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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45306
    작성자 : 성성2
    추천 : 20
    조회수 : 2514
    IP : 115.94.***.142
    댓글 : 15개
    등록시간 : 2016/05/03 11:12:04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45306 모바일
    인생의 라이벌 이야기
    옵션
    • 창작글
    35년 동안 내 인생의 라이벌로 군림하고 있는 암내가 심하게 나는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다섯 살 되던 해 미술학원에서였다. 
    어른들 말로는 녀석과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인생의 라이벌이 될 조짐을 보였다고 한다. 나보다 먼저 미술학원에 자리 잡고 있던 녀석의 작품은
    일반인들은 해석이 불가능한 아니 전문 미술교육을 받은 선생님조차 해석할 수 없는 "앤디 워홀" 같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고추밭에서 일하실 때 땅바닥에 열심히 낙서를 했는데 그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본 어머니께서 재능을 발견하고 미술학원에 
    보내셨다. (사실... 작은 형이 초등학교 입학하게 되면서 밭농사하실 동안 함께 놀아주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보냈다고 얼마 전에 들었다.)
    내가 미술학원에서 기억하는 (아니 거의 유일하게 기억하는..) 녀석의 첫 모습은 바지를 내리고 성난 코끼리를 쭈뿌쭈뿌하며 깽판을 치는
    모습이었다. 녀석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불만이 있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디서든지 성난 코끼리를 앞세워 인류 최강의 권법인
    섹시 코만도를 했는데 내 눈에 그 성난 코끼리는 작고 귀여웠다. 물론 그 귀엽던 코끼리는 커서 머리털 나고부터 징그러운 요물이 되었지만..

    미술학원에서 녀석이 앤디 워홀이었다면 나는 바스키아 같은 존재였다. 바스키아와 외모를 닮은 것은 물론이고 내가 인상을 쓰며 정성껏 그린 
    그림들은 선생님 사이에서 "이건 우리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그린 벽화에 버금가는 그림이다! 그냥 다섯 살 아이의 낙서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의 공통점은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나가 창작의 자유가 제한받던 군부정권 시대였던 1980년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녀석과는 그 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며 꾸준히 우리는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녀석이 나이키 운동화를 산 뒤 자랑하면
    다음날 나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사서 자랑했고, 녀석이 내게 달달한 암내를 풍기면 나는 며칠간 씻지 않은 시큼한 발 냄새로 응수했다. 
    그래도 우리는 고등학생 시절 선의의 라이벌 관계여서 비겁하게 성적으로 비교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고3이 되어 대학 진학을 상담할 때 희망대학으로 내가 존경하는 마이콜 조던 선생님이 졸업하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지원하겠다고
    해서 선생님께 두들겨 맞은 뒤 교무실 한쪽 벽에 무릎 꿇고 손을 든 상태로 참회하고 있을 때 잠시 후 녀석이 내 옆으로 왔다. 

    "너는 왜 왔는데?"

    "선생님이 니 옆으로 가서 손들고 있으래.."

    "넌 어느 대학 이야기했냐?"

    "남자라면 군대.."

    "맞을 만 했네..아주 뒈지게 맞을만 했네.."

    우리는 무릎 꿇고 반성할 때 그제야 둘이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은 제주도로 말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잖아.. 우리도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하지 않겠냐?"

    "말이 제주도고 사람이 서울이겠지.. 그리고 너랑 나는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그리고 우리 성적에 서울로 갈 수 있겠냐.."

    "우리 큰 형이 그러는데 서울 가면 우리같이 남성미 넘치는 시골 출신들에게 여자들이 줄을 선 데. 그리고 우리 큰 형도 서울 가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겼고.."

    "너희 큰 형?? 여자 친구 있어?"

    녀석은 서울에서 촌놈이 인기 많다는 당시로써는 확인 불가능한 유언비어보다 우리 큰 형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헐.. 역시 사람은 외모보다 능력이구나.."

    그 뒤 우리는 외로운 서울의 젊은 여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단번에 합격했으면 좋았으나 녀석은 재수하게 되었다.
    노량진의 재수학원에 다니는 녀석을 보며 '이번에는 내가 완벽하게 이겼다!' 라고 잠시 착각을 했으나 촌놈이 인기 많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였다는 것은 몸으로 확인했고 (물론 잘생긴 촌놈은 모르겠지만...) 재수학원에서 스터디 그룹을 빙자해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완벽하게 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후 우리는 학교는 달랐지만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갔고, 제대 후 둘 다 여자친구가 뭐에요? 세상에 있긴 한 건가요? 라며 여성을 멀리하는 
    금욕적인 수행자 생활을 하다 파문하여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고, 2세도 비슷한 시기에 녀석은 딸 그리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같은 날 
    한강공원에서 같이 자전거를 타다 둘 다 셀프 정관수술을 할 뻔도 했다. 흠.. 녀석은 왠지 그날 이후로 고자가,... 난 절대 아니지만..
    가끔 싸우고 술마시면 서로 먼저 도망가려 눈치보는 사이지만, 태어난 날은 달라도 웬만하면 녀석과는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

    만일 둘 중 하나만 세상에 남는다면 남은 놈은 참 심심할 것 같다.


    출처 암내 나는 녀석을 친구로 둔 나.
    그리고 발 냄새 나는 녀석을 친구로 둔 그 녀석.
    성성2의 꼬릿말입니다
    다시 한 번 하게 된 담임 선생님과 희망 대학에 대한 면담시간..
    선생님께서 이번에도 장난처럼 말한다면 대학물은 커녕 19살에 생을 마감하게 하겠다고 엄포하셨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은 나름 
    진지하게 말씀드린 건데.. 
    우리는 어느 대학을 희망대학으로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먼저 면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 친구 녀석이 자신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노선을 보고 희망대학을 결정했다는 말에 우리는 2호선 노선을 펼쳐놓고 고민했다.

    건국대-한양대-교대 - 낙성대 - 서울대 - 홍대 - 이대 - 경기대 ...

    일단 우리 성적에 절대 갈 수 없는 서울대와 이대는 제외했다. 나는 서울대는 못 가더라도 (절대 못가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대를 희망대학으로 적었다. 그리고 녀석은 서울대는 못 가더라도 서울에 가게 되면 친구라도 서울대 
    다니는 똑똑한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고 서울대 옆의 낙성대를 희망대학으로 적어서 제출했다.

    그날 하키채를 들고 계신 진노한 선생님의 모습은 관운장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녀석이 벌인 황건적 아니 낙성대의 난은 그렇게 구타로
    진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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