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뜨겁다. 장하나 의원의 대선불복 선언 이후 페북이나 트위터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넘치고 있다.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투쟁만이 답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왜 안 그러하겠는가. 18대 대선에서 자행된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 그리고 그 범죄행위를 축소.은폐하려는 정권의 모습은 우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정당한 목소리들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인이든 시민이든, 모든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은가. 대선불복 얘기했다고, 대통령 사퇴 요구했다고 해서 국회의원 제명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야권 지지층내 일각의 흐름에 대해서는 나는 우려를 갖고 있다. SNS 공간에서는 부정선거로 치러진 대선은 무효이고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만이 길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같이 강한 목소리 앞에서 다른 약한(?) 목소리들은 ‘회색’으로 배척당하고 만다. 민주당도 안철수도, 그리고 장하나 발언의 파장을 우려했던 나도..... 나의 페북 댓글에는 그같은 강한 목소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분위기만 접하면 마치 대선무효론이 대세인 듯한 착시 현상마저 생겨날 수 있다.
'박근혜 OUT'론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OUT' 목소리가 확산되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으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시민들이 그런 요구하는 것, 사제들이 양심에 따라 그에 앞장서는 것, 박근혜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사람들이 그 아래에서는 못살겠다며 그렇게 외치는 것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정치적으로 야권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세력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여러 가지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려라는 것이 쉽게 떠올리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야권 정치세력은 국민 전체, 아니 좀 더 현실성있게 표현한다면 국민 다수를 보고 가야 한다는 대전제를 말하는 것이다. 제1야당이든 혹은 제1야당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는 세력이든,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집권세력을 이길 수가 없다.
9일 실시된 JTBC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장하나 의원의 대선 불복 선언과 대통령 사퇴 촉구에 대해 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24.6%,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63.1%로 나타난다. 물론 집권 1년도 안된 시점에서 24.6%라는 숫자의 의미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주목할 것은 여전히 63.1%의 국민은 박 대통령 사퇴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대선불복과 대통령 사퇴 요구는 국민 가운데 1/4의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1야당으로 하여금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에 나서라고, 왜 비겁하게 그러고 있느냐며 등떠미는 것은 그다지 적절한 일은 아니다.
2012년 야권은 이길 수 있었던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패했다. 그 뼈아픈 패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던가. 우리끼리만 분노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어렵게라도 이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2012년의 패배가 일깨워준 값진 교훈이었다. 같은 생각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쫄지마! ㅅㅂ" 외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같은 광경이 되풀이되려 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충분히 분노했다고 해서, 이제는 끝장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기들끼리만 그러면 자유이겠지만,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은 야당과 정치인들을 비방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에게는 환호를 올리고 있다. 패배를 한번 겪고 두 번 겪고, 그러고도 같은 잘못을 또 범하려 한다면 그것은 뿌리깊은 관성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 한 번의 어리석은 패배를 겪는 것 밖에는 달리 답이 없다.
세상은 그같은 관념적 급진주의에 의해 달라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은 현실을 바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공허한 말의 성찬일 뿐이다. 국민의 상태와 요구가 무엇인가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에 근거하여 정치적 요구를 내놓을 때만, 그 요구는 비로소 힘을 가질 수가 있다. 무턱대고 야당은 대선무효, 박근혜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며 돌팔매질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가. 박근혜를 사퇴시킬 힘을 갖고 있는가? 대선무효 투쟁하면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만들 전망을 갖고 있는가. 책임이 따르지 못하는 주장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대선무효를 주장하거나 '박근혜 OUT'을 외치는 것은 자유이고 권리이다. 그러나 그 요구와 같이하지 않는다고 해서 야당을, 판단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얘기이다.
상황은 여전히 녹녹치 않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야권 정치세력이 다수의 국민과 유리된 상태에서 자기중심적 투쟁을 벌여나갔을 때 그것이 선거에서 어떤 결과로 나오는지, 이미 2012년에 경험했던 바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누리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선거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경우 그동안의 모든 논란들은 일거에 정리될 것이고 정국주도권은 여권세력에게 넘어갈 것이다. 선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정세와 정국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들끼리가 아닌 국민 다수의 생각을 읽으며, 반 발짝만 앞서가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민주주의 편에 선 세력이 정권을 잡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긴 정치사에서 그 일은 DJ와 노무현, 단 두 번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독자적인 힘이 아니라 한 번은 DJP연합, 다른 한 번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표를 모아야 간신히 가능했던 것이 선거를 통한 정권획득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야권세력이 기본적으로 자기 편만 갖고 이기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확장성에 주목하며 지지기반을 넓히지 않으면 여론에서든 선거에서든 이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성을 견지하여 중간층까지 외연을 확대할 수 있을 때 보다 힘있는 야당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야권 지지층이라면 어떤 생각과 판단을 가져야 하는지 사려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것이 무조건 옳은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