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동생은 대학에 다니지 않습니다. 대신 대학과 비슷한 4년제 게임교육기관에 다녀요. 전문대학보다 아래인.. 그런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공부를 지지리도 못했거든요. 아직도 로그를 이해 못 합니다. 영단어도 제대로 못 읽고요.
집안이 꽤 어려운 편입니다. 대학이 아니니 학자금대출도 안 됩니다. 올해 20살인데 나이가 안 되니 제2금융권도 이용할 수 없었어요.
제발 이딴 데(솔직히 학교법인도 아니고 '주식회사'더라구요.)에 돈 주고 다닐 바에 차라리 1년 재수해서 고향 근처에 있는 대학교 들어가라 라고 말해도 바득바득 이 게임교육원을 고집해서 이번 학기 등록할 때 제 이름으로 제2금융권..이율 20% 넘는거 대출받아서 내줬습니다.
문제는 얘가 자기가 처한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방학 때 집에 내려가서, 아버지랑 얘기했습니다. 이번 학기 장학금 못 타면 다음 학기부터는 학비 못 대준다. 재수를 하든지 알아서 해라. 알았다고 하더군요. 저랑도 약속했습니다. 영어 공부 꼭 하기로요. 문장 해석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어책도 사서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요.
지금요? 주구장창 게임만 합니다. 그놈의 교육원에 있는 시간 빼면 하루 종일 게임이에요. 이걸 못 하면 죽을 듯이 합니다. 인터넷 선을 뽑아버릴까 싶어요.
이렇게 커서 뭐가 되겠습니까. 솔직히 막노동판밖에 더 뛸까 싶어요. 지금 IT업계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죠? 그나마 취직한 사람도 제대로 못 벌어먹고 사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매일 야근하고.. 열악한 환경.
그런데 문제는 이놈이 자기 미래는 굉장히 밝은 황금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줄 알아요.
어제 자취방 공과금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두 달 치가 25만원 정도 되더군요.
동생한테 알바 뛰라고 했습니다. 들은 척도 안 하데요.
큰 소리 쳤더니 그제야 투덜대며 게임을 끕니다.
후.. 오전알바는 당연히 안 되고 그나마 목요일 수업 하나가 7시에 끝난다고 5~7시부터 시작하는 오후 알바도 안 된다기에 야간 알바를 추천하니 그럼 잠은 언제 자? 라고 하네요.
배달 알바를 하려고 해도 면허가 없으니 안 됩니다.
에어컨 설치기사 알바를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안 돼요.
힘 쓰는 일 하려고 해도 힘이 없어요. 키 163에 비실비실합니다.
그나마 가능한 몇몇 알바도 '용모단정' 이놈 머리 깁니다. 어깨까지 내려와요. 자르라고 하니까 군대가기 전까지는 죽어도 안 자르겠대요.
제가 새벽에 하는 PC방 알바 몇개 찍어줬더니 멍하니 보기만 합니다.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절대 안 해요.
욕했죠. 니가 지금 능력이 없으면 되는 일 몇 개라도 감지덕지하면서 해야 할 꺼 아니냐. 이렇게 말하데요. "그래도 커서는 형보다 돈 많이 벌잖아"
자기가 이 4년제 게임교육원인가 개놈교육원인가를 졸업하면 100% 게임회사 취업에, 게임 하나 만들어서 팔면 수억 수십억이 벌리는 줄 알아요. 미친 소리인거 다들 아시죠? 농담조로 말하면 몰라, 이걸 진짜라고 스스로 믿고 있어요. 졸업한 선배들이 다들 그렇대요. 어제인가, 구혜선의 '허언증' 얘기가 올라온 걸 봤습니다. 그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말이 있죠. 말로 해도 못 알아먹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논리적으로 지금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해봐도 못알아듣고 전혀 다른 소리로 대꾸를 해대니 설득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공부 못하고, 학벌 안 되고, 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 걱정됩니다. 알바 하나 시키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동생이 오유도 보니까 댓글로 좀 꾸짖어 주시고, 베유에 좀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