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뜻하지 않던 승진 발령이 났다.
자타공인 이사급 신파 대리가 드디어 초보 과장이 된 것이다.
"아빠, 과장이 대리보다 높은거여?"
(아내의 고향은 충청도고 아들은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당연히 많다.)
"그럼 당근 빠따루 높지..."
"아빤 이사급 대리라매?..이사급 대리보다두 높은거여?"
"으,응 아주 쪼 쪼끔....."
"여보 수고했어 축하해.."
"수고는 무슨...용돈이나 올려줘!!"
그렇게 기분좋은 주말을 보냈는데,
호사다마 라고나 할까..............
1.
언젠가부터 아내가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고 했다.
가끔씩 가슴부위에 통증이 온다고 하면서
자신의 모든 네거티브적 요인을 신파 탓으로 돌리는 그녀답게
"당신이 속 썩여서 생긴 울화병이야" 라며 눈을 흘기곤하다가
어느 날 격렬한 통증으로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인근 개인 병원을 찾았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우려되니 심장 전문 병원으로 가보시죠"
차라리 이렇게 그냥.....
확신없는 분야에 대한 두려움이라도 갖고
책임을 미루기라도 했으면 좋았을걸...
"에또~ 본인은...심장전문은 아닙니다만,
심전도 확인결과 큰 이상은 아닌듯하니 믿고 맡겨보십시오"라며
호기가 지나쳐 객기를 부리며 호언장담하는
아직 젊어보이는 병원 원장의 말을 믿고 통원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결국 병을 키우고 말았다.
한달 가량 치료(위 내시경,신경 안정 치료 등)를 계속했음에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가슴통증의 빈도가 오히려 점점 잦아지자
"정확한 진단이 어려우면 처음부터 전문병원으로 가라고 하셨어야죠."
라는 말 한번 따끔하게 못하는 지나치게 예의바른 소시민 부부는
끝내 신경성 증세일 가능성이 크다며
"심장병변 진단을 요함' 이란 소견 끝에
신경 정신과 치료를 병행 요함....이란 멘트까지
정중히 써 넣은 원장의 소견서를 들고 부천에 있는 심장병 전문 병원을 찾았다.
기초적 혈액 검사와 초음파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결과
심장에 이어지는 혈류가 좁아져 혈액 공급이 원활치 못하니
혈관 조영술로 막힌 부위를 확인하여 혈관확장술을
시술해야 한다는 전문의의 말에 따라 오늘 입원을 하게 되었다.
혈관 조영술로 혈관내부를 확인한 결과가 좋지않아서
혈관 확장 시술이 불가능할 경우는
부득이 개복수술을 하여 혈관이식 또는 인공혈관으로 교체해야 한단다.
그 정도로 심각한건 아닐거라 믿고있기는 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가정이다.
95% 이상의 수술 성공률을 자랑하는
병원측의 자랑스런 홍보간행물을 읽으며 위안을 삼기는 하면서도
그럴 경우 치료비도 상당하고 입원기간도 한 달 이상이라니
아마도 지금이 결혼 이후 처음겪는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다.
결근한번 한 적 없던 회사도 거르고 입원 수속을 마쳤다.
"마음 편하게 먹어 다 잘 될거야"
하는 내 멘트가 상투적으로 들릴까봐 맘에 들지않고
내일 있을 시술에 대한 보호자 동의서 서명에 앞서
조영시술에 관한 개요를 설명하는
인턴으로 보이는 앳된의사가 웬지 미덥지 않고
현재 상태를 문진하는 일명 주치의라는
사십대쯤 보이는 의사의 사무적인 말투도 맘에 차지 않는다.
내일 있을 시술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고 있는
아내의 환자복 입고 있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고,
보라빛 입술과 검푸른 손톱의 병색 완연한
심장병 어린이가 휠체어에 실려가는 모습도 애처롭다.
입원 환자용 침구와 이불을 번쩍 번쩍 들어 나르고
휠체어며 침대를 이리저리 밀고다니는 간호사들의 모습도
괜히 노무자 같은 느낌만 들어 불만스럽고,
지하 영안실에서 올라오는 향냄새가 한층 더위를 느끼게하고
병원전체에 깔려있는
환자와 가족들의 우울한 기운이 마음을 무겁게한다.
제 이모에게 맡긴 아들 어차피 군을 찾으러 병원 문을 나서며 신파는 생각한다.
'아, 역시 병원은 올 곳이 못되는구나.'
2.
"아빠 나 이모집에서 자고 현정이(사촌)랑 같이 학교 갈래"
'아직 철없는 어차피 군은 평일 날 이모 집에서
사촌과 하룻 밤을 지내는게 신나는 게지...... '
"네 그러세요 형부, 제가 아침 챙겨서 보낼게요"
"그래..그럼 그렇게해"
걱정하나는 덜었다는 생각에 선뜻 대답을 하고 말았다.
병원으로 다시 갈까 하다가
문단속이나 할 요량으로 일단 집으로 향했다.
얼마만일까.............?
띵동띵동~ ♪
"누구세요?"
"누구긴..당신 허즈벤드지"
"인간....왜케 늦었어?"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일하느라 늦었다. 왜?"
하는 현관에서의 의례적 절차없이 내손으로 문을 따고 들어온게...........
텅빈 집안은 한 깔끔 하는 아내가
병원가기 전 이미 청소를 끝내고 가기도 했거니와
어지럽힘 담당 어차피군과 신파가 없는 까닭에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평소처럼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울까 하다가
실소하며 거실 쇼파에 앉은 채 담배를 피워문다.
"편하게 집에서 자고 병원엔 내일와..."
라고 병원 침상에 기대 애써 웃으며 말하던 아내는 지금
내가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걸 알리 없다.
아내가 없다는건 내게 금제를 걸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담배 필려면 나가서 펴!!" 라고 호령하던
아내는 지금..... 부재 중이다.
담배를 끄고 병원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냉장고 문짝에 붙어있는 흰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1.베란다 문 꼭 닫았는지 확인 할것.
2.가스 중간 밸브 잠궜는지 확인 할 것.
3.와이셔츠 다려놓은거 당신 옷장에 있으니 갈아입을 것.
4.집에 들어올 때 옷 탁 탁 털고 들어올 것.
5.밥은 계량 컵 세 컵 반 깨끗이 씻어서 할 것.
6.세탁기 돌릴 때 그냥 넣으면 안지워지니 비누칠해서 넣고 돌릴 것
7.귀찮아도 아침 꼭 먹고 갈 것.
8.거실이나 화장실에서 담배피면 죽음!!!!!
'옷 털고 들어올 것..이 아니고
'옷 탁탁 털고 들어올 것' 이라고 쓴 것과
'담배피면 죽음'...뒤에 붙은 여러개의 강조성 느낌표를보니
역시 신파의 아내답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마음이 짠.. 해온다 .
영원한 철부지인 신파의 무신경을 통제하는
아내의 역할을 무 생물인 쪽지가 성실하게 대행하고있다.
그 기간이 인내심 없는 신파의 금연기간 만큼 짧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를 배제한 삶에 익숙해질 자신이 없긴 때문 이겠지.....
아내의 목을 적실 차가운 보리차를 챙겨 집을 나선다.
말과는 달리 그녀는 내가 가지 않으면 서운해 할 게 분명하다.
2004년 6월 29일................날이 무척 덥다.
◆글쓴이: 신파
잠든 아내를 보다가 병원 휴게실에서.....
신파의 세계에 오셨군요.
어쩌다 발을 헛디뎌
깊은 나무구멍 속에 빠진 엘리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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