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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트윗 공간에 친노에 대한 이야기를 넋두리 삼아 조금 올렸더니 격렬한 반응이 나왔었다. 아무래도 트윗 상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대화는 정제되지 못하기 마련이기에 다시 생각나는대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친노라는 단어
친노라는 단어는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게 무슨 마법의 주문 같은 효과가 있어서 사람들의 감성의 스위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친노를 찬양하면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친노를 비판하면 지옥의 불 같은 저주가 따라온다. 이래서는 친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판단을 내릴 도리가 없다.
스스로 친노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단은 뭔가 좀 감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친노라는 어휘를 통해 자신의 감성을 폭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 때문에 정상적이고 냉정한 판단이나 분석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마련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엄청난 매도와 모욕에 시달려온 결과일 수도 있겠다. 친노에 대해서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기존의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사로잡힌 시각이네, 기계적인 비판이네, 뭐 이런 반론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 공화당을 휘어잡고 흔드는 또라이 집단인 티파티를 친노에 비유하는 시각도 언론에 등장했다. 이건 좀 많이 황당했다. 그 티파티는 어디로 보나 어버이연합이나 일베와 유사한 집단이지, 친노와는 다르다. 백보 양보한다면 매우 감성적인 집단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 전방위적으로 친노에 대한 매도가 쏟아지고 모욕이 난무한다 하더라도, 한 편에서는 친노에 대한 분석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자기 분석이면 더 좋다. 초창기부터 노사모 활동을 하고 열린우리당 당원이었기도 한 내가 그걸 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좀 호의적으로 봐 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일각에서는 유시민 쫄따구라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직접 물어보시라. 유시민씨는 나 잘 모르더라.
거기에 이라크 파병과 FTA등을 이유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를 접었던 경험이 있으니, 친노 출신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해도 노무현에 대한 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결국 친노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기에는 나만큼 적임자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좀 무식해서 제대로 분석을 못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친노 쪽에서는 배신자로 욕먹고, 친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아직도 친노 물이 덜 빠진 얼간이로 욕을 먹고 있긴 하다. 중간에 선다는 것이 이래저래 어려운 일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다시 정리하자면, 친노라는 단어, 아니 노무현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내 자신이 들어도 어딘가 가슴 한 구석이 찌르르 해지는 느낌을 준다. 내가 그럴 정도니 지금도 노무현을 추억하고 문재인을 노무현의 후계자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그 단어가 주는 감정적 파괴력은 어떨지 좀 이해를 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얘기를 시작하겠다.
친노는 정치세력인가?
역사적으로 보자면 과거에 그랬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세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중이다.
친노의 원조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노무현이다. 노무현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이었다. 이 세력은 무에서 시작해 부산에서의 노무현의 낙선 사건, 울분이 소낙비처럼 내리던 그날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노무현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던 정치적인 구호가 바로 지역구도 타파였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노무현은 그 당시 한국 정치계에 존재하던 다양한 문제들의 핵심이 지역구도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무너트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난 지금도 이 판단은 매우 옳았다고 본다.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겨우 일개 지역구 선거에서 좌절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지역구도 타파는 노무현이 내세운 수많은 가치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친 후 노무현은 집권을 하게 된다. 노무현을 둘러싼 세력을 친노세력이라고 부른다면 친노세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서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집권을 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의 가치가 한 가지 더 있다. 어떤 사람이라 할 지라도, 심지어 그가 (사법고시를 패스하긴 했지만) 대학도 못간 시골 촌놈이라 해도 사람들의 동의만 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직접 입증해 보인 것이다. 노무현의 가장 큰 정치적인 성과가 대통령 당선 그 자체였다는 말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나 또한 그의 집권은 그리 길지 않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집권을 전후해서 노무현은 민주당과 그리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노무현은 정당구조 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민주당을 붕괴시키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 와중에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고, 민주당 역시 노무현이 붕괴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붕괴한 경향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 정당구조 개혁, 줄여 말해 정치개혁은 노무현이 제시한 꽤 굵직한 가치들 중에 하나로 앞 자리에 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즈음의 친노를 구분하자면, 참여정부에 직접 참여한, 즉 청와대나 내각에 포함되었던 핵심 친노가 있고, 그를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부의 친노 정치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 외곽에 일반 국민들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지지하던 친노들이 있어서 친노의 외피를 구성하고 있는 형식이었다.
집권 내내 참여정부의 실적은 논란거리였다. 난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정책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면 얘기가 너무 길어진다. 크게 봐서, 참여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난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삼성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삼성이라는 특정 재벌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경제적 강자들, 그러니까 재벌이나 경제관료, 기존의 최상류층들을 휘어잡지 못했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부동산 정책들이나 재벌 관련 정책, 조세 정책에서 이런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겨우 시행했던 종부세등이 미처 자리잡기도 전에 사라지게 될 정도로 제대로 개혁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대신 복지 재정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국민의 정부 때 도입된 기초생활보호법에 버금갈 수도 있을만한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활동은 잘 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파병이라는 곤란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FTA를 무리하게 추진을 했었다. 이런 결정들은 내부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내려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추정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참여정부 스스로 자신들의 일관성을 깨트리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참여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면 정권을 재창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설치류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고 불쌍한 우리 산하는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지고 말았다.
지역구도 타파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은 호남의 지지를 잃어 추락하게 되었고, 민주당은 재생되었다. 영남의 새누리당 지지세는 아주 약간 약화되었을 뿐 그리 변하지 않았다.
정치개혁은? 거의 온 국민의 욕을 먹어가며 건곤일척의 자세로 던진 대연정은 개박살 났고, 선거제도 개혁도 못했고, 행정구역 개편도 거의 말도 못 꺼냈고, 국보법을 비롯한 4대악법 철폐도 실패했고, 뭐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백년 가는 정당, 당원 중심의 정당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열린우리당은 단 한번의 총선승리를 끝으로 두 번 다시 총선에 나오지도 못했다. 그 전에 해산되었으니까.
노무현의 집권 당시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던 제왕적 구조의 정당체제는 사라지긴 했다. 문제는 더 나쁘게 되었다는 것. 뭐랄까, 김대중 같은 거인이 지배하던 제왕적 의사결정구조는 사라지긴 했지만, 그를 대치할 만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은 전혀 도입되지 못했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지금도 민주당은 당대표 선거를 할 때 마다 잡음에 시달린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새누리당은 그 뒤로 몇 번이나 당내 권력이 교체되었으니 오히려 새누리당이 더 민주적인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민주적인 것인가? 바뀌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권력을 보유한 특정인물이 물밑 작업을 통해 당권을 손에 넣고 그를 중심으로 당권이 재편되는 것이 뭐가 민주적인가. 그냥 협박과 무력으로 보스 자리를 겨루는 조폭 문화인 거다. 그렇게 바뀐 보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단일 대오를 형성한다 해서 그 조직이 민주적인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이 더 민주적이라는 얘기는 이래서 농담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아직 못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며, 그 얘기는 결국 정치개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친노 본래의 정신이 참여정부 집권기간을 통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세상에 무슨 일이 그렇게 빨리 되지는 않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못 한 것은 못한 거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친노는 정권을 빼앗기고, 당도 해산되고,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된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여기서 극적인 변화가 많이 발생한다. 아주 비극적인 일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정도이다. 참여정부의 핵심세력들은 분화되었다. 열린우리당 내의 친노세력들도 변화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점으로 해서 최외곽의 친노세력,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노무현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극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의 감성 속에 있는 어떤 스위치가 눌렸던 것 같다. 미안함일 수도 있겠고, 아쉬움일 수도 있겠고, 죄책감일 수도 있겠고, 절망감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친노는 분화해서 작은 일부는 유시민을 중심으로 참여당을 만들었다가, 민노당하고 통합해서 통합진보당 만들었다가 다시 갈라져서 정의당을 만들어 활동하는 중이다. 큰 일부는 민주당에 잔류해서 정치 안하겠다는 문재인을 다시 끌어내어 대선에 도전했다가 박근혜에게 패배하고 방황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당의 당권은 반노에게 갔다가 친노에게 갔다가를 반복하다가 지금은 비노도 아니도 반노도 아닌 어정쩡한 김한길에게 가 있다.
지금 다시 물어보자. 현재의 친노는 정치세력인가? 처음에 나는 친노의 세력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했다. 세력이 줄더라도 정치세력은 맞는가?
그렇다면 지금 친노가 주장하고 있는 정치적 주장은 무엇인가?
친노의 이념
어떤 집단이 정치세력인가 하는 질문에 가장 확실한 답변이 있으려면 그 집단이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된다. 미국의 공화당은 정치세력이다. 미국민의 절반이 공화당을 지지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또 규모는 작더라도 진보당이다 노동당, 정의당도 정치세력이다. 진보당은 주사파들이 끼어 들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 조차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노동당은 사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줄줄이 나온다.
정의당은 좀 애매하다. 이 당이 친노의 한 분파인 것은 확실한데, 이 정당이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 정당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애매함은 전체 친노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새누리당은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정당이지만 사실은 돈정당이다. 돈이 좋아서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력도 잡아서 나눠먹으려고 모인 정당이다. 매우 뚜렷한 정치집단이다. 자신들이 원하는것을 방해하는 세력에게는 가차없는 응징을 날리고 자신들이 이 나라의 국부를 나눠 먹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매우 성실한 집단이다.
민주당은 전통이 있어서 뭐하는 정당인지 역사가 답을 해 준다. 그냥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민주당 역시 말만 그렇지 이 사람들은 사실은 야당의원 노릇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로 보인다. 2등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주어진 과일을 따먹는 것이 지상목표인 것일까?
그런데 친노는? 친노가 만든 정당도 없다. 민주당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다. 열린우리당 망하면서 사실상 친노는 근거 정당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부의 한 정파인가? 실질적으로 친노의 에너지의 기원인 일반 지지자들은 민주당 엄청 싫어한다. 나 또한 민주당 싫어한다.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대선을 치르면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민주당에게 쏟아붓는 욕설과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뭐 뿐만 아니라 안철수 지지자들과 싸우는 모습도 살벌했으며 진보그룹에게도 마찬가지 비중의 모욕을 퍼붓곤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정치세력도 다른 세력을 부정함으로써 존재할 수는 없다. 뭔가 내세울 것이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무얼까? 보편과 상식인가? 양심인가? 복지국가 건설인가? 민주주의 확립인가? 이런 것들 것 다른 정치세력들도 모두가 다 추구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 나도 이 슬로건을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이 슬로건은 지금 당장 새누리당이 써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문장이다.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냥 다른 정치세력들이 다 구라치는 것이고, 친노는 좋은 일을 실제로 하는 착한 편인가? 좋은 편인가? 우리 편인가?
나는 친노가 심지어 집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뚜렷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못잡고 방황하게 된 결과가, 노무현 스스로가 뭔가 확실한 이념체계를 잡아 구축해 놓지 못한 탓이라고 보고 있다.
지역구도 타파?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한 정치세력의 지속가능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기존에 있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식의 주장은 그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상실되는 목표일 뿐이다.
정치개혁? 정당구조 개혁? 이 또한 기존의 문제점을 고치자는 대증 처방의 일환일 뿐이다. 안철수의 새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무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여태껏 잘못하고 있으니 앞으로 잘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교과서 위주로 국영수 공부 열심히 하면 수능에서 수석한다는 거, 거짓말이다.
남북문제? 남북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 참여정부가 이 부분에서 훌륭한 결과를 남기긴 했지만. 그게 한 정치세력의 미래의 목표일 수도 없다.
노무현 정신..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이거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고 주장도 많이 했다. 다른 많은 것들 다 빼놓고 “깨어있는 시민의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제일 좋아했다. 이 말이 깨시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속상했던 것도 바로 나다.
약간 옆으로 새지만 저 말에서도, 깨어있는 시민보다 “느슨한 연대”에 더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길어지므로 넘어가고, 언젠가부터 이 느슨하다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저 깨어있는 시민 얘기만 횡행하는 것도 사람들이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동기였다. 어찌되었거나 이 추상적인 구호도 친노를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게 만들만한 힘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없다.
친노세력을 하나의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만들어 줄 만한 이념적 구조물, 가치있는 비전, 미래의 모습, 이런 것들이 현재 없는 것이다. 문재인을 그렇게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문재인이 당선된 뒤에 우리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주길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공약도 그랬고, 선거 운동에서 보여준 이미지도 그랬고, 가혹한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캠프에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전혀 친노하고 관계없는 윤여준의 티비 연설이 가장 감동적으로 와 닿았겠는가.
이래서 친노가 스물스물 망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내가 과한 얘기를 하는 것일까?
애석하지만 이것이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친노의 열풍, 노사모의 열풍, 노무현의 위력이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저 일회성 이벤트로 마감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울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이유이다.
문재인은 친노의 중심인가?
진짜 스스로 친노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만약 노무현과 문재인이 경쟁을 한다면 누굴 지지하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더 쉽게 묻자. 누가 더 나은 정치인인가?
진짜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문재인은 노무현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문재인이 만약 당선이 되었더라면, 참여정부보다 훨씬 더 못한 정권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 번의 집권 경험은 대단한 정치적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난생 처음 만들어본 정권과, 문재인이 한 번 겪은 뒤 다시 만든 정권을 비교해도 참여정부가 더 나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내 판단에는, 거의 대부분의 친노들은 문재인보다는 노무현을 사랑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농담이지만, 문재인이 노무현 보다 잘 난 것은 외모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지금 사실상 친노의 중심에 서 있다. 상실감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친노는 문재인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어떤 정치적인 실수를 해도, 그 점을 지적하면 가차없이 댓거리가 날아온다. 하지만 당신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을 해 보시라. 문재인이 노무현의 대체재 이상 그 어떤 비전을 보여줬는지 말이다.
문재인이 실수한 것이라면 내가 일곱시간 이십분 정도 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성취한 것을 대라면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또 예를 들어보자. 문재인 말고 또 괜찮은 친노 정치인이 한 명 두각을 나타냈다고 치자. 예를 들면 안희정이라거나, 아니면 봉하마을의 김경수라거나, 뭐 누가 되었든 관계 없다. 그러면 문재인과 그 사람 중에서 누굴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친노가 문재인에게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노무현은 죽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의 대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사람은 유니크한 존재다. 그걸로 끝인 거다. 만약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면 노무현과의 관계, 좋은 말로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했는가 여부는 그 당시의 정치적 가치로 저울질 해서 다시 따져 봐야지 살아있을 때의 노무현과의 친밀도는 그 척도가 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지금 무슨 세습하자는 것도 아니잖은가.
이런 이유로 나는 (애초에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정권 말기에 접긴 했지만) 문재인과 안철수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둘 각자에게는 각자의 장점과 각자의 단점이 있을 뿐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만큼 우열의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문빠와 안빠로 갈려 치열하게 싸웠다. 정치야 원래 싸우는 게 일이니 싸우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집착은 나쁘다.
바로 그 집착에 대한 정교한 실험판이 작년 대선 때 열렸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과정. 이 대목에서 양측의 지지자들이 각각의 후보에게 그렇게 집착을 하지 않았더라면, 단일화 과정은 훨씬 더 아름답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대선의 단일화 과정은 개판이었다.
판을 그렇게 망친 것에 대해 문빠와 안빠인 당신들의 책임은 얼마만큼일지 생각들 좀 해 봤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사람의 추억은 시간 속에서 색이 바랠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최후를 겪으면서 마음에 새겼던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질 수 밖에 없다. 그게 사람인 거다. 정상이다.
문재인이 다시 한번 재기할지 어떨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건 전적으로 향후 문재인이 정치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에 달려 있다. 노무현과의 친함에 달려 있지 않다. 그건 바꿀 수 없는 문제일 뿐이다.
안철수 역시 마찬가지다. 여태껏 정당이라는 틀 없이 리베로처럼 뛰던 그런 자유로움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치면서 안철수의 정치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거 역시 안철수 하기에 달린 것이다. 어쩌면 총선까지 가지도 못할 수도 있다.
친노는 어떨 것인가? 모른다.
역시 친노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과거에 집착하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고, 호의적인 조언에도 발끈거리고, 정치적 반대편에게 모욕을 날리는 것을 즐기고, 이런 식으로 개판치고 다니는 내부의 적들을 단속하지 못하고 내버려두고, 자기 맘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이런 식이라면, 친노는 정치판의 악동으로 몰리게 되어 소멸할 것이다.
알맹이도 없는데 매너도 없는 정치적 집단을 좋아하면서 받아주는 사회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의 집권, 혹은 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깨어난 자신의 정신을 진짜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과연 우리 사회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관점들을 확립해 나가는 식으로 생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운명이다.. 라고 누군가 말을 했지만 나는 운명 따위 믿지 않는다. 미래는 내가 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미래다.
어차피 나는 당신들이 욕을 하건 말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의 현실에 대해 관찰자적 입장을 계속 고수할 생각이다. 정당한 관찰자의 자격을 위해 어떤 정치세력에도 동조하지 않고, 편들어 주지도 않을 생각이다. 내 생각에 잘못하는 집단에게는 욕을 할 것이고, 내 생각에 잘하는 집단을 도와주려 노력할 뿐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비록 아직 정치세력으로 확실히 자리잡지도 못했고, 아무리 봐도 조만간 소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친노를 제일 좋아한다. 감성적인 호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좋다. 뭔가를 많이 알고 훌륭한 일들을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는 거다. 내가 과거 한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또 내가 비록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 당신들이 뻘짓을 연속으로 구사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면, 나 또한 무척 씁쓸할 것이다. 그냥 그래서 자꾸 잔소릴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노들이 요즘같이 계속 정치적으로 뻘짓만 한다면, 내 감정 또한 언제까지나 유지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미워하진 않는 대신 무관심해지겠지.
그러니 똑바로 좀 하시라.
당신들의 손에 친노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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