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한번 해보려구요.
왜 그런사람 있잖아요.
자기보다 나이많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나는 그 사람과 전혀 어울릴 레벨이 아닌데, 그사람에 비하면 난 너무 초라한데,
날 챙겨주고 또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해줄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사이.
그사람이 말하는거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고,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는 생각으로 주고싶고,
심지어 그사람이 병이라도 걸려 몸에서 뭐라도 떼줘야 한다고 하면 떼주겠다고 바로 결심하게되는
그런 사람이요.
그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가서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주고 싶고,
나쁜일이 생겨 날 찾게된다면 주저않고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요.
참 기쁘게도, 저에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과 제가 만난건 지난 2000년이었습니다. 그분은 사회 초년생 스무살이었고
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pc통신 동호회에서 만나 많은사람들 중 하나처럼
생각하고 그냥저냥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심심한데 놀러오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그때가 시작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지만 어쩌다보니 맥주도 한잔 받고 게임도 하면서
그렇게 그분과 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동호회 정모때나 만나서 놀고, 집 방향이 같아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던 정도.
시간이 흘러 04년 새해를 당시 스무살의 저와 스물네살의 그분이 암울하게 마주앉아(ㅋㅋ)
소주에 감자탕 먹으며 맞이하기도 하고, 한때 방황하며 때늦은 사춘기를 보내는 저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며 엄청 혼나기도 했습니다. 군대 100일 휴가 나온 저를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전화와서는 고기며 술이며 밤새도록 먹이고도 부족하다며 휴가나올때마다 찾아간
저를 향해 싫은내색 하나없이 챙겨주시던 그분이, 제가 전역하는 날엔 사람들까지 여기저기서 모아
전역 축하한다며 선물에 축하에 정신 쏙 빼놓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왔고, 이제 좀 정신을 차렸다고 스스로 느끼고 자취를 시작했지만 사회는 힘든
곳이었습니다. 여러번 직업을 바꿔가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지만 헤픈 씀씀이와
터져나오는 게으름으로 자취는 커녕 직장잃고 그동안 쓴 돈이 한꺼번에 밀려와 힘든시기가
있었습니다. 잘못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절 떠나갔습니다.
제가 돈을 쓰지 않으니 볼일이 없어진 것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만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왜?
일하는 곳이 pc방이었던 탓에 그분은 어떻게 알았는지 한가한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퇴근 후에
찾아와주곤 했습니다. 살만하냐고. 좀 어떠냐고 위로해주면서요.
일은 계속 했지만 돈이 메꿔질 기미는 죽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돈에 치이고 치여
전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직업때문인지 몰라도 돈을 많이 벌기도 하지만 그만큼 철저해서 아무리 친한 사람앞에서도
지갑한번 안여는 사람이 제가 한참 힘들었을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그분은 저에게 평소처럼 농담하며 지갑을 열어줬습니다.
"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냐?"
드라마처럼 고맙습니다를 연달아 말하는 대신, 난 농담처럼 얼른 갚겠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누구에게 함부로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니란걸 잘 아는 저였기에 약속한 날짜에 돈을 주려고
일당알바 주급알바 해가며 겨우겨우 제날짜에 돈을 주자 그분은 역시 농담처럼 돈을 받고는
서로 웃고 밥한끼 먹고 헤어졌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태가 좀 호전되고, 돈을 모으기 시작하던 시점에 저에겐 어쩌면 평생 안고갈지도 모르는
사고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돈욕심이 생겨 시작한 심부름센터 일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척추뼈에 모두 골절이 생기고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3개월은 꼼짝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너무 서러워 애처럼 울고
제가 심부름센터에서 일하는 줄 모르던 부모님도 왜 말한마디 안했냐면서 우셨습니다.
천만원이 넘게 나온 병원비야 보험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 절 눈물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난 지 하루만에 그분이 오셨습니다. 절 보자마자
괜찮냐는 말 이전에 왜그랬냐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분은 손에 든 음료수 박스를 한숨과 함께
내려놓으며 하지말라는 일 왜 하냐고, 돈이 뭐가 중요하냐면서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뒤로도 그분은 제가 병원에 누워있는 몇개월동안 종종 찾아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전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그분 말이라면 내가 꼭 성공할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은, 난 이제껏 뭔가를 전문적으로 붙잡고
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기회를 통해 내 인생에 유례없는 성공을 이루고싶다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성공을 생각하니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그분은 저에게 공부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일부러
소개시켜주며 저를 가리켜 위트있고 머리좋은 친구라고 내 실제 모습에 비례해 수십배는 부풀려
내 인간관계를 만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뭐같은 삶을 살았던 제가 뭐 예쁘다고 그렇게 옆에서 지켜봐주셨는지요.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이야기를 하면 항상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래그래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화를 내며 이야기하고,
잘한 것에 대해서는 그럴수록 더 잘해야 한다며 충고를 해줬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과 진행방향을 알려주고, 돈 쓰는 방법 돈 모으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한다며 제가 돈을 쓰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어떻게 써야 현명한 것인지 알려줬습니다.
가끔은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며 일부러 찾아와 밥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그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람과 같이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소개시켜주는데,
너무 기뻤습니다. 내색은 안했지만 십수년간 한번도 사귀는사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제 보여준다는 것은 내가 뭔가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눈치챈 그분이 나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신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뻤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그분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고작해야 알량한 컴퓨터 지식 동원해 컴퓨터 한번 조립해줬던게 전부일만큼 저는 해준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보답하는 방법이 오직 공부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공부해서 꼭 성공하면 그분이 나에게 줬던 진심을 그대로 되돌려 줄 것입니다.
지금 줄 수 있는건 마음밖에 없지만 그때가 되면 나도 그분과 같은 위치에서 사회생활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할 마음뿐입니다.
이제 곧 퇴원입니다. 참 길고 긴 입원기간동안 그분의 조언으로 인해 시작한 공부가 이제
막 궤도에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퇴원을 맞아 그분과 그분의 여자친구분, 그리고 저는 퇴원시기에
맞춰 세명이서 제주도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세명 전부 돈이 너무 많이 드는거 아니냐고 갑을론박을
세웠지만 오랜 세월 봐 온 그분의 표정에서 즐거워하고 있음을 눈치챘습니다.
나는 왠지, 이 여행이 내 삶에 중대한 성공을 가져다 줄 시발점처럼 느껴집니다.
3주 뒤에 떠나는 여행길을 시작으로 내 삶이 좀 더 나아질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분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가끔 말합니다. 네 나이 사십 오십되고, 내 나이 사십 오십 되도 우린 여전히 농담하며
술마시고 다만 너의 모습은 성공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라고.
난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공부를 막 시작한 이십대의 끝자락이지만, 앞으로는
성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말한 것처럼, 나의 좋은 미래를 만들고 또 평생 함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생길 내 자식에게 아빠 인생에 이만한 분 없다고 꼭 예의 갖춰 인사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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