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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무서운이야기
숙소에 도착하자 각자의 옷과 과장이 부탁한 전자 현미경이 도착해 있었다. 혜주와 과장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현미경에 매달렸다. 부검팀장과 보건부 관리는 지쳤는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조직 검사를 이렇게 몰래 해야만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아까부터 현미경만 뚫어지게 보고있는 과장의 뒤에서 혜주가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오." 과장은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했다.
"방부 처리를 하지 않았더니 조직이 많이 상해버렸어요. 제대로 분석을 할 수가 없겠는걸."
과장은 현미경에서 눈을 떼더니 혜주에게 현미경 쪽으로 손짓을 했다.
"혜주씨도 한 번 봐요."
혜주는 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조직이 많이 부패하기도 했지만 잔뜩 곰팡이 같은 것이 피어 있었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아보기가 힘들겠어요."
"그런데, 혜주씨. 조직을 한 번 자세히 봐요. 일반 곰팡이가 아니오."
"네. 폐조직 자체가 섬유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위에 곰팡이도 덧씌워져서 알아보기가 힘들지만. 그냥 곰팡이치고는 구조가 독특한 걸요?"
"아무래도 조직을 가져오는 동안 다른 포자가 스며든 모양이에요. 여기가 버섯 재배를 하던 곳이라 그런지."
"혹시 시체를 소각하는 곳이 버섯저장소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던 것 같군요."
"그렇다면 포자가 연기에 많이 날려다닐 수도 있겠군요."
"네, 그게 세포에 달라붙은 모양이에요. 다음 번 희생자가 나와서 다시 부검을 하게 되면 폐조직을 좀더 잘 보관해 와야겠어요. 중간에 이물질이 묻지 않게."
"네."
혜주는 계속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폐조직에 이물질이 묻은 것도 다 대대장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가 버섯저장소를 시체 소각장으로 사용하지만 않았어도 조직에 이렇게 많은 이물질이 묻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혜주는 어느 샌가 일행의 임무에 진척이 없는 것은 모두 대대장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혹시 탄저균 같은 종류의 테러는 아닐까요?" 혜주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급속도로 감염지역이 확산되지는 않을 꺼요. 난 개인적으로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전 아직 아무 것도 판단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신경계에 감염이 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밖에."
과장은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 혜주 역시 풀이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자 현미경이 도착하면 일말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져버린 까닭이었다.
어떻게든 새로운 폐조직을 입수해야만 했다. 그러자면 또 한 명의 희생자가 필요할 터였다.
과연 다음 번 희생자는 누가 될까? 날이 밝자 질문의 대답은 명확해졌다.
아침 공기의 쌀쌀함을 느끼면서 혜주는 방문을 나왔다. 너무 지쳐서 옷을 그대로 입고 자는 바람에 아직 어제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혜주였다. 수돗가에서는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과장은 보이지 않았다.
똑. 똑. 똑.
"과장님!"
혜주는 과장의 방문을 노크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과장님!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혜주는 다시 한 번 두드렸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없었다. 혜주는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쾅! 쾅! 쾅! 쾅!
혜주는 문을 부실 듯 세게 두드렸다.
"과장님!"
과장을 부르는 혜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이 혜주에게로 다가왔다. 그들도 이미 사태를 짐작한 표정이었다.
보건부 관리는 혜주의 팔을 잡고 혜주를 말렸다.
"혜주씨. 진정해요. 사람을 부를게요."
"과장님! 안돼요. 과장님."
혜주는 거의 정신이 나간 듯 보건부 관리의 팔을 뿌리치며 문을 두드렸다.
부검팀장은 길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보초에게 달려가 사실을 알렸다. 보초 둘은 부검팀장을 따라 과장의 방 쪽으로 걸어왔다.
쾅!
보초 한 명이 검은 군화발로 과장의 방문을 걷어차자 문이 벌컥 열렸다. 과장은 하얀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내려 있었다.
"과장님!"
혜주는 보건부 관리에게 팔이 잡힌 채로 몸부림치며 울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함께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의논을 했던 과장이 이렇게 일행 중 첫 희생자가 되어버리다니. 혜주는 머릿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소독팀 파견 바란다."
보초 중 한 명이 무전기를 들고서 그렇게 무전을 날렸다.
"나머지 분들은 물러나 주십시오."
나머지 한 명은 혜주 일행을 뒤로 밀어냈다. 혜주는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에 의해 억지로 끌려 마당까지 내려왔다.
이윽고 화생방 복장을 한 군인 다섯 명이 뛰어올라왔다. 그 중 한 명은 들것을 가지고 올라왔고, 다른 한 명은 이동용 소독기구를 메고 왔다.
그들은 혜주를 지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안에 소독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지 못하며 그 장면을 지켜보던 혜주의 머릿속에 과장의 당부가 떠올랐다.
'만일 내가 죽거든 혜주씨가 책임지고 부검을 해요.'
혜주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자신을 붙들고 있는 보건부 관리의 손을 풀었다.
"군인들에게 해야할 말이 있어요."
그리고는 이미 들것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간 군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과장님 시체는 제가 부검을 해야해요."
혜주는 방문 앞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화생방을 향해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모든 사체는 즉시 소각이 원칙입니다. 게다가 이 시신은 사망한 지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르니 즉각 소각장으로 옮겨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과장님의 유언이에요. 제가 부검을 해야만 해요."
"죄송합니다. 대대장님의 명령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화생방은 군인 특유의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명령. 명령. 혜주는 그 명령이라는 말에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과장이 이렇게 죽어버린 것도 다 그놈의 명령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분함이 혜주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혜주는 폭발할 듯한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기다려요. 내가 대대장의 허락을 받아올 테니까."
혜주는 화생방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길 아래로 달음박질 쳤다. 대대장의 막사는 뛰어가면 1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뛰어가는 혜주의 뺨에는 또다시 눈물이 흘렀지만 혜주는 얼른 닦아버렸다. 대대장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대대장의 멱살을 잡고 '과장님이 돌아가신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대대장에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대장을 이기려면 대대장보다 더 냉철해야만 했다.
대대장의 막사 앞에는 어제와는 다른 사병 하나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혜주는 서 있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이 혜주를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강한 팔 힘으로 혜주를 밀어내듯 막아서며 물었다.
"대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급한 일이에요."
혜주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최대한 냉철한 척 한다고는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다리십시오."
사병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혜주를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충성! 대대장님 붉은손 다섯……"
사병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혜주는 벌컥 안으로 들어섰다. 1초도 지체하기가 싫었다.
"중령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과장님께서 돌아가셨어요."
대대장은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혜주를 쳐다보았다. 사병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혜주를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소. 방금 무전을 들었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대대장은 과장의 죽음조차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대꾸했다.
"과장님께서 어제 저녁에 제게 부탁하셨어요. 과장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게 되면 저더러 과장님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네. 시신을 소각하지 말라고 명령해 주세요."
"알겠소. 그런 거라면. 내가 무전으로 연락해 놓을 테니 걱정 마시오. 단, 두 시간 안에 부검을 마쳐야 하오."
"알겠어요. 그럼."
혜주는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혜주가 막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네?" 혜주는 고개를 돌려 대대장을 쳐다보았다.
"이봐. 젊은 아가씨. 여자라 군대를 다녀오질 않아서 그런지 아직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말야. 군대에는 절차와 규율이라는 게 있는 법이오. 내 숙소에 들어올 일이 있으면 먼저 보초를 거쳐야 하는 거요. 알겠소?"
"네. 알겠습니다."
혜주는 대대장의 말투가 못마땅했지만 그저 공손히 대답을 했다. 지금은 한 시라도 빨리 과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오는 거고, 내가 나가라고 할 때 나가는 거요. 알겠소?"
"네."
"그럼 가보시오."
"네."
혜주는 몸을 돌려 막사를 빠져 나왔다. 사병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서 있었다. 혜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요. 마음대로 들어가서."
"괜찮습니다."
사병은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했다. 혜주는 온 길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야, 이 새끼야 너 들어와!"
혜주가 막사에서 몇 걸음쯤 벗어났을 때 막사 안에서 대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사병은 잔뜩 굳은 표정을 안으로 들어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보초를 어떻게 서는 거야! 저 년이 칼이라도 쥐고 들어왔으면 난 죽었어! 너 이 새끼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해! 여자 하나 막질 못하고! 너 보초도 하나 제대로 못서!"
혜주는 대대장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병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서 대신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14.
혜주는 위생복과 위생장갑, 그리고 마스크를 한 채 미리 부검용 막사에 도착해 있었다. 부검팀장과 보건부 관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과장은 간이 침대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새벽에 죽은 모양이었다. 시신이 어느 정도 경직되어 있었다.
혜주는 자신이 과장의 몸을 부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마치 과장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줄로 알았다. 과장이 죽은 지금, 혜주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막사의 문이 열리고, 화생방 복장을 한 세 명이 들어왔다.
"두 분은 언제 오시는 거죠?"
혜주는 그들에게 먼저 물었다. 그러자 화생방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여기 왔소."
혜주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세 명 중 두 명은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이었다.
혜주는 순간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검을 주도하던 과장이 죽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그들로서도 뭔가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과장이 죽은 지금은 붉은손 둘 즉, 부검팀장이 전체 팀장이었다. 그가 보호복을 입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혜주씨도 보호복을 입는 게 어때요?"
부검팀장이 말했다.
"아뇨. 전 됐습니다. 두 분께서는 몸 움직이시기 불편하실 테니 집도는 제가 하지요."
혜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놓여있는 메스를 들었다. 부검팀장과 보건부 관리는 별 말 없이 혜주의 곁으로 와서 섰다.
혜주는 과장의 쇄골 가운데에 메스를 찔러 넣었다. 이미 사망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지난번 해부에서처럼 혈액이 스며 나오지는 않았다. 혜주는 손과 팔에 힘을 주어 천천히 메스를 아래쪽으로 그었다.
과장의 복부를 완전히 절개하는 동안 혜주는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흐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과장도 온 시신이 다 찢어진 채로 소각장으로 가게 되겠지? 과장의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만 할까?
혜주는 과장의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범하고 조용조용한 부인이었다. 과장이 지닌 명성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현명한 여자였다. 아마 과장의 부인도 과장의 이러한 비밀을 알고 있지는 않으리라.
혜주는 자신이 언제고 이 모든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장은 그녀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곳에서 이루어진 이 일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 만일 그녀도 혜주도 늙어졌을 때, 그 때가 오면 혜주는 그녀에게 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
혜주는 자신이 과장의 몸을 갈가리 찢은 이 사실을 과장의 부인이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장의 두개골은 전번처럼 부검팀장이 절개했다. 전기톱은 전번과 다름없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그 동안 혜주는 과장의 폐에서 떼어낸 조직을 한쪽 구석에 마련된 현미경에서 관찰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과장과 혜주가 함께 관찰하던 것을 이제는 과장의 것을 혜주가 관찰하고 있다는 것밖에. 혜주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눈앞이 자꾸만 흐려짐을 느꼈다.
조직에는 잔뜩 섬유화가 일어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폐울혈에 수반되는 일반적인 폐조직의 섬유화보다 훨씬 진척되어 있었다. 과장이 사망한 시각을 아무리 이르게 추산한다고 해도 전혀 들어맞지가 않았다.
혜주는 과장의 폐조직을 슬쩍 위생장갑의 손목에 넣었다. 아무래도 과장의 전자 현미경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날 밤이었다. 혜주는 아까부터 전자 현미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혜주의 옆에는 부검팀장이 서 있었다.
과장의 죽음 이후에 전의 숙소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혜주 일행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숙소를 잡게 되었다. 과장의 전자 현미경은 자연스레 혜주의 차지가 되었다. 부검팀장도 보건부 관리도 그것을 가져가려 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서로 떨어진 곳으로 재조정됨에 따라 밤에 서로가 서로의 숙소에 가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혜주는 의논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억지로 부검팀장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과장이 죽은 마당에 이제 팀장은 부검팀장이었고, 그렇다면 그와 상의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혜주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한 이유도 있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폐에는 곰팡이 같은 것만 잔뜩 피어버렸고."
혜주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부검팀장은 팔짱을 끼고 서서 혜주와 혜주의 방을 쭉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직을 몰래 떼어와서 지금까지 관찰을 해 왔군요. 전 까맣게 몰랐군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 놈의 대대장의 명령 때문에 조직을 따로 보관할 수가 없으니까."
혜주는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는 부검팀장에게 현미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보세요."
"그래요. 한 번 봅시다."
부검팀장은 약간 머뭇거리며 현미경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죽은 과장의 유품이라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그는 현미경에 얼굴이 닿지 않게 약간 거리를 두고 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조직에 이물질이 묻어버린 모양인데요?"
"첨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까 부검실에서 조직을 막 떼어냈을 때도 상태가 비슷했어요. 도대체 왜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어요."
"네."
부검팀장은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원인이 뭘까요? 공기로 전염되는 걸까요? 아니면 신체접촉?"
혜주가 부검팀장의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소. 아무 것도 종잡을 수가 없군요."
"아랫마을에서는 벌써 두 명의 희생자가 더 발생했대요. 이대로 나가다가는 조만간에 아랫마을 주민들도 모두 사망하고 말 거예요. 한 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돼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과장님이 돌아가셨으니 이젠 당신이 팀장이잖아요. 전 과장님만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사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알고 있소. 나도 최선을 다 할거요. 혜주씨도 최선을 다 해줘요. 우리 함께 끝까지 해 봅시다."
혜주는 부검팀장의 말에 나름대로 위안을 느꼈다. 아침에 부검팀장과 부건부 관리가 부검실에 보호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둘에게 배신감과 절망을 느꼈던 혜주였다. 사실 보건부 관리는 아니라도 부검팀장은 뭔가 강단이 있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기에 부검팀장에게 더욱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부검팀장이 돌아가고 나자 혜주는 잠자리에 들었다. 과장이 죽고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나름대로 부검팀장의 마지막 말을 상기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어떻게든 이 역경을 이겨내야 해.'
혜주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듯 하기도 했다.
이 곳에 온지 처음으로 혜주는 그나마 푹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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