제
죽는구나 하고 그저 편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미련따윈 없었다. 그는 애시당초 세상에 감금되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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