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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drama_45779
    작성자 : 밀덕덕
    추천 : 24
    조회수 : 2166
    IP : 118.34.***.200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6/06/16 00:32:24
    http://todayhumor.com/?drama_45779 모바일
    [또 오해영][14화 리뷰 쪼끔 스포주의] 오발과 명중
    옵션
    • 창작글
    사실 리뷰를 해야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마무리에 가까웠으니까. 아직 떡밥이 살아 숨쉬는데 이게 무슨 망발이냐 싶으시겠지만 필자는 14화 엔딩에서 일종의 완결성을 강하게 느꼈다. 박수를 쳤을 정도로.
     
    개그씬도 수준이 높았고 주인공 두 명과 조연 인물들의 관계 완성, 로맨스 관계의 깔끔한 정리 등등 엔딩이라고 볼만한 요소도 많았고 구성도 탄탄했다.
     
    이게 이해가 잘 안 된다면 관점을 살짝 달리해보자. 만약 이 드라마가 시즌제 드라마였다면 14화의 엔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합한 두 남녀와 그들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정리, 약간의 희망과 약간의 불안을 내포한 열린 결말로 받아들일 여지는 전혀 없을까.
     
    너무 주인공 두 명에게만 몰입한 게 아니냐고?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나 장편 시리즈를 주로 읽다 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솔직히 필자는 14화 엔딩이 이 드라마의 결말이라도 했어도 약간 아쉬워도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했다. 솔직히 너무 시원하게 후일담까지 이야기해주는 것도 상상력을 너무 제한하는 것이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4화나 남았으니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유추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14화 엔딩이 너무 강렬한 완결성을 보여주어서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존의 분석을 돕던 인물간의 구도와 성향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희석되어져 버렸으니까.
     
    ..해서 아래의 글은 2주 뒤엔 이불킥하며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를 내용으로 점철되어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드라마를 뒤늦게 보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도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의외로 늦게 시작하신 분들 꽤 되시드라.
     
    그러니 그저 한 번 흩어보고 넘어가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리뷰할 거 있나 싶어서 시작했던 것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죄송하다.
     
    이하의 글에서 전혜빈의 오해영은 전해영, 서현진의 오해영은 서해영으로 언급하겠으므로 유의하시길 바란다.
     
     
     
    1. 오발탄
     
     
    사실 이 드라마속 내용에서 가장 크게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주요등장인물들이 대부분 피해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드라마의 선악 갈등구도와는 달리 주요인물 4명(박도경, 한태진, 전해영, 서해영)중 누구도 뚜렷하게 악역이라고 단정할만한 여지가 없다.
     
    다만 그들은 드라마속 행위를 통해 기존의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로 혹은 거짓된 피해자로서 움직이게 된다. 말만 들어도 복잡해보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드라마는 가볍게 보면 가볍게 보이는대로 진지하게 보면 또 진지하게 보이는대로 내용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한 거고. 누군가에겐 뻔한 로코물, 누군가에겐 소외된 인간군상의 제자리 찾기, 누군가에겐 클리세의 파괴로.
     
    하여튼 이 드라마의 주요 레파토리를 이끌어가는 구도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들이 믿을 수 없을만큼 엉뚱한 표적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박도경은 실제로 자신을 괴롭게 한 것은 전해영인데 복수를 위해 한태진의 사업을 망하게 했다.
     
    한태진은 실제로 자신을 망하게 한 것은 친구인데 복수를 위해 박도경을 후드려 패고 있다.
     
    전해영은 실제로 자신을 괴롭게 한 것은 도경 엄마인데 복수를 위해 박도경과 파혼했다.
     
    서해영은 실제로 자신을 괴롭게 한 것은 주변인들인데 전해영에게 피해의식을 품고 있었다.
     
     
    전부 원인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표적에다가 총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박도경이 조준을 잘 해서 한태진이 아닌 전해영을 직접 만나 복수하려 했다면 전해영이 아닌 서해영을 만나 자신이 착각하였음을 바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한태진도 자기가 왜 사기죄로 입건 되었는지 제대로 알아봤다면 박도경을 그렇게 때릴 이유는 없었겠지.  서해영도 전해영도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 원인이 과연 외부에 있었는가하는 점이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이와 관련된 꽤나 의미심장한 대사가 몇 번 나온다.
     
     
    박도경(36세. 음향기사, 역대급 애어른): "끝까지 남탓이지."
    라디오 DJ: "불행하게 살려고 작정한 놈을 누가 말려."
     
     
    두 대사가 별로 연관 없어 보이고 이해가 쉽게 되지 않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 4명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자기를 망하게한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글쎄.. 그것도 있겠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
     
     
    박도경은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했고 고칠 의사도 별로 없이 그저 모나게 커온 역대급 애어른이고
     
    서해영은 청소년기의 트라우마에 짖눌려 스스로 모자란 여자라는 자책 하에 남의 눈치를 보며 재고 따지는 여자였고
     
    한태진은 그저 보이는 대로만 타인을 평가하고 제 잘난 맛에 살아온 지라 딱히 남을 배려할 유인이 없었으며
     
    전해영은 유년기~청소년기의 상실과 트라우마로 인해 내면과 외면의 엄청난 격차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하나같이 다들 자기 나름의 결핍과 장애를 끌어안고 있는데 누군가에겐 동질감을 누군가에겐 혐오감을 줄만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거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나 다름 없다. 이들의 장애를 한 두개씩만 빼와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내 이야기라고 감탄하게 될 지도.
     
    어쨌거나 네 사람 모두 자기 행동과 사건의 진짜 원인이 되는 내적 결핍과 장애를 안고 있는데 정작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외부에 있었다. 스스로를 고칠 이유와 동기가 부족했던 것.
     
     
    만약 박도경이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고 타인을 깊이 배려해줄 깜냥도 있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허지아 여사가 어느 한쪽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어야 할 거 아니야하고 반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저 돈 문제만 걸릴 뿐이니 두 사람이 잘 벌어서 그깟 돈 주고 말지하고 결론이 났을 수도 있다. 
     
    또한 전해영의 불안한 내면 심리를 읽어내고 그녀가 극복할 수 있게 옆에서 조심스레 도와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태진이 서해영의 내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한태진 또한 그녀의 결핍과 장애를 읽어내고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왔을 수도 있다.
     
    또한 서해영은 자기를 잘 알아주고 감동 주는 남자에게 푹 빠지는 스타일이니 한태진이 구치소에 간다하더라도 정신차리고 잘 견뎌서 끝까지 기다리겠다며 전의를 불태웠을 테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저마다의 파탄을 맞이했고 그 결과 현재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뒤돌아 보고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목표한 표적을 맞출 수 없는 오발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만 박도경과 서해영은 이전과는 달리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게 결국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전에 박도경과 서해영이 어떻게 서로 바뀌어 갔는지 그리고 이전의 버릇들은 어떻게 남았는지 이야기해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아주 느리고 티 안나는 부분이라 쉽게 눈치채기 어렵지만 박도경과 서해영은 조금씩 변해왔다.
     
    박도경이 미래에 교통사고로 죽는 환각을 보고 어느 순간 돌변해서 미친 척 서해영에게 들이댄 것이 아니고 서해영이 냉수 찜질 한 방에 제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란 뜻이다.
     
     
     
    2.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 박도경
     
     
    두 사람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바뀌어져 왔고 그들의 행위를 변화시킨 건 바로 상대의 스쳐지나가는 말 한 마디였다. 필자도 한동안 심드렁하게 잊고 있던 그 한 마디.
     
    첫번째부터 한 번 살펴보자.
     
     
    서해영: "화났다고 자리 피하고 이런 거 굉장히 나쁜 버릇이예요."
     
     
    4화에서 도경 엄마가 등판해서 삥뜯기를 시전하신 이후 박도경은 서해영이 고스한히 듣고 있었음을 알고 민망하고 아버지 생각도 나고 화도 나고 그래서 장비를 챙겨 녹음을 하러 자리를 뜬다.
     
    서해영은 미안한 마음에 쫒아가며 위의 발언을 하는데... 그녀가 별 생각없이 했던 이 말이 박도경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박도경은 이전부터 화가 나거나 남들 보기 민망하면 자리를 피하는 습성 같은 게 있었는데 4화에서도 그랬고 훈이와 말다툼 할 때도 그랬고 허지아 여사가 회사로 찾아올 때에도 그랬으며 전해영과 우연히 만났을 때도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서해영의 발언 이후 박도경은 화가 나서 자리를 피하다가도 결국 돌아가게 된다. 서해영이 5화의 회식 자리에서 박도경을 발견하여 착각한 채로 또 한 번 점프포옹을 했을 때 박도경은 엄청 쪽팔려 하면서도 그녀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는 단 둘이 있을 때 화를 내며 자리를 뜨고 만다.
     
    그리고 차 끌고 가다가 유턴해버렸지. 하던대로 화도 나고 민망하기도 해서 자리를 피하긴 했는데 서해영의 말이 무의식중에 박혀서 돌아갔달까. 너무 심하게 했나 싶어서 마음에 걸려 돌아간 것이겠지만 따져보면 박도경은 애당초 이런 고민을 할 얘가 아니다.
     
    집까지 태워다 주고 서해영이 '화났다고 오늘도 집에 안 들어오는 건가.'하고 말했을 때는 '바뻐. 일해야 돼.'하고 대답해주기도 한다. 화났다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하는 셈.
     
    그런데 드라마 상에서 박도경이 변명이라도 하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이진상과 서해영. 나머지는 지가 잘못해도 그냥 맞거나 욕을 듣고 말지 변명하지도 않는다. 참고로 서해영의 부모님에게도 그저 죄송하다고 했을 뿐 오해였다거나 실수였다는 식의 변명조차 여지껏 없었다.
     
    30년쯤 되는 죽마고우와 꼴랑 몇 일 만난 여자가 동급이 되버린 거다. ...이 사실을 이진상이 알면 배신감 쩔 듯. 
     
    또한 만약 진짜 화가 났다면 박도경의 스타일상 '다시는 나한테 포옹하거나 하지마.'라고 말했을 것이다. 바로 직전에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오해영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듯이 말이다. 쪽팔리기는 했어도 사실 서해영한테 진짜 화난 것은 아니고 내심은 좋았다라는 뜻. 단 둘이 있을 때만 해라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7화에서 서해영이 싸준 도시락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할 때에도 난데 없는 상황에 당황하며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도시락을 챙겨갔고 스텝들에게 차 안에 도시락 있다고 말한 다음엔 도시락만 건네준 채 또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나서 결국 도시락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등 돌리고 앉아 민망해하다가 한 입 먹고는 쪽팔린 거 따위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하며 남이 뱉은 밥알도 털어내며 흡입을 했지.
     
    박도경의 평소 모습을 아는 스텝들의 놀란 표정이 감상 포인트다.
     
     
    무엇보다 11화에서 서해영이 무릎 꿇고 빌라고 했을 때에 남들 다 쳐다보는 길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것도 쪽팔리고 서해영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되서 화도 나고 미안은 한데 자꾸 똑같은 말 해봤자 효과도 없고 무슨 소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박도경은 서해영을 두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화가 나서 피하는 와중에도 박도경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돌아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끝내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예전 같으면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장면이었달까.
     
    저지른 죄가 너무 크고 끝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결국 도망갔지만 단 둘이 있는 상황이었다면 박도경은 무릎을 꿇었을 확률이 높다. '이깟 무릎 백번이라도 꿇어주겠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해'라는 대사는 안 나왔을 확률이 높고 서해영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박도경에게 더 빡쳤을지도 모르지만.
     
    이렇듯 서해영이 별 생각없이 뱉은 한 마디가 박도경을 서서히 변화시켜왔다. 박도경이 변화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미움 받아도 상관없는 오해 받아도 괜찮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서해영에겐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게 됐거든 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 그 여자 말을 의식중이든 무의식중이든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근데 이것 말고도 더 중요하게 작용한... 14화에서 결국 그들이 재결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대사가 따로 있다.
     
     
    서해영: "여자는 떠난 남자를 욕하지 않아요. 자기한테 짜게 군 남자를 욕하지. 그러니 짜게 굴지 마요. 누구한테도."
     
     
    떠난 사람 욕할 거 없다는 박도경의 말에 서해영이 답한 말이었다. 이거 가만 보면 그저 남일처럼 말하는 것이지만 속내는 당신 엄마에게 돈 뜯긴 거 짜게 군 거 아니니 나는 딱히 나쁘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혼자 두면 불쌍해질 뻔 했다며 따라 나오길 잘했다고 말하는 서해영에게 박도경은 퍽 큰 위로를 받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속을 삭히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인지 박도경은 이후 포장마차에서 답례의 의미로 뜬금없이 '먹는 거 이쁜데'하며 서해영을 칭찬해주었다.
     
    먹는 거 꼴 보기 싫어졌다는 말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가진 서해영에게 먹는 거 이쁘다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야 뻔한 일이다. 진짜 한 방 훅하고 먹은 느낌이었겠지.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언급하겠다.
     
     
    하여튼 이 사건 이후로 박도경은 서해영에게만은 짜게 굴지 않으려고 나름 애썼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었던 생일날에도 일부러 맥주와 안주를 사와서 생일주를 마시자고 하질 않나, 선물로 오르골을 주기도 하고 유리창을 깨도 돈을 안 받았다. 스탠드도 있든 거야 하면서 넘겨준다.
     
    또한 훈이가 욕까지 하면서 제발 변태같이 집 안에서 녹음 같은 거 하지 말라던 것도 무시했는데 서해영이 다시는 녹음하지 말라고 하니 바로 녹음장비를 철거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같이 산 동생보다 서해영이 우위에 서는 순간이랄까... 이 사실을 훈이가 알면 배신감 쩔 듯.
     
    절대 못하던 여자친구가 싸준 도시락 먹기 미션도 성공하고 '잘 먹었어', '맛있었어' 이연타를 날려주기도 한다. 쪽팔려서 혹은 민망해서 에전 같으면 절대 못할 일들을 태연히 하고 있는 거다. 
     
    7화 중반에서 이걸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짜게 굴긴 했지만 12화 눈물의 이별씬에서 박도경은 서해영을 끝까지 배려하면서 밀어냈다. 남 들과 함께 욕하고 전화해서 욕하고 싶으면 백번이라도 좋다고 하기도 하고 집에도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조금이라도 서해영에게 나쁜 남자로 남지 않기 위해 나름 발악했달까.
     
    물론 가장 짜게 굴지 않은 것은 13~14화였다. 미래 환각이라는 오답 노트를 보고 다르게 행동한 것이기는 하지만 박도경은 예전 성격대로 라면 내키는 대로 툭툭 내밷었을 말들 대신 자신의 진솔한 내심을 표현했다.
     
     
     
    "그냥 다시 와주라. 니가 다시 왔으면 좋겠어."
     
    "어디가? 신발 바꿔 신어. 발소리 불편하게 들려."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거 하나도 안 미안해. 근데 이게 본심이야. 너 안고 뒹굴고 싶은 거 참느라 병났다."
     
     
     
    평생을 재고 따지고 어디까지 내 마음을 주면 좋을지 고민하던 여자에게 밀어내도 짜게 굴지 않고 진심을 내비치는 남자가 어떻게 보였을까.
     
    다 줘버리자고 결심했으면서도 결국 박도경에게 결코 다 준 적은 없는 서해영에게 자신조차 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서해영이 박도경과 다시 만날 것을 결심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몇 번 하다가 예전처럼 밀어낼 것 같았는데 예전과는 달리 자기 마음을 숨기는 것도 없고 짜게 굴지도 않으니 이젠 정말 다르겠구나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씩 변해온 그리고 어떤 계기로 완전히 변하기로 결심한 박도경의 마음이 그녀를 결국 되돌려준 원동력이었달까.
     
    근데...이렇게까지 했는데 만약 박도경이 또 밀어내거나 돌아서면?
     
    음... 그 때는 진짜 뭐... 말로는 안 끝나게 되겠지. 희대의 얀데레 여주의 등장과 함께 드라마가 그 날로 끝날테니 박도경이 또 밀어내거나 돌아설 일은 없을 것 같다.
     
     
     
    3.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 서해영
     
     
    서해영이 알고 보면 문제가 좀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해왔다.
     
    남의 눈치보고 자기 주장 강하지도 않고 일 터지면 술 먹고 혼자 속 앓이 하고 누군가에게 자꾸 의지하려고 들고... 1화부터의 미친 모습에 많이들 착각하시지만 드라마속 인물들의 발언이나 서해영 자기 자신의 발언등을 참고하면 이 여주는 원래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문제가 있는 성격의 여자였다.
     
    고등학교 때 달리기 사건을 보면 분명 자신이 전해영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데도 서해영은 일부러 넘어져서 남들의 기대에 맞춰주었고 제철식탁 아이디어를 자기가 냈으면서도 제대로 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제 밥그릇 챙기는 것에 인색했던 것.
     
    그렇게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욕망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소심한 속내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또 스스로 탓하면서도 고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파혼과 함께 제정신이 살짝 가출하시다보니 미친 여자 모드로 생활하게 된 거고....
     
     
    사실 이전 성격의 흔적은 꾸준하게 드라난다. 이 여주는 낯설거나 부끄러울 땐 존댓말을 쓰다가도 화가 나거나 따질 일이 생기면 바로 반말로 들어가신다.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불쑥불쑥 본래의 성깔이 이성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
     
    그런데 그것도 아무한테나 그러지도 못한다는 게 문제다. 박도경에게나 주로 그러고 이진상도 한 번 당했다. 
     
    5화 이전의 서해영은 박도경에게 화를 낼 때도 일단 존댓말을 먼저 썼고 화가 나서 반말로 쏘아붙이기 시작한 건 청담동 스테이크 하우스 사건 이후부터 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4화의 마지막 포옹씬 그러니까 죽어있던 두 사람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서해영은 질투심이 폭발하거나 화가 날 때는 반말을, 이성이 살짝 돌아오면 다시 존댓말을 사용한다. 질투심 폭발한 '좋았니' 3연타가 반말 사용의 효시였다.
     
    박도경은 이 때부터 그냥 아예 말을 놨는데 서해영이 술 먹고 뻗은 걸 챙겨준 이후 마음이 확 열린 듯 하다. 이런 남자는 친하지 않으면, 관심도 없는 남이라면 아예 말도 놓지 않는다.  
     
    5화의 두번째 포옹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사이가 공개된 이후인 6화부터는 일관되게 화나면 무조건 반말, 평상시엔 반말/존댓말 섞어서, 어색하거나 부끄부끄할 때만 존댓말을 사용한다.
     
     
    잡설이 길었는데... 13화 부터 갑자기 술도 안 먹고 당당하게 맞서 보겠다는 서해영의 모습에 너무 갑작스런 변화 아니냐고 의아해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서해영도 박도경처럼 조금씩 변해 오고 있었다.
     
    박도경의 경우 처럼 서해영의 변화도 스쳐지나가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박도경: "술 끓어. 아무한테나 들이대지도 말고, 나 같은 놈한테도 들이대지 말고. 정신차리고 좀 일어나. 못난 여자처럼 자학하는 것도 그만 좀 하고."(6화)
     
     
    참고로 서해영은 1화부터 꾸준히 술을 빨다 못해 박도경이 저 말을 하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밥 먹으며 맥주 한 캔 뜯던 여자였다.
     
    그런데 박도경의 저 말 이후 서해영이 술을 먹는 건 회식 자리와 한태진과의 첫 조우, 박도경과 키스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희란에게 상담 받던 그 날 밖에 없었다.
     
    역사적인 인생 첫 헌팅에서도 맥주컵을 손으로 막으며 먹지 않았다. 말로는 한 잔으로 끝나는 여자가 아니라서였다지만 글쎄... 대낮부터 술 먹고 들어가는 걸 박도경한테 걸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하여튼 진짜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술을 먹지 않은 것. 물론 9화 회식 자리에서 진상 부리던 모습 때문에 기껏 참아온 게 몽땅 도루묵이 되버리긴 했지...
     
    하여튼 이후에도 한태진, 전해영, 박도경까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은 여럿이었고 예전 같으면 언제나 밤이면 밤마다 술이나 빨고 취해 있었을 그녀가 앵간하면 맨 정신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한태진을 점차 잊어가며 박도경에게 빠져갔기 때문일 확률이 높긴 한데... 이전보다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너 이러다가 폐인된다며 술 끓으라던 32년간 키워주고 보살펴 주던 엄마 말도 안 듣던 서해영이 박도경의 스쳐 지나가던 한 마디에 확연히 줄어든 것 같달까.
     
     
    이거 서해영 엄마에게 말해주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물론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13화에서 전국에 셀프호구임을 라디오 인증한 사건일 것이다. 술에 떡이 되서 자기도 모르게 바보짓을 하고 난 뒤 서해영은 냉수 마찰로 출타하신 정신을 다시 찾아왔다. 그 이후 술에 취해서 쑈를 해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각했는지 이후로는 술을 먹지도 않는다.
     
    또한 재고 따지던 남자와도 실패하고 다 줄 거라며 들이대던 남자에게도 실패한 여파가 컸는지 서해영은 아예 남자따윈 필요없어 하면서 살겠다고 이사도라에게 말하기도 한다. 한태진에게 들이대지 않고 박도경한테도 들이대지 않으면서. 쿨 하고 시크하게 정신차리고 자기 인생을 살아보겠다면서.
     
    게다가 한태진에게 차인 이후 자신이 모자란 여자였나 싶어 자학하던 것과 달리 박도경과 헤어진 이후 스스로 못난 여자였나 자학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박도경을 잊어보려고 발악했을 뿐이지. 등급 상승을 위해 만났던 남자와 진짜 사랑했던 남자와의 차이랄까.
     
     
    아무튼 알게 모르게 박도경의 그 한 마디가 서해영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유야 뭐... 박도경이랑 똑같겠지. 박도경을 좋아하게 됐으니 그가 싫어하는 술 먹는 거나 못난 여자처럼 자학하는 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못난 여자처럼 자학하는 것도 그만 좀 하고"라는 이 말은 좀 중의적인 표현이다.
     
    못난 여자 = 자학하는 여자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넌 못난 여자가 아니니 자학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서해영은 전자의 의미로 이해했겠지만 박도경은 의외로 후자의 의미로 말했을 확률이 높다.
     
     
     
    4. 내게 감동을 준 사람.
     
     
    끝까지 민망한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짜게 굴지 않은 박도경과...이전과는 다르게 다른 것에 의존하지도 않고 남의 눈치도 덜 보게 된 서해영이 다시 결합하게 된 것은 그래서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변하지 않은 예전의 성격 그대로였으면 박도경은 민망하고 화가 나서 무작정 자리를 피하거나 상대를 상처 입히는 말을 해댔을 것이고 서해영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다시 의지할만한 남자를 찾아 떠나느라 박도경을 다시 잡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둘 다 실패해서 서로에 대한 애증으로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살았겠지만 말이다.
     
    하나씩 까놓고 보면 결국 서해영이 박도경에게 홀딱 빠져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박도경은 그녀의 마음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와 감동을 준 사람이니까.
     
     
    누구의 말마따나 박도경이 서해영에게 던진 돌이 '명중'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였으니까. 예를 들어보자.
     
     
    2화 초반부에서 서해영은 콧대보강수술비 대신 술을 얻어 먹으면서 난데 없이 박도경에게 '아, 예쁘다고 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모자란 여자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을 그녀에게 이쁘다는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뻔하다. 희란이가 진짜 그런 말을 했을리 없으니 이 남자가 나를 이쁘게 보나하는 생각도 했을테고. 그래서 차 안에서 은근 슬쩍 들이댄 거다.
     
     
    2화 후반부에서 서해영은 한태진이 잘 사고 있다는 말에 절망하여 혼자 술을 빨고 있었고 전 애인 전화에 빡이친 박도경은 술집에서 홧김에 진상을 부리고는 우연처럼 고개를 돌렸다가 서해영을 발견하고는 민망함에 습관처럼 자리를 피했다.
     
    다만 떠나려다가도 다시 돌아와 테이블을 퉁퉁 내려치고 '왜 울어요, 누가 때렸어요?'하고 들이댔다. 뭐, 대신 때려주기라도 하려고 했나.. 하여튼 자괴감과 원망스러움에 말라 죽어가던 서해영에게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준 남자가 나타났으니 그녀의 마음이 활짝 열린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파혼의 진실도 술술 말했을 것이고... 이쯤에서 솔직히 말해보자 과연 그녀가 단순히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일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박도경에게 진실을 고백했을까. 글쎄... 차라리 그럴 거면 점집을 가던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이야기하고 말았을 테지.
     
    그녀가 박도경에게 파혼의 진실을 고백했던 건 아마 자기를 좋게 봐주는, 자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굳이 챙겨주는 박도경에게 살짝 의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도경이 '살아요. 피투성이가 되도 살아요'라는 말을 듣고는 그게 심중에 박혀 이삿날에도 혼자 웅얼거리면서 아둥바둥했던 거고.
     
     
    하이라이트는 3화에서의 박도경 파혼 고백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고 내가 못나서 차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서해영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솔직히 짐작이 안 간다. 그저 그 말을 듣고 바로 다음날 한강에 전 남자와의 웨딩사진첩을 불법투기해 버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을 거라는 짐작 밖에는.... '한 대 맞고 쓰러진 거야.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면 돼.'라는 결심은 덤.
     
    거기에 신발 가져다 놓으며 '혼자 사는 거 광고해요.... 그냥 여기서 살아요, 나도 여기 살꺼예요.'라는 말은 그녀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을 것이다. '겁없이 함부로 감동주고 지랄이야, 어쩔라고'라는 서해영의 발언은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감동받았음을 증명하는 말이다.
     
    이젠 다들 알겠지만 이 여자는 진짜 감정이 격해지면 본심이 튀어나오는데 거기엔 욕이 섞여 있다. 더군다나 너도 나도 여기 살자는 말은... 프로포즈나 다름없다. 서해영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썸을 타기 시작한 것.
     
    서해영이 스탠드도 오르골도 돌려줬지만 끝끝내 신발만은 버리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신발은 서해영의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으니까. 그것마저 버리면 정말 그 사람을 버리는 것 같았을 테니까.
     
     
    박도경이 포장마차에서 뜬금없이 '밥 먹는 거 이쁜데'라고 했던 것 역시 느닷없이 맞은 스트레이트 펀치였을 것이다. 이것도 아마 평생 못 잊을 듯. 솔직히 필자가 결국 한태진이랑은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
     
    밥 먹는 거 꼴보기 싫다고 말했던 남자와 밥을 먹을 때마다 밥 먹는 거 이쁘다고 말해준 남자가 떠오를 텐데 과연 한태진과 제대로 됐을리가 있는가. 아니, 그냥 평상시 밥만 먹어도 박도경이 떠올랐을 것이다.
     
    박도경과 결국 재결합하기로 결심한 이후 집에 가자 마자 마루에서 바둥거리고 밥을 한 입 가득 넣는 장면이 있었음을 떠올려보라. 박도경과 헤어진 이후 이 여자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확률이 높다.
     
     
    뭐... 이후의 오르골과 스탠드는 워낙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때도 박도경은 갑자기 찾아와 그녀의 마음을 두들겼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생일주라고 찾아와 선물로 주고 밤마다 부딪히지 말라고 스탠드를 주고... 이 여자 은근 서프라즈에 쉽게 꽂히는 거 아닐까.
     
    필자의 개인적인 예상일 뿐이지만 박도경이 장미꽃다발에 반지를 가져와서 공개 프로포즈하게 되면 서해영은 겉으로는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장미꽃은 말려서 관짝에 들고 갈 것이고 반지는 아마 가보로 소장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이야 당연히 찍어서 안방에 걸어놓겠지.
     
    꽃다발 받는 거 싫어한다면서 자기 방에 꽃다발 들고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는 여자가 어딨냐....
     
     
    아무튼 먼 일이 터질 때마다 희안하게 잘 찾아와 옆을 지켜주던 거야 두 말할 나위가 없고... 애당초 이 여자는 박도경이란 사람에 대해서 관련된 추억이 너무 많았다. 뭔 일만 하면 떠오를 정도로.
     
    차도 같이 타고 다녔지, 택시와 전철도 타고 다녔지. 밥 먹을 때마다 떠올랐을 거고. 하다 못해 술을 먹으려고 해도 술 끊으라고 했던 박도경이 생각나서 도저히 먹지 못했을 거다. 신발 꺼내 신을 때도 하다못해 옷 갈아 입을 때도. 목욕할 때도 아마 박도경의 상반신 누드가 떠올랐을 것.
     
    물론 시간이 한참 지나면야 새로운 추억으로 덮어서 억지로 잊을 수 있었겠지만... 진짜 자신에 가까운 상태와 박도경과의 추억이 너무 긴밀히 이어져 있다보니 잊으려면 정말 한참 고생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본심' 운운하면서 너만 아픈 게 아니라 너 때문에 나도 병 났다, 너한테 미안하지만 파혼시킨 거 후회 안한다는 둥 이러고 앉아 있으니 이쯤 되면 돌맹이가 아니라 바위를 던진 거다. 마음의 호수가 살짝 살짝 얼어가는 와중에 바위가 떨어졌으니 안 깨지고 배기나...
     
     
     
    5. 남은 것들. 더 많은 변화들.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로 한 두 사람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꽤나 난망한 일이다. 한태진과 전해영이 어떻게 나올지 장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훼방을 놓을지 예측이 어려우니까. 더군다나 여전히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박도경이 어떻게 행동할지도 모호하다.
     
    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딱히 우려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죽는 것도 아쉽지 않고 결국 죽을 걸 알면서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돌아온 놈이 이제와서 또 갈팡질팡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마 두 남녀주인공의 관계는 여전히 공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해영이 흔들리면 또 모를 일이긴 한데... 걔 성격으로는 박도경이 조만간 죽는다고 하면 일단 애부터 가지자고 덤빌 것 같다. 얘는 지금 뒤가 없는 얘다.
     
    행복하다고 느끼니까 지금 같이 죽자고 말하는 여자인데 뒤를 생각할리가 있나. 이렇게 된 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나 잔뜩 쌓아달라고 그래서 당신이 없어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회사에 사표 쓰고 같이 돌아다닐 거 같은뎅.
     
    물론 박도경이 자신이 죽는 미래를 본다는 걸 서해영에게 말할 리가 없긴 하다.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겠지. 영원히 기억에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추억을 쌓기도 하고 서해영이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성장하는 걸 도우려고 하지 않을까.
     
    사랑도 일도 승승장구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서해영은 더욱 행복해질테고 박도경은 겉으로는 같이 기뻐하면서도 속으로는 더욱 절망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것 역시 결코 미련이 남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닭게 되면서 '살고 싶다'는 욕심을 더 크게 느끼겠지.
     
    요게 핵심인데 이 드라마의 구조상 불행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구해줄 수 없듯이 죽기로 작정한 사람을 살려줄 수는 없다. 박도경이 살려면 살고 싶다는 갈망을 더 크게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서해영을 더 크게 사랑해주어야 한다.
     
    서해영으로 모자라다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범위를 확대해서라도.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박도경이 이전과는 달리 변했기는 한데... 그 변화의 대상은 서해영으로 한정되어져 있다. 모든 걸 다주고 싶은, 죽어서도 후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꼴랑 서해영 한 명 뿐이라는 것.
     
    예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비판한 적이 있는데 서해영이 슬퍼하는 건 안 되고 가족이 슬퍼하는 건 괜찮나? 서해영과 서해영 부모님의 관계, 박수경과 이진상의 관계를 보면서 박도경도 이것을 금세 깨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박도경은 자신이 혹시 죽게 되더라도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이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의 변화를 확대시킬 수 밖에 없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던데'하면서 의아해 하겠지.
     
    허지아 여사와의 관계에도 꽤나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엄마에게 가진 죄책감도 상쇄시키고 그녀가 진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서로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 같으니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허지아 여사가 서해영에게까지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에 있겠지만 말이다.
     
     
    아, 물론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언제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참고로 다들 눈치 못 챈 모양인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건 박도경만이 아니라 서해영도 마찬가지이다.
     
    '엥?'하고 놀라셨다면 다시 복습해보시라. 서해영도 좋아한다고만 말했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얘들은 정말 일관성 있게 꼭 닮았다.
     
     
    ....이 글만 거의 네 다섯 시간은 붙잡고 있었던 거 같은데... 남은 이야기는 또 나중에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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