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하십니까? 발길 멈추게 하는 대자보 주현우씨(고대 경영학과)가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붙여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학우들의 연이은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 유성호 |
바이라인(By Line). 기사 작성자 표시를 말한다. 이것을 꼭 넣어야 한다는 법이나 규정은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국내 신문에서 기자 이름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 인터넷용 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에 기자의 이름이 붙는다. 매체에 대한 신뢰, 기자의 책임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가 대학가를 넘어 사회로, 해외로 번지고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 밀양송전탑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이 대자보에도 바이라인이 있다. 처음 글을 게시한 고려대 학생 주현우씨를 비롯해 이어진 수많은 대자보 대부분에 작성자가 표시됐다. 같은 의미다. 글에 대한 신뢰, 글쓴이의 책임감이 담겼다.
<오마이뉴스> 11일 첫보도(관련기사 :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찌 다들 이리 안녕하신건지" )이후 많은 매체가 '안녕들하십니까'의 열풍을 보도하는 가운데, <조선일보>도 초반부터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30개 가량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모두 일간지면에는 실리지 않는 인터넷판 기사들이다. 물론 이 신문은 '고대 대자보? "비약만 있고 팩트는 부실!"'이라는 첫 기사 제목처럼 시종일관 '안녕들하십니까'를 비난했다.
이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바이라인이 없다. 많은 매체들이 인터넷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소위 '검색어 기사'를 쓴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는 키워드를 가지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많게는 수십 개씩 찍어낸다. 이러한 기사들 중에는 바이라인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체의 신뢰를 담보할 수 없고, 기자의 책임도 필요 없는 단순 조회수만을 위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안녕들하십니까'를 비난한 <조선일보>의 인터넷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참여를 호소하는 '실명의 대자보'를 '1등 신문'이라고 자청하는 곳에서 '익명의 기사'로 비난한 것이다. 다른매체의 경우 보통 인터넷용 기사라고 해도 '디지털뉴스팀'이나, '인터넷뉴스팀'과 같은 담당 부서의 명의를 붙이지만 <조선일보>는 그 조차도 없었다.
익명 뒤에 숨어 흠집내기+조회수용
▲ "안녕하지 못한분들 많이 오셨습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왼쪽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쓴 주현우(27,고려대)씨 |
ⓒ 이희훈 |
업계에 만연해 있는 평범한 '검색어 기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사 내용을 보면 <조선일보>의 의도는 '흠집 내기'가 명확했다. 제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2일
-고대 대자보? "비약만 있고 팩트는 부실!"
13일
-안녕들 하십니까, 고대에 붙은 대자보 화제..."일방적 주장, 논리적 비약"
-안녕들 하십니까, 고대에 붙은 대자보 화제 "일방적 주장, 논리적 비약"...'일반 대중이 보는 시각은?'
14일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 대자보, 진보신당 당원의 일방적 선동문이 '뜬' 까닭은?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실체 없는 '철도민영화'에 반대한다며 서울역으로...
-'안녕들하십니까', 논리도 팩트도 부실한데.."집회 먼저?"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추진되지도 않는 '철도민영화' 반대한다며...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전제 자체가 틀렸는데 선동만..." 이런 글에 몰리는 대학생들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실체없는 '철도민영화' 반대하며 거리로...대학은 '감성의 전당'?
(조선일보의 '안녕들하십니까' 기사 보러가기)
비슷한 제목의 9개 기사들은 서로 내용도 비슷하다. 정확히 말해 몇 개 문장을 제외하고는 똑같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거의 똑같은 기사를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을 '어뷰징'이라고 한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독자들의 클릭수를 유도하는 일명 '낚시기사'들이다. 이들 기사에서 '익명의 기자'가 쓴 내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대 대자보를 접한 네티즌들은 "고대 대자보, 비약 투성이 글", "고대 대자보, 선동만 있고 자세한 팩트는 없다" 등의 반응이다."
"14일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 대자보'의 필자가 과거 진보신당 일인시위에 동참했던 당원이라는 내용도 확산하고 있다.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 대자보'에 대해 네티즌들은 '고려대 대자보, 그냥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문일 뿐이던데…', "고려대 대자보, 일부 네티즌이 인터넷을 어떻게 휘두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등의 반응이다."
지난 12일부터 14일 사이 <조선일보>가 제시한 누리꾼 반응을 찾기 위해 수차례 검색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안녕들하십니까'가 게시된 주요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도 긍정적인 반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가 13만이 넘었고, 게시글에서도 조선일보가 제시한 반응을 찾을 수 없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같은 소수 사이트에서 비난 댓글이 올라왔지만 누리꾼 전반의 반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안녕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않습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
ⓒ 이희훈 |
구체적으로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시된 <오마이뉴스>기사에 달린 1173개 댓글 중 "서서히 깨어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젊은 청춘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댓글에는 추천이 5046번 됐고, 비추천은 81번에 불과했다.
샤이니 종현 프로필 바꾸자... <조선>의 변화
이러한 보도행태에 누리꾼의 비판 여론이 불거지는 동안 <조선일보>는 15일부터 보도방향을 달리했다. 특히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을 '안녕들하십니까'로 바꾼 후 일부 누리꾼의 반응으로 쓰던 비난 기사가 싹 사라진 것이다.
기존 보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일보>는 이후 <스포츠조선> 기사를 포함해 샤이니 '종현'과 관련한 어뷰징 기사 16개를 쏟아냈다. 어제까지 신랄하게 비난하던 것에서 태도를 바꿔 연예인의 이름을 빌린 조회수 높이기에 열을 올린 것이다.
<조선일보>가 잠잠해지자 <TV조선>이 치고 나왔다. 16일 오전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면대면'이라는 코너에서 '안녕들하십니까' 관련한 각 신문 보도를 소개하며 "문제가 된 대자보를 맨 처음 붙인 학생은 순수한 대학생이 아니라 옛 진보신당인 노동당 당원이자 청년학생위원회 운영위원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방송은 "대학가에서도 일부 세력들은 선전 선동 전략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밀양 송전탑, 그리고 철도 파업까지 대학생들을 동원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대자보 훼손 사건을 보도하면서 대학생 동원을 부추기는 좌파 언론도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단순히 누리꾼들의 반응을 빌려 '안녕들하십니까'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반면, < TV조선>은 대놓고 "순수한 대학생이 아니"라며 "좌파언론이 문제"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내놓은 것이다.
익명 기사에 실명으로 항의하다
▲ 이화여자대학교에 붙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이 글은 기자 이름도 밝히지 않고 일명 '안녕' 대자보를 비판한 <조선일보>와 해당 기자를 비판했다. |
ⓒ 인터넷제보 |
누리꾼들은 이러한 <조선일보>의 익명기사에 실명 댓글로 항의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철수씨는 "<조선일보> 기자님, 요즘 대학생들은 국가나 사회보다는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데 고대 주현우군은 자신보다는 국가와 약자를 위해서 대자보를 쓴 것에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십시오. 젊은이들은 비판보다 칭찬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라고 남겼다.
고려대 학생이라는 원두호씨는 "대체 어디가 비약이라는 겁니까? 자기 이름도 밝히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기사를 기사라고 낸 기자님과 <조선일보> 관계자 분들, 겉으로는 잘 살고 계시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 일말의 부끄러움은 갖고 있겠지요, 그러면서 정말 안녕들 하신가요?"라고 남겼다.
'안녕들하십니까'도 여기에 응답했다. 16일 이화여대 언론정보학부 10학번이라는 명의로 학교에 대자보를 게시한 학생은 "고려대학교에 붙은 대자보를 읽고도 나는 안녕했습니다. 그러나 12일 이 대자보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가 나를 안녕치 못하게 만들었습니다"라며 "기자가 어찌 익명성의 뒤에 숨어 대자보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논할 수 있습니까?"라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고 대중과 마주하겠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그런데 정정당당히 마주하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라며 "모두 앞에 자신을 내보이고 질문을 던지는 한 대학생과 당신들 중에 누가 더 정의롭지 못할까요? 당신들의 안녕이 과연 대한민국의 안녕인가를 묻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아이폰] [안드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