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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461805
    작성자 : GoToTheArmy
    추천 : 17
    조회수 : 920
    IP : 39.115.***.33
    댓글 : 26개
    등록시간 : 2013/12/14 10:14:31
    http://todayhumor.com/?sisa_461805 모바일
    중앙대 대자보
     안녕하세요. 
    저는 독어독문학과 미디어 콘텐츠를 전공 중인 학생입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레포트와 발표, 학과 콜로키움이 겹쳐 공부가 쉽지 않습니다. 
    힘들고 지쳐 한 눈을 팔고자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SNS를 봐도, 신문을 봐도, TV를 봐도, 심지어 교정을 거닐어도 온통 힘든 이야기뿐입니다.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 때문인지 세상 분위기도 더 쌀쌀해 진 것 같습니다. 가깝게는 학교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이 난항을 겪고 있고, 멀게는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직위해제를 당해 손발이 잘려나갔습니다. 
    제 코가 석자에 힘없는 학생이라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저 역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것도 할 용기가 없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책상 앞에 앉아 쓰고 있는 레포트의 내용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과, 몰상식한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겨있었습니다. 
    도대체 저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배워서 남 주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껏 제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전공을 불문하고 "배워서 남 주자"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경제학은 한정된 재화를 두고 최대 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를 합니다. 
    공학은 기계 장치 등을 연구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합니다. 
    과연 대학의 어느 과에서 남을 위하지 않는 학문을 가르칠까요. 배워서 남 주지 않고 나만 위하는 것이 학문일까요. 

     그것은 오히려 기술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문을 배우는 것입니까, 기술을 배우는 것입니까. 
    인문학을 통해 배운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는 배운대로 주변에 있는 학생들과 청소 노동자 어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응원을 보내려 합니다. 우리는 남은 일주일 동안 16주에 걸쳐 배운 내용들을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ABC로 지식의 높낮이가 정해진다고 해서 내용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장은 시험에서 좋은 결과 얻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배워서 무얼 할까"라는 고민이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당장 함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고민과 관심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떤가요?

    독어독문 08학번 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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