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media.daum.net/m/media/hotnews/rankingnews/popular/newsview/20131007181008474 쪽방촌 골목 안에 들어서니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부터 이곳 441개 쪽방 가운데 295개에 대해 '주거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낡은 건물을 죄다 밀어버리고 아파트 등을 짓는 개발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되살려내는 사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0월27일 취임 첫날 찾아가 "취약지역 거주자의 주거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말했던 곳이 바로 여기다.
쪽방촌 주거 개선은 산 넘어 산이었다.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도면이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 현장 실측조사를 통해 임시 도면을 만들었지만 공사 도중 거듭 도면을 고쳐야 했다. 한 건물에선 슬레이트 지붕 등에서 법적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이 발견돼 철거해야 했다. 기울어진 벽을 보강하느라 공사가 늦어지기도 했다.
사업 모든 과정에 서울시와 영등포구, 에스에이치(SH)공사, 공공건축가, 쪽방상담소, 사회적 기업 ㈜희망하우징, 서울주거복지사업단 등이 힘을 모았다. 수요일마다 현지에 마련한 사랑방에서 리모델링 추진 상황과 현안을 점검하는 현장회의를 78차례 열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풀어왔다. 희망하우징은 리모델링 일자리를 만들어 주민들의 자활을 도왔다. 도배, 장판 교체, 이사에 쪽방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도배·난방·소방시설 교체 등
쪽방 295개 '주거개선사업' 진행
건물주·세입자 등 조정 어려움
공사 동의 얻으려 지방 출장도
주민들 공사 참여 '일자리 창출'
재단장 뒤엔 다시 살던 집으로
정돈된 전기선·깨끗해진 화장실
"쪽방생활 24년, 이런 환경 처음"
프랑스 건축사 출신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설계도면을 만들며 전체 공정을 이끌어온 한영근(50)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추진단장은 "지난해 이곳을 돌아보고서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동안 주민들이 머물 임시 거주 시설도 마련해야 했다. 영등포 고가도로 아래에 컨테이너 20개를 쌓아 방 36개, 샤워실, 공동주방 등을 갖췄다. 주민들이 얘기하고 쉴 수 있는 사랑방도 들였다. 쪽방 주민들은 방을 고치는 동안 이곳에 옮겨와 두세 달 지낸다.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건물주, 관리인, 세입자(쪽방 주민)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정하고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선 대개 한 건물에 2.5~5㎡ 크기 쪽방이 5~10개 있으며, 건물주는 관리인을 두고 쪽방을 관리한다. 건물주는 관리인한테서 임대료를 받아가고, 관리인은 세입자한테서 20만원 안팎 월세를 거둬가는 '이중 임대차 구조'여서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린다. 건물주들은 주거 개선보다 재개발에 촉각을 기울이고, 세입자들은 주거 개선을 원하면서도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서울시는 건물주한테 '건물을 수리한 뒤 5년 동안은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공사를 벌였다. 건물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일은 김형옥(43) 영등포쪽방촌 상담소장이 맡았다. 그는 건물 주인을 만나러 대전까지도 갔다. 부산·대구·광주 등에 사는 건물주들은 올라올 때 만나 동의를 구했다. 건물주가 끝내 동의하지 않은 건물 2채는 결국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임대료가 오르거나 쫓겨날까 걱정하는 쪽방 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데도 그가 나섰다. 그는 "쪽방촌 사람들이 협력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공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1년6개월 남짓 진행된 사업에 쪽방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곳에서 24년째 산다는 이아무개(79) 할아버지는 "생활공간이 깨끗해지고 화장실도 나아졌다. 이만큼이라도 고쳐진 건 24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아무개(57)씨는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엉켜 있던 전기선이 가지런해졌다. 외벽 방수로 습기도 줄었다"며 반겼다. 그는 "술 먹는 사람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119차량과 경찰이 오는 등 난장판이었는데, 동네가 좀 조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건물 안쪽에 바람이 통하지 않고 햇볕도 들지 않는 '먹방'에 사는 신아무개(40)씨는 "한뼘 크기 창문이라도 달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강아무개(56)씨는 "여닫이문과 벽의 틈이 벌어져 있어, 찬 바람 부는 겨울이 걱정"이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착공한 4층 건물 95개 쪽방의 리모델링이 올해 1월 마무리됐고, 지난 7월까지 36개 방을 더 고쳤다. 이달 중순엔 63개 방이 말끔하게 단장된다.
쪽방촌 리모델링 공사는 법규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바깥 구조물보다 내부 수리에 집중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 창호, 문을 바꿨다. 공동화장실과 공동부엌도 손질했다. 난방·단열·방수도 보완했다. 화재에 대비해 소방·전기 시설도 교체했다. 시가 들인 예산은 11억8000만원이다.
한영근 추진단장은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저 건물을 고쳤다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진짜 대단한듯 저비용 고효율을 아시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