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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46532
    작성자 : v독거v
    추천 : 3
    조회수 : 433
    IP : 125.138.***.178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4/07/17 11:01:27
    http://todayhumor.com/?military_46532 모바일
    예비군 훈련장에서 꾼 악몽-(1) (긴 글 주의)

    나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떴다. 가끔 민방위 훈련할 때나 틀어제끼는 애애앵~하는 소리와 민방위재난통제본부에서 어쩌구 하는 웅얼거리는 방송 소리가 계속 울려댔다. 짜증이 치밀었다. 새벽 4시까지 술을 퍼마시고 해질녘까지 자려 했는데 민방위 훈련이라면 지금 한낮이라는 소리 아닌가.

    "아이 이런 멍멍이 식빵 진짜..."

    식빵을 한 번 굽고나서 고개를 돌려 벽걸이 시계를 보았다. 의정부 변두리의 싸구려 단칸방인 내 방의 몇 안 되는 세간 중의 하나인 디지털 벽시계는 06:20을 출력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전방도시라지만 무슨 아침 식전부터 민방위 훈련이란 말인가. 짜증이 정말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잠도 두어시간 밖에 못 잤는데 저 망할 사이렌 소리때문에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미칠듯한 숙취가 밀려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아! 식빵! 식빠앙!"

    내 식빵 굽는 소리에 지지 않으려는듯 사이렌 소리와 방송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방송하는 남자 공무원인지 군인인지가 점점더 격앙된 목소리로 뭐라뭐라 떠들어대는데 소리가 너무 울려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방송문구에서 군시절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두 문구를 캐치했다.

    '공습경보발령'과 '실제상황'.

    순간 숙취가 싹 가시고 정신이 맑아졌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고물이라 부팅 후 인터넷 접속까지 1분이 넘게 걸렸다. 그 시간이 억겹과도 같이 느껴졌고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계속 울렸다. 나는 불안과 초조함을 달래려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긴 부팅이 끝나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자 믿을 수 없는 문구가 대문에 박혀 있었다.

    '북괴군 전 전선에 걸쳐 남침 중!'

    "이...이게 무슨 소리야!?"

    실시간 공중파 뉴스 스트리밍을 돌려보니 가관이었다.

    전선에서 촬영한 북괴군 진격 영상이 나왔는데 어느놈의 센스인지 배경음으로 러시아 군가 Polyushka polye, 그것도 붉은군대합창단이 부른 버전이 흘러나왔다. 특히 남성단원 수십 명이 '아~아아~아아'하면서 웅장한 코러스를 넣는 부분에서는 수백 대는 됨직한 북괴군의 천마호 땅크가 국군 방어선으로 밀려오는 장면이 나왔다. 대전차로켓을 든 현역병들이 우왕좌왕 하면서 뛰어다녔고 몇 대 밖에 안 되는 K-1전차가 엄폐물을 끼고 절망적 저항을 하고 있었다. K-1전차가 발포할 때 마다 천마호 땅크가 한 대씩 터져나갔지만 그 때마다 수십 발의 반격탄이 날아왔다. 비록 단 한 발도 K-1전차의 강인한 전면장갑을 관통하지 못 했지만 저런식으로는 오래 못 버틸게 틀림 없었다.

    아마 전차에 타고 있는 장병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진지변환 도중 텃밭 같은 곳에 노출된 한 대의 K-1전차가 집중 사격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차체와 포탑 전면장갑에 십수 발의 철갑탄이 명중했지만 모두 불꽃을 튀기며 도탄되었다. 그러나 피탄 충격으로 구동계통에 이상이라도 생겼는지 전차가 조금 내려앉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그 순간 다량의 철갑탄과 대전차 고폭탄이 다시 전면장갑을 때렸다. 대전차 고폭탄이 만들어낸 폭발과 연기속에 묻혀버린 그 K-1전차는 격파됐을 게 틀림없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연기가 걷혔을 때, 놀랍게도 K-1전차의 포탑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곧이어 차장 해치가 열리고 차장이 머리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관측장비가 고장나서 육안으로 표적지시를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곧 K-1전차의 강력한 105mm강선포가 불을 뿜고 한 대의 천마호 땅크가 불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불끈 쥐고 외쳤다.

    "나이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곤 장면이 바뀌어 방탄조끼를 입은 기자가 나와 '지금 인민군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으나 국군장병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진지를 지키며 적을 격퇴할 것이고 OO방송또한 끝까지 국군장병들과 함께하겠다'는 식의 다소 뻔한 멘트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카메라가 찍고 있던 국군 진지에 수백 발의 방사포탄이 착탄했고 진지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끝없이 일어났다. 곧이어 '퍽-!'하는 소리와 함께 중계화면도 멈춰버렸다.

    스튜디오 앵커가 애타게 기자를 불러댔지만 응답은 없었다. 기자의 운명은 어찌보면 뻔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말인가? 북괴군이 내 방에서 불과 수십 km떨어진 곳에서 진격 중이고 그 놈들의 손에 좀 전까지 화면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현역장병들과 기자가(그리고 아마 방송 스탭들도)죽었단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대를 더 피워물었다.

    당황해하던 스튜디오 앵커는 겨우 평정을 찾은 듯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기자와 국군장병들이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멘트를 하고는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북괴 정부가 발표한 대남성명이었는데 무섭게 생긴 중년 남자앵커와 어딘지 모르게 낮익은 아줌마 앵커가 같이 나와 대한민국 정부를 비방하는게 주된 내용이었다.

    "(북괴남자앵커)위대한 김정은 수령동지께서는 저 사악한 미제국주의자 승냥이들에게 반세기를 붙어먹은 민족도 없고 동포도 없는 간악한 이악쟁이 남반부 정부를 징벌하기 위하여 어쩌구 저쩌구...우리 조선인민군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블라블라..."

     "(북괴여성앵커)남반부 동무들 고조 조금만 기다리라우야. 우리 무적의 인민군 전사 동지들이 곧 여러분 모두를 공산공산하게 해줄끼야! 테헷!"

    특히 북괴여성앵커는 귀엽게 웃으며 저 괴랄하기 짝이 없는 멘트를 하고는 양손 끝을 머리위에 올려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미친 색히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그 때였다.

    -콰과과과광!

    나는 엄청난 폭음과 진동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으...식빵..."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과 옷장같은 몇 안 되는 가구들은 죄다 쓰러져 있고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모니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화면이 꺼져있는게 아마 전기가 나갔거나 파손된 듯 했다. 바닥에 나뒹구는 벽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한 20분 정도 기절해 있었던 것 같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머리에서 피가 약간 흐르고 몸 여기저기가 쑤시긴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창밖을 내다 보니 거리는 온통 자욱한 검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여 있고 건물 여러채가 붕괴되어 있었다. 북괴군이 포격이나 공습을 가한 게 틀림없었다. 사이렌 소리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더러운 색히들. 민간인까지 무차별로 공격하다니."

    나는 투덜대면서 휴대폰을 찾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러나 발신 자체가 되질 않았다. 아마 기지국이 당해서 통화가 정지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비웃듯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귀하는 동원예비군으로 지정된 자로서...어쩌구 저쩌구...1시간 이내로 집결지까지 이동하여야 하며 불응시 무슨무슨 법에 의거 전후 X년 이상의 형벌에 처해질 수 있음.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내가 예비군 3년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전면전 발발이 예비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났다. 나는 갈등했다. 소집에 응하면 전후 처벌 받을 일은 없지만 내겐 그 '전후'라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국군이 이기더라도 말이다. 물론 국군이 이겨야만 하고 대한민국은 살아 남아야 하지만 나는 그 살아남은 대한민국에 없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뭐 나 하나야 어찌되든 상관없을지 몰라도 가족들은 어쩌나. 전후처리에 바쁠 국가가 금전적 보상이나마 제대로 해 줄까. 시체라도 찾아서 가족에게 돌려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냥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어떨까. 몇 년 교도소에 가야하고 출소 후에는 비겁자, 배신자 소릴 들으며 숨어살아야 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텐데. 아니 그러다 만약, 그럴리는 없겠지만 북한에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서 북괴놈들이 승전한다면? 나같은 케이스들은 보나마나 북괴당국에 끌려가서 선전용으로 몇 년 활용되고 팽 당할 게 뻔했다.

    그렇게 오만 생각을 다 하며 갈등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확성기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마이크 테스팅! 하나, 둘, 셋! 치-직. 어제의 전우 여러분! 주목해 주십시오!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 차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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