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국정감사가 시작된 첫날이었습니다. 국방부를 상대로 열린 이 날 국감 자리에서 국회 국방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광진 민주당 국회의원이 놀랍도록 충격적인 문자를 공개했습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이 사건 재수사를 담당하는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참담한 '성적 요구' 문자였습니다.
(관련기사: 아들 잃은 어머니에게 "헌병 수사관이 '성적 만남' 문자" ) |
▲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성적 요구 문자 군에서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에게 사건 재수사를 담당했던 군 헌병대 수사관이 보낸 문자의 일부. "뭘 생각해 본다는거야. 결정하면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하지 말구." |
ⓒ 고상만 | |
"때론 친구, 때론 애인으로 만나고 싶어. 무덤까지 비밀로 지키기로. 뽀도 하고 싶은데 어쩌지" "좀 전 문자 왜 답 안 해, 빨리 답해, 때론 애인처럼 뽀하구 싶은데 어쩌지. 뒤끝 없이 화끈하게" "뭘 생각해 본다는 거야, 결정하면 되지, 쫀쫀하긴, 죽으면 썩을 몸, 즐겁게 사시오, 후회 말구" 차마 소리 내어 읽어 보기도 민망한 이 문자를 김광진 의원이 공개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패륜적 행위를 한 군 헌병대 수사관 한 명을 처벌하거나 망신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 피해 어머니의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처음 군 헌병대 수사관으로부터 이 같은 문자를 받고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이 같은 문자를 받은 사실을 남편과 남은 자식들이 알까 두렵고 부끄러워 차마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이 일은 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이 일이 나에게만 벌어진 아주 특별한 일인지, 아니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또 있는데 자기처럼 부끄러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운데 계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 같은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국방부 장관에 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고자 고발하게 된 것입니다.
반성 없는 국방부 이 같은 군 헌병대 수사관의 '성적 요구' 문자 사실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경악과 분노를 표했습니다. 어떻게 자식을 잃고 참담한 지경에 처한 불쌍한 그 어머니에게 군 헌병대 수사관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있을 수 없는 패륜적 문자를 보낼 수 있냐며 공분했습니다. 더불어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에게 깊은 위로와 안타까움을 전하며 군 수사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방부와 군 수사기관은 이 같은 국민적 분노와 반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국방부 국정감사를 통해 김광진 국회의원이 문제의 문자를 공개하며 수사 관행 개선을 지적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모 방송국 기자로부터 장문의 메일이 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국방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민원인에게 성적 유혹 문자 발송한 군 조사관 주장에 대한 국방부 입장' 제하의 언론보도 자료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제('13. 10. 14, 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김광진 의원의 질의를 통해 제시한 민원인의 주장에 대해 일부 확인한 결과, 당시 조사관들은 민원인에게 해당 문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사실 관계가 정확하게 확인되어 개인과 부대의 명예가 지켜지길 바란다"라고 밝혔음. * 민원인이 재조사를 요청한 군 사망사고는 2002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육군은 민원에 따라 2003년에 군 사망사고를 재조사한 바 있고, 2009년 10월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기각 처리되었음. ◦ 민원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공직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임. ◦ 하지만, 동 사안과 관련하여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바, 국방부는 법적절차에 따라 동 사안의 사실관계가 조속히 밝혀지기를 희망함. 2013. 10. 15. 국방부 대변인 |
▲ 국방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성적 요구 문자' 관련 입장문 2013년 10월 14일,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국방부 국정감사 당시 군 헌병대 수사관이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성적 요구를 하는 문자를 보낸 사실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선 대책 마련을 주문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져 비난을 받자 다음날인 15일 국방부는 대변인 명의로 ‘민원인에게 성적 유혹 문자 발송한 군 조사관 주장에 대한 국방부 입장’이라는 제하의 언론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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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피해 어머니에게 사과해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방부가 정말 잘못했다고,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그 어머니에게 사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국방부는 달랐습니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반성은 고사하고 도리어 국방부 대변인 명의로 입장문까지 내며 그 어머니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해자' 위치에 있는 군 헌병대 수사관들을 상대로 일부 확인한 결과,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면서 "개인과 부대의 명예가 지켜지길 바란다"는 그들의 주장을 기술했습니다. 국방부는 입장문 마지막에 "민원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안타까운 일이고 공직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동 사안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며 그 어머니의 주장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의심케 하는 언론보도 자료를 배포한 것입니다.
국방부의 이 같은 표리부동한 행위에 저는 분노합니다. 건강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그 어머니 품으로 돌려 보내 줘야 마땅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결과적으로 군 복무 중 사망했습니다. 국가와 국방부가 마땅히 지켜줬어야 할 그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입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 앞에 어머니들은 다 마찬가지 마음일 것입니다. 그 아들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 달라고 군 헌병대 수사관에게 울며 매달리게 됩니다. 군 헌병대 수사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그 아들의 순직 처리가 좌우되는 현실에서 어머니에게 그 수사관은 하늘 같은 존재이며 '갑' 중에서도 최고의 '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군 헌병대 수사관이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될 '변태적' 요구를 하는 문자를 그 어머니에게 보내며 상상할 수 없는 '패륜적' 행태를 자행한 것이 이 사건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그 피해 사실을 국방부에 용기내어 고발하며 이같은 잘못된 군 헌병대 실태를 개선해 달라고 했더니 국방부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며 그 어머니를 '사실상' 거짓말쟁이로 몬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국가기관도 다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요구합니다. 국방부는 그 피해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아들을 잃게 만든 것도 모자라 군 헌병대 수사관으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한 그 어머니를 상대로 국방부 대변인이 위로나 사과는 고사하고 마치 어머니가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읽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또한 군에서 발생하는 군인 사망사건에 대해 더 이상의 독단적인 군 헌병대 수사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확인했듯 군 수사기관의 무소불위 권한이 이같은 패륜적 행위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따라서 군 사망사고 유족이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난 9월 25일 김광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칭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을 조속히 제정해야 합니다. 일방적이며 편파적인 군 헌병대 수사로는 더 이상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방부, 끝내 사과 거부하면... 그런데 만약 이러한 사과 요구를 끝내 국방부 측이 거부한다면 이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린 책임을 다하고자 저희가 확보한 명백한 증거를 공개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군 헌병대 수사관의 거짓말과 이를 근거로 다시 그 어머니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국방부 측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말 국방부와 군 헌병대 수사관의 주장처럼 그 어머니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개인과 부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 아니면 사과해야 할 국방부가 재차 그 어머니를 두 번, 세 번 짓밟은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낼 것입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두 달이 다 돼가는 지금 이 시점에도 국방부는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과 같은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피해자 어머니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내가 무슨 죄가 이리 많아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문자를 보낸 수사관도 밉고 그런 사실을 부정한다며 저를 거짓말장이로 모는 국방부도 원망스럽네요." 국방부의 입장문 발표 사실을 알게된 그 어머니가 전해온 말이었습니다. 상식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 밖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그 어머니를 죽이고, 또 죽이는 국방부가 저 역시 밉습니다. 그 진실을 밝혀낼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고상만 기자는 김광진 의원실 보좌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