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하는 형이 용기내 쓴 글이라 퍼나릅니다.
아래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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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과 박 모군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에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느끼는 현실은 결코 안녕하지 못하지만, 박 모군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이 저의 일신의 안녕을 더 괴롭히는군요.
1. ‘깨어있는 시민’에 대해
몇 년 전부터 나왔던 말입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으면 소위 ‘깨어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이야기. 몇몇 기성세대들은 사회문제에 관심 없는 20대를 질타하며, ‘20대 X새끼’론을 폈습니다. 저는 그렇게 외치는 기성세대들이 더 꼴통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지난 2월에 졸업했지만 아직 학교와 도서관을 전전합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참여하기에 개인적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중요한 건 몇 년 동안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다는 겁니다. 사회문제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너흰 무지몽매한 X새끼야’라는 소리는 쉽게 하지 않습니다.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들은 대학생을 다그치는게 아닙니다. 제겐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 조금만 더 갖자’는 말로 들립니다.
2. 종북세력과 일베1충에 대해
종북세력이라고, 일베1충이라고 낙인찍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아픔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수가 일베1충이 아니듯 진보가 종북세력이 아닙니다.
현실을 보십쇼. 종북세력으로의 매도가 일베1충 매도보다 훨씬 쉽고, 강력하고, 보편적입니다.
진짜 종북세력도 있지만 종북세력이 아닌 이들에게도 종북세력이란 딱지가 붙습니다. 요즘은 공식적으로 청와대에서 그런 일을 가장 많이 합니다. 청와대 홍보 수석은 수시로 “너의 조국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대선에 불법이 자행됐다고 말하면 “당신 조국이 어디냐”고 묻고,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만든다고 말하면 “당신 조국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여기에 대답하려는 순간 그 프레임에 갇혀버립니다. 결국 결론은 ‘너는 빨갱이야’로 끝납니다. 박근혜 정부와 그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왜 좌빨이 돼야 합니까?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한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
3. 국정원 개혁에 대해
박 군이 말했듯 우리의 주적은 북한입니다. 그런데 왜 국정원 일부는 남한의 야당 세력을 주적으로 생각합니까? 왜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고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데, 남한 내의 분란을 일으킵니까? 박 군 말대로, 도둑이 호시탐탐 우리 집을 노리는데 국정원이 집에 훔쳐갈 거리를 내놓고 있지 않습니까.
또 박군은 국정원을 없애는 것이라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국정원을 없애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 나오는 국정원 개혁안은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국정원이 권력의 충견이 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규제하자는 말입니다.
4. 철도민영화에 대해
박 군은 왜 정부와 코레일의 “민영화 안한다”는 믿지 못하냐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정부와 코레일의 말을 조더히 믿지 못하겠기에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알짜배기 자회사를 떼어줄 이유가 너무 궁색합니다.
코레일은 물류에서 적자를 보고 KTX로 메우는 구조입니다. 알짜배기 KTX를 떼면 코레일 수익성이 올라갈련지요? 그 회사는 기존 KTX와 노선이 80%가 중복됩니다.
박군은 ‘법으로’ 민영화를 막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KTX 자회사의 ‘이사회 정관’으로 귲ㅇ한다는 겁니다. 이사회 정관은 이사회의 협의로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법이 아니기에 KTX자회사를 인수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이 소송을 걸면 정관을 바꿔야 합니다. 또 공공기관이 KTX자회사의 지분을 모두 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쯤이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지 않습니까?
(임금인상 요구조건은 한국이 임금이나 근무 조건 개선 주장이 파업 목적에 안 들어가면 불법 파업이 되는 나라라서입니다. 그럼에도 임금인상 6% 요구는 과한 듯하고 이는 국민 여론에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조 측에선 물가인상률 2~3% 정도의 인상을 위해서 협상용으로 내놓은 퍼센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정치와 사회참여에 대해
대학생이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지금 현실을 보겠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입합니다. 제 주변에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만 모아도 대구시 신규 공무원 다 채울 정도입니다.
공무원 열풍이 왜 불었습니까. 정부가 일자리는 없는데 사기업 규제를 안하고 공무원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코레일이 신의 직장이면 신의 직장이 안 되도록 만들 수 있는 게 정치입니다. 가령 정규직의 1인당 노동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더 만들어낸다든지,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 망한다고 기업 손만 들어줬습니다. 기업이 망한다구요? 공무원 늘리면 망하지 않습니까? 현재 국가부채는 어마어마하게 상승하고, 공무원 연금 역시 적자에 허덕입니다. 현재 공무원 연금법 개혁이 논의되고 있고, 머지않아 공무원이 현재만큼 혜택을 못 받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은 청년층을 무시합니다. 청년 고용률이 40.4%입니다. 10명 중 6명은 취직을 못했다는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눈을 낮추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교육받은 수준 이하로 여겨지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대기업 정규직의 혜택을 줄이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개선시키려는 직업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 청년층의 정치 참여를 많이 하면 정치권은 압박을 받을 테죠.
6. 마치며
국정원 사태, 밀양 송전탑, 철도 파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층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각 사안에 대해 국민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사회에 발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글과 일련의 대자보들은 20대 X새끼론이 아니라 더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촉구하는 글입니다.
박 군이 보수적인 성향의 대학생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준 것,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도 박군의 말처럼 소위 ‘깨어있는 대학생’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대학생을 ‘일베1충’이고 ‘국정원 알바’로 모는 현실이 가혹하다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세상이 돼야겠지요. 박 군의 지난 대자보처럼 정확한 팩트가 아닌 말을 해도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 세상. 제가 박군의 대자보 옆에 이걸 붙여도 박 군의 대자보를 떼지 않는 세상. 반박 재반박을 통해 서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세상. 부디, 함께, 대학생이 보수적이어도 욕먹지 않고, 정부 일에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지 않는 세상을 꿈꿔봅시다.
하지만 저는 박 군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제가 보고 있는 현실은 일베로 낙인찍는 현실보다 종북세력이 아닌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만드는 현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권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만들거나, 정권에서 잘라내기 바쁩니다. 실제로 피부에 와닿을 삶의 정치는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박 군은 어떤 현실이 더 안녕하지 못하십니까?
- 경북대 사회학과 2월 졸업생 06학번 조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