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농산물도매시장 기능직 공무원 정충호씨
매일 손수레 끌며 시장 한 바퀴… 하루 500여명이 혜택
“굶는 사람 있는 판에 버려지는 채소 많아 안타까웠어요”
[조선일보 최규민 기자]
21일 인천 부평구 삼산택지 개발지구 내에 있는 삼산농산물도매시장. 시장이 슬슬 파장에 접어들 무렵인 오후 3시쯤이 되자 한 중년의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상인 한 명이 그를 부른다.
“정 실장님, 여기 양파 남은 게 좀 있는데 가져가세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다들 감사하게 먹을 겁니다.”
‘정 실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삼산시장 시장팀에서 시장관리 등의 일을 하는 기능직 8급 공무원 정충호(57)씨. 정씨가 시장 안을 한 바퀴 돌자 손수레는 금세 각종 채소로 가득찼다. 배추, 무, 감자, 오이, 당근, 양파 등 조그만 야채상을 차려도 될 만큼 다양했다. 상인들에게 건네받은 야채는 이날 하루 팔리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 것들이다.
시장 한켠에 야채 상자를 차곡차곡 정리한 뒤 정씨가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첩 안에는 교회, 장애인협회, 보육원, 양로원 관계자들의 명함이 빽빽하게 정리돼있었다. 정씨가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통화를 시작했다.
“목사님이시죠? 말씀하셨던 감자하고 양파가 좀 들어왔는데 가져가세요. 예, 나물도 좀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전화를 받은 몇 군데 교회와 봉사단체 관계자들이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정씨가 나눠준 야채를 차에 가득 실은 이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시장을 떠났다. 모두 노인이나 장애인, 결식아동 등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에게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씨가 나눠준 야채는 이들의 손을 거쳐 다음날 무료급식소에서 500여명의 이웃들에게 한 끼 식사로 제공된다.
정씨가 삼산시장의 ‘푸드뱅크(음식 은행)’ 역할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쯤.
“한쪽에선 사람들이 굶고 있는 판에, 시장엔 품질이 조금 떨어졌다며 떨이로 팔리거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채소들이 많아 안타까웠지요.”
정씨는 이때부터 매일 직접 수레를 끌고 다니며 “좋은 일에 쓰려한다”고 상인들을 설득, 야채들을 수거해 무료급식소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다쳐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였다.
“처음엔 상인들한테 오해도 많이 샀죠. ‘정 실장이 가져다가 팔아먹는 거 아니냐’면서요. 그럴 때마다 급식소 분들을 상인에게 데려가 ‘이 분이 야채를 대주시는 고마운 분’이라고 소개시켰죠. 그러다보니 점차 오해가 사라지더군요.”
덕분에 이젠 충분히 내다팔 수 있는 물건들까지 인심좋게 내어주는 상인들도 많이 생겼다.
이날 오이 8상자를 건넨 상인 박종선(47)씨는 “몸도 불편한 양반이 좋은 일 한다며 매일같이 무거운 수레 끌고 다니는데 가만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야채를 받아 가는 급식소도 처음 한두 곳에서 지금은 30여곳으로 늘어났다. 소문이 퍼지면서 부평과 부천 뿐 아니라 시흥이나 서울에서까지 찾아온다.
4년째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는 부개교회 배광호 목사는 “요즘같이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안좋은 때 정 실장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씨가 수거해 나눠주는 농산물은 하루 평균 1t가량. 정씨는 “지난해 나눠준 채소를 값으로 따지면 최소한 2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이달 말 정년퇴직한다. 하지만 퇴직 후에도 푸드뱅크 역할은 계속할 계획이다.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데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해야죠.”
(최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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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복 받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