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애들이랑 마시는 술은 흥이 안 난다. 과장이라는 사람 입에서 터진 푸념이었다. 조금 전 가졌던 저녘식사. 팀원들 전체가 참석하는 세 달만의 회식자리였다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반가운 마음에 눈누난나 참석한건 아니었다. 못생기고 싶어서 못생긴 것은 더더욱 아니고. 나쁜 새끼. 그렇게 입밖으로 내고 싶었을까. 회식이 끝나고 홀로 귀가하는 길. 힘아리없는 운동화 끈이 허공을 휘젓는 게 그리도 처절하게만 보였다. 처참하리만치 몽롱한 기운의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오른 것까지는 좋았다. 좋았다만, 미미한 지하철의 흔들림이 작은 지진처럼 몸을 괴롭혔다. 반 병 술 때문이가? 언제 지어진지 모를 가슴팍 몽아리가 느껴졌다. 가슴팍 어디에 매달린지 모를 몽아리란 이름의 묵직한 무쇠추는 윗몸을 힘껏 지면으로 끌어내려 내동댕이라도 치려는지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지하철 지진의 힘과 상체에서 대롱거리는 무쇠추 덕에 몸은 자연히 수구러들고 숨은 가빠와 갑갑증이 일었다. 양 볼에 핀 홍조에는 장작불같은 거센기운이 솟구쳤고, 사람이 꼼꼼하게 들어선 4호선 객차안의 뜨뜨미지근한 공기는 타인들의 체온과 그들이 내뱉은 숨자락이란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갑갑증이 곱절의 증세를 보였다. 입 안으로 지하철 히터바람의 미세한 먼지맛이 돌았다. 지하철 특유 쇠비린내에 섞인 쾌쾌한 냄새가 가미된 객실. 스스로의 숨결마저 거북한 기분이 든다. 당장이라도 지하철의 창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싶었다. 초봄, 달리는 차창 밖으로 차가운 바람 한 모금을 마셨으면…. "아이구, 아이구 미안햐, 색시." 여닐곱 정거장동안 앞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내게 시선을 들어 말했다. 발 근처에 슬쩍 무언가가 와서 닿았다는 느낌에 발치를 내려다보니 작은 감귤이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할머니가 떨궜겠거니, 별일도 아닌 것이었다. 괜찮다는 말대신 웃음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더니, 할머니는 별것도 아닌 일에 미안함을 느꼈던지 가슴에 떠안고 있던 보자기에서 귤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노약자석에 앉아 짐을 끌어 안고있었다. 촌스러운 분홍빛 보자기로 머리를 질끈 칭여 맨 봇짐.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혹여 할머니 봇짐에서 날아오는 것일까. 의심이 들었다. 그 봇짐에서 나온 귤이라는 생각에 괜히 죄없는 귤이 깨름직했으나 다시 미소로 대응하며 귤을 넙죽받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전역에서 지하철을 벗어났다. 두 정거장 길이라면 적어도 30분은 걸어야 했지만, 도심매연도 지옥철 속 괘씸함에 비하면 갖난 아기들 애교같은 수준이었다. 기분전환을 삼아 인도 위에 쪼그려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발이 꼭 들어맞도록 힘껏 끈을 조여매니 괜히 발이 조금 가벼워 졌다는 착각을 불렀다. 걷는 동안 문득문득 머리 속을 헝클어 놓는 과장의 말을 애써 꾹꾹 눌러담아가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찬공기가 머리를 식혀주지 않았다면, 도로변에 대고 꽥 소리를 질러버렸을 것이다. 좀 전의 지하철 안이었다면 목을 놓아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혼자생각이 깊어지다보니 다음 지하철역까지가 단숨의 길이었다. 어느덧 역 앞 큰길의 육교가 보였다. 육교를 건너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아파트 단지에 닿는 큰도로가 나온다. '곧 집이다. 곧 집에 도착한다.' 하는 생각따위로 스스로를 달래며 시야를 잃은 채 걷던 길. 흐리멍덩해가던 정신을 급작스레 밝혀 온것은 기습적으로 들려온 목소리에서였다. "샥시." 당연스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걷던 길이었다. 심지어 은근한 어두움에 시선을 밝은 곳으로만 고정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옆구리를 찔러오는 목소리에 소르라치는 수 밖엔 없었다. 소스라치자 일순 시야가 검고 멀게 아득해졌다. 자동이었다. 샥시? 내가 그 샥시인가? 하고 시야를 훑으니 어느세 육교 계단 밑이었다. 조금 전 지하철에서 귤을 건내 받은 할머니가 육교 계단 밑 한켠에 바싹 붙어앉아 봇짐을 끌어안고 있었다. 일부러 겁을 주려 숨어있었다고 해도 믿을 법할만큼 할머니는 존재감이 옅었다. "저요?" 하고 물어 놓고도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분명 나를 불렀음이 당연했다. "내가 계단이 그랴 찌까네 버거운디, 샥시 쪼꼼만 도와주구랴. 이?" 얼핏, "저리로 7분, 8 분 거리를 돌아가면 큼지막한 횡단보도가 있어요." 말을 하려다, 곧 그만 두었다. 지리하게 장황한 길 설명을 하며 시간을 보낼바에, 깔끔하게 육교 쯤 건너드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짐 이리주세요. 할머니." "그랴?" 할머니가 자릴 털고 일어나며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다 일어 선 것인데도 등이 굽어서인지 키가 내 어깨만치 밖에는 오지 않는 듯 했다. 왠지 집요하게 얼굴을 뜯어보는 할머니의 눈길에 시선을 맞추자, 아까 지하철에선 유심히 보지 않았던 할머니의 얼굴이 세세히 눈에 들어왔다. 며칠은 뙤약볕에 말려둔 나무껍질 같은 얼굴. 자잘하고 섬세하게 세겨진 주름살이 검게 그을린 피부에 빼곡하게 드리워있었다. 단순히 건조함을 넘어 살갓이 퍼석거린다는 인상이었다. 짐을 받아 한 손에 쥐자 의외로 묵직한 것이 보자기가 팽팽하게 늘어져내렸다. 그리고 아까 지하철에서 의심한 것처럼, 은은하게 펴져나오는 쾌쾌한 향의 범인을 봇짐으로 확정지었다. 짐을 건낸 할머니는 얼굴의 만연한 주름을 한껏 찌뿌러트리며 미소 지었다. 기분 꿀꿀하던 밤길을 보상 받는다는 생각이 드리만치 기분좋은 미소였다. 육교를 건너고 없던 선의가 봇물이 터졌는지 박차를 가하며 별반 마음에도 없던 말이 튀어나왔다. "댁이 여기서 머세요?" "아니여, 죠오기 아파트 담따라 돌아가면 금방이여. 샥시 고마우, 이제 짐 주구랴." "그럼 댁까지 들어드릴게요." "이? 참말로?" "네, 저 여기 아파트 살거든요." "그럼야 내는 고맙제." 등허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에 오히려 내가 구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집을 눈앞에 두고서 아파트 단지 담자락을 따라 선선히 걸었다. - 1부 끝 -
못생긴 여자애들이랑 마시는 술은 흥이 안 난다.
과장이라는 사람 입에서 터진 푸념이었다.
조금 전 가졌던 저녘식사. 팀원들 전체가 참석하는 세 달만의 회식자리였다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반가운 마음에 눈누난나 참석한건 아니었다.
못생기고 싶어서 못생긴 것은 더더욱 아니고.
나쁜 새끼. 그렇게 입밖으로 내고 싶었을까.
회식이 끝나고 홀로 귀가하는 길.
힘아리없는 운동화 끈이 허공을 휘젓는 게 그리도 처절하게만 보였다.
처참하리만치 몽롱한 기운의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오른 것까지는 좋았다.
좋았다만, 미미한 지하철의 흔들림이 작은 지진처럼 몸을 괴롭혔다.
반 병 술 때문이가? 언제 지어진지 모를 가슴팍 몽아리가 느껴졌다.
가슴팍 어디에 매달린지 모를 몽아리란 이름의 묵직한 무쇠추는 윗몸을
힘껏 지면으로 끌어내려 내동댕이라도 치려는지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지하철 지진의 힘과 상체에서 대롱거리는 무쇠추 덕에
몸은 자연히 수구러들고 숨은 가빠와 갑갑증이 일었다.
양 볼에 핀 홍조에는 장작불같은 거센기운이 솟구쳤고, 사람이 꼼꼼하게 들어선
4호선 객차안의 뜨뜨미지근한 공기는 타인들의 체온과 그들이 내뱉은 숨자락이란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갑갑증이 곱절의 증세를 보였다.
입 안으로 지하철 히터바람의 미세한 먼지맛이 돌았다.
지하철 특유 쇠비린내에 섞인 쾌쾌한 냄새가 가미된 객실.
스스로의 숨결마저 거북한 기분이 든다.
당장이라도 지하철의 창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싶었다.
초봄, 달리는 차창 밖으로 차가운 바람 한 모금을 마셨으면….
"아이구, 아이구 미안햐, 색시."
여닐곱 정거장동안 앞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내게 시선을 들어 말했다.
발 근처에 슬쩍 무언가가 와서 닿았다는 느낌에 발치를 내려다보니
작은 감귤이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할머니가 떨궜겠거니, 별일도 아닌 것이었다.
괜찮다는 말대신 웃음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더니, 할머니는 별것도 아닌 일에
미안함을 느꼈던지 가슴에 떠안고 있던 보자기에서 귤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노약자석에 앉아 짐을 끌어 안고있었다.
촌스러운 분홍빛 보자기로 머리를 질끈 칭여 맨 봇짐.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혹여 할머니 봇짐에서 날아오는 것일까. 의심이 들었다.
그 봇짐에서 나온 귤이라는 생각에 괜히 죄없는 귤이 깨름직했으나
다시 미소로 대응하며 귤을 넙죽받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전역에서 지하철을 벗어났다.
두 정거장 길이라면 적어도 30분은 걸어야 했지만, 도심매연도
지옥철 속 괘씸함에 비하면 갖난 아기들 애교같은 수준이었다.
기분전환을 삼아 인도 위에 쪼그려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발이 꼭 들어맞도록 힘껏 끈을 조여매니 괜히 발이 조금 가벼워 졌다는 착각을 불렀다.
걷는 동안 문득문득 머리 속을 헝클어 놓는 과장의 말을 애써 꾹꾹 눌러담아가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찬공기가 머리를 식혀주지 않았다면, 도로변에 대고 꽥 소리를 질러버렸을 것이다.
좀 전의 지하철 안이었다면 목을 놓아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혼자생각이 깊어지다보니 다음 지하철역까지가 단숨의 길이었다.
어느덧 역 앞 큰길의 육교가 보였다. 육교를 건너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아파트 단지에 닿는 큰도로가 나온다.
'곧 집이다. 곧 집에 도착한다.' 하는 생각따위로 스스로를 달래며
시야를 잃은 채 걷던 길. 흐리멍덩해가던 정신을 급작스레 밝혀 온것은
기습적으로 들려온 목소리에서였다.
"샥시."
당연스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걷던 길이었다. 심지어 은근한 어두움에 시선을 밝은 곳으로만
고정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옆구리를 찔러오는 목소리에 소르라치는 수 밖엔 없었다.
소스라치자 일순 시야가 검고 멀게 아득해졌다. 자동이었다.
샥시? 내가 그 샥시인가? 하고 시야를 훑으니 어느세 육교 계단 밑이었다.
조금 전 지하철에서 귤을 건내 받은 할머니가 육교 계단 밑 한켠에
바싹 붙어앉아 봇짐을 끌어안고 있었다.
일부러 겁을 주려 숨어있었다고 해도 믿을 법할만큼 할머니는 존재감이 옅었다.
"저요?" 하고 물어 놓고도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분명 나를 불렀음이 당연했다.
"내가 계단이 그랴 찌까네 버거운디, 샥시 쪼꼼만 도와주구랴. 이?"
얼핏, "저리로 7분, 8 분 거리를 돌아가면 큼지막한 횡단보도가 있어요."
말을 하려다, 곧 그만 두었다. 지리하게 장황한 길 설명을 하며 시간을
보낼바에, 깔끔하게 육교 쯤 건너드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짐 이리주세요. 할머니."
"그랴?"
할머니가 자릴 털고 일어나며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다 일어 선 것인데도 등이 굽어서인지 키가 내 어깨만치 밖에는 오지 않는 듯 했다.
왠지 집요하게 얼굴을 뜯어보는 할머니의 눈길에 시선을 맞추자,
아까 지하철에선 유심히 보지 않았던 할머니의 얼굴이 세세히 눈에 들어왔다.
며칠은 뙤약볕에 말려둔 나무껍질 같은 얼굴. 자잘하고 섬세하게 세겨진 주름살이
검게 그을린 피부에 빼곡하게 드리워있었다. 단순히 건조함을 넘어 살갓이 퍼석거린다는 인상이었다.
짐을 받아 한 손에 쥐자 의외로 묵직한 것이 보자기가 팽팽하게 늘어져내렸다.
그리고 아까 지하철에서 의심한 것처럼, 은은하게 펴져나오는 쾌쾌한 향의 범인을 봇짐으로 확정지었다.
짐을 건낸 할머니는 얼굴의 만연한 주름을 한껏 찌뿌러트리며 미소 지었다.
기분 꿀꿀하던 밤길을 보상 받는다는 생각이 드리만치 기분좋은 미소였다.
육교를 건너고 없던 선의가 봇물이 터졌는지 박차를 가하며 별반 마음에도 없던 말이 튀어나왔다.
"댁이 여기서 머세요?"
"아니여, 죠오기 아파트 담따라 돌아가면 금방이여. 샥시 고마우, 이제 짐 주구랴."
"그럼 댁까지 들어드릴게요."
"이? 참말로?"
"네, 저 여기 아파트 살거든요."
"그럼야 내는 고맙제."
등허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에 오히려 내가 구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집을 눈앞에 두고서 아파트 단지 담자락을 따라 선선히 걸었다.
- 1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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