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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들을 가끔, 주로 인터넷의 공간에서 만나곤 합니다. 아주 드물게는 국내에서 강의할 때에 청중 중에서도 만나죠. 그들은 보통 10대후반부터 20대후반 내지 30대 초반까지의 연령대이고, 계급적 배경은 주로 하층부터 중산층의 중간 레벨까지입니다. 그들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중상층과 이상의 많은 남성들도 보유하긴 하지만, "있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만큼 '분노'를 잘 일으키지 않습니다. "있는 남자"들은 그냥 "페미XX" 등을 조용히 멸시하고 #미투 운동을 "꽃뱀들의 행진"이라고 야유를 하고 그렇죠. 그런데 제가 만나서 가끔 대화를 나누는 남성들은 다름이 아닌 "화난 남성"들입니다. 그들은 분노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루 평균 5-6시간만 자고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일하는 초과경쟁시회의 '인간병기'로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나, 그들의 귀중한 인생의 2년 시간을 빼앗은 잔혹한 군대에 분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그 대신에 "여가부에 돈을 퍼붓기"하는 "좌파 정권"에 욕을 퍼붓고 페미니즘을 열내서 성토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북조선이라는 한국 극우들의 전통적인 혐오대상에 대해서는 대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지만, 놀랍게도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민족'이라고 나름 좋게 생각해주는 것 같기도 하죠. 북조선 대신에 그들의 사고의 지형에서 '절대악'의 위치를 차지해버린 건 워마드와 메갈리안이기에 이런 여유가 가능해진 것이죠. 그들은 한국의 "성난 남자"들입니다. 요즘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지지율까지도 깎아버리는, 바로 그 "성난 남자" 말이죠.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죠. 남자가 '피해자'라고? 산업화된 국가 치고 가장 반여성적인 사회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한, 여성에게 그야말로 지옥이 된 이런 사회에서 남성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처음에는 거의 반신반의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저들 분노의 '뿌리'를 대략 이해하게 됩니다. 일단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여자들은 나름대로 그 입장을 조금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젊은층 안에서는 학력이나 성적 수준은 이미 남성을 능가하는 거고, 여전히 엄청난 고용관계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어쨌던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긴 하죠. 한 때 낙인이었던 '이혼녀'는 더이상 낙인은 아니고, '혼전 순결' 따위의 이야기는 슬그머니 여론공간에서 - 다행스럽게도 -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싱글 여성에 대한 편견도 많이 나아져가는 거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도 특히 젊은층 안에서는 과거보다 훨 덜 심하죠. 일단 더디긴 하지만, 여성해방은 대세라는 걸 누구나 직감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미투를 지지했을 때에 바로 이와 같은 '대세 감각'이 반영된 거죠. 가부장제란 빨리 쓰레기통에 쳐박혀야 할 역사의 유물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 겁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는 남자는? 본래 한국 남성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군인"도 있고 ("군대 갔다와야 남자다") "국민"도 있고 그렇지만, 제일 일차적인 것은? 바로 "가족 부양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차적으로 "처자식 먹여살리는 사람"은 "남자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신체적 문제나 부모 덕에 군대를 면해도, 한국 "국민"이 아니고 예컨대 미국 여권 보유자라 해도, 과연 남자에게 큰 문제가 되겠어요? 글쎄, 문제 되긴커녕 플러스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처자식"에게 의식주 해결 못해주면? 그럴 경우 한국 사회는 부인의 가출도 절대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를 포함하여 남성의 모든 사회적 관계의 전제조건은 바로 "경제력"입니다. 이건 철저히 자본주의적 이 사회의 철칙 중의 철칙이죠. 문제는, 바로 이 "남자의 기초적 조건"을, 가면 갈수록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불가피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느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나 청년층과 노년층은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돼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이 보편적 특징은 한국의 경우에는 가장 심하게 나타나죠. 군대에 갔다오고 대학원과 외국어 연수라는 성지순례 (?)까지 다 마쳐도 30이 되도록 계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런저런 단기 비정규직, 심하면 아예 알바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젊은 남성들은 인젠 수두룩합니다. 결혼해서 신혼 아파트를 바로 얻어주고 "돈 잘 벌고 확신한 일자리"를 가짐으로써 아이 사교육비도 다 문제없이 내줄, 이런 한국형 "모범적 30대 초반의 남성"은, 가면 갈수록 차라리 "예외"가 돼버립니다. 상층 20-25%이 속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는 인제 그런 사람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죠.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은 바로 그나마 나름의 '지위 향상'을 경험하는 여성에 대한 불 같은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당연한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한국 남자들이 바보들인가요?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경향적으로 그 상황이 악화되어갔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해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을 해야 답이죠, 남성보다 신자유주의로 사실 훨 더 피해 보는 여성들에게는 도대체 웬 원풀이입니까? 강자에게 얻어맞고 나서 약자에게 가서 때리는 건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안되죠. 그런데 실은 같은 질문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남부 백인들에게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경제적 지위로 따져보면 베르니 샌더스나 찍고 미국의 복지국가화를 위해서 투쟁해야 할 그들은, 도대체 무엇땜에 백인 백만장자를 찍은 건가요?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제공하는 답은, 남부 백인들이 신자유주의로 인한 고통들보다 주관적으로 '특권 상실'을 더 아프게 느껴 트럼프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백인 특권'을 강화시킬 것을 기대했다는 겁니다. 사실 "페니XX"에 대한 혐오 하나로 자한당에 투표하려는 한국의 젊은 중하층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여성"과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지만, 그들이 주관적으로는 "고추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페니스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장해주었던 특권의 잠재적 상실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페니스 파시즘"은 미국의 백인 특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당장에 "상실"될 일도 없는데, 저들이 그 특권이 약화돼가는 "경향"에 위기감을 느끼고 극우화합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의 허위성과 반사회성을 열심히 설득하고,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하는 '연대'를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많은 "가난한 백인"에게도 그런 계급론적 설득이 쉽게 먹히지 않듯이 국내에서도 절대 쉽지 않을겁니다. 국내의 "페니스 파시즘"의 강고함이야 미국의 인종주의 정도나 그 이상이니까요...
[출처] "성난 남자"들의 문제 | 작성자 박노자
출처 | https://www.facebook.com/vladimir.tikhonov.5/posts/10218942521136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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