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지하국대적은 지하세계에 사는 머리가 아홉 개인 괴물로, 예쁜 여자를 납치하거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지상으로 출몰한다. 지하국대적은 어마어마한 식성의 소유자로 석 달 열흘 동안 수면을 취한 뒤 지상으로 나와 인간을 사냥하거나 재물을 탈취한다. 지하국대적은 목의 비늘을 들춘 다음 단칼에 목을 베어야 제거할 수 있다. 괴물이 사는 지하세계의 입구는 아주 작고 은밀해 깊은 산속의 바위 밑이나 조개껍데기 밑에 감춰져 있다. 지하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신령의 도움을 확보한 비범한 능력의 영웅이어야 한다. 지하세계는 흔히 죽음의 공간, 지옥으로서의 공간적 상징성을 가진다. 때문에 지하국대적은 죽음과 악의 상징으로 이해되며, 잡혀간 공주를 찾으러 지하세계를 찾아가서 지하국대적을 죽이는 영웅의 모험은 죽음을 부정하고 생명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여행하는 오르페우스 신화 역시 이와 동일한 상징성을 가진다. 지하국대적에 관한 설화는 전 세계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국내에도 전국에 산재해 있다. 지역에 따라 지하국대적은 하나의 머리를 가진 괴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금돼지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원텍스트 요약
지하에 살고 있는 괴물이 임금의 세 공주를 납치해 갔다. 왕은 세 공주를 찾아오는 자에게 막내딸을 줄 것을 약속하는 방을 전국에 붙인다. 한 무사가 몇몇 하인을 거느리고 괴물의 소굴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괴물이 사는 곳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산 속의 나무 그늘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때 백발노인이 무사의 꿈에 나타나 괴물의 소굴을 가르쳐준다.
무사는 깊은 산 속 이상한 바위 밑에서 지하국으로 통하는 구멍을 발견한다. 무사의 신하들은 그 구멍으로 내려가는 데 실패하지만, 용기를 낸 무사는 밧줄을 타고 지하국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무사는 괴물이 사는 굴 옆 우물가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핀다. 막둥이 공주가 물을 기르기 위해 나오자 무사는 물동이 속에 나뭇잎을 뿌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무사는 도술을 부려 수박으로 변신한 뒤 공주와 함께 괴물이 거주하는 공간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세 공주는 술자리를 벌여 괴물이 술에 취하게 만든다. 괴물의 마음을 달랜 후 공주는 괴물로부터 생명의 비밀을 알아낸다. 무사가 취해서 정신을 잃은 괴물의 목에서 생명의 비밀을 떼어내고 머리를 베어버리자, 공주가 절단된 목 부위에 재를 뿌려 괴물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했다.
세 공주는 무사히 탈출하지만 하인들의 배신으로 무사는 굴에 갇히게 된다. 이 때 이전 꿈에 나타났던 백발노인이 다시 출현해 탈출 방도를 알려준다. 백발노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무사는 향연이 열리고 있던 궁전으로 가 하인의 음모를 폭로한다. 이로서 하인들이 처형되고, 무사는 막내공주와 결혼한다.
출처 : 손진태〈지하국대적〉《조선민담집》 향토연구사(일본) 1930
설화 분석 및 상징적 의미
〈지하국대적 퇴치설화〉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한 탐색 여행의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탐색의 주체와 목적 그리고 탐색의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후원자 및 적대 세력과의 대결 등의 세부적 분석이 가능하다.
탐색이란 “탐색 주체가 결여된 사물을 찾기 위해 장애 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사소한 물건의 되찾음이 아닌 새로운 세계 속에서 ‘어떤 것의 찾음’을 의미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탐색의 주체로서 괴물에게 납치된 공주 또는 부잣집 딸을 찾아 나선다. 이는 탐색 주체보다 탐색 대상이 신분적 또는 물질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주인공의 위험한 탐색 여행 배경에는 보상이나 성취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탐색 주체인 남성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화의 주인공은 탐색과정에서 신기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탐색 이전에는 에 무능력해보이던 주인공은 탐색이 시작되면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미약하나마 존재의 신이성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인물의 탐색 성공은 민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낙관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초월적 원조자의 도움은 평범한 인간의 자아를 무한히 확장시키고, 초월적 능력을 가진 적대자에 대해 우위를 확보해주는 기능을 한다. 시초에는 주인공의 지혜와 자아의식이 미천하지만, 적대 세력보다 우월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민담은 주인공의 자아가 세계 최강으로 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탐색과정에서 드러난 괴물의 지하공간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현실 세계 질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지하국대적 퇴치설화〉의 무대는 대부분 산 속, 굴 속, 섬 등의 외딴 공간이다. 수직적․수평적 공간이 혼합된 양상을 보이면서도 이상 세계의 시간적 초월이 나타나지 않고 현실 세계의 질서가 그대로 보존된다.
지하 공간이라는 다른 세계가 신비성을 지니는 이유는 ‘비이성적인 낯선 장소’인 동시에 괴물의 존재에 있다. 이런 탐색 여행에서 다른 차원의 존재는 신비성을 부여함으로서 결여물의 획득과정이 비일상적인 것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초월적 세계를 향한 인간의 이상심리 충족이라는 의도에 기인한다.
탐색과정에서 겪게 되는 시련과 장애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후원자는 평범한 인간 주인공이 직면한 능력의 시험과정에서 그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동물․초월자․납치된 존재 등으로 표현된다. 초월자는 탐색과정에 단서를 제공해 주거나 동물과 함께 초월계를 탈출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역할을 한다. 납치된 존재는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당사자에게서 직접 빼내는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동물은 주인공의 탈출을 원활하게 하는 ‘말’ 등으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지하국대적은 탐색 주체가 결여된 탐색 목적물을 찾아 여행하는 도중 원조자를 만나 대적과 장애자를 제거하고 결여된 상태를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또한 이야기의 후반부는 주인공을 배신한 인물의 처벌과 공주와의 결혼이라는 보상이 이루어짐으로써 선악의 대결구도가 확장되며, 그 결과는 권선징악으로 종결된다.
〈지하국대적 퇴치설화〉의 주인공은 납치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지하세계의 괴물을 찾아 나선다. 현실 세계와의 단절이 고통을 수반하듯 주인공은 미지의 세계를 찾는 과정에서 고난을 당한다. 지하국은 미지의 세계이자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기 때문에, 원조자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초월적 공간의 출입이 가능해진다.
지하국은 죽음의 영역으로서 매우 극적인 형태를 띤다. 이 공간의 특징은 혼절과 관문 통과이다. 혼절은 초월 세계에 접근했다는 표시로 보통 꿈이나 환각을 유발시키는 고행을 통해 획득되며, 엑스터시나 트랜스 상태, 유사 무의식 상태에 의해서 신참자의 근본 인격이 제거된다. 관문 통과는 이성적 판단과 일상적 체험으로 해결 불가능한 죽음의 시련이다. 시련의 여행은 죽음의 제의, 태아 상태로의 귀환(모태회귀), 지옥으로의 하강과 천국으로의 상승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여러 고통의 과정을 통한 인간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 어머니 품으로 되돌아가 환생하려는 통과제의에서 어머니는 공동(空洞)이나 어둠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즉 동굴이나 괴물은 항상 모태와 관계된다. 대지는 지신(地神)이며 동굴이나 바위는 지신 속에 자리 잡은 모태이다.
괴물을 찾아 바위 밑에 있는 바늘만한 구멍 또는 굴을 통해 지하국에 들어가 어둠을 지배하는 괴물을 퇴치하고 귀환하는 행위는 통과제의 가운데서도 청년의 ‘입사담’에 해당한다. 입사담이란 ‘성년이 되었음을 인정받는 과정의 통과제의’를 표방함으로 이들이 겪어야 할 시련은 매우 상징적으로 표출된다. 이들의 탐색 여행은 표면상으로는 먼 외부 세계의 미지의 공간처럼 설정되지만, 실은 자신들이 태어난 내부 공간 즉 여체(女體)의 내면 속이다. 땅 속으로의 진입은 모체(母體) 자궁 속으로의 귀환을 상징한다.
암흑 속에서 자신과 대결한 대상은 괴물이 아니라 자기를 탄생시킨 끈끈한 모성(母性) 그 자체이다. 지하의 용 ․ 멧돼지 ․ 아귀 ․ 힘센 장사 등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선하는, 어린이 눈에 비친 모성의 부정적 이미지이다. 소년은 혼자 힘으로 원초적 공간인 어둠 속에 드리운 끈끈한 모성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 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하국대적 퇴치 설화는 모성으로부터 일탈하려는 개체가 벌이는 ‘치열한 자아와의 싸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은미 〈지하국대적퇴치설화 연구〉 한국교원대 석사학위논문 1997.
손진태(孫晉泰)〈지하국대적퇴치(地下國大賊退治)〉《조선민담집(朝鮮民譚集)》 향토연구사(鄕土硏究社:日本) 1930
조동일 《한국소설의 이론》 지식산업사 1977.
주종연 《한독민담비교연구》 집문당 1999.
출처 : Kocca 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