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로운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볼 기회는 없지만 아주 가끔 문득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바로 아래층에 살던 아이었는데, 평소에 엘리베이터나 공동현관문 로비에서 마주치면 항상 허리굽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잘 하던 예의바른 남자아이었다. 생긴 것도 기억에 각인될만 했던게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어보이는데 그 집 어머님께서 미용실에 끌고가 지지고 볶았는지 뽀글뽀글하게 파마한 머리에 통통한게 볼도 발그레하고 굉장히 개구져 보였다. 자주 보진 못했지만 가끔 아파트 공터나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반갑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아이였다.
우리집은 3층이었기에 무거운 짐이 있을 때만 엘레베이터를 탔고, 거의 계단을 이용했는데 그날도 계단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2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퉁탕퉁탕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어? 그 뽀글머리 앤가? 오랜만에 반갑네 인사해야지' 하면서 나도 속도를 높여서 따라내려갔다. 곧이어 뒤에서 또다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애긔애긔한 목소리에 동생으로 추정되는 어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헝아 헝아 나도 같이가 헝아~"
다급한 동생아이의 발걸음이 뒤에서 들리고 난 그 뽀글머리형아 아이가 아파트를 빠져나가기 전에 인사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같이 속도를 높여서 내려가는데 희한하게 내 걸음이 빨라질 수록 앞에 뽀글머리아이의 발걸음도 빨라지는게 아닌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분명 손으로 그렸지만 발로 그려버린 것이 된 이미지를 첨부한다)
아슬아슬한 반층정도의 차이를 두고 뽀글이 동생>나>뽀글이 순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로비층에 거의 다 내려왔을 쯤 뭔가 쎄-한 느낌이 드는게 뽀글머리아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편함을 지나는 순간
"왁!!!!!!!!!!!!!!!"
나: (개깜놀)......음마야!
뽀글머리아이: ..........어엏헣ㅎ억!
그렇다.. 그 뽀글머리 아이는 뒤따라오는 동생을 놀래켜주려고 서둘러 내려가 우편함 뒤에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 양손을 귀신모양을 하고 악마같은 개구짐을 얼굴에 잔뜩 품고 놀래키던 모습 ㅋㅋㅋㅋㅋㅋ 서로 놀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들려오는
"헝아? 헝아 뭐해?"
정말 당황해하던 그 아이.. 나도 놀랐지만 그 뽀글머리 아이의 동공지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웃음부터 나왔다. 자기 동생인 줄 알고 그랬다며 연신 허리굽혀 죄송하다고 하는 그 아이. 쓰담쓰담 해주고 괜찮아ㅋㅋㅋ 웃으며 나왔던 기억이.
그 후로 몇 번 만나면 내가 먼저 귀신 모양을 하고 "왁!"하며 놀래키는 시늉을 하며 서로만 아는 웃음을 나눴었다. 문득 그 아이 생각이 나서 글을 적어본다.
내 기억 속엔 너무 재밌고 소소하게 웃긴 추억중 하나인데, 글 솜씨도 모자라 그 감정이 제대로 전달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오유에 몇몇 글만 빼고는 유머글 대부분이 펌글이고 그런 점을 지적하는 글들도 꽤 올라오길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처음으로 부족한 실력으로 유머글게시판에 제 추억을 털어놓아 봅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망하는 일 모두 다 이루는 한해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