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themadclub.net/zbxe/?mid=shortstory&document_srl=123216
내 이름은 임유은 여자 같은 이름이지만 난 남자다.
나는 지금 교외에 있는 한 오두막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상한 사태가 발생한 것 같아서 이런 일기를 쓰게 되었다.
마치 유언을 쓰는 기분이다.
만약 내가 죽고 누군가 이걸 본다면,
그리고 그 옆에 나의 시체가 있다면 나는 근처의 땅에 묻어주고 일기는 발견한 사람이 가졌으면 한다.
때는 2045년 1월 1일, 나는 서울의 교외에 살고 있었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살고 있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때는 서울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주변에 나무가 울창해서 숲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5년 1월 1일 일요일
이건 일기다. 갑자기 일기를 쓰는 나 자신이 이상하지만 나중에 내가 살아서 이 일기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서울의 교외에 통나무로 집을 짓고 살았다.
물론 외관은 통나무지만 안은 최첨단 방음 처리가 되어서 집 밖으로 소리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뮤지션이었다. 물론 내가 노래를 하는 건 아니고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 집은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든 별장이었다.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그때는 새해가 밝은 뜻 깊은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을 함께 지낼 가족이라든가 동료라든가 하는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덕분에 나는 혼자서 편히 지내기 위해서 2일전 그곳에 갔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도착한 첫날 즉, 44년 12월 30일에 전기가 나간 것이었다. 물론 나름대로 고치려고 해보기는 했지만 난 그냥 작곡가였다. 고칠 리가 없었다.
나는 당연히 보조 발전기가 돌아가서 상관없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살펴보니 발전기의 기름이 조금 박에 들어있지를 않았다. 전기가 나간 때로부터 3일정도면 전기가 나갈 것이었다.
너무 집을 비운지 오래 되어서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는 불가능 했다. 덕분에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는 3일이라는 시간으로 서울로 가기위한 충전을 완전히 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기도 힘들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별장 같은 곳이라 전화는 없지만 핸드폰은 된다. 그러니까 택시회사에 전화를 하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택시 회사가 전화를 안 받았다.
“아뿔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달력을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1월 1일, 우리나라의 모든 회사나 기업, 공장이 쉴 수 있는 유일한 휴일이었다. 나는 전화를 안 받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나도 재수가 없었다.
냉장고의 음식은 전기가 나가면 썩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전자기기도 사용 불가능할 것이다.
“제기랄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람이나 쐬겠다며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겨울의 찬바람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나는 기껏 지펴놓은 벽난로가 꺼질까봐 서둘러 문을 닫았고 휘이이 하고 바람이 문 사이를 통과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일까지만 버티자, 내일까지만 이라며 자신을 다독거렸고 친구조차 없는 자신을 꾸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창문 앞의 흔들의자에 앉았고 끼익 소리가 나면서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무료하게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있던 시간이 꽤나 길었던 모양이다. 이제 해가 수평선 밑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평선에서 한 까만 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눈에 뛰지 않았지만 점점 커지더니 사람의 실루엣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었다.
10명? 20명? 아니 점점 많아졌다. 처음에는 새해 이벤트로 마라톤이라도 하는 건가 생각했다.(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마라톤을 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코스였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걸음이 이상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듯 팔을 앞으로 내저으며 기이한 발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뻐서 의자에서 일어난 뒤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봐요, 여러분 뭐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오고 해는 점점 저가고 있었다.
드디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직전까지 왔을 때에는 이미 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과연 사람이었을까?
얼굴에 입과 귀 코 눈 전부다 있었다. 하지만 있어야할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눈동자였다. 눈은 있지만 눈동자는 없었다. 아주 깨끗하게 파여 있었다.
그 비어있는 까만 눈이라니! 공허함마저 드는 그 눈은 가진 생물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니다.
하지만 옷을 입고 있었으니 분명이 사람이거나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무서웠다. 입을 벌리고 팔을 앞으로 한 채 점점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도망은 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무리한 기대였던 것 같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사람의 피 이건 동물의 피 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입에 피를 묻히고 괴상한 모습을 한 그것들은 현재 분명히 피해야할 1순위였다.
그래서 나는 뭔가를 직감하고 바로 앞까지 온 그 생물체를 뒤로하고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은 잠겨있었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이 집은 문이 완전히 닫히면 저절로 문이 잠긴다는 것을.
나는 바로 주머니에 있을 열쇠를 찾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생물들은 느렸지만 꾸준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눈은 없었지만 분명히 굶주린 늑대의 눈을 하고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문을 여는 것에 집중을 하고 열쇠를 자물쇠에 찔러 넣었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건 자동차 열쇠였다.
“제기랄!”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다른 열쇠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분명한 집 열쇠였다.
나는 열쇠를 열괴구멍에 넣고 힘껏 돌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나는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는 순간
“젠장”
그 생물의 손이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이제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는 기도문이 없었으므로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하늘에 신이 있다면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물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적막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이윽고 그 생물은 나의 어깨에서 팔을 거두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죽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하지만 아무생각 없이 움직였다가는 그 생물들의 입가에 묻어있는 피의 주인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살짝 문고리를 돌렸다. 아주 작게 끼리릭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정도의 소리는 바람 소리에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끼리릭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한 생물체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물론 눈은 없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다. 저들은 정상이 아니니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손을 멈추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단을 해야만 했다. 저들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문고리를 잡고 기다리거나 빠르게 움직여서 집으로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집으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안 그러면 얼어 죽었을 태니까.
나는 잠깐 바람을 쐴 요양으로 나온 것이라 복장이 빈약한 상태다.
분명히 1시간 정도면 동상에 걸려 쓰러질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서 그것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소리는 들렸다.
“끼이이이”
그것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데... 뭐랄까 레이더 소리 같았다. 아마 나를 찾는 레이더를 가동시킨 모양이다. 빌어먹을 놈들, 지금까지도 저놈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냥감을 잘도 찾아낸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죽을 각오로 문을 열고 놈들이 들어오기 전에 문을 닫을 것이다. 새해 첫날에 죽을 생각은 없다. 다만 살기위해 도망갈 뿐이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끼리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놈들은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았다. 아니 아마 눈이 있었다면 쳐다봤을 것이다.
문고리를 전부 돌리고 문을 열어 재낀 후 나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직도 쉬이이이 하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문은 전부 닫히지 않았다.
어떤 놈의 손인지 모르겠지만 손 하나가 문 사이에 껴있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손을 잘라버릴 만큼 날카로운 물건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만한 물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제 가지를 치기위해서 썼던 가지치기용 가위.
날카롭고 손 정도는 어떻게 잘라버릴 수 있는 가위였다. 나는 가위를 들고 발을 문에 대고서 괴 생물의 손에 가위를 갔다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가위를 닫았다.
싹둑 잘리지는 않고 뼈에 걸려서 조금 멈칫했지만 다시 힘을 줘서 단번에 뼈까지 부러트려 버렸다.
문을 드디어 닫을 수 있었다. 물론 피가 바닥에 쏟아졌고 아직도 놈들이 밖에 있지만 어쨌든 어떻게 집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창문으로 가서 놈들을 쳐다보았다. 어쩐 일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눈이 안 달렸으니 보지를 못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그렇다면 처음에 나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후각이 발달한 것 같지는 않다. 만약 후각이 발달했다면 지금 나를 못 찾을 이유가 없으니까, 여기는 방음은 되지만 냄새까지 막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저 놈들은 소리로 사냥감을 찾는다고 박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고 소리쳤다.
“야, 이 바보 같은 자식들아 나 여기에 있다!”
그러자 그 생물들은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고는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꽤나 웃겼지만 그때는 심각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그러자 다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소리로 나를 찾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멀리서 집에 있던 나의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면 정말 엄청난 청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서 쫒아올 것이었다.
나는 거실로 내려와 소파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 집에 갇힌 거구나.”
그러자 점점 절망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창문으로는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내일은 어떻게 보낼지 막막하다. 곧 전기도 나갈 탠데...
45년 1월 2일 월요일
월요일의 해가 밝았다. 하지만 전구는 밝지 않았다. 내가자고 있는 동안 전기가 나갔다. 나는 전기가 나갔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냉장고로 향했다. 역시나 냉장고에서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냉장고 안에 냉기가 충분히 돌고 있으니까 하루정도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없어졌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놈들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어제의 그 자리에 서있었다. 아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놈들도 뇌가 있을 테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나는 일단 냉장고에서 가장 유통기한이 짧고 썩기 쉬운 음식으로 아침을 때웠다. 메뉴는 생선과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인 우유였다.
배를 채우고 나니 다시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저놈들은 옷을 입고 있다. 그 말은 사람이었거나 사람이라는 소리인데 그 증거로 저 생물들은 눈이 없다는 것 말고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분명 어떤 바이러스나 전염병이 수도에 돌았을 것이다. 어쩌면 전국이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제외하고 전부 일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점점 더 우울해졌다.
내가 유일한 생존자이고 아무도 없다니, 그런 건 말도 안 된다. 아니 말이 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굶어죽던가 나가서 저놈들에게 먹히든가 둘 중 하나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도우러 와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겠다.
오늘 점심과 저녁은 밥맛이 없어서 그냥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일기도 어제만큼 쓸 것이 별로 없다.
45년 1월 3일 화요일
오늘도 어제와 같이 커튼을 열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놈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나가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냉장고에서 지하실로 음식들을 옮겼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지하실이 꽤나 시원하니까 음식이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이다.
음식을 옮기고 나는 어제 점심과 저녁을 먹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많은 양의 아침을 먹었다. 메뉴는 어제와 같은 생선과 어제 먹던 우유였다.
나는 배가 부르자 심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화도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노래였다. 그래도 나는 작곡가라서 이곳에도 녹음실이 달려있다. 녹음실은 태양열을 이용해서 따로 전기를 사용하므로 전전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방음처리도 완벽하다. 그리고 그 말은 아무리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도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신나게 내가지은 곡들을 노래했다.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꽤나 즐거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작곡가보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노래 연습을 했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별로 없어도 되는 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음대를 졸업한 뒤 작곡가가 되었다.
물론 나의 직업이 싫다는 건 아니다. 나는 노래라면 전부 좋아하니까, 하지만 나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보고 있으면 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만약 이집을 벗어날 수 있고 노래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가수를 할 것이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나는 가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어도 죽을 수가 없다. 죽을 각오로 살아서 꼭 가수가 될 것이다.
45년 1월 5일 목요일
어제 일기를 그냥 건너뛰었다. 쓸 내용도 별로 없었고 별로 쓸 만한 꺼리도 없었다. 아직도 놈들은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저놈들은 배도 안 고픈 걸까? 굶어죽지 않는 건가? 제발 부탁인데 식량이 다 떨어지기 전에 죽어줬으면 좋겠다.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전부 챙겨먹다 보니 벌써 식량이 반으로 줄었다. 이제 1끼씩만 먹도록 해야겠다. 물론 배가 고프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생각을 해봤는데,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장이 멈추면 나도 죽으니까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안 들리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 집처럼 방음 처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불가능 하겠지만...
아, 지금 생각난 것이 있다. 까먹을지도 모르니까 여기에다가 써야겠다.
여기에 있는 장비를 이용하면 라디오로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꼭 구조대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나를 도와줄 사람이면 좋겠다.
이 계획이 성공하길 빌며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45년 1월 6일 금요일
이제 이 말을 하는 것도 질리지만, 그 놈들은 아직도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이제 자고 일어나서 저놈들이 사라져 있을 거라는 꿈같은 바람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그냥 현실을 직시하겠다.
어쨌든 오늘은 어제 일기에 쓴 것과 같은 방법으로 라디오 수신을 하기 시작했다. 단지 녹음한 것을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뿐이지만 아마 누군가가 와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것 말고도 오늘, 태양열 에너지를 녹음실에만 쓸 것이 아니라 이 집 전체에 쓰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서 전선을 조작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그건 무리다. 하지만 구조 신호라도 보낼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희망을 가져보자.
45년 1월 9일 월요일
일기가 쓰기 싫어서 그냥 쓰지 않았다. 어차피 쓸 것도 없었고, 쓸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일기를 쓰지 않으면 날짜감각이나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간간히 쓰기로 결심했다.
역시 문명인이라면 문자를 써야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구조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신호를 보내고 3일박에 흐르지 않았으니 조금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다. 원래 구조대란 집단은 사람이 정말 위급한 순간이 돼서야 구하러 오는 족속들이니 말이다.
서울에 불이 나서 남산이 홀라당 전부 타버렸을 때도 구조대의 대처가 굉장히 늦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늦게나마 분명히 올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지, 안 그러면 난 그저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실험쥐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다.
45년 1월 15일 일요일
식량이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이제 이틀에 한 끼를 먹어야겠다.
역시나 아직까지 구조대는커녕 어떤 인간도 오지 않았다. 다만 그놈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더 기다려야겠다.
45년 1월 23일 월요일
이제야 정말로 짐작이 간다. 이건 몰래카메라다. 밖에 있는 저 이상한 생물들은 배우들이 분장한 거고 나를 찍기 위해서 집안 어딘가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겠지? 하지만 일부러 카메라를 찾으려고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잠자코 있어야지.
그래 나정도 되는 작곡가라면 할 수 있고말고.
그렇다면 나는 실컷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우, 불안해서 손이 다 떨려오네.
이렇게 일기를 쓰는 모습도 TV에 나가면 좋게 보이려나? 아마 지적인 이미지가 풍길 거야. 어쩌면 연예인으로 캐스팅 될지도?
그건 그렇고 오늘 막 식량이 떨어졌으니 이제 대성공 이라는 팻말을 들고, 내가자는 동안이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몰래카메라였다면서 놀래 킬 거야.
나는 물론 전부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척 하면서 놀라줘야겠지? 그게 방송의 정석이니까. 그렇겠지? 그럼 자야겠다. 자는 동안에 팻말을 들고 나올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자 줘야 방송이 완성되는 거지. 완벽한 계획이야.
45년 2월 ??일 ??요일
아 배고파, 먹을 거 없나? 미치겠구만.
45년 2월 ??일 ??요일
히히히, 집 밖에 먹을 게 잔뜩 어슬렁거리고 있어, 물론 살아있는 생물이지만 사냥할거야. 히히히, 난 지금 너무 배고파. 내일쯤 사냥을 할까? 만약 구워먹으면 맛있을까? 히히히히.
45년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반대로 내가 먹혔네? 히히히. 어, 일기장에 피가 묻잖아? 더럽게 시리.
아이고, 오른손 손가락이 잘려서 왼손으로 쓰려니까 힘들군.
종아리도 물어 뜯겨서 서있기도 힘들고 말이야.
지금 이방 문밖에 사냥감이 많이 있으니까 다시 사냥을 해야지.
45녀ㄴ
배고ㅍ
-짧은 일기- 끝
프로그 지투 버블 하이 몽키 엔비 할렘 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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