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1129135509313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 밀려 미래 비전 논의 없어"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이 1900년대 대한제국이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거의 동형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내외적 상황과 지금의 내외적 상황이 100여 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송호근(57)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등 현재 돌아가는 판세가 100여 년 전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살길을 모색하려면 국력을 결집해내야 함에도 현재 한국 사회는 구한말(舊韓末) 때처럼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내부의 분열과 갈등 속에 허우적대며 기운을 탕진하고 있다고 송 교수는 우울해했다.
'인민의 탄생'(민음사 펴냄) 출간 2년 만에 같은 출판사에서 '시민의 탄생'을 낸 송 교수를 최근 서울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사실 오늘날 보면 그때보다 외부적인 상황은 더 나빠졌다"면서 "주변 외세의 4강 구도는 변하지 않았고 여기에 통제 불능의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생겼기 때문에 훨씬 더 악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내부적으로도 성리학적 질서에 얽매여 국제질서 변화에 둔감했던 구한말 때처럼 현재 한국도 20세기 성공 신화에 안주한 채 미래 담론이 실종됐다"면서 "20세기 성공의 끝 자락에 와있음에도 20∼30년 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의 논의는 전혀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우리가 그동안 큰 사건을 많이 겪어서 위기에 대해 일종의 면역이 돼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은 100여 년 전 국가가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에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는 송 교수의 발언은 현실 비판으로 이어졌다.
"결국,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종북(從北) 발언 문제도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더구나 민주화도 25년이 지난 상태라면 종북이라는 것을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왜 그런 발언이 나오는지 조금은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죠. 양쪽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해가 될만한 말이나 험한 말은 자제하는 게 맞습니다. 다들 자해하는 수준까지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보다는 20∼30년 뒤의 한국의 비전을 놓고 얘기하면 현재 자기 입장을 자제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끝장을 보고 싶어하는 이런 태도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죠."
송 교수는 선진국에서 흔히 목격하는 양보와 타협의 성숙한 자질, 시민 윤리라고 부르는 그런 습속이 한국 사회에는 결핍됐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현실을 읽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학자로서 의문을 품었다. 왜 그런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송 교수가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기원을 찾아 나선 이유다. 그 연구의 첫 결과물이 2011년 내놓은 '인민의 탄생'이다. 이번에 나온 '시민의 탄생'은 그 후속작이다.
'인민의 탄생'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한 봉건 질서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인민,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민란에 휩싸이거나 기존 질서에 모순을 느끼게 된 인민을 다뤘다.
'시민의 탄생'은 이러한 인민이 존재론적 자각을 거쳐 근대적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공론장 분석을 통해 추적했다.
송 교수는 "유럽에서 시민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됐다. 약한 국가가 바깥에 있고 그 안에서 서로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격돌하는 경험을 하면서 타협과 절충의 문화가 싹텄다"며 "그러면서 시민성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리고 그 속에는 헤게모니를 쥔 주도층이 있었다"면서 "그 주도층이 앞장서서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 나가야 한다는 집단적인 중지를 모아나갔다"고 했다.
그는 "반면 우리는 시민의 원형이 생겨나긴 했으나 시민성을 자율적으로 형성할 기간 없이 곧바로 스러진 국가를 구제하라는 명령을 부여받았다"면서 "서양의 시민이 국가와 대결 구도를 통해 획득했던 시민성을 키워나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민족주의로 빨려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광복 이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4년에서 1960년 사이에 시민 개념이 나타났지만 박정희 시대를 지나면서 다시 얼어붙었다. 시민사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와 책임의 문제, 사회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송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이 터지고 나니까 이제 시민은 책임보다는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며 "산업화 때 유보당한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체제에서 빼앗긴 임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권리투쟁이 지난 25년째 계속된 것"이라면서 "시민성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으니 시민성의 핵심인 공익이라는 책임의식, 자신의 계급적인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공공선을 위해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재산 축적과 출세를 향해서만 줄달음치고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했다. 시민성을 학습하지 못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만 비대해졌지 내부 정신은 비어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이라고 짚었다.
송 교수는 "다만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장점만을 취하는 후발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진단만 올바르게 내린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결핍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힌 이 책이 한국 내 갈등구조를 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속 과제로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 20세기 국가와 시민 사회'를 펴낼 예정이다.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과 더불어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송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림대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로 재임했고, 1994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조교수로 임용돼 학과장과 사회발전연구소장,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복지국가의 태동: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