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홍대에 정착한지도 어느덧 1년.
초여름의 어느날 나는 일인자라 불리우는 친구에게서 문자 한통을 받게된다.
"주말에 점보라멘도전하러가자 콜?"
나는 인터넷으로 점보라멘을 검색해보았다.
오... 쉣... 그것은 사람이 먹을수 있는 분량의 라멘이 아니였다..
도전전날 나는 그녀에게 우려섞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ㅅㅎ야 다 먹을수있겠나? 정준하도 실패했다던데.'
그녀는 말했다.
'정준하는 쩌리잖아 난 일인자고.'
점보라멘이 나온순간 그녀는 그 장대한 크기에 조금 위축된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흡사 최홍만의 세숫대야같았다. 아니 고무다라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듯 싶었
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고서는 망설임없이 면발을 향해 돌
진했다 .
제한 시간은 20분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계란4개, 김밥김4장, 숙주나물 한대접 그리고 4인분의 면발을 순
서대로 입으로 가져갔다.면발에서는 뜨거운 김이 펄펄 나고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것 같았다. 그리고
는 씹는것이 보이지도 않을만큼 빠른속도로 그것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것은 흡사 마시는것
과 비슷해 보였다.
4인분의 면발중 2인분쯤을 마셨을까? 그녀에게 첫번째 고비가 온듯 보였다. 그녀는 힘겨운 기색을 내비치
며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느끼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입밖으로 내뱉자마자, 그녀는 빠른속도로 페이스를 잃어가는듯 보였다. 점점 면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고 국물은 짜게 식어가고있었다. 그리고 일찍 그녀의 위속에 자리잡은 면들이 몸속 수분
과 결합해 두배의 부피로 불어나 그녀의 위벽을 압박하고있는듯 보였다.
더이상은 어려울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리고, 점점 의지를 잃어가는듯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두고 볼수없어져 나는 그녀의 의지를 다시 되살려줄수있는 최후의 보루, 아껴둔 그 한마디를 던졌다.
'실패하면 이만원.'
그때였다. 그녀는 내려놓으려던 젓가락을 다잡고 떨구었던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곤 다시 면발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아직 십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좌절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였다.
그녀는 그 마법에 단어를 듣고난뒤 마치 라멘집에 처음 들어온 사람인냥 다시 라면을 마시기 시작했다. 놀라
운 속도였다. 그녀는 물질 만능주의의 이 사회에서 돈안내고도 라멘을 배터지게 먹을수 있다는것을 몸소 보
여주기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4인분의 면발이 바닥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미쳐 예상치못한 난관이 하나더 있었다.
돼지가 자신을 희생해 제 앞다리뼈을 10시간동안 우려낸...
그것은 국물이였다!
이미 그녀의 뱃속에 국물의 자리는 없는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숫가락으로 국물을 퍼먹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인듯했다. 국물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치 수백명을 목축이게한, 먹어도 먹어도 줄지않았던 예수님의 포도주와 같은 성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녀가 국물로 고전하고있을때 한국말이 서투른 일본인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에게 말했다.
'산분남아써요.'
그녀는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듯 보였다.
일본인 따위에게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것같았다. 이만원과 자존심을 한번에 잃는다니.. 그녀는 상상만해도
나라를 잃은 김구 표정이 지어지는듯했다.
삼분..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순간 그녀는 최홍만 세숫대야같은 고무다라이만한 대접을 양손으로 들고 60퍼센트의 돼지뼈육수와 30퍼센
트의 다시다 10퍼센트의 소금 후추가 함유된 3리터의 돼지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떡 꿀떡 그녀의 목구멍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시간은 종국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5..4..3..2..1
그녀가 최홍만 세숫대야만한 고무다라이 같은 대접을 내려놓았다.
국물이...... 없다.
우리는 광복절을 맞은 대한제국의 시민마냥 만세를 불렀다. 그녀의 입술은 돼지기름으로 촉촉했다. 더불어
그녀의 눈가도 촉촉해져 왔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옆에있던 일본인 점원이 커다란 대접속에 수줍게 붙어있는 짧은 라면 몇가닥을 두고 손가락질하며 이것을 덜
먹었으니 실패한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는 나와바리를 지키기위해 하야시에 맞서싸운 장군의아들 김두한 같은 기세로 그릇
까지 씹어먹어야 성공으로 인정줄꺼냐고 말했다.
그 대단한 기세에 눌린듯 일본인 점원은 일단 대접을 회수해갔고, 일본인사장과 직원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1초가 영겁과 같았다. 자존심과 이만원을 동시에 잃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또다시 엄습해왔다.
몇초가 지나고, 일본인 점원이 다가와 말했다.
'선공해써요.'
그제서야 그녀는 긴장이 풀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애기같은 다리가 뱃속의 돼지국물 3리터로 인해 살짝 휘청였지만 이내 중심을 다잡고 당당히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빛속으로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그리고 뒤돌아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커피마시러 갈래?'
ps. 다음주에 온누리에 돈까스의 고봉밥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