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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6161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23
    조회수 : 2487
    IP : 223.62.***.21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3/04/22 22:31:54
    http://todayhumor.com/?panic_46161 모바일
    명작 다시보기 -아르바이트2- 스압
    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혹시나해서 ㅎㅎ

    도착한 곳은, 평범한 주택이었는데, 마당 뒷쪽에 토리이*가 세워져 있었고, 그 뒤쪽으로 돌계단이 쭉 놓여 있는것이 보였다.
    *주: 토리이(鳥居) - 신사 입구에 세운 두 기둥의 문
     
     
     

     

    아저씨를 따라서 집의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평범한 여자였지만, 눈 사이의 큰 점이 인상적이었다.
     
     
     

     

    집 안은 부엌이나 방이 없었고, 다다미 바닥이 깔린 커다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 위에 스님이 한명, 중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한명, 노인이 한명 앉아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마자, 중년 남자가 "재앙..." 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스님앞에 나란히 앉았고, 방 안에 있던 세명도 우리 앞에 나란히 앉았다.
     
     
     

     

    "그곳에 간 것은 이놈이오?" 노인이 B를 가르키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올라간건 ㅇㅇ(내 이름)이고, 그놈은 밑에서 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스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동안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생각 하더니, B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전에도 한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B가 힘없이 대답했다.
     
     

     

    "이상하네..." 스님은 탄식과 함께 말을 흐렸다.
     
     

     

    "... 저는..." B는 울음을 참는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물었다.
     
     

     

    "... 죽는겁니까...?" B의 몸은 가늘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스님이 깊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렇겠죠... 이대로라면... 확실히"
     
     
     

     

    B는 영혼이 빠져 나간듯이 더 이상 떨지도 않고 바닥의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님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가는것도 당연합니다. 당신은 그곳에 갔을때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이번엔 나에게 물었다.
     
     
     

     

    "무언가를 긁는 소리 가 들렸습니다. 이상한 숨소리 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는 부적이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떼었다.
     
     
     

     

    "아마도 당신'사람이 아닌것' 의 존재를 로 느꼈고 B군 으로 느낀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본래대로라면 '그것'은 사람에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고, 정말 조용히, 몰래 숨어 있는것 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끔씩 이렇게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스님은 세상이 끝난것 같은 분위기의 우리를 한번 슥 쳐다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지금 이안에서는 B군에게도 그것들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결계를 쳐 놓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것들은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수도 없는 일이니, 별당으로 가서 그것들을 떼어내는 의식 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따라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셋 다 잘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스님이 말했다.
     
     
     

     

    "의식을 치르는 동안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들을 꼭 살려 줄테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우리는 몸이 떨려서 인지, 그 말에 위안을 얻어서 인지, 이상한 박자로 목을 끄덕였다.
     
     
     

     

    후들거리는 다리... 아니, 온 몸을 짊어지고 겨우 한발짝씩 돌계단을 끝까지 오르자, 큰 절이 보였다.
    하지만 그 절로 들어가지는 않고, 절을 끼고 산 속으로만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 걸어가자 토리이가 하나 더 나왔고, 또 돌계단이 만들어 져 있었다.
     
     
     

     

    "B군, 지금 그것들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토리이 밑을 지나면서 스님이 B에게 물었다.
     
     
     

     

    "두 다리로 서서... 계속... 이쪽을 쳐다보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 B가 떨면서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돌계단의 끝까지 다 오르고 나자, 낡고 조그만 별당이 있었다.
    스님은 그 별당 앞에서 우리를 불렀고, 우리 셋은 스님앞에 나란히 섰다.
     
     
     

     

    스님이 의식에 관한 설명을 시작 했는데, 정리를 하자면
    이 안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
    이 안에서는 빛이 없어야 할 것.
    이 안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 할 것.
    이 안에서는 먹어서도, 마셔서도, 잠을 청해서도 안 될것.
    용변은 이 포대기 속에다 해결할 것.
    이라며, 쌀포대기 같은것을 건네 주었다.
    물론 휴대폰이나 라이터빛을 내는 물건들은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대나무로 만든 수통에 들어있는 물을 한모금씩 마시게 하고, 남은 물은 우리의 몸에 조금씩 뿌렸다.
     
     
     


    그리고는 별당의 문을 열어 우리에게 들어가도록 손짓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별당에 발을 들였던 B가 한발짝 들여 놓자 마자 갑자기 입을 감싸고 밖으로 튀어 나와서는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스님이 몹시 당황하는것이 눈에 보였다.
     
     
     


    방금 천수로 몸과 속을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별당의 결계에 걸리는지 모르겠다며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옆의 노인들과 뭔가 급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후 스님은 B에게 다가가서, 혹시 그 곳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헛구역질이 멈추질 않아 괴로워 하는 B를 대신해서 내가 대답했다.
     
     
     


    "급료요, 급료밖에 가지고 온건 없는데..." 라고 하며 바지 주머니에 꼬불쳐 넣어 두었던 돈봉투를 내었고, 뒤따라 A가 자신의 것과 B의 호주머니 속에서 B의것까지 찾아서 내밀었다.
     
     
     

    돈봉투 속을 찾아봐도 별다른건 없었다.
    하지만, 뒤지다 보니 아주머니가 건네주었던 작은 주머니 떠올랐고, 아주머니가 손수 천으로 만들어준 주머니 세개를 찾아내서 스님에게 건넸다.
     
     
     

     

    "이...이건..."
     
     
     


    주머니 속을 들여다 본 스님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못볼걸 본 표정을 지으면서 주머니의 속이 보이도록 우리에게도 보여주었다.
     
     
     
     
     
     
     
     
     
     

     

     

     

     

     

     

     

    손톱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내 무릎의 상처에 박혀있던 그 손톱과 똑같은 붉은색과 때가낀 흰색의 낯익은 손톱...
     
     


    그걸 본 B는 또다시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A와 나도 더이상은 참지못하고 구역질을 해 버렸다.
     
     
     


    그것을 보고있던 스님도 눈쌀을 찌푸릴 정도로 심한 광경이었다.
     
     
     


    한참을 토악질과 헛구역질을 하다가, 겨우 진정이 되었을때, 우리는 자신의 휴대폰과 지갑을 스님에게 맡기고, 별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 문을 열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저희는 모두 본당에 있을것입니다. 내일 아침까지 누구도 이곳에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스님은 별당의 문을 닫기전에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벽 너머의 것과 대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별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도 절대로 안됩니다."
    스님은 뱃속에 든것을 다 비우고, 창백한 얼굴로 있는대로 겁에 질려있는 우리를 약간 못 미더운듯이 쳐다보면서 마지막 당부를 했다.
     
     
     

     

    "방금 말한 이것들을 지켜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별당의 안쪽은 약간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까지 뜬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생각
    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별당의 건물 자체는 꽤 낡았고, 벽에는 곳곳에 틈이 생겨 있어서, 우리가 있는 깜깜한 공간 속으로 간간히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에 의지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사람과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서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 이었다.
     
    괜찮다 라는 의미를 싣고 A와 B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았고, 그 둘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는 횟수도 점점 줄었고, 급기야는 서로 다른쪽 방향으로 돌아
    앉아 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함께, 앞으로 얼마정도 시간이 남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우리
    는 그냥 멍 하니 새카만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사방이 하얀색의 방에 사람을 가둬두면 한달만에 미쳐버린다 는 말이 떠올랐다.
    이 방 안이라면, 일주일, 아니 이틀만 있어도 미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어제부터 미치지 않도록 정신줄을 꽉 잡고 있었다.
    1억 2000만 일본인들 중에 미치지 않도록 이렇게 노력 해 본 사람은 나 말고도 몇 명이 있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꽤 시간이 많이 흐른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걸 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갑자기 A가 있는 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짓을 하는건지, 허튼짓을 하는 것이면 그만두게 하려고 A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보앗다.
    A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와 펜 우리에게 보였다.
     
     
    A는 스님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어 온 것 같았다.
    종이는, 우연히 주머니에 들어있던 껌에서 벗겨낸 껌종이였다.
     
     
    이놈이 뭐하는 짓일까
    한순간 그렇게 생각 하였지만, 우리는 서로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극한까지 겁을 먹은 분위기에서,
    그것을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차라리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종이와 펜 본 순간 굉장히 마음이 편해 졌다.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서 A는 먼저 자신이 무엇인가를 써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모두들... 괜찮아?'
     
     
    다음으로 내가 펜을 받았고, 나는 최대한 공간이 많이 남도록 글씨를 작게 해서 썻다.
     
     
    '나는 아직까진 괜찮아. B는?'
    B에게 펜과 종이를 건넷다.
     
     
    '나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들리지도 않아.'
     
     
    종이와 펜은 다시 A에게 돌아갔고, A는 그 위에 썻다.
     
    '껌은 4개 남음. 은박까지 종이는 8장. 밤이 되면 이야기를 못하니, 지금 하기.'
     
    까지 쓰고는 펜과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몇시쯤일까?'
     
    B는 한참 펜을 이마에 대고 생각하더니, '네시 다섯시쯤?' 이라고 썼다.
     
    '우리 여기 들어올때가 한시쯤 이었어.'
     
     
    '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스다보니, 첫 번째 껌종이가 빽빽이 차 버렸다.
     
     
     
    두 번째 종이를 앞에 놓고는, 아무도 펜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정작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려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져서 빛이 없어지기 전에 둘에게 꼭 해야 할 말을 적었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잘 해보자.'
     
     
    "응"

     

    펜을 B에게 넘기자 B가 자신없는듯한 필체로 대충 대답했다.
     
     
    'A는 나 비명 지르면 어저지?' 라며 농담가지 하는 걸 보니 조금 여유를 찾은것 같았다.
     
     
    나는 '입에 양말이라도 쑤셔 넣어 둬라.' 라고 쓰고는, 아까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 섯다.
     
     
    '절대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자.'
     
     
    A와 B는 그 글을 읽고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런 둘을 보고, 내가 지금 무슨말을 해 버린건지 깨달았다.
    겨우 잊고 있었던 불안감에 다시 휩쌓이게 해 버렸다.
     

    스님은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길거라는 암시와 함께 그것에 대한 충고까지 해 주었다.
     

    우리는 시간이 일초라도 빨리 흘렀으면 하는 생각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밤이 오는게 죽을만큼
    무서웠다.
     
     

    밤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있는것도, 정신줄을 놓아 버릴만큼 무서웠다.
    유일하게 다행인게, 지금은 서로가 그곳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점.
     

    나는 내가 쓴 한마디 때문에 무거워진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글을 계속 썻다.
     
     

    '무슨 말좀 해. 시간아까워.'
     
     

    라고 쓰곤 A에게 펜과 종이를 떠넘겼다.
    맞다. 나는 A에게 책임 전가하고 도망친 것이다.
    A는 머뭇거리면서도, 뭔가를 적었다.
     
     

    '집에 가면 뭘 할까.'

    그걸 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네. 난 우선 비디오가게.'
     

    그걸 본 B가 펜을 집었다.
    '왜?'
     

    'DVD 반납하는거 잊고 있었어.'
     

    '넌 집에가면 또 지옥이구나.'A가 썼다.
     
     
     
    거짓말이었다.
    DVD따위 빌리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한 거짓말 이었다.
    결과적으로 분위기는 좋아졌고, 우리는 한참을 돌아가면 무엇을 할것인지 농담섞어서 이야기 했다.

    벽의 틈새로 비춰 오는 빛의 색깔이 붉어지고, 종이도 은박지 한 장밖에 남지 않았을 때, B가 펜을
    들었고, 무언가를 써써 우리쪽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스님이 말한건 꼭 지킬거야. 죽고 싶지 않아.'
     
     
    나도 A도 B의 마지막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이렇게 애절하게 한 사람을 눈 앞에서 보는건 처음이었다.
    A도 나와 같겠지.
     

    우리는 죽는다는 생각따윈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곧 경험할 거란 생각따위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걸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서 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그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나는 B의 눈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는 종이도 떨어져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고독감은 느끼지 못했다.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우리는 점점 해가 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매우 시끄러웠다.
    산 속인데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 스파트를 올리는 듯이 울어제꼇다.
    하지만 별당에 들어왔을때부터 몇시간 동안이나 듣고 있자, 귀가 적응이 되어서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이 위화감은 뭘까.
    귀를 기울이면 매미 울음소리에 섞여서 다른소리 들리는 것 같았다.
     
     
    뭘 들은것도 아닌데 온 몸이 경직되는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느꼈다.
    숨소리 였다.
     
     

    B쪽을 보았다.
    이미 약간 어두워 져 버려서 인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B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B에게 들리지 않는것일까?
    그러고 보니, B가 숨소리에 대해 말한적이 있던가?
    혹시 숨소리는 들었던 적이 없을까?
    아님 지금 못 듣고 있는것 뿐일까?
     
     

    머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내가 몸이 경직되어서 이상한 분위기를 내보이자 B가 그것을 느낀 것 같았다.
    B는 약간 심할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더니 B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 졌다.
    내 어깨너머의 벽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B가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것은
    알 수가 있었다.
     
     

    A도 B의 그런 행동에 눈치채고 B가 바라보고 있는 내 뒤쪽 벽을 쳐다보았지만, A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서 차마 뒤돌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숨소리는 귀에 들어왔다.
    그것이 내가 기대고 앉아있던 벽의 바로 뒤에서 부터 들려왔고, 그것과 나 사이에 그 얇은 나무 벽
    한 장밖에 없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목에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그 끔찍한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후우...훅...후우욱...훅...훅...후욱...후욱...

    당분간 경직 상태가 계속 되고, 이번은 우리들이 있는 별당 주위를, 질~질~  무엇인가  질질 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A는 이 소리가 들렸는지, 갑자기 나의 팔을 잡았다.

    소리는, 별당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 점차 호흡음이 히익~!'히엑~! 하는 무엇인지 정체 모를 소리를 내고있었다.

    나에게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지만, 그것이 천천히 별당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느낄수 있었다.

    A의 팔로부터 심장의 두근거림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B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지만, 아마도 굳어져 있었을 것이다.

    전원 미동조차 못하고 앉아 있기만 할뿐이었다.

    나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었다.

    부탁이니 사라져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작 몇분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별당안은 깜깜하고, 거의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태였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의 그 소리는, 사라졌다.

    공포의 해일이 지나갔는지, 그렇지 않으면 아직 주위에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퍼지는 깊은 어둠이, 또다른 공포를 데려 왔다.

    집중해 보아도 아무것도 안보인다.

    "있어?"

    "괜찮아?"

    하고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단지 A가 계속 나의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을 느낄수만 있을뿐...

    나는 이때 B가 엄청나게 걱정되었다.

    B는 확실히 뭔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B를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팔을 잡고있는 A의 손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A를 데이고 B가 있던 쪽으로 살금 살금 걸어갔다.

    될 수 있는한 소리가 나지 않게, 그리고 A가 놀라지 않게...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패닉상태가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을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왼손에 A의 팔을 쥔채로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좌우를 천천히 저으며 나아갔다.

    그러자 손가락 끝이 갑자기 단단한것에 닿는순간 심장이 하고  두근거렸다.

    손에 닿은 그것은 감촉으로 보아 벽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상하다... B가 있던곳으로 왔는데 B가 없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한번더 다른 쪽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나 머지않아 또 벽에 닿았다.

    어찌할바를 몰라 울고만 싶었다.

    "B어디야?"  이 한마디를 몇번이나 삼켰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그 자리에 내내 서 있던 채로 A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그러자, 이번은 A가 나의 팔을 잡아, 살금살금 걷기 시작했다.

    우선, A는 벽 옆까지 가면, 잡은 나의 팔을 벽에 손대게 했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벽쪽으로 붙어서 이동해, 모퉁이에 도착하면 진로를 바꾸어 또 벽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천천히 가던중, 앞서걷던 A가 탁 멈추었다. 그리고, 나의 팔을 쭉 당겨서, 무엇인가 따뜻한 것을 만지게 했다.

    그것은, 조금씩 떨리는 사람의 감촉이었다.

    B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곧,(이것이 정말로 B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바꿔 생각하면 A도 그렇다. 헐씬 가까이에 있었지만, 정말 나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은 A인가?

    나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완전하게 두려움과 의심의 늪에 빠져 있었다.

    내가 아무행동 없이 있자, A는 또 나의 팔을 잡아, 슬금슬금 걷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따라 갔다. 그러자, 아주 근소하지만, 시야에 빛이 보이게 되었다.. 신기하게 여기고 있노라니,

    방에 있는 틈새로 약간의 달빛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A는 그곳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가려 했던거라고 생각했다.

    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어두운 곳에 눈이 익숙해진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었지만,

    공포때문에 보이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정말 깜깜했다.

    어쨋든, 그 때 나는 그 빛을 보고 마음속으로 부터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A한테 감사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A가 "나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어. 무언가 질질 끄는 소리는 들린것같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너희들보다는 여유가 있었는지도..."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녀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빛의 아래로 오니, A의 반대쪽 손에 B의 팔이 잡혀 있는게 보였다..

    달빛으로 보인 B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무엇이 있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밤은 낮과 달리, 몹시 조용하고, 먼 곳에서 방울 벌레가 울고 있었다.

    우리들은 당분간 거기서 가만히 있었다. 부끄럽지만, 3명이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정확히는 원을 그리며 둘러 앉았다.

    그 형태가 가장 안심할수 있는 형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록 얼마 안되는 빛이지만, 상대의 모습이 거기서 확인 가능한것만으로 딴 세상같이 느껴졌다...

    당분간 그러고 앉아있는데... 드디어 예상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A에게 생리현상 신호가 찾아오고, A는 스님이 마련해준 봉투를 사용해서 일을 보려고 우리와 조금 떨어졌다..

    그순간... 별당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B군. B군, 주먹밥 만들어 왔어!"

    미사키(주인집 딸)의 목소리였다. 스님은 오늘 여기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목소리가 사람이 아닌 그것 임을 알수 있었고 그냥 스님이 시킨대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자 미사키의 목소리가 아닌 주인아주머니 목소리로

    "어서오십시오" 

     

    다시 미사키 목소리로..

     

    "B군.B군 주먹밥 만들어 왔어"

     

    "어서오십시오" 

     

    목소리를 계속 바꿔가며 몇번이고 계속 반복을 한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은 몇시나 되었을까?"

    갑자기 반복되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냥 간 것일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한동안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순간...

     

     

     

     

     

     

     

     

    쿵!!!!!!!!!!!!!!!!!!!!!!!!!!!!!!!!!!!!!!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녀석이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별당 벽을 들이받고 있었다. 우리는 두려움에 가득차서 A의 손을 잡고 별당 중앙으로 가서 둘러 앉았다.

     

     

    쿵!!!!!!!!!!!!!!!!!!!!!!!!!!!!!!!!!!!

     

     

     

     

    후우...훅...후우욱...훅...훅...후욱...후욱...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후우...훅...후우욱...

     

     

     

     

    히엑.. 흐으에에에엑!!!

     

     

     

     

    콰앙!!!!!!!!!!!!!!!!!!!!!!!!!!!!!!!!!!!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것같이 무서웠다.. 계속 저소리를 듣다가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것 같았다. 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눈과 귀를 꼭

    막은채로 얼마동안 엎드려있었는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별당 벽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벽을 들이받던 소리는 잠잠해지고...

    그 무언가는 우리를 찾지 못했는지 사라져 가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석이 멀어져 가면서 분해서 내는 소리인지 약간 쇳소리

    섞인 새울음소리같이   키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악!! 

    소리를 연발하면서 사라져갔다... 소리가 차츰 작아지다가 아예 안들리게 되었지만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맞추는 것은 일절 없었다...

    그렇게 밤이 길다고 생각한 것은 태어나고 처음이었다. 

     

     

     

    "모두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의 목소리에 잠이 깻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죽은듯이 잠이 들었었다.
     
     
    대충 세루를 하고난 우리 셋은 스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어제는 정말 잘 해 줬습니다. '그것'은 무사히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라며 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대고 묻고싶은 말이 산더미같이 많았지만, 잠에서 덜 깬 머리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연산이 힘들었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스님이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러분께는 모든것을 다 말해 줘야 겠군요. 보여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라고는 일어났다.
     
     
    스님은 집 밖으로 나오더니 절쪽으로 향했다.
    돌계단을 오를때에 B는 어제의 기억때문인지 주위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B를 보고 우리까지도 어제의 '그것'의 모습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스님이 물었다.
     
     
    "이젠 괜찮죠?"
     
     
    "네...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B와 나는 동시에 대답했고, 스님은 그 대답을 듣고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별당으로 올라갈때와 내려올때 보았던 그 큰 절에 도착하고, 우리가 말하는 '본당'은 사실 저 집이 아니라
    이 절의 건물이라고 스님이 가르쳐 주었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다다미방이 있었고, 스님은 그곳에 우리를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고 했다.
     
     
    스님이 우리가 있는곳에서 나가버리자, B가 갑자기 불안해 졌는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스님이 돌아왔고, 한손에는 필통만한 나무상자 들고 있었다.
     
     
    "이번 일의 발단을 보여 드리겠습니다."우리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말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 앞에 앉아서는 그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손가락만한 크기의 말라 비틀어진 문어발 같이 생긴것 하얀 천에 쌓아져 있었다.
    우리는 머리를 한 곳으로 모아서 잘 살펴 보았지만 기억이 날듯 말듯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호감이 가거나, 소중해 보이지는 않는데 왜 이렇게 소중하게 보관 되어 있을까 라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스님의 얼굴을 보았다.
     
     
    "이건 탯줄 입니다." 스님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우리에게 말했다.
     
    탯줄을 눈앞에서 본건 처음이었기에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보고 스님은 말을 계속했다.
     
     
    "요즘엔 많이 줄었지만, 옛날 사람들은 탯줄을 이렇게 소중히 보관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스님의 말을 경청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는 어머니와 이 탯줄로 이어진 한몸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죠? 지금
    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탯줄도장을 만드는등,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
    다. 하지만, 탯줄에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고, 옛날에는 그 전설을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
    다."
     
     
    "전설이요?" B가 물었다.
     
     
    "네, 옛날 사람들은 그런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금은 미신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입니
    다."
     
     
    그렇게 말하고는 한참을 우리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예를 들면 '아이가 무거운 병에 걸렸을때 탯줄을달여서 먹이면 병이 낫는다.' 라는등, 주로
    '아이를 지킨다' 는 의미를 가졌지만 해석은 여러가지 입니다. 하지만 어느것도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생긴 미신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이게 이번일과 무슨 상관일까 싶어서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스님은 약간 미소를 짓는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가지, 이 고장에 전해지는 그런 '미신'을 가르쳐 줄까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고, 스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고장에도 그 탯줄에 전해지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해변을 이용한
    관광지 이지만, 옛날에는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어
    릴적부터 집안일을 도우는데, 특히 아들들은 10살쯤 되면 아버지와 함께 타는것이 보통이
    었다고 합니다."
     
     
    스님도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듯 잠깐씩 생각하고 또 말을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해 주었
    다.
     
    "알다시피 바닷일은 항상 죽음과 맞물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다에 나간 아이가 돌아오는것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제가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어머
    니들은 탯줄을 어떤 부적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약간 뜸을 들이고 말했다.
     
     
    "바다에서 만날 위험에서 지켜주도록. 바다에서 행방을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아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오도록!?"  나는 나도 모르게 스님의 말을 끈어 버렸다.
     
     
    "그렇습니다. 아직 몸이 작고 힘이 없는 아이들은, 큰 파도라도 오면 휩쓸려버리기 일쑤 인데,
    며칠이 지나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사망했다고 판단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고 또 몇년이 지나도 계속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뭔가 말하려는 내 표정을 무시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고는 언제부턴가 탯줄은 '아이가 어머니와 이어져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라는 생명줄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바다에서 몸을 지켜 주도록 하는 의미를 띄었던것이, 막상 위험에 부닥치면 생명줄이라는 의미가 되는것
    이었다.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으로 매일같이 아이들을 배에 태웠을까.
     
     
    "어느날, 그렇게 바다에게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중에 한명이, '아이가 돌아왔다' 며 몹시 기뻐했
    습니다. 사람들은 드디어 그녀가 미쳐버려다고 생각하고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녀가 아이와 남편을 한꺼번에 잃은건 3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곳까지 휩쓸려 갔는데 기적적으로 살아서 그때 돌아온게 아닙니까?" B가 물었다.
     
     
    "그렇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 어머니에게 아들이 돌아왔다면 축하를 해 주고싶으니
    애를 좀 보여달라고 했던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스님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덧붙였다.
     
     
    "그녀는 '조금만 더 있으면 보여줄 수 있으니까 기다려달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보여 줄 수 있으니까' 라는 대답은 조금 어색했다.
    나는 이때 아무 이유도 없이 소름이 돋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 했지만, 항상 슬픔에만 잠겨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밝아지
    니, 더이상 캐묻지 못하고 물러 났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똑같은 이유로 기뻐하는 또 다른 여자
    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아직은 보여줄 수 없으니 좀 더 기다려달라 라고 했다고 합니
    다."
     
     
    눈 사이에 점이 있는 여자가 차를 가져 왔고, 스님은 그 차를 한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마을사람들이 첫번째 여자는 과부이므로 못 물어봤지만, 두번째 여자는 남
    편이 있었기에, 그녀의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 라는 대답밖에 돌아오
    지 않았고, 더 묻자 남의 집안일에 일이히 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던중, 한 마을사
    람이 첫번째 여자가 밤에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고 말했고, 어두워서 잘 보이
    지 않았지만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까지 말을 하자, 마을사람들은 이때까지 의심했던 것을 사과하고 아들이 돌아온걸 진심으로
    해 주기 위해서 그 집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차로 목을 축이고 말했다.
     
     
    "그 여자의 집에 도착하자, 환한 미소를 띈 얼굴로 반겨 주었고, 마을사람들은 오게된 이유를 말
    하고는 고개숙여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이 애가 돌아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 신
    경 쓰지 말라며, 문 뒤에 서 있었을 아들의 손을 끌고 모두에게 보여주었고, 그 순간 마을사람
    모두는 얼어 버렸다고 합니다."
     
     
    "..." 우리는 빨리 결론이 듣고 싶어서 스님의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었다.
     
     
     
     
     
    "퉁퉁 불어 터진 새파란 피부의 아이가 서 있었고, 부어 오른 눈꺼풀 속에 흰자가 겨우 보였고,
    눈동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입에서는 거품같은 것을 뿜어 내고
    있었고, 어머니가 말을 걸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합니다. 듬성듬성 나 있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무서
    웠던 나머지 일제히 도망을 갔습니다."
     
     
    "그날밤, 촌장의 집에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것을 목격 해 버린 충격에, 자신들의
    손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자신이 없어서 한 스님을 찾아갑니다. 그 스님께서 바로 이 절을 세
    우신 큰스님입니다만, 스님은 여자와 '그것'을 보자마자 여자의 손을 잡아 끌고 자신이 있던 절
    까지 데려갔습니다. 그 사이에도 '그것'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뒤를 따라 왔다고 합니다."
     
     
    "절에 도착해서는 우선 강한 결계를 친 방에 여자를 넣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만, 억지로 아이
    와 떨어진 어머니는 몹시 부정적 이었고, 급기야는 화를 내며 무시무시한 힘으로 스님을 뿌리치
    고 절 밖으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스님이 약간 뜸을 들이자, A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후에, 마을사람 몇명과 함께, 그 여자의 집으로 향했지만 집안에 여자와 '그것'은 없었습니
    다. 집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구석에는 썩은 밥 이 쌓여 있어
    서 악취를 뿜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여관의 2층에서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여자가 아이를 잃은 슬픔에 어떤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들이 보았던 '그것'이 이 의식을 통해서 생겨난 것이라고는 깨닫고는, 힘
    을 합쳐서 그 둘을 찾으려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정리하며 귀기울여 듣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편 큰 스님은 절에서 여러명의 스님을 데리고 또 한명의 여자를 찾아 갔습니다. 하지만 이쪽
    도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것에 대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아내에게
    기겁하는 남편. 그 광경을 본 큰스님은, 염불을 외면서 '그것'을 향해 걸거갔고, 아이를 지키려
    는 여자의 눈을 뒤집고 괴성을 지르며 큰스님과 스님들을 위협했습니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에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스님들이 겨우 여자를 제압하여 절로 데려갔고, 큰스님은 뒷따라오는 그것을 향해 염불을
    외고, 소금을 뿌리면서 천천히 뒤따랐습니다. 몸부림 치는 여자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서 절에
    도착하고 스님들은 여자를 어제 당신들이 들어가 있었던 그 별당에 묶어서 가두었습니다."
     
     
    "묶어서까지..." A가 여자가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선 여자와 '그것'을 떼어내는 것이 급선무 였기 때문에 할 수 없었지 싶습니다."
     
     
    약간 냉정한 스님의 대답에 A는 스님에게서 눈을 돌려서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자해할 수 없도록 무슨 조치를 취했다고는 합니다만, 상세한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여자를 속에 넣어두고, 여러명의 스님들이 그 별당을 둘러싸고 앉아서는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안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 왔지만, 그 비명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도록
    더욱 더 큰 소리로 경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그것'은 별당이 있는곳까지 왔고, 어머니를 찾아서 별당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이렇게 염불을 외는게 효과가 있는지없는지도 모르
    지만 스님들은 필사적으로 경을 읇었습니다."
     
     
    거기서 스님은 차를 마시고는 잠깐 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B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별당의 주변을 돌던 그것은, 점점 양발로 걷는것을 곤란해 하더니, 네발로 기어다니기 시작했
    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있으니, 팔다리의 관절을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서 마치 거미와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기었습니다. 마치 인간의 퇴화 과정을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더니 그 네 발마저도 사라졌고, 몸통과 머리만 남아서 애벌레처럼
    변해서 굴러다니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침해가 밝아 오는것에 따라서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에 남은것은 말라 비틀어진
    탯줄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꼭 어제 우리가 겪은 이야기에 스님이 살을 붙여서 만든 이야기만 같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때 A가 스님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그 탯줄은..."
     
     
    "맞습니다. 오늘 아침 별당 근처의 바위 위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대답했다.
     
     
    "왜 하필 우리입니까?" 나는 조금 억울해서 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씁니다. 이 절에는 큰스님 대대로 써 온 수기집이 있습니다만, '그것'의 어머니
    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사례는 처음이었고, 그 의식에 대해서도 어떤 의식인지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스님이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 어머니들 에게 묻지는 않았습니까?" B가 말했다.
     
     
    "묻지 않은것이 아니라 묻지를 못했습니다. 날이 밝아서 별당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자들은 의식
    을 잃고 있었고, 치료를 하여 깨어나더라도 이미 제정신은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두번이
    나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못 견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도망을 갔던 여자를 찾았고, 그 또한 비참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해안
    가에서 시체로 발견 되었는데, 몸의 여러곳에 무엇인가가 뜯어 먹은 자국이 있었지만, 여자의 표
    정은 한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큰스님의 수기에는 '아이에게 잡아먹힌 어머니의 마지막 미소' 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스님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귀담아들었다.
     
    "그 사체로 발견된 여자의 집은 (이 여자는 남편이 없었다고 함) 철거 하기로 하였고, 그 안에서
    그 여자가 쓴 일기 비슷한 것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작은 수첩 하나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읽어보니, 의식을 시작하고 기록한 '그것'의 성장일기 비슷한 것이었다.
     
     
    X월?일 : 사당을 만들다.
    .
    .
    .
    Y월?일 : 변화 없음.
    .
    .
    .
    Z월?일 : ㅇㅇ가(아이의 이름) 돌아옴.
    Z월?일 : 이동이 곤란해 보임.
    Z월?일 : 손발이 자라남.
    Z월?일 : 기어다닉 시작함.
    Z월?일 : 옹알이를 하기 시작함.
    Z월?일 : 양발로 일어섬.
    Z월?일 : 양발로 걷기 시작함.
     
     
    그리고 노트에는 아이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집념 이 빽빽히 씌어 있었다.
     
     
    참고로 또 한명의 여자는 다락방에 '사당'을 만들었고, 남편은 '사당'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저도 전부를 이해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이 어머니의 일기와 스님들의 수기를 비교해 보면,
    '그것'은 성장한 과정을 그대로 거치면서 퇴화해 가는것 같지 않습니까?"
    스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무슨말이라도 하려고 한 순간, 스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의 수기에 보면, 아주 가끔씩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내
    용에 '어머니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 의식에 대해 알게 되는지는 기재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
    은 모든 '어머니들'이 미치거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스님은 이것을 빨리 알아채고 예방하는 방법을 모르는게 화가 난다고말했다.
     
    스님을 포함해 우리는 한참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각자 머릿속에서 어제일과 지금 들은 일을 정리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가장 먼저 말을 꺼낸건 B였다.
     
     
    "어제 우리가 본 '그것''어머니'는... 여관 아주머니 입니까?"
     
    스님은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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