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아르바이트 학생과 이야기입니다. 오늘 쓰는 글은 그 이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게 감동을 준 메일을 한 통 받아서
이번 이야기를 써 봅니다.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24551 예전에 썼던 아르바이트학생과 밥 먹고 커피 마신 이야기
아르바이트 학생과 밥 먹고 커피를 마신 이후 나와 그녀의 회사생활에서 관계가 변한 것은 크게 없었다. 여전히 나는 없는 머리 쥐어뜯으며
혼자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서류정리와 업무보조 그리고 직원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아! 그녀와 나의 관계가 아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서로 마주치면 간단한 목례만 하던 사이에서 함께 밥을 먹은 후 나는 그녀와
마주치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씨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라고 물어보고 그녀는 "오늘은 ** 먹었어요! 과장님!" 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정도인 것 같다.
너무나도 짧았던 설 연휴가 끝나고 출근했을 때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앞마당 몹에게 두들겨 맞고 도망다니는 대머리 수도사였다.
손에 일도 잡히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하.. 나도 인나세트 입고 싶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회의 때 다이어리에 인나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적고 있었고 화장실 한쪽의 대걸레를 봤을 때 '저 대걸레가 인나 대봉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나도 디아 폐인이
다 된 것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제정신 차리자!' 하는 마음으로 냉수 한 잔 마시기 위해 탕비실로 갔을 때 아르바이트 학생이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과장님 다음 주 점심이나 저녁에 편하신 시간 있으세요?"
사실.. 난 항상 약속이 없는 편한 남자이지만 그녀에게 뭔가 바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내가 퇴근 후에는 삼삼이랑 놀아줘야 해서. 삼삼이가 저녁만 되면 나만 찾네 허허허 (나만 찾긴 무슨.. 삼삼이는 엄마밖에 모르는 엄마 바보다.)
시간을 내길 힘들 거 같고, 점심은 다이어리를 한 번 살펴봐야 할 텐데.."
사실 내 다이어리에는 1월 4일 2016년의 첫 출근 날 "올해는 기필코 무조건 금연" 이라 적어놓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적힌 것이 없는데...
뭐.. 2016년은 이제 2월이니 올해 안에 금연하면 되겠지..아직 2016년 12월 31일은 멀었다.
"그럼 과장님 일정 보시고 편한 날 같이 점심 먹어요! 이번에는 제가 사드릴게요."
"**씨 왜? 설마 로또??"
"아니요. 저 19일까지 하고 그만두게 돼서 그만두기 전에 과장님께는 점심하고 커피 한번 꼭 사드리려고요."
"**씨가 왜 밥 사고 커피를 사. **씨 같은 젊은 사람이 나 같은 아저씨랑 밥 먹어주는 게 얼마나 고역인데.. 당연히 내가 사야지.."
자리로 돌아와 달력을 봤다. 그녀는 3월 다시 복학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2월까지만 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벌써 2월 중순이구나.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준 거는 아주 가끔 밥 한 번씩 사준 거랑 읽고 싶은 책 사서 읽으라고 문화상품권 5 만원 준 것과 회사에서 설날 선물로 준 질소와
종이 상자로 과대 포장된 김 선물세트를 "나는 손이 두 개밖에 없어 들고가기 귀찮으니까 자네 집에 들고가게." 하면서 준거밖에 없는데...
고생하는 청춘인데 밥이라도 몇 번 더 사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녀와 이번 주 수요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먹고 싶다는 짬뽕을 곱빼기로 그리고 애피타이저로 찹쌀 탕수육이나 간단히 먹여야겠다.
나는 찍먹인데 혹시라도 그녀가 부먹이면... 커피는 그녀한테 사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