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습니다. "아니, 100억 원을 들여 만든 도로가 주민 산책로로 쓴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도로를 정작 나는 다니지도 못하고, 출퇴근 때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 안산 시화호와 반월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도로 이야깁니다. 이 도로는 길이 2.5킬로미터, 왕복 6차로로 안산시와 수자원공사가 교통량 분산과 물류수송을 위해 지난 2005년 완공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대학교와 대규모 산업단지로 상습 정체가 빚어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로를 새로 만든 것입니다. 토지매입 등 도로건설에 들어간 세금만도 약 백억 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제보자는 이 도로가 8년 넘게 개통도 못 하고 폐쇄돼 있다며 진상을 밝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도로는 교통정체가 심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도로는 텅텅 비어 동네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운동장으로 이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는, 제보자가 조금 과장했다 생각했습니다. 100억이나 들여 만든 도로를 8년 넘게 개통하지 않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상식이 깨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보자와 함께 도착한 현장은 마치 자동차 경주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보자 말대로 도로의 출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곧고 길게 뻗은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차량 대신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주민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기 참 좋은 길이에요!"
저를 더 당황하게 한 건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주민들은 대뜸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 자전거 타기 좋은 길, 뭐 이런 거 취재하러 나오신 거예요? 여기 자전거 타기는 정말 끝내줍니다." 제가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주민들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이 길에는 차가 한 대도 없어서요.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면 기가 막힙니다. 조깅하는 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습니다. 가끔 멋모르고 오토바이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때마다 우리가 경찰에 바로 신고해요. 그래서 이젠 오토바이도 거의 안 다닙니다."
세금 100억이 들어간 도로가 동네 운동장이 된 이유는?
시간은 도로가 완공될 무렵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안산시는 도로포장을 모두 마치고 개통 전 안전검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도로 바로 옆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도로가 개통하면 소음과 공해가 심해진다며, 아파트 주민이 연일 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연일 계속된 시위에 결국, 해당 구청은 도로를 폐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8년 넘게, 도로를 막아섰던 바리케이드는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불확실한 100억 원짜리 도로의 운명
그럼, 앞으로 이 버려진 이 도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해당 구청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담당자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시의회에서 특별위원회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은 개통할 계획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주민반대와 예산 부족으로 애초 산업단지까지 이어지게 계획돼 있었던 도로가 중간에 끊어진 상태에서, 도로를 다시 개통할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완공된 도로부터만이라도 우선 개통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그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오히려 아파트 주민들은 이왕 도로를 못 쓰게 됐으니, 도로를 다시 갈아엎고 공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도로를 이용하게 해달라는 시민과 개통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해당 구청은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물류수송-차량정체, 세금낭비보다 더 심각한 문제
이렇게 폐쇄된 도로를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현장을 둘러본 교통전문가는 들어간 공사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산시는 기본적으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돌아가는데, 산업단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폐쇄되면서 막대한 물류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주변 도로의 차량정체까지 고려하면 지역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관청의 무능과 주민의 반발이 빚은 비극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작기 다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화목한 게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 문제든 불행한 이유가 천차만별이라는 얘깁니다.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내용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흔히 성공한 원인을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의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에 근거해서 보면, 안산시는 수많은 '실패의 원인'을 피하도록 노력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도로 옆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게 허가하는 게 맞는지,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또 이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지, 공사계획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고민했어야 합니다. 또, 이 도로가 생겨서 이득을 보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며, 그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더 깊이 계획했어야 합니다. 도로만 건설하면 교통량도 분산되고, 물류흐름도 좋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빠져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 '배고픈 사람', 심지어 '배 아픈 사람'까지 모두 고민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족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게 바로 '행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신시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아파트 주민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나의 주장이 다른 이들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어떤 주장을 강하게 펼 때는 문제가 정확히 보이지도,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흥분이 가라앉고 난 다음엔, 우리의 주장으로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국가도 다르다. 인간의 성격이 다르듯이 국가도 다르다. 국가는 그 안에 사는 인간성으로 구성된다."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들어야 할 지적입니다.
한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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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1013113605938 내가 보기엔 저 아파트 주민들의 생각이 썩어빠진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