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물론 20대 말까지도 담배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저 담배피는 남자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이상형의 조건 중 하나가 담배피는 남자였을 뿐.
그 외엔 나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거나, 담배 냄새가 싫다거나 하는 것 없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담배를 한번도 안피워본건 아니었다.
20살때 첫사랑에 실패한 후, 길에서 그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랑 지나간 것을 보고
그 아이가 피웠던 담배를 사서 불을 붙여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한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누군가가 내 목젖을 샌드백삼아 후려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 길로 눈물을 쏟으며 담배를 꺼버렸다.
그러다 몇년이 지나
포장마차에서 우동에 소주를 마시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는 남학생 무리들을 보자
취기에 갑자기 나도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용기를 내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담배 한개만 주실 수 있나요?"라 말하며 씩 웃어보이자
남학생 일행 중 누군가 담배한개피와 성냥을 던지듯 두고 친구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왜저래...미인이 말걸어서 떨리나보다. 씩 웃는 순간
같이 술마시던 친구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니 상태보니까 어엿비여겨서 줬나보다."
"아 내가 예뻐서? 그렇겠지. 후후. 별 수 있겠어. 지들도 남잔데. 후후훗"
"아니..세종대왕이 백성을 어엿비여겨서 한글 만들어준 것처럼 널 그렇게 어엿비여겨서 담배주고 간거라고."
"뭔소리야.'
날 한심하게 바라보던 친구가 내 얼굴에 손거울을 들이대며 말했다.
"너 송곳니에 우동국물에 있던 김 꼈어. 그리고 너 눈도 풀렸어. 거울보고 웃어봐."
이런씨....
문득 대학교 1학년 시절 짝사랑하는 오빠 앞에서 앞니에 상추낀 상태로 웃었다며 날 껴안고 대성통곡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물론 그 친구만큼 참담한 심정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창피함을 느끼며 조용히 송곳니에 묻은 김을 혀로 핥아먹었다.
우동국물 간이 벤 흐물흐물한 김가루 따위가 이렇게 맛있다니.
나는 더욱 슬퍼졌다.
촉촉해진 눈빛으로 멍때리며 테이블위에 놓인 성냥을 꺼내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뭔가 화르륵 타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꼬순내가 코끝을 찔렀다.
담배 피는 것도 잊은 채 친구에게 물었다.
"이야~ 맛있는 냄새난다. 뭔지 우리도 저거 시켜먹자."
친구는 대답대신 재빠르게 내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비벼끄는 동시에
한 손으로는 내 이마를 후려쳤다.
"아악!! 뭐야."
이마를 감싸쥐는 순간 두손에 뭔가 후두두둑 떨어졌다.
끊어진 머리카락 뭉탱이였다.
"이게 뭐야?"
"너는 담배에 불을 붙여야지 머리통에 불을 붙이냐? 앞머리 다탔어. 이마에서 니코틴 나오겠네. 진짜 어엿븐 년...."
그때 깨달았다.
아, 담배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
그렇게 잊혀졌던 담배 생각이 다시 난건 29살때였다.
새해가 됐고, 친구들과 모인자리.
어쩌다보니 새해에 뭘 하고 싶네, 목표가 뭐네 하는 대화를 나눌때였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흡연자였으므로 새해 목표 중 대다수는 금연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나도 금연이라는 것이 하고싶어졌다.
담배를 끊는 기분은 어떨까.
담배를 못끊어서 짜증나는 기분을 나는 평생동안 느껴볼 수 없겠지?
금단현상이 진짜 일어나나?
단순히 그 짧은 호기심에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그 길로 나는 편의점에 가서 담배 한갑을 샀고,
그후로 커피숍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러 갈때마다 꼬박꼬박 담배를 챙겨가 의무적으로 피웠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여전히 흡연가로 지내고 있다.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게 될때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담배는 언제부터 피운거에요?"
"29살이요."
"히익~?! 아깝다. 그동안 안피우다가 늦게 배우셨네요. 왜 피우게 된건데요?"
"금연이란걸 해보고 싶어서요."
내 대답을 듣고나면'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하면서도 이마에는 '이..뭐....병..'이라는 글씨를 또박또박 쓰곤한다.
아직까지는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다지 많이 피우지도 않을 뿐더러
원고를 마감하고 난 후, 피우는 담배 한모금을 포기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후회하지 않느냐 묻기도 하는데,
후회는 되지 않는다.
혼자서 노는걸 좋아하는 내게 또 다른 작은 취미가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엄마가 물었다.
"너 담배피지?"
나와 엄마와는 비밀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응."
"언제부터?"
"29세부터."
"왜?"
"금연해볼라고. 흡연을 먼저 해야 금연하잖아. 와하하하하핫!!"
엄마가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또라이를 낳았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적당히만 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어쩌다 엄마랑 외출을 할때면 먼저 내게 말을 꺼내신다.
"나 요기 앉아서 사탕크러쉬 한판 하고 있을테니까 저~~~~~~쪽 가서 담배하나 피우고 오던지."
과연 쿨녀 중의 쿨녀였다.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미성년자 학생분들께 전합니다.
담배는 나쁩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나도 금연이란걸 해보고 싶으니 흡연을 해볼까?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마세요.
흡연 자체가 안좋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담배를 피게되면 두고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붕신'이란 놀림을 받습니다.
담배는 제게 붕신이란 선물을 줬습니다.
언젠가는 금연으로 복수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