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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때, 서울에 살면서 있었던 일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적을 두고 일을 구해야 했던 때라, 어려운 형편에 맞춰 몇 평 안 되는 방을 전전할 때였다. 홍제역 근처에서 그마나 살만한 방을 구해 살게 되었는데 옆집이 아주 시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밤이면 밤마다 술에 취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렸고 새벽이면 그런 소리가 무색하게 여자의 격정에 찬 숨소리가 들려왔다. 오며가며 마주친 걸 봐서는 어린나이에 결혼한 부부 같아 보였는데 아이는 없는 모양새였다.
한창 덥던 여름날 오후,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환기를 시키려고 살짝 열어둔 옆집 방안을 보게 되었다.
나의 집과는 다른 구조로 그나마 좀 넓어 보이는 그 방안에는 이상스런 구더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 여름에 이불이라 하기엔 뭣한 분홍색 보자기를 둘러쓰고, 그곳 구석에 구더기가 있었다.
못 볼 걸 봤다는 생각에 냉큼 집으로 들어가 숨었지만 그날 이후 그 구더기에 대한 궁금증이 떠나질 않았다.
도대체 사람이 사는 방에 구더기 따위를 키우는 사람들이 어디있단 말인가. 하물며 진돗개만한 구더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런 구더기를 두고 어떻게 태연하게 살수 있단 말인가.
어찌나 궁금했던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옆집 여자와 마주쳤을 때 하마터면 물음이 튀어나올 볼 뻔 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 구는 것이 원룸을 사는 사람들의 룰이란 걸 무시하고 무례를 저지를 뻔한 것이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고서는 궁금증을 풀 방법이 없었다. 해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쪽지를 썼다.
“ 그것은 무엇입니까?”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막상 물어보려하니 다른 말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런 식의 물음으로 그것이 실제 하는 지에 대해 에둘러 물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나니 좀처럼,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서려다 신발장 위에 쪽지를 올려놓고 그리고 그대로 몇 주를 무시하며 살았던 것 같다.
옆집 부부의 싸움소리에 익숙해질 때쯤 되자 여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늦은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고 하루 앞서 태풍을 맞이하는 거센 빗줄기가 온 서울을 뒤덮었다.
직업이 없어 하루 종일 빈둥대는 사람이 거의 그렇듯 나 역시 밤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하던 때가 많았다. 그 날 역시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오지 않는 잠을 일부러 찾지 않고 모니터의 파아란 불빛에 기대어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로록’ 어디선가, ‘고로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옮긴 시선엔 반쯤 열린 창문과 반쯤 잘린 가로등의 빛이 드리운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비바람에 젖은 그 골목길 위로 옆집의 구더기가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난 구더기를 향하여
‘구더기씨’ 라며 읊조렸다.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나의 물음은 내 입을 간신히 뛰쳐나왔다. 구더기씨는 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려 어둑한 내 방을 살피었다. 구더기씨가 날 보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난 구더기씨가 날 보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 했고 구더기씨는 날 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로록’
그리곤 천천히 몸을 움직여 골목들 사이로 사라졌다.
구더기씨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오늘처럼 어느날 옆집으로 찾아왔던 것일까. 구더기씨는 내게 궁금증만 안겨주고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해 여름도, 서울 자락조차 채 닿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 늦깎이 태풍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출처 | 2015년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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