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에 몇 번 쓴 적이 있지만 섹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고등학생 시절 내 절친 민뽀는 학교 내
야동이라면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야동 테이프를 친구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공급하던 민뽀가 의도가 궁금했다.
"그런데 왜 넌 선생님이나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애들한테 야동을 공급하는 거냐?"
"지금도 야동을 처음 몰래 봤던 그 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아. 그리고 내가 느꼈던 그 설렘과 희열을 친구들의 눈빛을 볼 때 내가 한 일에 보람이
느껴져서"
단지 녀석은 야동을 본 친구들에게 드는 고맙다는 말과 자신이 재밌게 본 건 친구들도 함께 즐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야동을 공유했다.
미친 새끼 그 정신으로 봉사활동을 했었다면 한국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거로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 이전이니 그때까지 국내에
노벨상 수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녀석을 야동에서만큼은 마더 테레사, 쉰들러처럼 숭고한 새끼라고 인정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학교 내에서 '야동과의 전쟁'
정책을 펼쳤을 때였다. 야동을 공유한 녀석이나 그것은 공유 받은 녀석 모두 학교에서 살생부를 만들어 학교 내에서 야동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민뽀의 경쟁자인 김뽀는 '정학은 면하게 해줄게~'라는 선생님의 달콤한 회유에 넘어가 그동안 야동을 함께 봤던 녀석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사면을
받았지만 민뽀는 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선생님의 압박과 구타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고 결국 일주일 동안 학교 복도와 화장실 청소라는
정학을 당하게 되었다. 민뽀에게 정기적으로 신작을 받아보던 고객 아니 친구들도 '왜 나는 빌려주지 않냐' 며 민뽀에게 불만을 품었던 녀석 그 누구도 우리는 민뽀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다. 그의 숭고한 희생에 눈물을 보이는 녀석도 있었고 적어도 우리 반에서만큼은 친구들에게 마스터베이선이라는 진정한 '선'을 일깨워 준 성인군자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책상 위에 올라가 민뽀를 향해 "오 캡틴! 마이 캡틴!" 하는 친구는
없었다. 내가 한 번 할 걸 그랬나. 마스터! 하면서..)
물론 나는 녀석에게 돌을 그것도 짱돌로 던져도 됐다. 녀석이 그래도 한 놈은 올려야 할 거 같아서 유일하게 같이 본 사람 리스트에 나를 올렸다.
하지만 나는 정학까지는 아니고 2박 3일간 학생부에 끌려가 번뇌를 탈탈 털어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뒈지게 맞았다.
나는 서울 쪽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지만 민뽀는 고향을 떠나기 싫다는 이유로 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녀석이 선택한 대학의
전공은 영문과....
녀석에게
"너 야동 보면서 선수들이 무슨 말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설마 그 이유로 영문과를 선택한 건 아니겠지?"
녀석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지 꼴린 대로 선택했나 보다.
그래도 설마 야동 때문에 영문과를 선택했을 거라 믿고 싶지는 않았다.
민뽀를 다시 만난 건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고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너 설마 대학생이 되어서도 테이프 돌려 보는 거 아니지?"
"야.. 요즘 누가 불편하게 테이프로 공유하나.. 이걸로 하지..복사하기도 편해 이게.."
녀석은 내게 CD가 가득 담긴 케이스를 보여줬다. CD에는 매직으로 녀석이 정성껏 쓴 배우들 이름과 내용에 대한 간략한 특징이 있었다.
우리가 있던 술집에서 그날 우연히도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우연히..
그 뒤 민뽀는 한 번씩 내게 소장가치가 있거나 작품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CD를 한 번씩 보내주고는 했다. 그리고 우리가 4학년이 되어 취직
준비할 때 더는 민뽀는 내게 CD를 보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시절 잠시 민뽀 존재를 잊고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던 2006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신체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김본좌 사건이 터졌다. 당연히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민뽀였다. '이 새끼 일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민뽀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전화 받는 거 보니까 김본좌가 너는 아닌가 보다! 다행이야."
"안 그래도 요즘 집에 인터넷도 끊고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어."
녀석은 내게 이제 무슨 낙으로 사냐며 한탄했다. 나는 야동 없이도 잘 사는데.. 왜 나도 녀석에게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시 세월이 흘러 우리는 마흔 살이 넘어 다시 만났다. 야한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훔쳐보던 코 밑 솜털이 송송있던 애송이들은 하나는
중년의 대머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똥배에 가려 발바닥이 과연 보일까 하고 의심이 되는 아저씨로 변했다.
야동, 영화, 음악을 이야기하던 우리는 어느새 술자리에서 아이들과 먹고사는 거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중년이 되었다.
"민뽀 우리 고등학교 때 정말 야동 열심히 봤잖아. 그런데 너 아직도 야동 보냐?"
"요즘은 안 봐. 요즘 야동은 예전에 우리가 숨죽이고 보던 그런 야동 같지가 않아. 적어도 우리가 봤던 시절에는 나름 스토리도 있었고, 대놓고
벗지는 않았는데...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에 보던 야동에는 상대 배우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기계적이라고 해야 하나...그냥 섹스만을 위한 머신같아서 안 봐..감흥이 없어"
이제는 야동계의 어르신이 된 녀석은 예전과 다르게 변해버린 야동에 한숨 쉬듯 담배 연기를 내보냈다. 그리고 내게 뜬금없이
"너 그런데 아침에 발기는 되냐?" 라는 질문을 했다.
"뭐 아직은.."
녀석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아래 위로 고개 숙인 야동대제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좋은 거 많이 먹어..다시 설거야.."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말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