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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4472
    작성자 : nangbi
    추천 : 11
    조회수 : 1478
    IP : 211.36.***.252
    댓글 : 40개
    등록시간 : 2016/06/09 22:01:51
    http://todayhumor.com/?love_4472 모바일
    몇 줄은 19] 이별에 대한 어떤 소설] 김연우, 때문이다
    옵션
    • 창작글
     
    그러니까 문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나에게, 그리고 그녀에게도. 

    그날은 언제나와 같은 날이었고 여느때처럼 우리는 만났다.
    늘 그랬듯 거리를 걷고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았다.

    버릇처럼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를 하고 그녀의 가슴을 만지다가
    별 다른 일 없이 모텔에 가서 섹스를 했다.

    밤새 나는 세 번쯤 사정했고 그녀는 매번 젖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어 당연하다는 듯 한번 더 그녀의 위에 올랐다.

    익숙하게,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가 밤 사이 생리가 터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떡하지 하며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나는 안에다 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볕이 따끔하게 내리쬐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모텔을 나섰고
    순대국에 소주 한병을 나누어 마시고는 헤어졌다.
    문자할게. 응, 잘 들어가.

    언제나처럼, 여느때같이, 늘 그랬듯.

    버릇처럼 익숙하게 우리는 만나 사랑했고
    아니 사랑하고 아니, 어쩌면 사랑했다고 해야 할까.

    별 다른 일도 없었는데 그날 밤 왜 싸워야만 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힘들다고, 그녀는 말했었다.

    내가 널 힘들게 해?
    아니, 오빠말구, 그냥 사는게, 그냥...

    칭얼대는 그녀를 받아주는 건 늘 익숙한 일이었기에
    나는 괜찮다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달래지지 않았다.

    힘들어, 미치겠어, 내일 출근도 하기 싫고, 또 모레도 싫고,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루가 될 거 같아.
    그냥 싫어. 그냥, 다 싫어.

    그때부터 그녀는 모든 싫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지는 일부터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싸는 모든 일이, 싫다고 말했다.
    싫을 만한 것들과 싫지 않을 만한 모든 것이 싫고
    심지어 좋은 것 마저 싫어서 싫어하는 자신조차 너무 싫다고.
    나는 무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럴때 해 줄 말이 없는 내가 싫었다.

    오빠, 듣고 있어?
    들어. 
    난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너 싫어하지마, 내가 미안해.
    뭐가?
    그냥, 미안해.
    그러니까 뭐가?
    아무것도 못 해줘서.
    어떻게 해 달라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잖아.
    알아, 아는데....
    알면 미안해 하지마.
    알았어. 하아....
    왜 한숨을 쉬어?
    아냐.
    뭐가 아닌데?
    아냐.
    대체 뭐가 아니냐구?
    그럼 어쩌라구 나보고!
    .
    .
    .
    .
    .
    미안... 화내서...
    아냐, 내가 미안해.
    나도 싫어?
    무슨 말이야?
    그럼 나도 싫으냐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말인데?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싫다면서, 그럼 나도 싫을 거 아냐. 

    휴...

    아니다, 미안해, 내가 괜히 말 꺼냈네. 다신 오빠한테 이런 말 안할게.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잖아.
    알아, 아는데, 그냥 싫어서 그래, 그냥, 그냥, 그냥, 그냥 다.
    사랑해.

    지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그럼 무슨 말을 원하는건데?
    그런 거 없어.
    너 대체 왜이래?
    몰라! 나도 모른다구! 그냥 좀, 듣기만 하면 안돼?
    너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아...
    지금 니가 한숨 쉴 때가, 하아... 

    아니다 그만하자.

    오빠.
    왜.
    당분간, 당분간 우리 시간을 좀 가지자.

    그렇게 시작된 당분간은 어느새 한동안이 되어 버렸고 나는 아직까지 싸워야 했던 이유를 모른다.
    그냥, 싸웠다. 신기하게도 한주가 지나도록 나는 그녀에게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늘 먼저 연락하고, 다 받아주고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지겹도록 되뇌이던 주책덩어리인데
    놀랍도록 차분했다.

    물론 보고는 싶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했는지도, 아니 사랑하는게 분명하다.
    아니...사랑했던 걸지도... 

    그러니까 문제는 '했는지'와 '하는지' 사이에 있을 것이었다.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생각만 했다.
    우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연대기처럼 따라가보기도 했고
    받은 편지들과 메일들을 글자 단위로 해체하듯 뜯어보기도 했다.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다가 싸웠던 일들을 되짚어봤고
    그 싸움들을 어떻게 풀었었는지
    싸움이 결국 우리 사이를 얼마나 견고하게 묶어 주었는지.

    우리가 우리로서 존재할 때 든든했던 감정과
    실망시키고 다시 믿음을 주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치며 단단해졌을 사랑을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나처럼 그녀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그녀와 나의 생각이 같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맞물릴수록 우리의 추억이란 어쩌면
    나와 그녀가 나누어 가진 각자의 기억임에 다름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표현이 얼마나 절묘한 것인지 알게 되었을 뿐,
    아무것도 찾아 내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라기 보다 그저 목소리가 궁금해서.

    그렇지만 거기에는 어떤 결론이 있어야만 했다.
    최소한 그녀에게 제시할 추측이라도.
    그에 따른 근거라도, 찾아야만했다.

    만일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할 거라면 끝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건네야 할 거다.
    그러나 대체 뭐가 미안해야 하는지 나는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생각과생각과생각을 섞고 솎아내던 그 시간들은
    어쩌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애쓰던 날들이었을는지 모른다.

    내게 필요한 건 전화를 걸었을 때 해야 할 ‘말’들 이었다.
    여보세요? 뭐해? 밥은 먹었구?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물음들을 지나고 나서, 있잖아,
    의 다음에 있어야 할.

    전화기를 들고 그녀와의 통화를 시뮬레이션 해 보았다.

    아, 저기, 저기, 나야. 난데, 있지, 있잖아, 그러니까, 막상 물음조차 사라진 그 자리에 있던 건.

    길고
    깊은

    공백이었다.          

    공백을 메워낼 단 하나의 단어조차 내겐 없었다.
    이번 싸움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생각해야 할 것도 찾아내야 할 것도, 애초부터 없었다.
    그제서야 해야 할 말이 분명해졌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그녀의 통화연결음이 바뀌어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좋았다.
    너무 좋아서, 노래가 끝날까봐 조바심이 났다.

    설정된 구간을 전부 재생한 노래는 처음 부분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그 때 툭, 하고 그녀가 튀어 나왔다.

    왠일이야?

    순간 나는 노래가 끊겨버렸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너무 아쉬워서, 왜 아무말도 안 해? 라고 묻는 그녀에게
    아무말도 할 필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고 싶다고 했다. 

     있잖아. 
     응.

    네 통화 연결음, 그거 노래 제목 뭐냐?

    이별택시,
    딱 그 말만 던지고서 그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오로지 노래를 듣고 싶었다. 곧바로 휴대폰의 음악서비스에 접속해 노래를 다운받았다.
    김연우였다. 이번에도.

    오래 전 나와 그녀는 노래방에서 김연우의 연인을 함께 불렀었다.
    이 노래 좋아하세요? 그럼요, 제 통화 연결음인걸요. 그럼 같이 안 부를래요?
    그렇게 시작됐었다. 그땐 우리가 우리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제 함께 연인을 부르던 연인은 나와 그녀로 분리되어 각자의 택시를 잡는다.
    도로 건너편으로 그녀가 탄 택시가 출발하지만 나는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녀 역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그녀와 나는,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김연우가 물었고
    일단 출발하면 된다고 나는 답했다.

    어짜피 그녀와 나는 반대편 차선을 타버렸으니 어디로든 가면 되는 거라고,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빗속을, 간주,
    나는 다시 그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테지만, 간주 끝,
    얼마든지 들어도 좋을 노래가 내게 남겨졌다.

    달리면 사람을 잊나요,
    참 착한 여자다.

    지금 내려버리면 갈 길이 멀겠죠 아득히,
    그런 순간에도 노래 제목을 알려줄 수 있었던 그녀가 고마웠다.

    달리면 아무도 모를거야,
    우리의 시작과 끝을 지켜봐 준 김연우도 고마웠다.

    우는지 미친사람인지,
    너무 좋은 곡이다.

    이제껏 이 노래를 몰랐었다는 이유 하나로 살아온 날들 모두 의미없게 느껴질 만큼.
    마음과몸과마음을 나누며 시간과공간을 함께했던 지난 날.

    사랑했던, 분명히 ‘했던’
    3년 동안의 날들이 5분 26초와 함께 끝나버렸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좋은 노래 하나 남길 수 있을 만큼 사랑했다면 그건 다행스런 일일테니까. 

    그러니까 문제는  ‘연인’과 ‘이별택시’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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