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1216081110029&RIGHT_REPLY=R5 공공기관 정문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보통 깃대 세 개가 서 있다. 가운데에는 태극기가 걸린다. 왼쪽 깃대는 해당 공공기관 깃발 자리다. 오른쪽에는, 녹색 바탕에 노란색 동그라미, 그 안에 녹색 새싹이 그려진 깃발이 걸리곤 한다. 새마을 깃발이다.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다 보면, 로터리나 교차로 등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사람 키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큰 바위에는 큼지막한 검은 글씨로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르게살기 운동협의회라는 단체가 세운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같은 이념 이슈가 터질 때면 이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길거리에 부쩍 늘어난다. '간첩 품은 종북정당 통합진보당 해체하라' 유의 격한 문구를, 정치에 관심 없는 시민이라도 한 번쯤은 보게 된다. 누가 걸었는지 이름을 살펴보면, '자유총연맹 ○○구 지회'라고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거의 알아채지도 못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면 이들의 활동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새마을 단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이 셋을 3대 관변단체라고 부른다. 새마을 관련 단체는 지역지회·지도자회·부녀회 등 종류가 다양한데, 보통 한데 묶어 새마을 단체로 본다(단, 새마을문고는 성격이 달라 예외다).
2000년에 제정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따라, 사회단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이 기초 지자체 지원비다. 기초 단위로부터 받는 돈은 전체 규모가 잘 잡히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관변단체의 특성상 풀뿌리 조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초 단위에서 받는 돈이 조직력의 근간을 이룬다.
3대 관변단체가 전체 보조금 3분의 1 가져가
< 표 > 를 보자.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3대 관변단체의 보조금 싹쓸이다. 서울시의 경우, 3대 단체의 보조금을 합하면 서울시의 25개 구가 지급한 보조금 총액 중 33.4%에 달한다. 보조금 신청 단체는 구청별로 평균 59.3곳에 이르는데, 이 중 5%에 불과한 3대 관변단체가 전체 보조금의 3분의 1을 가져간다.
자료를 내지 않은 부산시를 제외하면, 3대 관변단체 지원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시였다. 세 단체가 지원금의 36.4%를 가져갔다. 가장 낮은 곳은 경기도로, 20.9%였다.
왜 이런 불균형이 생길까. 3대 관변단체는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다. 새마을 단체 지원법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에 생겼다. 쿠데타로 집권해 정통성 위기를 겪던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 브랜드인 새마을을 가져와서 풀뿌리 단위까지 뻗어가는 관변조직 만들기에 활용했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신군부 산하 사회정화위원회를 모체로 한다. 노태우 정권 역시 풀뿌리 관변조직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권 2년차인 1989년에 사회정화위원회를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재편하고, 1991년에는 새마을 지원법을 본떠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법을 만든다.
자유총연맹은 이승만 정권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반공연맹을 계승했다. 3대 단체 중에서도 이념 지향성이 뚜렷하다. 역시 지원법이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생겼다.
특정 관변단체에 국가가 법까지 만들어 지원을 몰아준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2000년에는 사회단체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한다. 일반법이 생겼으니 특정 단체 지원법은 폐기 절차를 밟는 것이 순서로 보이지만, 3대 관변단체 지원법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
18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법' 폐지 관련 쟁점 분석을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한 바 있다. 입법조사처 분석 결과를 보면, 이 법은 세 차례나 폐지안이 국회에 올라왔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없던 일이 된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했던 17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풀뿌리 조직을 갖춘 거대 관변단체를 자극하는 것은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에게는 금기다.
입법조사처는 핵심 쟁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해당 조직 설립 20년이 지나면서 조직 규모가 방대해지고 조직원도 증가함. 폐지를 시도할 때 관련 이익집단의 저항이 예상됨."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정권 보위 관변조직으로 출발한 이들 단체는, 수십 년 세월을 버텨오면서 덩치를 불리고 풀뿌리 조직력을 키워 압력단체로 진화했다. 전체 사회단체의 5%에 불과한 3대 단체가 보조금의 3분의 1을 싹쓸이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 이것이다.
관변단체 감시활동을 펼쳐온 서울시민연대 전상봉 대표는 "3대 관변단체에 특혜를 주는 개별 법안을 폐지하고 일반법에 따라 지원을 해주는 것이 근본 대안이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제2의 새마을운동을 주창하는 상황 등을 볼 때, 새마을 단체 등에 대한 목적을 새롭게 정리하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3대 관변단체 외에 눈에 띄는 사회단체로는, 노인회 등 노인 단체 계열, 체육회 등 생활체육 계열, 재향군인회 등 군 계열이 있었다. 특히 군 계열 단체 중에는, 각종 집회 현장에서 우파 측에 서서 '전투력'을 과시하는 특수임무수행자회와 고엽제전우회가 서울시 대부분의 구청으로부터 매년 1000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엽제전우회 24곳, 특수임무수행자회 20곳).
둘째, 기초단체 단위로 보면 크지 않은 액수라도, 전국 단위로 모아보면 보조금 액수가 상당하다. 부산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 산하 기초단체에서 지급된 보조금을 합하면, 올해 새마을 단체에 지급된 보조금은 155억원에 달한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76억원, 자유총연맹은 47억원을 받았다.
이번 기초단체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이 숫자는 사실상 가려져 있었다. 안전행정부나 광역 지자체 등 '덩치 크고 눈에 잘 띄는' 단위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은, 전체 사회단체 보조금을 합쳐도 10억원 단위를 넘기지 않았다. 정색하고 문제를 삼기에는 모호한 액수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기초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은, 개별 단위로 보면 보통 몇 천만원에서 많아야 1억원 안팎이지만, 전국적으로 합해보니 100억원대까지 훌쩍 뛰어올랐다. 기초 지자체에서 3대 관변단체가 받는 돈만 280억원(부산 제외)에 이른다. 그야말로 단위가 달라진다.
이 돈은 3대 단체가 풀뿌리 조직력을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이들 단체는 기초 단위까지 상근 인력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조직을 자랑한다. 정당이 기초 단위의 지구당을 운영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현실에서, 사실상 가장 강력한 풀뿌리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두 정권의 손발은 여전히 살아남아 덩치를 한껏 불렸다.
셋째, 3대 관변단체 중에서도, 새마을 단체의 덩치가 단연 크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보다는 두 배, 자유총연맹보다는 세 배가 넘는 보조금을 받는다.
오랫동안 풀뿌리 활동에 몸담아온 정의당 홍준호 구의원(서울 구로구)은 "새마을 단체는 관변단체 중에서도 독특하다"라고 말한다. "새마을은 지역지회, 지도자회, 부녀회 등 조직이 여러 갈래다. 돈을 많이 받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부녀회다. 동네에 뿌리내린 여성 네트워크답게 활동력이 탁월하고 관계가 끈끈하다. 풀뿌리 현장에서 보면, 새마을 부녀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을 정도다."
서울이 124억원인데 경기도가 217억원 지원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제2의 새마을운동'을 들고 나오면서, 새마을 단체와 같은 관변단체의 전성시대가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관변단체를 마치 새누리당의 풀뿌리 조직처럼 보는 것은 다소 과장이라고 본다. "관변단체가 속성상 보수적인 건 맞다. 자유총연맹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이념 조직이고. 그런데 새마을부녀회 같은 생활밀착형 조직에는 7대3이나 8대2 정도로, 부족하나마 야권 성향 사람들도 섞여 있다. 그래서 이런 생활형 관변단체가 직접 정치활동을 하는 건 오히려 조심한다. 대번에 말이 나오니까. 그렇게 하기보다는, 관변단체 활동을 통해 동네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을 파악해서 당 조직이 접촉해 관리하는 식이다."
넷째, 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비슷한 인구를 가진 지자체라 해도, 광역시보다는 도에서 사회단체보조금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즉, 대도시를 벗어날수록 보조금을 퍼주다시피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인구가 거의 비슷하다(서울시 1020만명, 경기도 1200만명). 하지만 사회단체보조금 지출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서울은 124억원, 경기도는 217억원을 쓴다.
인구 250만명인 대구는 사회단체보조금 33억원을 쓰는 반면, 인구 274만명인 경북은 100억원을 쓴다. 인구와 정치 성향은 큰 차이가 없는데 지출 차이는 3배다. 광주와 전남의 차이는 더 심하다. 인구 148만명인 광주는 17억원, 인구 190만명인 전남은 93억원을 쓴다. 지출 차이가 5배 이상 난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기초 지자체 단위 세부자료를 살펴보면, 사회단체보조금에 사실상 '정가'가 정해져 있다는 인상까지 받게 된다. 새마을 지역지회는 8000만원 안팎, 바르게살기 지역협의회는 4000만원 안팎, 자유총연맹 지역지회는 2000만~3000만원 하는 식으로 지급이 이루어진다(3대 단체 보조금의 이 비율은 전국 단위 합산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부유한 서울시와 가난한 강원도의 '정가'가 별 차이가 없다. 인구 59만명인 서울 노원구는 올해 새마을 노원지회에 8200만원을 지급했다. 강원도 정선군은 새마을 정선지회에 6200만원을 지급했는데, 정선군 인구는 4만명이다.
엄밀한 심사 없이 4년 내내 같은 금액 줘
이렇게 지급이 이루어지면, 인구보다는 기초단체의 숫자가 지급액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된다. 인구가 성긴 농촌 지역 지자체의 지출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가난한 지자체가 추가 부담을 지게 된다.
사회단체보조금은 매년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심사해 지급액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전국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제대로 된 심사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4년치 데이터를 비교해보아도, 액수가 일정한 경향이 있다. 강원도 정선군은 4년 내내 새마을지회에 6200만원을 주었다.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4년 동안 한 번이라도 지급액이 달라지는 지자체가 오히려 소수다.
최재천 의원은 "한 기초단체에서 몇 천만원씩 나가는 돈이 크지 않아 보여도, 전국 단위로 모아보니 매년 수백억원대 지원금이 3대 관변단체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정부·지자체·감사원은 이들 단체의 지원금 심사를 내실 있게 하고, 활동 내역을 면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