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팔전투에서 15군 예하병력 9만2천명을 단 1만 2천명만 남기고 전멸시킨 그분
그의 업적을 논해보자.
임팔전투당시 일본군은 보급이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무다구치 렌야의 보급방법.
가축으로 물자를 나르고 나중에 잡아먹어라!
-20세기에 등장한 중세시대 유목민족전술!
하지만 문제는 식량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탄약, 무기, 말라리아을 막을 의약품이 부족했고 무다구치 렌야는 이렇게 말한다.
적의 것을 노획하라!
말은 좋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 적의 것을 노획하는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적의 보급부대를 치던지 아니면 적보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적을 몰아붙여
패배한 적의 물자를 노획하는게 정상.
그리고 강한군대는 약한군대의 물자를 취하는게 병법이긴 한데 기본적으로는
식량이나 무기는 처음부터 보급을 해주는게 기본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장비도 병력도 딸리는데 적 진지를 점령하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적의 물자를 노획하러 간 병사들은 학살당한다.
가축을 이용한 보급은 더 큰 문제에 직면한다.
소나 말의 등에 짐을 져서 나르게 되면
'걸어간다.'
참고로 일반적인 보병의 행군속도는 시간당 4km정도였으나 가축은 더 느렸고
이는 정글을 정찰한 연합군의 정찰기에 의해 자주 발견되었다.
무야구치렌야의 유목민족 보급전술은 느리디 느린 가축때문에 폭격의 대상이 되어
식량이 될 가축들은 철저 하게 폭격을 당하고 가축이 들고다니던 장비까지 싸그리 전멸한다.
더웃기는거는 이 가축들이 '장거리를 이동하는' 품종이 아닌데다가
무거운 군수품을 짊어지고 게다가 먹이도 안주니... 길가다 쓰러져 죽는게 더 많았다.
게다가 군마란건 원래 소음적응훈련이 되야하는데 포격이 떨어질때마다 도망간놈만 부지기수.....
가령 소 125마리를 보낸적이 있는데 도착한건 5마리이런식이었다.
이렇게 부하병사들이 개죽음 당할때 무다구치 렌야는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그는 항상 오후 5시에 일과를 마쳤다...
부하병사들은 전장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을때
그는 오후 5시에 퇴근 항시 기생집에서 기생끼고 술처먹고 놀았다.
게다가 전선에서 밀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앉아있었다.
덕분에 각종 결재가 막혀서 행정상의 문제가 발생해 큰 혼란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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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무다구치 렌야가 맡은 임팔전투는 철저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무다구치 렌야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보급과 물량인데 이미 보급도 끊어지고 병사들 대다수가
'굶어'죽거나 정글우림에서 '병들어'죽는 이와중에...
일본군이 받는 유일한 보급은 연합군이 잘못투하한
보급품이 숲에 떨어진걸 노획하는것이다.
일본군은 이를 '처칠의 급여'라고 불렀다.
연합군의 주력은 영국군이었으니까...
이정도면 사실상 여기서 퇴각을 해야한다.
병사들은 크게 다치고 죽고 굶주리고 탄약은 없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이 불렀던 노래다.
1절: 낮에는 비행기 밤에는 박격포,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 아래로
오늘도 나가는가 육탄공격대, 나라 위한 일이지만 아아 코히마
2절: 비내리는 아라칸을 한정도 없이, 어깨에 들것메고 방황하지만
주린 창자 메워줄 보급은 없어, 오늘도 끼니찾아 이동이라네
(후렴구) 이거 정말 고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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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투는 철저하게 패배하고 투입한 병력 9만2천명은 겨우 1만2천밖에 남지않는다.
이노래를 들은 당시 제 31사단장 가마구치중장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다.
참고로 가마구치 중장은 멍청이들로 가득찼던 일본군 수뇌부중에서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었던 장군이었다.
당시 임팔전선에 투입된 가마구치 중장은 공격명령만 내리지
보급품 쌀한톨보내지 않는 상부를 질책한다.
그것도 대놓고 욕을 하는데 어찌나 욕을 하는지 무타구치 렌야의 참모들이 찾아갔는데
하도 길길이 날뛰는 바람이 찍소리도 못했다.
이때 무타구치 렌야의 참모들에게 했던 가마구치 중장의 대사.
"너희들은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왔느냐! 우리들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야.
바로 너희들 제15군이란 말이다!"
가마구치 중장의 항명과 동시에 가마구치 중장의 31사단은 퇴각을 개시했고.
임팔전투에서 1만2천명이라도 건진건 이 가마구치 중장 덕분이었다.
그런데 더웃기는것은 무다구치 렌야 그 자신도 패배한건 인정했으나
'체면상' 퇴각하자는 말은 못하고 버벅거린것이였다.
아무튼 가마구치 중장이 퇴각지에 도착해자 무다구치 렌야는
'할복해라' 라고 단도 던져주고 숨어버렸는데.
가마구치중장이 '내가 이 단도로 무다구치 렌야를 죽여버리겠다' 라고 그걸 들고 가 버렸다.
임팔 작전으로 9만 2천명의 병사를 전투도
제대로 하지 않고 1만 3천명으로 줄여버린 팀킬에
성공한 무타구치 렌야는
"ㅆㅍ 책임감 느낀다. 콱 자결 버릴까?"라는 상투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수석부관이
"아무도 없는데서 하십시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패전의 책임같으면 장군님이 할복하고도 남습니다"
이라며 조용히 권총을 내밀자 째려보고는 살아갈 의지를 곧추 세웠다.
여튼간에 전쟁은 끝났다...
도조 히데키등 사형을 당하는데 이 무다구치 렌야는 가관이었다.
무다구치 렌야는 임팔전투에서 연합군을 도운공이
인정되어 전범재판에도 불려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후에... 임팔전투 병사 유가족앞에서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땡깡부리다가
임팔전투당시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리고 죽고나서 장례식을 치를때 유언으로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팜플렛을 뿌리고 다녔다.
여담인데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일본 우익조차 무다구치 렌야는 절대 쉴드를 쳐주지 않는다.
아무튼 이 인간덕분에 동남아에서 일본군은 패전했고 덕분에 한국의 독립에
크게 기여를 했다.
자료출처- 역사관련 네이버카페. 각종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