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배경 부림사건까지 '난도질' [미디어오늘 2013.11.20]
민주화운동 인정 받은 부림사건 '색깔론' 확산돼…부림사건 관련자 "사실 왜곡 날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그린 영화 <변호인>이 개봉을 앞두고 근거 없는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배우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교묘히 왜곡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은 물론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은 지난달 31일 1차 예고 동영상이 공개되고 난 후 70만명이 시청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고, 돈 밝히는" 송우석이라는 세무변호사가 대학생이 고문을 받은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점점 인권에 눈을 뜬다는 내용이다.
단순명료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영화 변호인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상황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면서 영화의 의도와는 별개로 관객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특히 영화 <변호인>은 전두환 독재 정권의 용공 조작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 주요 플롯인데 현재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및 정당해산 청구와도 대비되고 있다.
또한 현재 야권에서 박근혜 정부가 공안탄압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영화 <변호인>은 정면으로 공안 탄압에 맞선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가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을 맡은 송강호씨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재판부를 향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가 국민입니다”라고 말한 대목도 현재 상황과 비교된다는 의견이 많다.
영화 개봉일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1년이 되는 12월 19일로 잡은 것도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 개혁세력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지지세력의 향수도 영화 흥행에 한몫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영화 <변호인> 제작사 측과 배우들은 정치적 색깔을 빼고 철저히 대중영화로서 관객에게 다가가겠다며 이런저런 정치적 해석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양우석 감독은 19일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제작 보고회에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는 않았다. 특정 인물을 모델로 하긴 했지만 인물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치열한 시대에 상식적으로 살려고 했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예고편 공개 후 관심이 폭발적이더라.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로만 봐달라는 당부와는 다르게 이미 정치적인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부림 사건을 부정하면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와 일부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부림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 검사를 맡았던 고영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해 "부림 사건은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그 피의자가 저한테 한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뀌는 법이고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을 저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게시물로 올리며 이 사건을 변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도 공산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영주 위원장은 지난 9월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도 "부림사건은 명백한 민중민주주의 운동, 즉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노무현·문재인 두 사람은 부림사건을 변호하면서 핵심인사들과 인맥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일베 회원 등 보수적인 성향의 누리꾼들은 고영주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문재인 의원이 당선됐으면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라며 큰 호응을 보냈다.
부림사건은 지난 1981년 부산지역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이적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하지만 불법적인 절차에 더해 혹독한 고문 흔적이 나오는 등 전두환 정권 집권 초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산지역 최대 용공 조작 사건으로 밝혀졌다. 1심에서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5~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83년 12월 전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고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힌 결정적 인물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고,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에 눈을 뜨고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1981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 부림사건으로 강제연행돼 고문을 받았던 고호석씨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저희들이 최소 20일에서 60일 넘게 맞고 정신이 피폐해 있는 상태에서 검찰 조사로 넘어갔다"며 "당시 수사검사는 최병국, 고영주, 장창호 검사로 우리가 대공분실에서 개처럼 얻어맞고 나와 치료하던 중 수사기록을 정리하고 있었고 최 검사는 ‘사실과 다른 게 없죠’라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고호석씨는 “대공분실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해 유치장으로 넘어오면서 다른 소리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협박해 고도로 위축된 상태였고 유치장에서 밤마다 악몽을 꿨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검사를 위협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며 “경찰 조서와 검찰 조서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같다. 고영주 위원장의 주장은 검찰에 유리한 진술인데, 그럼 진술을 적은 조서를 공개하면 되는 일 아니냐"고 반박했다.
특히 고씨는 고영주 위원장이 부림 사건에 문재인 의원을 끌어들여 비난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 날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씨는 “부림사건은 81년도에 일어났고 문재인 의원은 82년에 막 부산지역 변호사로 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을 같이 하기로 한 것”이라며 “우리 사건의 변호인 명단에 문재인 의원은 없었고, 단 한번도 법정에 나온 적이 없는데 이를 알고 있는 고영주 위원장의 주장은 완전한 왜곡, 날조”라고 말했다.
현재 돌아가는 시국 분위기에 비춰보면 영화에서 부림사건이 재조명될수록 보수 강경파들의 주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주장이 서로 정면 충돌하게 될 가능성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 영화 변호인 스틸컷 ⓒ네이버
영화 <변호인>이 주목을 받으면서 부림 사건과 관련된 현직 정치인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부림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당시 부산지검 최병국 검사는 지난 2000년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17대, 18대 연거푸 3선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한 판사가 현재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인 것도 인터넷상에서 화제다. 부림사건의 무료 인권 변호를 맡았고 이후 대통령을 지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에 반해 용공조작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이들의 향후 정치행보를 비교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우 송강호씨가 제작보고서에서 "처음에는 '변호인'을 거절했다. 이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과연 그분의 인생 단면을 표현할 수 있을지, 누를 끼치지 않게 연기할 수 있을지 감히 겁이 났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 번 거절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진의를 왜곡한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송강호씨가 노 전 대통령의 삶을 표현한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대목을 들며 '당연히 송강호가 자살을 할 수 없지"라는 의견을 올렸고, 다른 누리꾼은 송씨가 처음 노 전 대통령 배역에 대한 제안을 거절한 것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베에서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고 있다. 기존에 사회 비판적인 영화에 대해 소위 '별점 테러'를 해왔던 모습도 여전하다. 일베 한 회원은 "영화 변호인에 대한 네이버 평점 산업화가 시급하다"며 평점을 매기는 사이트의 주소를 링크해놓았고, 한 누리꾼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뇌물 처먹고 부엉이 바위에서 운지하는 장면 나오냐"는 악의적인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제작사 측은 개봉하기 전 비난과 평가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로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영화 <변호인>의 마케팅 홍보를 맡은 퍼스트룩 측은 양우석 감독과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영화 외적인 이슈에 대해 예민한 부분이 있고 현재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본인(양우석 감독)께서 현재 어떤 말을 하는 것 자체로 경솔할 수 있고, 오히려 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