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가을의 끝자락에서 너에대한 기억을 더듬거리고 있다. 우리가 헤어진지 삼년도 더됐지만 난 여전히 너에 대한 기억을 먹고산다. 너와 헤어진 후로 내게 사랑은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고 진짜 사랑이 있긴 하냐고 물어 보고 싶기도 하고, 술에 쩔어 미친척하고 네게 연락을 해볼까 하기도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고 너가 떠나고, 남은 내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지켜보고자 오늘도 내 맘을 누르고 또 누른다.
아무리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다지만 몇번의 꽃이 지고 나서야 그때가 찬란한 봄이였다는 사실을 안 내가 둔한 것인지, 정말 그때가 봄이 맞긴 했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이제와서 네 생각을 하고, 연락을 해볼까 고민을 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는 걸 보면 그 옛날 100일동안 곡기를 끊고 쑥과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웅녀보다 내가 더 미련해 보인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사랑을 하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널 기억하는 것 뿐이다.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 해도 견딜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더이상 실재의 너를 마주할 수 없다는 것.시간이 지나 왜곡되고 조작된 기억속에 존재하는 너로밖에 추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몸서리 치게 괴롭고 사무친다.
청승맞다는 것쯤은 나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너에대해 왜곡된 기억을 끄집어 내어 너에 대해 말하자면 객관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내 주관으로는 내가 본 여자들 중 가장 이뻤다. 군대에 있는 나를 놀래켜 준답시고 말도 안하고 흑발로 염색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을땐 정말 말도 안되게 이뻣다. 그때 내가 널 왜 만나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너는 성격까지 서글하고 활발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내 친구들은 물론 우리 가족들까지 너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 내가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때의 너는 내 자랑이였고, 나의 자부심이였으며, 내 전부였다. 세상을 가진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지금에서야 핑계아닌 핑계를 대보자면 그때의 내가 너무 어려서 너를 온전히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해 너를 감사하기 보단 불평하고 못마땅해 비교하기 바빴다. 그렇게 처음과 달라진 내 모습에 너는 적응할 수 없었겠지. 사랑을 속삭이던 입으로 상처가 되는 말들만 내뱉는 나를 보고 숱한 상처를 받았을 거다. 상처가 되는 말들과 네 눈물이 쌓이고 쌓여 흘러 넘칠때 넌 내게 이별을 얘기했지.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 널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제서야 너와의 이별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 지금도 널 많이 그리워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진 않다. 내게 사랑을 알려주고 세상을 가지게 해준 너를 상처받게 한 내가 어떻게 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항상 이기적이였던 나라 지금 이순간에도 이기적이게 니가 보고싶다. 그래서 그저 우연히라도 마주치길 매일 바라고 있다. 더이상 가질 수 없는 너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렇게라도 너를 붙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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