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홰나무귀신(槐木鬼)은 홰나무에 깃든 영혼이 건장한 남자의 형상으로 나타난 귀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한 나무에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져 왔고, 지금도 전국각지에 산재해 있는 서낭나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파성군(坡城君)의 사위를 위험에서 구해주고 홰나무 속으로 사라진 홰나무 귀신 역시 이와 같은 서낭나무 또는 수호목(守護木) 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원텍스트 요약
동대문 안에 살고 있던 파성군(坡城君)의 사위는 밤늦게 활 연습장인 사청(射廳)을 지나다 한 무리의 무사를 보았다. 사청 앞길은 서로 궁술을 겨루거나 말을 달리며 창 겨루기를 하는 무사들로 꽉 막혀 있었다. 파성군의 사위를 발견한 무사들은 자신의 무술 연마에 방해가 된다고 그를 심하게 폭행했다. 그때 무사 가운데 한 장부가 나타나 파성군의 사위를 주인이라고 부르며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 주고는 집 앞 홰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파성군의 사위가 사청에 전날 밤의 무술연마에 대해 수소문해보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으며, 소문에는 그들이 귀신의 무리라고 했다.
출처 :《청파극담》
설화 분석 및 상징적 의미
〈홰나무 귀신〉 이야기는 《청파극담(靑坡劇談)》에 수록된 한문 야담이다. 《청파극담》은 청파(靑坡) 이륙(李陸:1438〜1498)이 엮은 야담집으로 야사와 당시의 관심거리, 유머, 음식과 질병 치료법 같은 민간 풍속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홰나무 귀신〉 이야기에서 홰나무 귀신은 건장한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파성군(坡城君)의 사위가 한밤중에 무술 훈련을 하던 무사들에게 봉변을 당하자 그를 구해 주고 홰나무 속으로 사라진다. 홰나무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건장한 남자는 분명 초월적 존재 혹은 귀신이다. 과연 홰나무 속으로 사라진 누구인가. 사람이 죽어 홰나무가 된 것인지 또는 홰나무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귀신’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① 죽은 사람의 혼령
②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음기를 지니면서 생성된 존재
③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주체
④ 초경험적 세계의 존재물과 그 활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물
위의 정의들은 귀신을 “인간이 죽어서 된 존재”로 범위를 한정하려는 시각(①과 ②)과 “죽은 사람의 영혼은 물론 그 이외의 초자연적 존재물”까지를 포괄하는 견해(③과 ④)로 양분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속 신앙의 숭배 대상이나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깨비 등의 존재는 분명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과는 구별된다. 때문에 귀신은 ③과 ④처럼 포괄적 범주로 규정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자의 영혼을 포함한 생물과 무생물 전반을 ‘귀신’과 연관짓는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정령(精靈)사상, 영육이원(靈肉二元)사상, 영혼불멸(靈魂不滅) 사상이 깔려 있다. 즉 ‘귀신’은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 사물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다는 믿음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으며,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는 현상이 곧 죽음이라는 사고 그리고 영혼과 분리된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다는 세 가지 인식에 기초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돌과 물, 나무와 집, 특정 장소와 시기, 해와 달, 12가지 동물과 각종 신성 동물, 방위, 기후, 죽은 사람 등에 대한 숭배와 금기의식 그리고 제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귀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죽은 이의 영혼’을 떠올리는 것도 사실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는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아 저승이나 천상과 같은 다른 세계로 이동하여 삶을 지속한다고 믿음이 있었다. 순탄한 삶을 살다가 천수를 다하고 운명한 사람의 영혼은 저승에 올라 차례와 제사 모심을 누리는 조상신이 된다. 반면에 생시에 악행을 범하거나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이의 혼령은 저승에 오르지 못한 채 구천을 맴돌며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악귀가 된다는 것이다.
이승을 떠도는 귀신과 악귀가 모두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산 사람들에게 이들이 가장 두려운 존재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은 구천의 귀신이 지닌 비일상적 형상 그리고 불예측성과 돌발성 때문이다. 귀신이 구천을 떠도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이나 해결하지 못한 원한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승에 머물고 있는 홰나무 귀신과 그 무리는 분명 순탄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혼령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정령 사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홰나무 귀신은 인간 영혼과는 무관한, 나무 그 자체의 정령이 잠시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두 관점을 모두 수용하여 설화에 나타난 홰나무 귀신에 관한 구체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한 밤중에 사청 앞에서 무술 연마를 하던 무사 무리의 일원이다.
둘째, 파성군의 사위를 주인님이라 불렀다.
셋째, 홰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홰나무 귀신을 비롯한 무사들이 무사의 복장으로 무술 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별달리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한 밤중에 사청과 그 앞길을 꽉 매울 정도의 많은 수의 무사가 무술 연마를 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전쟁이나 특별한 훈령이 없는 한, 오밤중에 군사 훈련을 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들이 파성군의 사위, 즉 왕과 인척 관계에 있는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하게 굴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한편, 무사 무리 가운데 낯선 한 장부가 파성군의 사위를 주인님이라고 불렀지만 파성군의 사위가 그와 면식이 없는 존재로 보인다는 점이 당혹감을 준다. 그 무사의 부축을 받으며 무사히 귀가한 파성군의 사위가 고개를 돌려 무사를 바라보니, 그는 이미 집 앞 홰나무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여기서 파성군의 사위는 이 장면을 홰나무가 사람의 몸을 빌려 잠시 나타났던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은 홰나무의 정령과 그 무리가 왜 무사의 모습으로 등장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한 밤중에 군사훈련을 한 이유도 그렇다.
첫 번째 의문은 귀신들이 무사 복장을 하고 있던 점으로 보아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은 병사의 원혼이 나무와 사물들에 깃들어 있다가 밤마다 무사의 모습으로 출현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홰나무 귀신〉과 유사한 사례가 《어우야담》에도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군함을 건조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 산에서 나무를 베어오게 했다. 병사들이 어떤 골짜기에서 나무를 자르려 하자, 여기 나무에는 전사한 병사들의 혼령이 들어있으니 다른 곳에서 나무를 하라는 낯선 음성이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따라서 군사들은 다른 장소의 나무를 베어 군함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참조해 보면, 홰나무 귀신도 비명횡사한 병사의 혼백이 파성군 집 앞의 홰나무에 깃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두 번째 의문 사항과 연관시켜 보면 더 명확해 진다. 홰나무 귀신의 도움을 받은 파성군의 사위는 왕의 일족이다. 그의 장인인 파성군 사철(思哲 : 1411〜1456)은 1432년(세종 14)에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관리로 임명된 이후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조상인 도조대왕과 경순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완창대군의 후손이다. 따라서 파성군의 사위 또한 왕가의 일원으로 볼 수 있는데, 무사들이 그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점은 하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파성군의 사위가 다음날 그들에 대해 수소문해보니, 전날 밤 사청 앞 군사훈련은 없었고 아마도 그들은 귀신의 무리일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따라서 통치권자인 왕의 일족에게 적대적 감정이 있고, 한밤중에 사청 앞길을 가득 메우며 무술을 연마했던 그 무리들은 반역을 꽤하다 처형된 무사와 무관들의 혼령이었다고 추론해 볼 수도 있다. 더 직접적으로는 이성계로 인해 패망한 고려의 충성스런 무관의 혼백일 수도 있다.
역적이든 패망한 고려의 무사이든, 그들은 한을 풀지 못하고 죽었기에 저승에 오르지 못하고 고목이나 돌 또는 자신이 죽임을 당한 장소에 깃들어 있다가 밤마다 생시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무예를 단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파성군의 사위를 구해 준 무사 역시 이들과 한 패이기는 하나, 그의 영혼은 파성군 집 앞의 오래된 홰나무에 깃들어져 있기에 파성군의 사위를 주인으로 섬기고 목숨을 구해준 것일 수 있다.
〈홰나무 귀신〉 이야기는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론을 토대로 하면서도, 오랜 전통을 지닌 ‘나무숭배사상’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나무숭배사상’은 마을이나 산 어귀에 정자나무, 서낭나무, 당산나무와 같은 신목(神木)을 모시고 치성을 올리는 전통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장승과 솟대신앙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홰나무 귀신〉 설화의 결말에는 파성군 사위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홰나무를 숭배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나 공자 이래 기괴한 능력을 지닌 잡신을 입에 올리지 않는 유교의 전통을 고려해 본다면, 유학자가 설화를 채집하여 기록하는 과정에서 홰나무 숭배에 관한 부분이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설화가 한문야담이라는 유학자의 설화기록이 아닌 민중의 설화 전승 양식인 구비설화로 살아남았다면, “나무숭배사상”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 일이다.
참고문헌
《청파극담(靑坡劇談)》
강은해 〈두두리재고-도깨비의 명칭 분화와 관련하여〉 《한국학논집》16 계명대 1989.
김현룡 《한국문헌설화》5 건국대 출판부 1999.
신원기 〈귀신담에 나타난 인귀(人鬼)의 관계양상과 의미〉 《어문학교육》21 1999.
한병천 〈귀신설화연구〉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2001.
출처 : Kocca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