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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위병소를 나와 모퉁이를 돌 때의 흥분과 설렘을 잊지못한다. 바깥 공기가 이렇게 상쾌한 줄 새삼 다시 알게 되었고 잔돈으로 사서 입에 털어넣은 초코우유도 더 이상 부대의 아침과 함께하던 지겨운 우유의 맛이 아니었다. 1112번 버스가 점점 우리 동네에 가까워지자 그 설렘은 배가 되었다. 정말 이 순간만은 모든 걸 다 잊고싶었다.
현관의 비밀번호가 내가 모르는 번호로 바뀌었다는 것을 빼고는 5개월만에 가보는 집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잠깐 외출하고 들어온 것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가족들과 짤막한 인사를 나누면서 침대에 누웠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비로소 내가 사회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핸드폰을 살리러 갔다.
“ 휴가나와서 잠깐 휴대폰 살리러 왔는데요”
"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 잘못들었습,,,,?”
“ ................”
이미 예상하던 일이었다. 곧 익숙해지겠지.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최근 문자와 통화는 7월 13일. 모든 흔적이 7월 13일에서 멈추어져있다.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사회에서 나의 8,9, 10 , 11, 12 월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내 존재자체가 사라졌던 것 같아 씁쓸했다.
저녁에 그렇게 먹고싶었던 삼겹살을 먹고 노래방에서 놀다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만해도 4박5일이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며칠간이 달콤했던 만큼 시간도 빨리 갔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가족과 얘기도 하며 휴가나오기 한참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것을들 거의 다 했지만 왠지 모를 뒤끝은 남았다. 부대에 가워질 수록 ‘이제 몇 개월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잠자코 일만하는 로봇처럼 지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점점 부대 앞에 위치한 회사 간판이 보인다. 다 왔다는 뜻이다. 부대 앞에 서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근무서는 선임과 얘기를 나누며 위병소를 통과하면서 나는 다시 군인이 되었다.
2011/4/11 - 고민
이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것 같다.
신병때 근무를 서면서 저 아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들곤 했다. 사회와의 괴리감이 가장 크게 와닿는 순간이기도 했고, 지난 날의 과오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거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많이 그립기도 했다. 밤하늘 아래 야경을 바라보는 내 심경은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
2011년 4월, 전역을 한달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이제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밖에 나가면 꼭 이것을 해보고 싶다’ 는 설렘보다 ‘나가면 뭐하지’라는 대부분의 말년병장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걱정들이 앞선다.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입대전까지의 내 삶은 그리 순탄치않았다. 사실 순탄하고 말 것도 없었기에 무언가 만들어놓은 인생의 ‘업’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한데다 학점관리도 제대로 하지못했고 이뤄놓은 것 하나 없었다. 꿈이 없으니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도 모를 수밖에. 그래서 전역 후에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갖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언제부턴가 형성된 습관들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싶다. 우선 군대에 와서 독서하는 습관을 길렀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틈틈이 몇가지 독서일기와 수양록도 써두었다. 자연스레 다양한 인맥이 형성되었고 이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면 언젠가는 이들이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멋진 (연금술사에 나오는) 표지 역할을 해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시도해보려한 자격증 공부나 기타 영어, 한자 공부는 제대로 시작도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군생활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예상도 못했던 공무원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공부하면 다하는 공무원시험 나라고 합격 못 할 것도 없다는 바람이자 희망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보려하는데 마침 뉴스에 헤드라인이 뜬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공무원 시험날이어쏙 경쟁률이 93:1을 웃돌았단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교육행정직은 500:1을 넘었다는 소리로 단번에 기만 죽여놓는다.
‘유림이도 시험을 봤겠구나,,, 굉장히 열심히 하던데 잘봤을까?’
그 애가 붙었으면 싶다. 주위의 누군가가 성공하면 어쩐지 안심이 될 것같다. 그러고보니 군인간부들도 공무원에 해당되는데, 행정관님이 5급이고 하사간부들도 9급에 해당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휴가나가고 국방을 위해 힘쓰면서 잘릴 염려없이 월급받아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해야하는 상황으로 온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하사지원은 아니다. 내가 입대할 때부터 죽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일 1순위로 꼽은 것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타 진지에 올라가있는 동기에게 신호가 왔다. 아직도 나가서 실컷 유희를 즐길 생각에 부풀어있다. 나가서 무얼할거냐 물으니 ‘나중에 한번 생각해 봐야지’란다. 철없는 녀석이다.
내가 하고싶은일, 잘할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책에서 자신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좋아하는 것을 접목시켜 다양한 경험을 하다보며 ㄴ자신의 길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고한다. 그 녀석에게 내 장단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타인에게 내 성격과 장점을 물어보긴 처음인 것같다. 그리고 나와 1년하고도 6개월을 함께한 놈인만큼 부대 내에서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을 것이다.
“단점은 우선 낯선 사람들에게 약간 무뚝뚝한거랑,,, 만사에 귀찮아하는게 좀 있어”
무언가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개버릇 남 못준다더니,,, 신병때 이제 귀차니즘과는 영원히 안녕을 약속했는데 짬먹으면서 귀차니즘이 다시 도졌구나. 이어지는 한마디
“ 근데 우선 한번 시작하면 또 열심히 한다는 거지"
꽤 만족스런 답변이다. 우선 한번 마음을 먹고 질러보면 그런대로 한다는 뜻인것 같다. 하긴 분대장교육때도 귀찮아서 대충하려 했었는데 나를 놀려대며 비아냥대던 당시 분대장의 비웃음이 생각나서, 그리고 포상휴가 한번 타보자는 일념으로 마음굳게 먹고 했더니 2등이라는 역대 중대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동기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려했는데 어째 또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상념에 젖는다. 나가면 23살, 뭔가를 시작하기에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시간이 꽤 남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무엇부터 시작하느냐 이다. 전공을 살리려면 아무래도 도움이 될 수있는 행정인턴 쪽의 알바를 알아봤는데 이 또한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별다른 소득없이 근무를 철수하고 저녁을 먹으니 무한도전 할 시간이다. 오늘은 만원으로 최대한 돈을 불리는 미션이다. 연예인 신분을 이용해 사기급의 말빨로 돈을 불려가는 노홍철과 하하보다 하루종일 노가다를 해도 푼돈밖에 벌지 못하는 정준하에게 더 애착이 간다. ‘ 이렇게 만원벌고 쓰기도 힘든데 그 많은 등록금은 어떻게,,,,?“라는 자막이 와닿는다.
그래, 이 좁아터진 공간에 갇혀서 아무리 고민해봤자 나오는 답은 없는 듯하다. 그나마 가닥이 잡힌건 3학년 1학기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우선적으로 관리하고 부족한 학점을 메꾼다음, 부가적으로 경영정보에 필요한 자격증도 준비하는 것이다. 어차피 지난 2년간 내 유일한 목표는 전역이었으니 이 초심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선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다.
결국 동기녀석이 옳았다.
첫문장 못맞춰서죄송합니다. 어차피 입상은 안해도되고 그냥 전역한지 2년가까이 됬는데 문학제한다길래
병영일기 써놓은게 생각나 올려봤네요 ㅎㅎ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