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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북에 올라가는 ‘정치적인’ 글입니다.
사실 페북에, 이렇게 공개적일 수도 없는 곳에 무언가 다분히 ‘정치적’인 글을 올리는게 무섭다. 주변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너무나 쉽게 판단했다. 나를 판단하는 사람이 누가 되었던 내 일부분인 정치적 스탠스로 나라는 사람 자체를 짐작하고 깎아내리는게 싫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거였다. 인간적으로 친하고 잘 통하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발언을 하면 그사람에대한 정이 뚝 떨어졌다. 비단 그 한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분명 부모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그 발언은 분명 뿌리깊은 관념일 것이고 고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그냥 미친척하고 가만히있었던 것 같다. 태그가되던 릴레이가 있던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2. 도착해보니 추모식에 있던 사람들은 누가 부른 알바가 아니었다.
목요일날 광화문을 갔다.
거기서 교복입은 학생을 보았고, 대학동기를 보았고, 선배도 보았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곳에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름없는 아무개가 아닌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제서야 뭔가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그리고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고자 모인 사람들은 어디서 누가 불러온 알바가 아니었다. ‘원래 이런일에 관심많은’ 친구만의 일도 아니었고 ‘원래 좀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문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10분 전까지만해도 나랑 톡하던 내 옆자리 그 친구였다.
눈을 다시 뜨니 세월호 부모들의 삭발은 여느 삭발식이 아니라 우리 엄마의 삭발로 보였다. 지난해 4월전까지 우리 엄마아빠처럼 평범하게 출근해서 평범하게 밥먹고 집에 왔을 사람들이었다. ‘원래 싸우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식 죽은거 가지고 돈 받아먹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아빠였다.
왜 그걸 지난해 4월에는 잘 알고 있었으면서 올해 4월에는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다.
3. 2014년 4월의 '자식잃은 부모'는 2015년 4월 '귀족 특혜자’가 되었더라.
처음엔 다들 '자식잃은 부모만큼 고통스러운게 없다’며 유가족들을 동정하고 7시간동안 사라졌던 대통령을 비난하고 구조도 하지 않으며 현장을 막았던 해경을 욕했다. 전국민이 생매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같이 통곡했으며 곳곳에서 원인을 밝히고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세월호 지원'이라는 너무나 명확한 ‘착함’이 있는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은 신이나 보였다. 내 편만들기가 너무 쉬운 일이였다. 머리 복잡하게 이해관계과 득실을 계산해서 어느 지역의 손을 들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슬프다고, 지원하겠다고, 돕겠다고만 밝히면 되어서 그랬나보다.
그사람들 중 한명이 대학입시에서 ‘특혜’를 주겠다는 말을 했다. 대학입시를 누군가 건들였다는 말이 더 맞을거 같다. 가난한자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알려진 대학에 ‘프리패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지역과 나이를 떠나 모두가 예민한 그 경쟁을 논하자 갑자기 사람들이 바뀌었다. 애초에 정원 외에 해택을 받을 수 있는 이가 적으며 그 조차도 유가족의 요구사항이 아닌 한 국회의원에게서 나온 말이었다는 말은 늦게 알려졌다.
상관 없었다. 유가족은 ‘특혜자’로 바뀌었다. 몇달뒤에는 역시나 유가족들이 원하지 않았던 ‘의사자 지정’이야기가, 그 몇달뒤에는 ‘세금’과 ‘비용’, 그리고 그 뒤에는 ‘8억’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보상금이야기가 나왔다. 자연스럽고 너무 명확했다. 참 쉽게도 탈바꿈 되었다.
4. 왜 모를까? 오늘도 유가족이 광화문에 갖혀있고 시청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었으며
유가족 없는 추모식이 의미가 없어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향하자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쐈다는걸 왜 모를까?
그리고 그자리에 내 가족과 내 친구가 가 있다는 걸 왜 모를까?
모를 수 밖에 없다.
네이버의 <세월호 추모식서 경찰과 마찰.. 95명 연행>의 뉴스 타이틀로는 알아 볼수가 없다.
물대포가 얼마나 강력한지도, 그래서 사람이 맞으면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현장에서 그걸 맞은사람이 있다는것도, 그 물에는 캡사이신이 섞여 있다는 것도, 캡사이신이 얼마나 독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도 알 수 없고, 한때 누군가 입었을 단원교 교복을 보며 교복입은 친구들이 서로를 부여안고 울었던 것도 볼 수 없다.
금요일날 저녁 경찰이 광화문으로 조문가는 행렬을 막고 내 친구를 새벽 4시까지 가둬놨다는 것도 알 수 없고, 그 장소가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지도 알 수 없고, 그 친구가 그 다음날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알 수 없다.
5. 글자가 주는 환각.
시작을 알아야했다. 왜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한 해경의 말이 엇갈리는지, 왜 세월호는 진도가 아닌 제주에 구조요청을 했는지, 왜 해경은 육상경찰의 지원을 거절했으며 UDT의 입수를 막았는지, 왜 핼기 구조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지..
자꾸 글자에 속았다. '세월호 특별법’ 이 ‘세월호’에 관련된 ‘특별한’법이니 좋은건줄 알았다. 이제 다 해결된 줄 알았고 더이상 힘들어안해도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 법에서는 조사받는자와 조사하는자가 동일하다. 용의자와 형사가 동일인물이다. 아이들을 생매장 시킨 원인이되는 사람들을 조사하는데 ‘양심적으로' 검사하게 생겼다. 이 법을 거절한 유가족들은 ‘지들 위한 법을 만들어줬는데 거절한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쇠파이프를 든 경찰과 대치중인데 뉴스는 제대로 된 방송을 해주지 않는다. 팩트를 전달할때는 단어 선택과 어휘, 뉘양스, 선택적인 정보 전달 모두에서 차이가 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고 그 속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으로 참가했고 왜 충돌이 시작되었는지 전달해주지 못한다. '세월호 추모 행렬… 95명 연행'으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사실 많이 무섭다.
6. ’내 자식이 죽어 슬퍼’는 괜찮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면 안되니까, 바꾸자'는 안되는 여기.
어느순간부터 ‘추모’는 괜찮은데 ‘정치’는 안된다고했다. ‘추모’는 ‘추모’로만 끝내고, 그래서 무언가 변화를 가져오라는 얘기는 하면 안좋을 거 같다고 했다. ‘정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다음순간에도 또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를 추모하고, 해운 업체 사장같이 필요한 원인제공자 개인이 들어난다면 그 결과를 가져온 시스템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하게 되겠지. ‘정치적’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그가 왜 죽었는지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이동하고, 결국 다시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범인을 감옥에 보내고 구조적인 원인을 없애려고 하는 마음으로 이동하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어쩐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 그냥 슬퍼하고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럴려고했다. ‘그래서 이유를 알아야겠다, 다음부턴 안그러도록 싹다 고쳐져야한다’ 라는 소리를 쏙 빼고, ‘너무 슬프다’만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녀오니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정치가 내 일부인데 그것 가지고 평가받기 싫으니 올리지 않겠다는 말처럼 이상한 소리가 없었다. 정치가 내 일부기 때문에 올려야되는 일이었다. 가끔 올라오는 뮤지컬 리뷰와 내 그림들, 혹은 친구들과의 사진이 나의 일부인 것처럼, 정치도 내 일부고 나의 목소리였다. 내가 뮤지컬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친구가, 동생이, 혹은 내가 어디가서 구조도 받지 못한체 죽지 않는게 중요했다. 그리고 내가 죽더라도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미처 슬퍼하지도 못한체 물대포를 맞으며 그 이유를 밝히려고 싸우는 일이 없는게 중요하다.
대단한 걸 약속할 순 없지만 내 스스로 걸어놓은 나의 엠바고는 풀렸다!
7.결론 아닌 결론: 알아서 판단하게 내버려 두려고요.
1) 그래도 추모식에는 가야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양심과 충동이 그날 광화문에 도착할 수 있게 했다.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가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충동이던 가식이던, 그날 광화문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내 일부분에 깊이 감사하다.
2)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이고, 후련하다. 신기하다. 중립을 버렸는데 자유로워졌다.
3) 짧은 글에 그간의 내 미련한 마음과 멍청한 생각, 고민 반성 분노 이런 것들만 있어 부끄럽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이 분명히 눈에 그려져서 용기를 내본다.
4)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정지승 과 김연우를 함께 태그합니다. 연우는 좀 다른 이야기였지만, 왜 내가 망설였는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민하게 해줘서 고마워. 너희들 아니었으면 나는 슬퍼하고 말았을거야.
5) 항상 고마운 사람들 변한영 손민정 이윤재 박정재 김예진 홍소희 김혜수 박은서 ... 릴레이의 의미는 없고 그저 고민만 한번 해보시라고 넘겨봅니다.
6) 사진은... 1980년대가 아니라 오늘, 광화문의 모습입니다. 아무도 이 상황을 모르는게 그때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며칠전 나처럼 이 사진을 다른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출처 |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00633856847499&id=100007026997478&substory_index=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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